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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고린도전서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아멘.      

   

말씀요약: 장로교는 무엇이 다른가? 장로교의 창시자는? 박성춘과 박서양. 미국장로교의 분열역사 1. 장로교는 대의민주주의다. 2. 장로교는 품위있고 질서가 있다.  3. 장로교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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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평생 장로교인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장로교회 아닌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장로교신학대학교에 다녔고
유학와서도 미국장로교 샌프란시스코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유학와서는 다른 교단 교회에서도 사역하지만, 저는 장로교회만 섬겼습니다.
군대있을 때, 저희 기지교회에 한번 가봤는데, 기지교회 목사님이 성결교출신 목사님이셨습니다. 한번 가보고 안갔습니다. 부대 밖에 장로교회 앞에 방을 잡고,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장로교회였기때문입니다.
저는 뼛속까지 장로교인입니다. 여기 저보다 더한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장로교회는 미국장로교회를 통해서 세워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장로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꼭 장로교회만 다녀야 할까요?
다른 분들에게 장로교회를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1/3 장로교는 대의민주주의다.

*장로교회는 무엇이 다를까요?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교는 장로가 있다. 맞는 말입니다.

*존낙스 John Knox
이분은 스코틀랜드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카톨릭신부님이었는데, 종교개혁자 칼빈을 만납니다. 그리고 개신교인이 됩니다.
이분은 자기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스코틀랜드에 개신교회를 세웁니다.
당시 스코틀랜드여왕은 메리였습니다. 블러디 메리라고 부르던, 무서운 여왕이었죠. 메리는 카톨릭신자였습니다. 존낙스는 목숨을 걸고 전도했습니다. 메리여왕은 그랬던 존낙스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랬던 메리여왕도 존낙스의 기도를 두려워했습니다.
“스코틀랜드를 주시든가 아니면 내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
"백만 군사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
존낙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우리는 존 낙스의 후손입니다. 존 낙스의 기도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장로교는 원래 다른 교리가 있는 교파가 아니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산악지대입니다. 산 속에 마을이 있었습니다. 서로 연락이 잘 되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장로교회는 아주 특별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장로라는 조직이었습니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정하고 알릴 수 없었기때문에, 장로를 뽑고, 그 장로들을 통해서, 교회를 운영했습니다.

*전에 만난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는 장로교입니다. 그러니 장로가 교회의 주인입니다. 교회는 나이 많은 분의 의견을 따라가면 됩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원래 장로교회의 장로는 그런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출19:7 모세가 돌아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모으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하였다. 아멘.

*장로는 영어로 Elder입니다.
그런데 장로는 그냥 사용되지 않고, ‘백성의 장로’라고 사용됩니다.
장로는 그냥 장로가 아니었습니다. ‘백성의’라는 말이 빠지면, 장로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의견을 받아서 백성들을 대표하는 장로였습니다. 나이 많은 어른이라는 뜻이 아니고,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스코틀랜드는 산악지대라서,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웠습니다. 교회의 일을 정하기 위해서, 매번 공동의회로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를 뽑았습니다. 장로들이 교회의 일을 알아서 처리하고, 아주 중요한 일은 공동의회로 모여서 교인들이 정하는 시스템이었고, 아주 효과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에 세분의 장로님들이 있습니다.
교육을 하면서, 제가 가장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장로가 교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장로가 아닙니다.”
원래 장로교는 대의민주주의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장로교회는 이런 구조가 있습니다.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누가 제일 강할까요? 공동의회가 제일 높고 강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교인들이 정합니다. 대의민주주의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끔 청년장로도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특징입니다.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누가 반영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부족한 것이 여자장로님입니다. 있어야 합니다. 여자분들의 생각은 누가 반영하겠습니까?

*저를 비롯한 장로님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여기에 더 많은 좋은 장로님들이 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장로교는 품위있고 질서가 있다.

*한국장로교총회 라이브
침례교 목사님이 오셔서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구요. 너무 회의를 품위있게 하더라는 겁니다.
어느 분이 말도 안 되는 발언을 마이크잡고 하셨어요. 주위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의장이 ‘한번 들어봅시다.’ 딱 3분. 지나면 마이크 꺼집니다.
어느 분은 아주 좋은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래도 딱 3분. 마이크 꺼집니다.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총대들이 자유롭게 투표해서 정했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였는데, 다투지 않고, 정말 우아하게 회의하고 결정했습니다.

고전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아멘.

*장로교는 회의를 잘 합니다.

*미국장로교회의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는 것입니다.
내 주장만 요구하지 않고, 남의 주장도 들어보고, 품위있게 결정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미국장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미국장로교회가 한국에 선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너무 아름답게 바꿔 놓았습니다.

*1866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님은 토마스선교사님이었습니다.
이분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님이었습니다. 대동강을 타고 올라오시다가, 조선수군의 공격을 받아 순교하셨습니다. 그분의 순교덕분에, 평양에 평양신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다시 평양에 신학교가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해주십시오.

