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무나 하나? - 은혜 주일 060730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06-08-02 18:29
조회
11207


download.gif


구약성서/신 6:4,5(271면)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아멘.




신약성서/마22:34-40(38면)



22: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아멘.




저희 집에 무전취식하는 친구둘이 있습니다. 일도 안하고 맨날 공짜로 밥얻어 먹습니다.  왜 나에게 붙어서 일도 안하고 얻어먹고만 사는데, 저는 그 녀석들이 공짜로 무전취식을 함에도 불구하고, 볼때마다 기분이 좋은 것일까? 저희 두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6살 난 아들 녀석에게 뭐 받은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투자금액 회수하려면, 수많은 투자를 해야 됩니다.

한번은 저희 집에 2살된 작은 녀석을 붙잡고, 답답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야~ 너는 언제 커서, 투자금 회수해 줄래? 그랬더니 저의 집사람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럽니다. 당신은 부모님께 뭐 해드리 것 있수?

할 말이 없습니다.



비록 돈은 적자가 나고, 몸은 이리 저리 섬기러 다니느라고, 힘들지라도, 우리의 사랑만은 적자가 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mutual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관련된 아주 좋은 시가 하나 있어서 읽어드립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흔히 하는 얘기가 아니지

만나도 만나도 느끼지 못하면

외로운건 마찬가지야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하나를 찍을까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유명한 한국가요 중에 하나입니다. 참 동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한평생 사랑하고 살기에도 너무 짧은데, 미움과 시기로 사시는 분들을 보면, 김목사의 가슴 찢어집니다. 사랑하며 살라고 해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에게는 사랑할 사람들을 아주 많이 주셨습니다. 도대체 믿는 이들은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른 사랑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1. 믿는 이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왜? 믿는 이들의 사랑이 나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것에서 부터 시작하느냐?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예상외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나라가, 1등하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작년도 조사에 의하면, OECD, 즉 선진국들 중에서, 자살률이 1위라고 합니다. 자살, 자기가 너무 미워서 스스로 죽는다는 겁니다. 인간이 짐승들보다 낫다고 하죠?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짐승은 자살 안해요. 최소한 자기의 목숨만은 지켜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인간은 자기 목숨을 자기가 끊습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 모순 아닙니까? 자기 몸 아끼고 아껴서 생명 늘려 놓고, 어떻게 합니까? 늘어난 인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학대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한 율법사가 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사는 율법에 대해서 통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완전히 다 꿰고, 외우고, 심지어는 머리, 팔 목 같은 곳에 말씀을 항상 차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대단한 사람이죠. 그러나, 율법사는 단순 암기만 했지, 뭐가 중요한 질 몰랐네요.



구소련에 유명한 첩보조직이 있습니다. KGB라는 첩보조직입니다. 이들의 횡포가 대단했는데요. 어떤 사람하나를 잡아 넣으려면, 아주 간단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쓴 글 한 줄만 있으면, 그냥 집어 넣을 수가 있었답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보고, ‘니가 사랑하는 것이 미국자본주의 아니야?’ 그러면 그 사람 그냥 잡혀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율법사는 그러려고 왔습니다. 너무도 잘 아는 율법의 규정들을 이용해서,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 말로 함정을 파서 고발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실상이며, 기독교인들의 실수입니다. 율법사는 율법규정 한구절 한토시까지 다 암기했지만, 그 율법의 가장 근본정신인 사랑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주일성수를 합니다. 십일조 합니다. 감사헌금합니다. 교회봉사합니다 율법적인 행위는 앞서지만,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당에서 은혜 많이 받고 나오면서, 어디서 은혜 다 쏟아 버리는 줄 아세요. 주차장에서 다 쏟아버립니다. 누가 바쁜데 차를 이렇게 세우고 예배를 드리냐? 욕에 욕을 하고, 주차요원들에게 행패를 부립니다. 그 분은 방금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교인입니다.



