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줄이고, 이웃은 늘리라-은혜주일-눅10:37-260517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6-05-19 22:15
조회
314
▶ *영국프로축구의 아스널이라는 팀의 유니폼에는 특별한 광고가 있습니다. 르완다를 방문하세요. 라는 광고입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이고, 성장하는 국가입니다. 그러나 30년 전 르완다에는 엄청난 학살사건이 있었습니다.
르완다에는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지배자들은 구분을 하기 위해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후투라고 불렀고, 목축이나 엘리트들은 투치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민증에도 후투. 투치를 표시했습니다.
1994년 4월 6일 후투 출신 르완다 대통령의 비행기가 격추됩니다. 후투 사람들은 투치가 이 일을 저질렀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100일 동안 100만명의 투치가 학살당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사실은, 같은 마을에 사는 후투들이 투치를 학살했습니다. 같은 교회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졌고, 같은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이후 르완다는 각성을 했습니다. 모든 주민증에 후투와 투치구분은 사라졌습니다.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 서로를 이웃과 원수로 정하면서 학살을 했던 것입니다. 이후 르완다국민들은 화해를 했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웃은 누구인가요? 적은 누구인가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더 많은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적은 줄이고, 이웃은 늘리라.
*지난 시간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어느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나와서, 잘난 척 하려고 질문을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그는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눅10:29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아멘.
*지금 율법교사는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말꼬리를 붙잡고, 말싸움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웃이 누구인가? 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웃과 적을 잘 구분했습니다. 유대인들끼리는 이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점령군은 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인인데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은 이웃일까요? 적일까요? 유대인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웃일까요? 적일까요?
*이게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이웃은 집에 초대해서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이 죄인이면, 내가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7일 동안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식민지 생활을 한 것이 벌써 60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아무나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이방인들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이웃과 믿을 수 없는 적들을 구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웃 중에도 나를 배신하는 사람이 있고, 적 중에서도 나를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분하는 이웃과 적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나름대로 내가 쌓아 놓은 데이터들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이렇더라. 어느 지역 사람은 성격이 이렇더라. 그게 잘 맞습니까? 잘 안 맞습니다. 가끔 맞는 케이스를 발견하면, 속으로 역시 내 생각이 맞아! 라는 착각을 할 뿐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전쟁은 이웃과 적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구분은 사탄이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서 주는 생각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이웃으로 삼으세요.
*어릴 때는 만나서 같이 놀면 친구가 됩니다. 쉽게 친구를 사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까다로워집니다. 작은 일 때문에 친구 사이가 깨지기도 합니다. 그래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교회에서도 맨날 이야기하는 사람만 이야기하지 마세요. 더 많은 사람과 인사하세요. 적은 줄이고, 이웃은 늘리세요. 더 많은 사람들을 이웃으로 삼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사랑하면 희생한다.
*2013년 어느 일요일 미국 테네시의 산고 연합감리교회 앞에 구걸하는 노숙자가 한명 앉아 있었습니다. 그에게서는 더러운 냄새가 났고, 다리도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왜 하필 주일날 예배당 앞에 앉아 있는 걸까요?
예배를 드리러 온 수많은 교인들과 교회 장로 집사들은 그를 못 본 척하고 피해갔습니다. 교회 예배 안내위원들은 그 거지에게 다른 곳에서 구걸하라고 화를 냈습니다. 종종 몇 명의 교인들만 그에게 동전을 던져줬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설교시간이 되었는데, 그 노숙자가 절뚝거리며 강대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그 교회를 섬길 담임목사인 ▶윌리 라일이었습니다. 그는 노숙인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 실제로 5일 동안 노숙을 했습니다. 교인들은 자신들이 무시했던 거지가 담임목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마태복음 25장의 구절("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을 가지고 이웃사랑에 대해서 설교하셨습니다. 교인들은 설교를 듣고, 자신들의 위선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시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습니다. 당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눅10: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아멘.
▶*예루살렘은 해발 750미터 정도 되고, 여리고는 - 250미터 정도가 됩니다. 약 1000미터의 고도 차이가 있는 지역입니다. 두 도시의 거리는 17마일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길이 가파르겠습니까?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에 예배드리러 가는 순례자들, 예루살렘에 장사를 하러 가는 상인들, 예루살렘 성에서 근무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돈을 가지고 이 길을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순례자들은 헌금을 가지고 올라가구요. 상인들도 돈을 가지고 갑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도 돈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이 길은 “피의 길” “붉은 길”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강도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굽이 길이 많이 있었기때문에 강도들이 숨어있을 곳도 많았습니다. 강도당하지 않으려면 그룹을 만들어서 가야 합니다. 여럿이 몰려서 가면 훨씬 더 안전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룹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혼자 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종종 같이 갈 사람이 없거나,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은 그룹을 만들지 않고, 혼자 이 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강도들의 쉬운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크게 반항을 했고, 강도들에게 맞아서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눅10: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아멘.
