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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사도행전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아멘.            

             

말씀요약: 기독교는 부르심의 종교다. 바울의 회심은 사도행전에서 몇번 나올까? 소명과 사명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인제사장설, 직업소명설 1. 믿음이 흔들릴 때, 부르심을 확인하라. 2. 부르심에서 사명으로 이어가라. 마부 엄귀현과 이재형 대감의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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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아멘.

▶ *기독교와 불교의 다른점?
어느 분에게 물었더니, 헤어스타일의 차이가 아닐까요? 스님은 머리가 없고, 목사님은 머리가 있고...
저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ㅠㅠ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부르심의 차이입니다. 불교는 열심히 스스로 수도해서 진리를 찾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부르심의 종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교회라는 말, 그리스어 원어.
에클레시아. 이 말의 뜻은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 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셨습니까? 스스로 교회에 나오신 것인가요?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 믿음이 흔들릴 때, 부르심을 확인하라.

*신학교입학시험에 참 잘나왔던 문제입니다.
사도행전에 바울의 부르심의 경험, 소명은 몇 번 나오나요? 당연히 한번이겠죠. 바울을 예수님께서 한번 부르셨을테니까요. 그런데 3번입니다. 9장, 22장, 26장.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을 3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바울에게 부르심은 중요했습니다.

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아멘.

*수많은 바울의 편지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왜 바울은 부르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울은 끊임없이 부르심의 도전을 받았기때문입니다. 바울은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사도가 된 가짜 사도. 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늘 이 비난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바울의 소명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도망간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하늘의 밝은 빛을 보고 그 속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그 음성 중에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불러주셨던 것입니다.

행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으나, 내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멘.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증인인데, 같이 간 사람들은 빛은 보았지만, 이 중요한 음성은 듣지 못했습니다. 바울만 들었다는 것입니다.
같이 간 사람들은 바울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자기 혼자 들었다는 것이죠. 환청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건 부르심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부르심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왜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못 들었을까요? 이것은 바울을 부르신 부르심입니다. 옆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내용입니다.

*작은 음성. 마음의 확신으로 말씀하심
마틴 루터는 이 마음 속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듣는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둥같은 목소리의 부르심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부르심은 아주 드물어요. 주님께서는 조용히 우리의 마음 속에 다가와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가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부르심입니다. 거절할 수 있는 부르심입니다. 아니라고 하면 아닐 수 있는 부르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음성, 마음의 확신을 더욱 귀하게 여기십니다.
큰 소리로 하면 놀래잖아요? 큰 소리로 하면 내가 싫어도 따라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백성으로 불러주십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십시오.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 부르심을 기억하세요. 내가 믿고 싶어서 믿고, 내가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은 왜 3번이나 부르심을 간증할까요?
왜 서신서의 시작에 부르심을 확인할까요?
바울은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 때마다, 부르심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힘이 났던겁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 공포를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자기 위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를 하나씩 치우며 일어나는 그 기분? 흐르는 피를 닦으며, 부러진 뼈를 맞추며 비틀거리는 그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다른 마을로 복음 전하러 가는 바울은 부르심을 확인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주님의 부름받은 종이다.”
부르심을 확인하면,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요즘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교회 못 나온지 6개월이 넘었습니다. 이제 가정예배도 슬슬 나태해집니다. 처음에는 양복입고 거룩하게 드렸던 예배였지만, 지금은 내복입고 거만하게 드리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안 가니, 내가 기독교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목사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우리의 믿음이었나요? 이게 우리의 본래 모습이었던 것인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이 흔들리면, 부르심을 확인하세요. 내가 믿고 싶어서 믿는 것 아닙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오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도망칠 자유도 없는겁니다. 바울이 그렇지 않습니까?

*삶이 힘겨울 때...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확인하십시오. 주님께 부르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십시오.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서 모여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눈물 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부르심에서 사명으로 이어가라.

*신랑이 신부가 되었네?
여자친구가 독실한 카톨릭신자입니다. 결혼을 하려면 무조건 성당에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 남자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니다 보니, 성당이 너무 좋았습니다. 믿음도 생겼습니다. 여자친구는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딸이 울면서 집에 와서 부모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남자친구의 믿음이 너무 좋아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걱정이냐고 물으니.
남자친구가 너무 믿음이 좋아져서, 주님께서 자신을 신부로 부르셨다는 겁니다. 남편감을 주님께 뺏겼다고 울더랍니다.

