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15]왜 용서해야 하나요?-은혜금요-마5:44-240517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4-05-17 20:41
조회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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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아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용서하면서 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왜 용서하며 살아야 할까요?

▶1/2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아멘.

*이 법은 구약성경에 나와있는 법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법입니다.
왼쪽 눈을 다쳤으면, 가해자의 왼쪽 눈을 때려서 다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왜 이런 법이 있을까요?

*이런 형태의 법은 세상에 많이 존재합니다.
▶동태복수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법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기록된 동태복수법은 바벨론의 함무라비법전입니다.

*왜 이런 법이 있었는 지를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창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아멘.

*자기 동생을 때려죽인 가인의 후손 중에서 가장 심한 범죄자가 바로 라멕이었습니다.
라멕이라는 사람은 불한당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실수로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였고, 소년이라도 자기에게 실수하면 용서하지 않고 죽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면, 자기의 두 아내에게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협박하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게 고대사회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냥 기분나쁘면 사람을 죽였습니다. 부족끼리 시비가 붙으면, 그냥 죽이고 약탈했습니다. 당시에 공권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은 그냥 당하고 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있는 사람은 작은 일로 시비를 걸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힘없는 사람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태복수법은 잔인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힘있는 사람의 복수를 제한하고, 힘없는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법이었습니다.

*함무라비법전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귀족이 귀족에게, 평민이 평민에게는 똑같은 복수를 할 수 있지만, 평민은 귀족에게 당해도 똑같은 복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출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1: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아멘.

*귀족이나, 평민이나, 지도자나, 제사장이나 상관없이 똑같이 이 법을 행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눈에는 눈” 법은 복수법이 아닙니다. 힘이 있는 사람을 억제하는 법이고, 힘이 없는 사람을 배려하는 법입니다.

*요즘 세상을 생각해볼까요?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합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기 힘든 것을 아실 겁니다. 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면, 죄의 값은 훨씬 더 가벼워집니다.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는 정의로운 도시인가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훔칠 권리, 남의 것을 뺏을 권리는 잘 보호되고 있고, 안 뺏길 권리는 전혀 보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를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공평과 정의가 넘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2 원수를 용서하라.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아멘.

*지금도 그렇지만, 뺌을 때리는 것은 육체적인 모욕이기도 했지만, 인격적인 모욕입니다.
오른 쪽 뺨을 맞은 뒤, 왼쪽도 돌려서 맞게 되면, 손의 위치가 어떻게 되나요?
왼쪽을 때릴 때는 반드시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당시에 손등으로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은 엄청난 모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것은 당시 법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이라 고발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는 눈이라는 법을 넘어서서, 용서의 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왜 우리는 용서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1)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주일설교때 나오는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 달란트 빌린 종이 백 데나리온 빌린 종을 용서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 달란트 빌린 종을 다시 감옥에 넣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용서를 체험한 사람은 용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을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용서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하세요. 그리고 용서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예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만 하셨나요?
억울하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끝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삶을 통해서 용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용서의 주님을 따라서 우리도 용서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원수가 많아지면, 내 삶은 망가집니다.
혹시 원수가 있으세요? 서로 마음 불편한 사람이 있으세요. 얼마나 불편합니까? 길에서 만날까봐 불편하고, 식당에서 보게 될까봐 얼마나 불편합니까?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속이 좁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기분나쁘게 하면, 바로 원수로 삼습니다. 얼굴도 안보고 인사도 안받고 연락도 안 받습니다.
뭐가 섭섭하신지? 저도 원수로 삼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누가 더 불편할까요? 저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자꾸 다른 분들을 원수로 삼고 나니, 목회자들 모임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사방에 원수들이 가득하니까요.

*원수가 많아지면, 피곤합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줄어 듭니다. 용서하는 게 예수믿는 사람들의 답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용서하며 사십시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저와 성도님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죽을 죄로부터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용서받은 은혜와 기쁨 속에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님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며 사신 주님을 따라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용서받은 자는 용서하며 사는 줄을 믿습니다.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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