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은 지금 대학 졸업반이다. 작은 아들은 한국으로 고3, 미국으로는 12학년이다. 대학입학원서를 여러 대학에 내고 기다리고 있다. 두번의 입시를 치르면서, 한국과 미국의 입시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이야 많이 다르겠지만, 내가 대학들어갈 때만 해도, 적성이라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꿈이라는 것도 배부른 소리였다. 몇몇 특이한 학생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장래의 꿈이었다. 그냥 1년에 딱 한번 칠 수 있는 학력고사를 쳤고, 거기 나온 점수를 가지고, 입시사정표에 적당한 학교와 학과를 골라서, 딱 한 군데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적성이었다. 성적이 적성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공부 제일 잘 하는 이과학생은 무조건 의대를 간다고 한다. 공부 제일 잘하는 문과학생은 상경계를 학부로 하고, 법률전문대학원에 간다고 한다. 세월이 지났지만, 성적이 적성인 것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신림동 난곡의 가난한 학교였다. 그 학교의 자랑은 서울대를 매년 많이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농대였다.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서울대를 많이 보내기 위해서, 아이들의 적성을 서울대 농대로 맞춰주셨다. 내 친구도 그렇게 서울대 농경제학과에 들어갔다. 덕분에 지금은 우리 고등학교출신이 농림수산부에 든든한 학연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미국은 좀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대학순위 1위라는 하버드대학교가 전교 1등의 모임일까? 의과대학이 전교 1등의 모임일까? 그렇지 않다. 공부 잘 해야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교 1등이라고 하버드 의대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1. GPA(내신), 2. SAT, ACT 점수(수능), 3. 각종 봉사와 운동과 취미활동, 4. 에세이(학교에서 쓰라고 주는 주제가 있다. 주로 왜 이 학교를 지원했는가? 너의 꿈은 무엇인가? 너는 꿈을 위해서 무엇을 해왔나?) 이런 순위로 중요하다. 무척 합리적인 것 같다. 내신이 좋은 학생들이 대학에서도 성적을 잘 받기 때문이다. 일회적인 수능시험의 대박을 대학에서는 별로 믿어주지 않는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입증되어 있다.

 

작은 아들 학교에 한국에서 이민 온 고등학생이 있는데, 천재라고 한다. 영어는 좀 발음이 딸리지만, 완벽한 문법을 구사하고 있고, 수학은 거의 천재수준이라고 한다. 정말 한국 고등학교의 수준은 넘사벽이다. 그런데 이 양상은 대학에 가면, 보기 좋게 뒤집어진다. 대학은 미국대학이 세계 최고다. 그 이유가 뭘까? 미국대학은 가능성을 위주로 본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보다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를 아는 학생을 더 선호한다. 자기의 꿈이 확실한 학생을 더 좋아한다. 이런 학생들이 통계적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기 때문이다.

 

한국학생들은 경쟁에 익숙하다. 시험은 무조건 잘 쳐야 하고, 다른 학생과 경쟁해서 이기는 본능이 있다. 지금의 한국이 있게 한 아주 좋은 습관이다. 그러나 왜 경쟁해야 하고, 왜 이겨야 하는 지를 모르는 아이는 끝내 그 경쟁을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미국대학들은 꿈이 확실한 학생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미국대학이 한국대학보다 우월한 것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