제가 영락교회에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제가 예배담당이어서, 항상 예배안내를 했습니다. 베다니홀이라는 곳이 있는데, 콘서트홀형식이라, 의자가 각자입니다. 가운데부터 앉으셔야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어느 노년의 점잖은 부부가 가장 끝에 앉으셔서, 교인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계신겁니다. 자리도 꽉차서 없는데... 목회자인 제가 가서 공손하게 부탁드렸습니다. 가운데로 이동해주십시오. 그랬더니, 그분이 뭐라고 했을까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싫어!’ 은혜받으러 왔지만, 주일성수를 하지만, 다른 이를 위해서는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이기적인 비본질만 남아버린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의 특징이죠? 뭘 공부해야 될지 모릅니다. 아무거나 다 외웁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공부시간에 한 웃긴 얘기, 연애얘기 있으면, 써서 줄쳐가면서 외웁니다. 그러나 시험에는 안 나옵니다.



이 율법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 외웠지만, 다 지키려 했지만, 뭐가 중요한 지 모르고 살았던 겁니다.



주님의 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 중요함의 순서는 하나님, 이웃입니다. 그러나, 그 실천 방향을 자세히 한번 보십시오.



39절을 같이 읽습니다.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아멘.



네 이웃을 뭐 같이 사랑하라구요? 자신을 사랑하듯이, 네몸 아끼듯이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 방법적인 면에서 시작은 자기 자신의 사랑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신촌에 가면, 재미있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민들레영토라는 카페인데요. 전세계적으로 스타벅스라는 체인점이 유행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카페의 시장점유율이 최고입니다. 이 카페는 아주 재미있는 곳입니다. 이 지배인이 전직 목사님이라는 겁니다. 목사하시다가 이혼을 하시고, 나이 36살에 실업자가 된 사람입니다.



의사는 이혼을 해도, 의사입니다. 군인이 이혼을 해도, 군인입니다. 그런데 목사는 이혼을 하면, 목사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저는 항상 제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이분이 젊은 나이에, 이혼을 하시고, 아내에 대한 배신감, 자신에 대한 좌절감, 실패감으로 자기 자신을 너무 학대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도 다 미워보이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러던 그가, 주님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실패를 극복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되는 커피전문점을 만들었습니다. ,, 세상에 커피집에 가려고, 한겨울에 1시간을 줄서서 기다립니다. 대단하죠?



이분이 자기의 슬픈 경험과 극복의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을 상담도 해줍니다. 주로 학생을 상담하는데, 하루는 어떤 깍뚜기 머리가 찾아왔대요.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을 상담해보니, 그 사람도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공부를 곧잘 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을 못 나왔습니다. 그게 한이 되어서, 자기를 미워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이뻐보이겠어요? 공부한 사람이 다 미워보입니다. 다른 사람을 폭력으로 괴롭히는 조직폭력배가 된 것입니다. 목사님과 상담을 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이 청년이 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가서 새사람이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그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만드신 나 자신을, 바르게 사랑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 내 약점도 이뻐보입니다.



목사님들께서 저를 보시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 목회하기 좋은 얼굴이야’라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다른 말이 있더라구요? ‘배용준, 최수종같이 생기지 않아서, 여자교인들이 유혹받지 않아서 목회하기 좋겠답니다.’ 내참. 저같은 목사는 여자교인들이 목사를 안 바라보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한대요. 그래서 목회하기 좋은 얼굴이랍니다.



제 목회 최대의 약점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하나님의 섭리더라구요. 숨겨 놓은 뜻과 목적이 있더라구요. 나에게 있는 약점이 사라지기를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약점을 사랑하기에 힘쓰셔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섭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주어진 약점입니다. 그 약점때문에 자신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쳤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는 안질과 같은 병이 있어서, 제대로 글을 쓸 수도 없고, 제대로 말씀을 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좀 고쳐주십시오. 했을 때에 주님의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고후12장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아멘.



심지어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에게 그 질병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 교만함으로 넘어졌을 지도 모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니, 이거 교만하고 타락하기 딱 좋은 것 아닙니까? 그것을 막으시려, 하나님께서 주신 가시가 그의 질병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섭리이고 사랑입니다.



