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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요한복음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아멘.                     

말씀요약: 한국에는 왜 장로교가 많을까? 미국장로교는 한국에 어떤 일을 했을까? 언더우드선교사의 선교, 세브란스는 누구인가? 서서평선교사의 선교 1. 한 알의 썩는 밀이 되라. 2.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쁘다. 3.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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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해 드린대로 지난 화요일에 St. John Church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노회에 갔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완전히 미국사람들만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백인들만 모인 곳입니다. 당연히 영어로 모든 순서가 진행됩니다.
미국교회들의 방송시설은 너무나 좋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거기서 영어로 말을 시작하면, 정말 듣기 힘듭니다. 가끔 저는 저 노회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 ‘내가 왜 여기에 앉아 있나?’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게 우리가 속한 미국장로교회입니다. 왜 우리는 미국장로교에 속해 있을까요?
원래 저희 교회는 구세군분들이 세웠습니다. 침례교로 시작해서 미국장로교로 교단을 옮겼습니다.
우리는 미국장로교회와 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한국기독교인들은 미국장로교회와 뗄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교단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1/3 한 알의 썩는 밀이 되라.

*1884년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뉴욕대학교를 졸업하고, 은혜를 받아서, 선교사로 나가려고 마음을 먹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언더우드였습니다.
이 청년의 집안은 아주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형님이 언더우드타자기를 개발해서 아주 큰 돈을 벌었던 사람이었죠. 동생인 언더우드는 돈에는 관심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선교할까? 를 고민하던 사람이었죠.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뒤에 인도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인도말과 의학을 배웁니다. 그런데 얼마 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파송할 선교사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선’ 언더우드는 이 나라의 말이 ‘Chosen'으로 들렸습니다. 언더우드는 최초의 조선선교사로 자원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약혼녀를 설득합니다.
약혼녀: "그 곳에서는 무얼 먹고 살고 있나요?"
언더우드: "모르겠소."
약혼녀: "병원은 있나요?"
언더우드: "모르겠소."
약혼녀: "그럼 당신은 조선에 대해 아는 게 뭔가요?"
언더우드: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그곳에 주님을 모르는 1,000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 뿐이오."
언더우드는 이 여자분에게 파혼당합니다. 혼자 조선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1884년 12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서, 일본에 도착하고, 일본에서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감리교선교사인 아펜젤러와 함께 언더우드선교사가 인천 제물포 항으로 들어옵니다.
선교사로는 들어올 수 없어서, 당시 제중원이라는 병원이 세워졌는데, 그 병원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제중원에서 가르치는 여자 의사를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8살 많은 호튼(Lillias S. Horton)이라는 여자였습니다.

*결혼식을 한국에서 하고 나서, 신혼방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신혼방을 구경하겠다고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 보더랍니다.
길을 지나가면, 조선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머리를 만져보고, 눈을 까서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1887년 새문안교회를 처음으로 세웁니다.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었습니다. 원래 언더우드선교사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교회를 세워서 지금 새문안교회를 세웠습니다.

*고종황제를 도운 일
1895년 일본은 일본군인들을 이용해서, 고종황제의 아내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합니다. 경복궁에서 명성황후를 칼로 여러번 찔러서 죽인 뒤에, 석유를 뿌려서 시체를 태워버립니다.
고종황제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기의 음식에 독을 타서 죽일 것이라고 걱정하며 밥을 먹지 못합니다.
그때 언더우드선교사가 음식을 가져옵니다. 언더우드선교사가 철가방을 만들고, 자물통을 채웁니다. 그렇게 준비해 온 음식은 고종황제가 먹었다고 합니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미국장로교선교사밖에 없다고 믿었기때문입니다.
- 한국 최초의 철가방. 배달민족.

*언더우드는 늘, 해방을 설교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언더우드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참고 견딘다면 해방의 날이 올 것입니다.”
일본도 미국사람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일본과 미국은 친한 친구였기때문이었죠.

*미국장로교는 미국정부에 반대했습니다.
아무리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넘겨줬어도, 우리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
- 이게 미국장로교입니다. 나라를 배신해서라도 조선을 독립시키겠노라.

*언더우드는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대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더우드가 세운 대학교가 연세대학교입니다. 제가 그 학교를 졸업했죠. 이 학교는 일본어학과가 처음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절대로 일본말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언더우드의 아들 2대 -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한국명 원한경)은 한국전쟁때 부산에서 피난민들을 돕다가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제암리학살사건을 세계에 알립니다. 미군이 한국사람들을 학살했던 사건이었습니다.

*3대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주니어(Horace Grant Underwood Jr. 한국명 원일한)
미국장로교 목사였습니다. 한남대학교와 배재대학교를 세웁니다.
광주학살을 전세계에 알렸다가, 전두환에게 추방당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1916년 뉴저지에서 하늘나라에 갑니다.
지금 언더우드선교사의 묘지는 서울 양화진 선교사묘지에 있습니다.
죽어서 한국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아내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남편을 이장할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조선에 학교를 하나 더 세울 수 있으니, 안 된다고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장을 못했어요.
후손들은 어머니도 돌아 가신 뒤에, 부부 모두 이장을 합니다. 고집부려봐야 소용없습니다.