*이 사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24반열이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순서대로 돌아가면 일년에 2번 정도 예루살렘성전에서 섬기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제사장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함부로 시신을 만지면 안 됩니다. 성전에서 봉사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장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죽어가는 사람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다른 사람이 하겠지. 라고 하며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눅10: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아멘.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서 봉사를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도 이 사람을 발견했지만, 그냥 지나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단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확인하려면 가까이 가야 했는데, 사실 자신도 위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혼자서 길을 가고 있었기에, 구하다가 자기도 똑같은 신세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귀찮습니다. 저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서 어떻게 여리고까지 내려갑니까? 그건 지나가는 다른 그룹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즉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할거라는 안일한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이웃사랑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희생없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먼 이웃을 사랑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먼저, 나와 같이 사는 가족들을 사랑하세요. 사랑은 희생입니다. 내 시간과 노력과 돈을 써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이 예배하는 교인들을 사랑하세요. 사랑은 희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가족과 교인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라.
*10년 전에 가족들과 유타에 휴가를 가서 생긴 일입니다. 4월 달이었는데, 산길에는 아직도 길이 얼어 있었습니다.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는데, 눈길에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그 길을 지나는 많은 차들이 있었습니다. 저 외에는 아무도 차를 세우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2차 사고를 막으려고 제 차로 오토바이를 보호해줬습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여행을 온 부부였습니다. 오토바이를 같이 일으켜줬고, 남편이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넘어볼테니, 자기 아내를 산 넘어까지 제 차로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안전하게 산을 넘어온 후, 제 명함을 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영국에서 감사카드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그때 산에서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눅10: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아멘.
*유대인의 입장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절대로 이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사마리아는 같은 동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되었고, 그들의 식민지가 되어서 혼혈이 되었습니다. 정말 마음 아픈 역사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때부터 상처입은 사마리아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성전을 다시 복구할 때, 사마리아사람들은 같이 돕겠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의 도움을 거부했습니다. 사마리아사람들은 같은 말을 쓰는 동족이지만, 혼혈이라는 이유로 이웃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에 자신들의 성전을 짓고, 거기서 예배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마리아인은 예루살렘성전에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같이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인의 마음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맞아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치료해주고, 인근에 있는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줍니다.
▶눅10: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아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사마리아인은 두 데나리온을 여관주인에게 줍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초과된 비용은 돌아오는 길에 다 갚아줄 테니, 꼭 이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왜 자신을 무시하는 유대인을 도왔을까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의 마음에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생겼기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참 중요한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대부분의 오해를 풀 수 있는 열쇠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 또 나를 공격한다. 저 사람은 항상 이렇다. 라고 우리는 오해합니다. 그러는 순간 내 마음속에 미움이 싹이 틉니다. 그 미움때문에 상대방은 나의 이웃이 아니라 원수가 됩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저 사람도 참 힘든가보다.” “저 사람도 그럴 이유가 있겠지.” 이 마음이 긍휼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품으면, 미움이 아니라, 기도가 나옵니다.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사마리아인은 긍휼한 마음이 들었을 때,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다가가서 상처를 싸매줬습니다. 우리도 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긍휼한 마음이 들면, 싸우다가도 하던 말을 멈춰야 합니다. 더 큰 싸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세요. 그러면 싸움의 상황이, 평화의 상황으로 바뀝니다. 긍휼의 마음을 품으세요.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세요. 그러면 상황은 차츰 좋아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이 중에서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눅10: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아멘.
*자존심이 상한 율법교사는 절대로 사마리아인이라는 답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이겠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웃집에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남편 복도 없지. 나는 아내 복이 없어. 어쩌다가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사마리아인처럼 행하라.”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내가 좋은 이웃이되고,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내가 되라는 명령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기십니다. 주님의 긍휼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정말 좋은 이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들은 교만하여 내 마음속에 엉뚱한 기준을 세우고 나의 이웃과 적을 구분하며 살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싸움이 시작될 때 멈출 줄 아는 용기를 주시고, 상처를 키우는 말 대신에, 양보하는 말과 용서하는 말을 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게 해주시옵소서. 이 도시에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그들을 위로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도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또한 주님의 긍휼을 매일 경험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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