우리는 섭리와 운명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뭔가 미래가 정해졌다, 그리고 그 미래를 우리가 잘 알 수 없다라는 차원에서는 둘다 같은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인생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막삽니다. 어짜피 미래를 바꿀 수도 없는 것, 이판사판 맘대로 살아보자라고 합니다. 이게 운명론자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섭리론자는 다릅니다. 미래가 이미 정해진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를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랑으로 만드셨다는 차원에서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만드셨다는 것이지요. 비록 나에게 가시와 같은 약점이 있을지라도, 그 약점을 통해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섭리론자입니다. 누구나 약점은 있습니다. 정말로 싫고, 미운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제발 이것만은 바꿨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운명이 아닙니다.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섭리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에게 주어진 약점들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른 신앙인입니다.



각자에게는 나도 모르고, 목사인 저도 모르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약점이 없다면, 내가 타락하고, 내가 바른 삶을 살 수 없기에, 나를 가난하게 하시고, 나에게 아픈 아이를 주시고, 나에게 믿지 않는 남편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어려움과 시험만나실 때에 나에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승리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이런 섭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사랑하고 살라고 해서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한문으로 사람인자를 한번 보십시오. 인(人). 서로 기대고 살라고 해서 사람인자가 이렇게 생겼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는 어떻습니까?



그런데, 너무 미워하고 삽니다. 사랑이 변합니다. 살면 살 수록 사랑이 멀어져 갑니다.



여자를 공에 비유한 말이 있습니다.

10대 축구공 / [쫒아 다니는 남자들이 11명 많다]

20대 농구공 / [쫒아 다니는 남자가 5명 줄었다]

30대 골프공 / [쫒아 다니는 남자가 한 사람 뿐이다]

40대 탁구공 / [서로 상대에게 넘기려고 한다]

50대 피구공 / [모두들 필사적으로 피 한다]

60대 터진공 / [쭈그러져 쓸모가 없다]

-저희 여자교인들은 다 축구공 같으십니다. 아멘 안하시네요.



예화 - 할머니의 고백 - 그놈이 그놈이야, 판검사 아내들 만족도 70%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데, 살면 살수록 사랑은 멀어져 가고, 살아오던 습관 때문에 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어느 여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물었습니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러나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니가 받은 복의 두배를 옆집 여자가 받게 될 것이다.’

여자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좋다가 말았습니다. 자기가 소원성취를 하는 것은 좋지만, 평소에 꼴보기 싫은 옆집, 둘리 아줌마가 두배를 받는다니...

고민 고민하며, 밤을 샌 후에, 이 여자가 무슨 소원을 천사에게 말했을까요?

‘제 눈알을 하나 빼주십시오. 그리고 옆집 여자는 두배로 뽑아주십시오.’라고 했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해하는 마음을 명령하십니다.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남도 한번 사랑해보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선행하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고, 다른 이를 사랑할 줄 아는 그 사람이 하나님도 바르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란, 남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는 며느리는 자기 생각밖에 모릅니다. 시어머니가 얼마나 남모르게 가슴 조리고, 고민하다가 말했을까? 생각하지 않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시절에 얼마나 고난을 많이 당하셨기에 이러시나?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의 어려움만 생각합니다. 그러니 미워지죠. 원수가 되는 거죠.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도 해본 시집살이인데, 해본 사람이 더 잘 시킨다면서요? 그 시절 며느리생활 생각하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 내 자식의 입장에서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가정이 아니고, 전쟁터입니다. 같이 살기는 하지만, 떨어져 있는 것 만도 못한, 그런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역지사지의 태도를 명령하십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까? 있습니다. 목사인 저에게도 그런 유혹이 있습니다. 그런 유혹이 없으면, 그건 사람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유혹을 당할 때에, 역지사지, 즉,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이해가 됩니다. 이해하고 관용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보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나의  부모님, 나의 남편과 아내, 나의 자녀들, 나의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는 일이, 바로 신앙의 첫걸음인 것입니다.