*한국에는 장로교가 참 많습니다.
저도 평생 장로교만 다녔고, 장로교신학대학교를 나왔고, 미국장로교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역사를 따라서 올라가 보니, 미국장로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목숨을 건 선교덕분이었습니다.

요12: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아멘.

*당시 뉴욕의 사진입니다.
당시 한국의 사진입니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선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언더우드선교사님덕분에, 한국에 이토록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한국의 모든 장로교회는 미국장로교회의 후손입니다.

*미국장로교회의 선교덕분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아버지 교단인 미국장로교회의 멤버로 남아 있습니다.

*언더우드선교사님 같이 어디서나 주님을 위해서 썩어지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쁘다. 

*한국에 가면 신촌에 큰 병원이 하나 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왜 이름이 세브란스일까요? 원래 이름은 제중원이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세브란스는 사람이름이었습니다.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는 Cleveland's Woodland Avenue Presbyterian Church 시무장로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돈을 아주 많이 벌었습니다. 그의 친한 친구 중에는 록펠러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스텐다드 석유회사를 같이 많들었고, 정말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료선교사였던 애비슨(O. R. Avison)이 부흥회를 하는 곳에 세브란스장로가 참석을 합니다.
그리고 조선에 죽어가는 수많은 환자들이 있고, 병원만 있으면 살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죠.
세브란스장로는 한국에 병원을 세우기로 결심을 합니다. 에비슨 선교사를 만나서 100년 전 돈으로 1만불을 헌금하기로 약속을 합니다. 에비슨은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때 세브란스장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You are no happier to receive it than I am to give it." 즉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더 크다

행20:35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아멘.

*세브란스장로는 74세에 하늘나라에 갑니다.
아버지 세브란스가 약속하고 못 낸 헌금은 아들 세브란스가 모두 지불했습니다.

*미국장로교 장로님 한분 덕분에 한국에 병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정부는 조선을 일본에게 넘겨줬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는 대신, 일본은 조선을 점령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미국장로교는 미국정부의 정책에 반대했고, 조선의 독립을 도왔습니다.

*미국장로교 노회에 가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미국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미국장로교인입니다.
세브란스장로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힘을 내어 놓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1880년 독일에서 어느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태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호텔에서 청소하는 사람이었던 어머니가 어느 독일남자와 같이 잠을 잤고, 이 여자아이가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자기 어머니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이 아이가 9살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십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외손녀에게 어머니의 미국주소를 줍니다. 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와서 자기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다른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기때문에 이 아이를 버립니다. 기숙학교에 보내버리죠.

*이 아이는 잘 자랐고, 간호사가 됩니다.
원래는 카톨릭이었지만, 미국장로교회에 예배를 참여하고, 장로교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어머니는 딸이 장로교인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고, 어머니는 딸을 더 만나 주지 않습니다.

*1912년 미국남장로교에서 조선에 간호선교사를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으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가난한 전라도 광주의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제주도, 추자도,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고쳐주고, 고침받은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 넘는 조선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팔려 다닙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1921년 내쉬빌 선교부에 보낸 편지)

*고무신 신고, 치마저고리입고, 보리밥에 된장국 먹으며 살았습니다.
무조건 한국말만 했고, 모든 책은 한국말로만 사용했습니다. 출애굽을 가르치며, 언젠가 조선도 독립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933년 서서평은 조선인 목사님들과 함께, 나병환자 50명을 데리고, 조선총독부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나병환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서서평은 조선총독부 앞에서 시위를 계획했던 것이었습니다. 미국시민이었던, 서서평을 일본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끝내 일본은 소록도에 나병환자 병원을 지어주기로 하고, 시위를 해산합니다.

*평생 14명의 고아를 입양했고,
오갈 곳 없는 과부들 38명과 같이 살았습니다.
1934년 과로와 영양실조로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의 책상에는 이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

마20: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아멘.

*평생 자랑스러운 미국장로교인으로 살았던 서서평선교사의 고백입니다.

*종종 노회에 가면, 모르는 미국 장로님들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100년 전에 한국선교를 열심히 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선교를 했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자기들이 선교한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다시 교회를 세우고, 같은 노회에서 활동하는 것이 너무 신기한 듯 합니다. 이래서 선교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우리들이 자신들이 선교했던 열매인 것이죠.

*루이빌 캔터키에 미국장로교 총회본부가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새 본부로 옮기고 사무실을 다 지었는데, 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못 짓고 있었습니다. 한국 목사님들이 이게 너무 마음이 아팠던 거에요. 한인교회들이 미국장로교회에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인들이 헌금을 모아서,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요즘 미국장로교를 비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학이 자유주의다. 동성결혼을 허락한다. 저희 교회 동성결혼 허락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하나가 있습니다. 미국장로교회가 선교하지 않았으면, 지금 한국 교회는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장로교회에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빚을 갚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미국장로교회의 선교와 동티모르선교에 참여하여, 우리도 누구에겐가 사랑의 빚을 주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