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를 다닐 때, 제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예배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신학생들은 예배드리는 것이 싫어서 예배시간에 땡땡이를 치기도 했고, 학교에선 예배출석표까지 걷기도 했습니다. 저는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들이 최고의 설교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나이가 많은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참 말씀을 잘 전하셨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질문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책임없는 사람은?"

정답이 무엇일까요?

"부목사들"이랍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부디 책임감있는 목사들이 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성함은 박조준목사님이셨습니다. 영락교회 담임목사를 하시고, 갈보리교회를 개척하신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제가 영락교회에서 섬기는 동안, 참 많은 분들이 박조준목사님의 이야기를 전설같이 해주셨습니다. 1973년에 39세의 나이로 한경직목사님 뒤를 이어서 영락교회 담임목사가 되셨습니다. 영락교회의 가장 전성기는 박조준목사님 때라고 말하더군요. 심지어 수요예배에도 사람들이 가득 가득 넘쳤다고 했습니다. 출석인원 3만명이었다고 하더군요.

 

박조준목사님은 독재정권 하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게다가 중앙정보부와 이웃한 곳에서 목회를 하셨죠. 박정희정권과 전두환정권에 쓴소리를 많이 하셨습니다. 차지철 경호실장의 장례식도 박조준목사님께서 집례해주셨습니다. 교회를 키우려면 정권에 쓴소리는 하면 안 되는데, 박목사님은 정권을 향한 쓴소리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받고, 세상에 빛과 소금같은 크리스찬으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쿠테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이 박목사님을 국가조찬기도회에 설교자로 초대했지만, 박목사님이 거절했습니다. 미국 순방때도 같이 동행하기를 강요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1984년 박조준목사님의 외화밀반입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5만달러를 미국에 밀반입하려다가 붙잡힌 사건이었습니다. 영락교회 담임목사직도 시무사면당하게 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죄자가 되었다고 박조준목사님은 고백하셨습니다.

 

히틀러 독재에 반대하여 순교하신 본회퍼목사님을 이야기할 때, 저는 박조준목사님이 생각납니다. 자기 목사직과 어쩌면 목숨을 걸고 말씀을 전하신 분이시니까요.

 

신학교때 주신 말씀대로 책임감있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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