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9]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은혜금요-눅16, 살전4, 마25-230908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3-09-11 15:16
조회
1229
▶ 사도신경9강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교회 처음 나온 분들은 그런 말들 때문에 적응이 안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주기도문에도 모르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대개”의 의미를 아시나요? “왜냐하면”이라는 고어입니다. 새 주기도문에서는 이 말이 빠졌습니다.

*사도신경에도 잘 모르겠는 한국말이 나옵니다.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여기서 저리는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from thence 라는 단어인데,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말입니다. ‘거기로 부터’라는 뜻입니다. 바로 앞에 무슨 고백이 있었나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즉 하나님 우편에서부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말입니다.

*한국말이 영어보다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새 사도신경에서는 저 부분을 드디어 바꿨습니다. 바꾸자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지만, 새로 암기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못 바꿨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전 것을 사용하는 교회들도 있고 새것을 사용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교회도 새것으로 바꾸게 될 텐데, 부담스러우시더라도 한번 새로 외워주시면 좋겠습니다.

▶1/2 주님께서는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신다.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아멘.

*이 말씀을 보면, 죽은 자가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부활하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 말씀을 믿는 분들은 화장을 안 하시려고 합니다. 몸을 태워 버리면, 마지막 날에 부활할 몸이 없어 진다는 겁니다. 이건 정말 오해하시는 겁니다. 매장을 해도 오래 지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낡은 몸이 아니어도 우리를 충분히 부활시킬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질문: 우리가 죽으면 바로 하늘나라에 가는 건가요? 땅 속에서 쉬다가 마지막 날에 천국가게 되는 건가요?

*성경에 여러 가지 말씀들이 나옵니다. 방금 읽었던 말씀을 생각하면 마지막 날에 다같이 몰아서 부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더욱 분명하고 권위가 있습니다.

▶눅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아멘.

*이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헷갈리면 무조건 예수님의 말씀을 보세요.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분명합니다. 천국과 부활은 예수님께서 권위자이십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죽고, 바로 천국과 지옥을 향해서 갔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바로 그 즉시로 천국과 지옥을 향해 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실제 이야기가 아니고, 비유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비유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이죠. 죽고 나면 바로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옆에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라고 강조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너무나 분명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산자와 죽은자를 분명히 심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산자와 죽은자는 모든 사람들을 말씀하는 겁니다. 죽고 나서 끝이라는 게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상의 시작입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또한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사세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심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똑바로 예수믿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두려운 주님을 항상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우리 모두는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날은 어떤 날이 될까요?

▶마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아멘.

*양과 염소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양과 염소는 비슷한 동물입니다. 물론 생김새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역시 비슷한 동물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양과 염소가 행동하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 둘을 섞어 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양과 염소를 계속 섞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밤이 되면, 양은 양우리에, 염소는 염소우리에 넣어야 합니다. 바로 그 모습을 비유로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이 날이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마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아멘.

*왜 양을 오른편에 놓을까요?
오른편에 누가 계시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영광의 보좌”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양은 예수님의 편에 모아 놓고, 염소는 예수님의 반대편에 모아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판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양이든지 염소든지, 둘 중에 하나여야 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것이 이렇습니다. 구원이든지, 아니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성도님들은 자신이 양이라고 확신하시나요? 그 누구도 내가 염소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양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마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아멘.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은 양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염소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죽은 후, 우리는 주님의 보좌 앞에 한 명씩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양으로 인정되면 이 심판을 통과하고 천국가는 겁니다. 그러나 염소로 판정되면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천국은 못 가는 겁니다.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심판은 죽기 전,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 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을 통해서 천국과 영생이 결정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사십시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일을 하십시다.

*심판은 분명히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으로 인정받게 되면, 그 심판의 자리는 시상의 자리가 됩니다. 수고한 믿음에 대한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염소같이 제 고집대로 살지 마십시오.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는 주님의 양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의 주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바쁘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살던 우리들이, 잠시 시간을 멈추고, 주님께 나와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중심과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러 이 땅에 오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심판의 그 날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명을 완수한 이들에게는 심판의 자리가 시상의 자리로 변하는 줄을 믿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잘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옵시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 주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마지막 날에 주님의 양으로 인정함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믿음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주님의 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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