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춘과 미국장로교

2018.09.19 16:12

김동원목사 조회 수:40

박성춘은 조선 최초의 외과의사 박서양의 아버지이며, 백정이었습니다. 그는 1895년에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집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소식을 들은 고종황제의 주치의 에비슨이 박성춘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직접 몸에 손을 대면서 치료해줬습니다. 박성춘은 이 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왕을 치료하는 분의 손으로 백정을 치료하다니!'

박성춘은 콜레라에서 완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자기 자식들을 곤당골교회로 보냅니다. 후에 박성춘도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겨우 전도해서 모아 놓은 교인이 20명이었는데, 어느 날, 박성춘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교인들이 교회를 안 나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곤양골교회는 양반들이 다니는 교회였습니다. 중인도 아니고, 천민 중에 가장 바닥이었던 백정이 교회에 나와서 같이 앉아 예배드리는 것을 양반들은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양반들은 사무엘 무어 담임목사에게 압박을 넣었습니다.
"백정이 교회를 나오면 우리는 이 교회를 못 다닙니다. 저 백정을 내보내세요."
미국 북장로교 출신의 사무엘 무어 목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단호하게 대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는 평등합니다. 양반과 천민 모두가 한 형제 자매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양반들은 모두 교회를 나갑니다. 그리고 양반교회를 세웁니다. 바로 '홍문수골 교회'입니다.
홍수문골교회는 양반들 다니는 교회였고, 곤당골교회는 천민을 위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박성춘은 이 일에 충격을 받습니다.
'나같은 백정하나를 구하려고, 양반 20명을 내보내다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박성춘은 그때부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나간 20명을 내가 전도해서 채우겠노라.'
얼마 뒤, 곤당골교회는 백정들이 가득한 교회가 됩니다. 3년간 곤당골교회는 계속 부흥했지만, '양반교회'였던 '홍문수골교회'는 힘빠진 교회가 됩니다. 결국 3년 뒤 1898년에 두 교회는 다시 합쳐서, 지금 인사동의 '승동교회'가 됩니다.

1911년 박성춘은 승동교회 장로로 장립됩니다. 이 교회에 후임장로는 흥선대원군의 친척 왕족이었던 이재형이었습니다. 당회는 장립순서입니다. 백정이 왕족보다 선임장로가 된 것입니다.

1906년 무어선교사님은 장티푸스에 걸려 46세의 나이로 제중원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습니다. 목숨을 바쳐서 조선을 구하신 미국장로교회 선교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