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양과 미국장로교

2018.09.19 14:59

김동원목사 조회 수:44

1887년 조선시대, 어느 백정집에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이도 분명히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평생 백정으로 사는 수밖에 없다. 1895년 이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때, 조선에 콜레라가 만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의 아버지도 콜레라에 걸렸다. 백정일을 하다보니 쉽게 콜레라에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고아가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가족을 도와주셨다.

1896년 고종황제는 창궐하는 콜레라를 막기 위해서,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였던 에비슨에게 방역책임을 맡겼다. 이 소식을 들은 에비슨이 백정을 찾아왔다. 양반들은 에비슨에게 백정은 돌보지 말라고 했지만, 에비슨선교사는 지극 정성으로 이 백정을 살려낸다. 이 백정은 박성춘이고 후에 승동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에비슨선교사의 전도덕분에 기독교인이 된 박성춘은 자기 아들이 백정의 삶을 버리고 에비슨과 같은 의사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에비슨선교사는 박성춘의 아들을 시험해봤습니다. 몇년 동은 온갖 허드렛일을 시켰지만, 박성춘의 아들은 아무 소리하지 않고,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에비슨선교사는 박성춘의 아들을 제자로 받아 들였고, 그에게 박서양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에비슨은 백정출신인 박서양을 의사로 임명하기 위해서, 고종황제에게 특별 사면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계급이 정해진 사회에서 백정을 의사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기때문입니다. 에비슨의 특별 부탁을 사면하여, 박서양은 조선 최초의 외과의사가 됩니다. 아버지가 짐승잡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타고난 외과의사의 소질을 타고 났는 지도 모릅니다. 칼질에 대해서는 태고 난 사람이었으니까요.

박서양은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수로 일했지만, 학생들은 그가 백정출신이라고 해서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그때 박서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오백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

박서양은 백정의 삶을 벗어나 외과의사로 넉넉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1917년 그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만주 길림성 용정으로 이주해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만주의 독립군들이 부상을 당해도 치료받을 의원이 없었기때문입니다. 그는 숭신소학교를 세워서 미래의 독립투사들을 키워냅니다.

2010년 그의 이야기는 SBS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로 방영된 바도 있습니다.
미국장로교회가 없었다면, 백정으로 살다가 죽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을 자기 나라보다 사랑해 준, 미국장로교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