*박성춘장로의 이야기
박성춘이라는 백정이 있었습니다. 1895년 한양에 콜레라가 창궐했습니다. 죽은 짐승을 만져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에 세브란스 병원을 세우신 에비슨선교사님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정들이 사는 마을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당시 에비슨선교사는 고종황제의 주치의였습니다. 에비슨선교사님이 직접 박성춘을 찾아가서, 병을 치료해줍니다. 박성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왕을 치료하는 분의 손으로 백정을 치료하다니!'
박성춘이 완쾌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무어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곤양골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곤양골교회는 양반들이 다니는 교회였습니다. 양반 20명. 그런데 백정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니, 양반들이 모두 교회를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에게 “저 백정을 내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이 교회를 떠납니다. 양반 20명을 선택하든지, 백정 1명을 선택하든지...”
사무엘무어목사님이 원칙으로 목회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는 평등합니다. 양반과 천민 모두가 한 형제 자매입니다."
- 장로교회의 특징입니다. 모두가 평등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합니다. 하는 일이 다르지, 누가 더 높지 않습니다. 이게 장로교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꾼일 뿐이죠.
이 말을 들은 양반들은 곤양골교회를 모두 떠납니다. 옆에 ‘홍문수골교회’-양반교회였습니다. 동원양반김.
같은 동네에 두교회가 생겼습니다. 양반교회, 백정교회.
이 일로 박성춘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같은 백정하나를 구하려고, 양반 20명을 내보내다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박성춘은 그때부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나간 20명을 내가 전도해서 채우겠노라.'
얼마 뒤, 곤당골교회는 백정들이 가득한 교회가 됩니다. 3년간 곤당골교회는 계속 부흥했지만, '양반교회'였던 '홍문수골교회'는 힘빠진 교회가 됩니다. 결국 3년 뒤 1898년에 두 교회는 다시 합쳐서, 지금 인사동의 '승동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박성춘은 이 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신분상승이 아닙니다. 동등한 일꾼이었습니다.
이 교회에 후임장로는 흥선대원군의 친척 왕족이었던 이재형이었습니다. 당회는 장립순서입니다. 백정이 왕족보다 선임장로가 된 것입니다.

*장로교때문에 조선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정치제도를 교회에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해보지 못한 투표를 배웠습니다. 자기의 의견을 발언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전에는 왕이 시키는대로 해야 했는데, 교회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장로교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정부가 수립됩니다.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처음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회에서 다 해본 것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로교회는 이렇게 대한민국을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장로교인들입니다. 모든 일을 품위있고 질서있게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장로교는 평등하다.

*장로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평등입니다.
우리 모두는 평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일은 다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입니다. 식사를 준비하신 분의 일은 거룩하지 않고, 설교를 준비한 저의 일은 거룩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일은 평등합니다. 서로의 일이 다를 뿐입니다.

*teaching elder vs ruling elder
미국장로교회에서는 목사를 다른 말로 teaching elder라고 합니다. 목사도 장로로 부릅니다. 하는 일이 다를 뿐이라는 겁니다.

*투표는 더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교회의 직원입니다. 노회소속이지, 교회소속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저는 교회의 교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로나 권사, 안수집사를 뽑을 때, 투표권이 없습니다. 아주 당황스럽습니다. 새로 등록한 교인은 한표가 있는데, 담임목사는 한표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맞습니다.

*교회는 공평한 곳입니다.
장로교회는 조선땅에 교회가 평등한 곳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양반과 천민을 창조하지 않으셨다고 가르쳤습니다. 양반도 교회에서 1표, 천민도 교회에서 1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조선을 평등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창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아멘.

*다른 교파 중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 교파들이 있습니다.
신부님과 교인은 수준이 다릅니다.
감독제도가 있어서, 교회가 순종해야 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다릅니다. 아주 너무나 평등합니다. 저도 교회청소하지요?

*미국장로교회는 원래 하나였습니다.
1861년 노예해방으로 둘로 나뉩니다. 남장로교와 북장로교로 나뉘죠. 북장로교는 노예해방을 주장했고, 남장로교는 노예제도를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기막히게 1983년에 다시 하나로 합쳐서 미국장로교회가 됩니다.

*장로교는 평등합니다. 평등을 위해서 싸워왔습니다.

*박성춘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박성춘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집안은 백정이었습니다. 500년동안 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도 백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박성춘이 장로교회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정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꿉니다.
‘내 아들이 백정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아들이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아들 박서양을 에비슨선교사에게 데려갑니다. 그리고 의사를 시켜달라고 합니다. 에비슨선교사도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조선에서는 백정이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처음에 에비슨선교사는 이 청년에게 제중원에서 온갖 힘든 일을 다 시킵니다. 묵묵히 순종합니다. 몇년이 지나고, 에비슨선교사는 박서양을 자기 제자로 받아 줍니다. 박서양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선사회에서는 백정이 의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에비슨선교사는 고종황제를 찾아가서, 특별사면을 요청합니다. 고종은 박서양을 사면해주고, 의사로 임명합니다. 한국 최초의 외과의사 박서양. 그는 자기가 다니는 승동교회에서 평등을 배웠습니다. 백정이 장로가 될 수 있는데, 백정이 의사가 못될까?
박서양은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수로 일했지만, 학생들은 그가 백정출신이라고 해서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그때 박서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오백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
박서양은 백정의 삶을 벗어나 외과의사로 넉넉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1917년 그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만주 길림성 용정으로 이주해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만주의 독립군들이 부상을 당해도 치료받을 의원이 없었기때문입니다. 그는 숭신소학교를 세워서 미래의 독립투사들을 키워냅니다.
장로교회가 박서양을 키웠습니다.

*세월이 바꾼 것이라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도는 아직도 신분제도가 남아 있습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스드라
바이샤사람들은 다시 태어나도 공립학교 선생님이 될 수 없습니다.
2018년 1월에 실린 기사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장로교인입니다.
미국장로교선교사님들이 조선을 바꾼 것처럼, 우리들도 세상을 바꾸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