바르게 나를 사랑하시고, 바르게 이웃을 사랑하시고, 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귀하신 섭리로 우리를 지어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영광받아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나 자신을 사랑함으로, 다른 이들을 나 처럼 사람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에게 사랑할 사람을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전체 2,57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50
★살롬 - 은혜 주일 - 060924
김동원목사 | 2006.10.11 | 추천 23 | 조회 7108
김동원목사 2006.10.11 23 7108
49
열왕기하 QT가이드 - 은혜 금요 - 060929
Dongwon | 2006.10.11 | 추천 31 | 조회 14864
Dongwon 2006.10.11 31 14864
48
★한 과부의 원망 - 은혜 주일 -061008
김동원목사 | 2006.10.11 | 추천 34 | 조회 11909
김동원목사 2006.10.11 34 11909
47
★고향생각 - 은혜 주일 061001
김동원목사 | 2006.10.11 | 추천 33 | 조회 11520
김동원목사 2006.10.11 33 11520
46
엘리야의 기도2 - 은혜 금요 060922
Dongwon | 2006.10.11 | 추천 18 | 조회 11132
Dongwon 2006.10.11 18 11132
45
말씀 위에 집짓고 삽시다 - 은혜 수양회 - 060916
Dongwon | 2006.10.10 | 추천 14 | 조회 7265
Dongwon 2006.10.10 14 7265
44
자녀위에 집짓고 삽시다. - 은혜 수양회 060916
Dongwon | 2006.10.10 | 추천 16 | 조회 9131
Dongwon 2006.10.10 16 9131
43
예배위에 집짓고 삽시다 - 은혜 수양회 금요 060915
Dongwon | 2006.10.10 | 추천 23 | 조회 7911
Dongwon 2006.10.10 23 7911
42
★기초가 튼튼한 신앙인 - 은혜 주일 060917
김동원목사 | 2006.09.22 | 추천 19 | 조회 11745
김동원목사 2006.09.22 19 11745
41
엘리야의 기도 - 은혜 금요 - 060908
Dongwon | 2006.09.22 | 추천 25 | 조회 18110
Dongwon 2006.09.22 25 18110
40
★긍정과 부정 - 은혜 주일 - 060903
김동원목사 | 2006.09.09 | 추천 29 | 조회 13193
김동원목사 2006.09.09 29 13193
39
느헤미야의 기도 - 은혜 금요 - 060901-느2
김동원목사 | 2006.09.02 | 추천 27 | 조회 12980
김동원목사 2006.09.02 27 12980
38
★모세의 지팡이 - 은혜 주일 060827 (1)
김동원목사 | 2006.09.02 | 추천 21 | 조회 26532
김동원목사 2006.09.02 21 26532
37
요한계시록 강해 - 은혜 금요 060825
Dongwon | 2006.08.27 | 추천 14 | 조회 11202
Dongwon 2006.08.27 14 11202
36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 은혜 주일 060820
김동원목사 | 2006.08.27 | 추천 14 | 조회 10172
김동원목사 2006.08.27 14 10172
35
히스기야의 기도2 - 은혜 금요 060818-왕하20
김동원목사 | 2006.08.27 | 추천 17 | 조회 16768
김동원목사 2006.08.27 17 16768
34
★선사시대 - 은혜 주일 060813
김동원목사 | 2006.08.18 | 추천 18 | 조회 8981
김동원목사 2006.08.18 18 8981
33
히스기야의 기도 -은혜 금요 060811-왕하20
김동원목사 | 2006.08.12 | 추천 20 | 조회 11247
김동원목사 2006.08.12 20 11247
32
★지키시는 하나님- 은혜 주일 060806 -시121
김동원목사 | 2006.08.07 | 추천 20 | 조회 18267
김동원목사 2006.08.07 20 18267
31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은혜 주일 060730
김동원목사 | 2006.08.02 | 추천 16 | 조회 11207
김동원목사 2006.08.02 16 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