*영어로 부르심은 call입니다.
call에 붙는 전치사는 to 입니다.
call to the mission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사람을 부릅니다. 부르고 아무 말도 안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주님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무엇인가 일을 시키십니다. 그게 바로 사명이라는 겁니다.

*사명을 오해하지 말라.
사명을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 인생을 걸고 무슨 일을 하는 것만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명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큰 문제에요. 작은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주방에서 봉사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나가는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종교개혁을 시작하신 마틴루터 선생님.
원래 신부님이었고, 신학교교수님이었습니다. 1517년 경 천주교회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아예 달랐습니다. 신분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성직자는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평신도들은 세상 속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뭐가 문제냐구요? 이게 큰 문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만인제사장설
루터는 이게 성경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성직자였나요? 예수님은 제사장도, 바리새인도, 서기관도 아니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 흔한 성직자지파인 레위인도 아니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주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만인제사장설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사장인거에요. 옆에 계신 분을 축복하시겠습니다.
“당신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제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예배를 스스로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주부의 초보운전
운전을 못하는 김여사님이 계셨어요. 길에 나가면 남자들이 빵빵 경적을 울리면서, “아줌마는 집에 가서 밥이나 하지. 무슨 운전이냐?”라는 차별의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초보운전 표지판을 바꿨습니다.
“지금 밥하러 가는 중입니다.”
재미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분은 밥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거에요. 나는 사명자라는 마음으로 밥을 하는 겁니다.

*직업소명설
바로 이 말입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이라는 겁니다. 물론 도둑질, 마약장수, 도박꾼 같은 나쁜 직업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할 때 주님께 하듯이 하라는 말입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불러주신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아멘.

*모든 일을 주님께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거룩한 일과 거룩하지 않은 일이 구별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은 다 거룩하니, 주님께 대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마부 엄영수이야기
지금부터 110년이 지난 일입니다. 경동제일교회에 영수, 지금의 장로입니다. 엄귀현 영수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믿음이 좋은 영수였지만, 직업은 마부였고, 왕손, 이재형대감의 마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말에 이재형대감을 태우고, 앞에서 마부인 엄영수가 말을 끕니다. 그러며 넌지시 전도를 합니다.
‘나으리, 예수 믿으시면 좋습니다. 예수 믿으시지요?’
그러자 이대감은 이렇게 비꼬며 말을 합니다.
‘그래 예수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兩班)이라도 된단 말이냐?’
엄영수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으리, 예수님을 믿는 도리(道理)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마부 노릇을 더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왕손은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신학교가서 목사되어, 남대문교회, 승동교회 담임목사가 됩니다.

*엄영수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분이 말하는 것이 직업소명설입니다. 우리의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업입니다. 주님께 대하듯 최선을 다하세요.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이것 아닙니까?
사업을 하면서는 안 보이는 것은 속이고, 안 볼 손님에게는 바가지 씌우고, 예수믿는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교회가 욕먹고, 우리 주님이 욕먹으시는 것아닙니까?
엄영수같이 일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직업입니다.

*주부들은 집에서 밥하실 때, 기도하세요? 불평을 하세요. 해도 해도 답없는 밥인가요? 기도한 밥 먹은 가족과 불평한 밥 먹은 가족이 똑같이 될까요?
세탁을 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옷 입은 사람이 예수믿고 복받게 해주세요. 기도하셔야 합니다.
공사하면, 하나님,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복받아서 예수믿게 해주세요.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부르심이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십니다. 교회일만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 맡겨진 모든 일들이 주님께서 불러서 맡겨주신 일들입니다. 기쁘게 하십시오. 감사함으로 하십시오.

*사명으로 산다면?
여러분들의 가정이 주님 보시기에 기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명, 어머니의 사명을 기억하라.
여러분의 직장이 바뀔 것입니다. 거룩하게 출근하세요.
우리 교회가 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부르심을 사명으로 바꾸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백성들을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들인데, 주님께서 주의 백성을 삼아주심에 감격합니다.
주님,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만도 못합니다.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험받습니다.
힘겨울 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부르심을 확인하여 든든한 믿음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부르심이 사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일들에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대하듯 내 일을 하게 하옵소서.
쓸모없는 우리들을 부르시어, 주의 일꾼을 삼아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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