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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누가복음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아멘.   

                                            

말씀요약:' 키리에에레이손'의 뜻은? 제자와 무리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가버나움과 나인성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리신 3명의 사람은 누구인가? 1.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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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아멘.

*지난 주에는 중환자였던 백부장의 종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더 심한 이야기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2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눅7:11 그 뒤에 곧 예수께서 나인이라는 성읍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과 큰 무리가 그와 동행하였다. 아멘.

*나인성
나인성의 지금이름은 Nin입니다.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거리죠. 예수님은 백부장의 종을 가버나움에서 고치시고, 12시간 정도를 걸으셨습니다. 꽤 먼거리였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이 거리를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갖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때문에 이 먼 곳을 향해 걸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후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큰 무리라고 합니다.

*제자와 무리. - 자기 중심성.
둘은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의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자기 부인이 있었던 것이죠.
반대로 무리들은 달랐습니다. 자기 필요한 것을 보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먹었습니다. 그냥 구경하면서 따라다닌 것입니다. 이기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자기 필요한 것은 잘 찾아먹고, 희생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와 무리를 다르게 대접하셨다.
똑같이 설교하고 나서, 제자들은 따로 모아서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특별한 말씀과 은혜를 제자들은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에도 제자와 무리가 있습니다.
제자가 되세요. 무리처럼 교회다니지 마세요. 
교회다니는 부담이 있어야 합니다. 부담이 없으면, 무리입니다. 부담이 있으면 제자입니다.
제자가 되세요. 무리가 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귀하 여기십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눅7:12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고 있었다. 그 죽은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고, 그 여자는 과부였다. 그런데 그 성의 많은 사람이 그 여자와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아멘.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슬픈 일입니다. 과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이 가난한 집의 유일한 희망은 외아들입니다. 아들이 있으면, 아들이 가문의 땅을 상속받습니다.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아들을 의지하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건 정말 눈물나는 일입니다.
유일한 희망이 끊어졌습니다.

*두 무리가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무리와 장례식의 무리가 만났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절망의 장례식이 기쁨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런 복이 있습니다.

*외아들이 죽은 과부같은 우리들이, 주님을 만나서 새 소망을 갖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눅7:13 주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엾게 여기셔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아멘.

*가엾게 여기다.
헬라어에는 ‘창자가 움직여서’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안타까움과 동정입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으라.
오늘 주님 앞에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이런 마음 품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십시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응답의 능력이 있는 기도입니다.
‘키리에 에레이손’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기도로 응답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다.

눅7:14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서, 관에 손을 대시니, 메고 가는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아멘.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관을 나르는 사람들 말고는 관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의 관을 만지면, 부정해진다고 믿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율법을 신경쓰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 이 관은 죽은 사람의 관이 아니었습니다.
잠자는 청년의 관이었습니다. 살릴 사람의 관이었습니다. 그러니, 관에 손을 대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시니, 갑자기 사람들이 놀라서 멈췄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어떻게 살리셨나요?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오직 말씀으로만 살리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살리신 3명이 나옵니다. 누구죠?
1.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2. 달리다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3.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지난 번, 백부장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누가는 이 두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가? 말씀의 능력으로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생명을 창조하신 분께서,
말씀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도 살릴 수 있으시고,
자신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고치시고, 스스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게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