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기도 -은혜 금요 060811-왕하20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06-08-12 09:09
조회
11247
히스기야의 기도



열왕기하 20장 1~7절



얼마전 생사람을 죽인 혐의로 잡혀들어간 영생교교주가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기도하면 살아나게 한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종교를 비방하던 신도들을 산으로 데려가서 산채로 암매장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법정에서 뭐라고 이야기했는 줄 아십니까?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면 2년내에 지구는 폭발한다.”

영생을 미끼로 대단한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직접 죽이지는 않습니다. 교인들을 시켜서 죽입니다. 1심에서는 사형, 2심에서는 그 사람은 살인혐의가 없다고 해서, 사형에서 2년형으로 감형받았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2년으로 감형받아 좋아하다가, 감방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생명은 영생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절절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은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죽어지지 않는게 목숨이고,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쳐도 죽는게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이, 한국에서 못살겠다고 미국으로 이민왔습니다. 한국은 공기나 물이 너무 안 좋아서, 오래 살 수가 없다고 미국으로 갔는데, 미국가서 교통사고로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노후에 공기 좋은 용인으로 갔습니다. 전원도시, 병원이 멀어서 사망.



인간의 생명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주 위대한 기도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죽을 목숨을 기도로 15년이나 더 살게 된 것입니다. 대단한 기도이지요. 오늘 모여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히스기야의 기도와 같이 능력이 있는 기도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먼저 히스기야가 어떤 분인지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성경에 여러 왕들이 나옵니다. 많은 왕들이 있지만, 그 왕중에서 칭찬을 듣는 왕은 아주 일부입니다. 그 일부 중의 하나가 바로 히스기야입니다. 뒤에 나오는 다른 왕들에 대해서, 히스기야처럼... 잘했다... 라고 나옵니다. 성경은 그를 본받을 만한 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종교개혁입니다. 루터, 칼빈만 종교개혁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대세였습니다. 왕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왕도 백성의 눈치를 봅니다. 백성이 원하는대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정권유지 못합니다. (남들 다 하는대로 하고, 어떻게 천국가나? 예-영화친구) 백성들이 다 우상숭배했지만, 잘못된 백성들 그냥 볼 수 없어서. 성전을 바로 세우고, 그 성전에서 바른 예배가 있게 하고,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던 산당을 부수고, 제사장들, 즉 성직자들이 자기역할할 수 있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타락해서, 절기를 안지켰다고 합니다. 유월절을 다시 지내게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타락하면, 가장 먼저 예배와 절기의 타락이 옵니다. 절기를 지키기 않게 됩니다.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교육하시는 것이 있습니다.(강장로님이 만난 이단) - 유태인의 절기지킴... 초막절.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아하스는 유명한 우상숭배자였습니다. 못사는 집에서 태어나면, 가난을 물려받아서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는 이는 환경을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더 크고 좋은 환경으로 나에게 있는 사소한 환경들을 들어 엎어 버리는 사람들이 신앙인입니다.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맨날 우상숭배하는 아버지 밑에서 뭘 배웠겠습니까? 억지로 끌려가서 우상숭배했겠지요.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한가지를 결심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난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 그리고 그 가정에 유산같이 물려온 우상숭배를 끊어버립니다. 우상숭배는 저주입니다. 그 저주같은 우상숭배를 히스기야는 단번에 끊어버립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큰 환경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넉넉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외세의 침략도 물리치고, 나라의 평안에 기여했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필수 관광코스가 있습니다. 히스기야터널이라는 터널인데요. 히스기야가 만들었습니다. 기가막힌 것은 이 공사를 하기 위해서 기혼샘에서 실로암못까지 양쪽에서 굴을 팠습니다. 그게 기가막히게 맞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천연의 요새이지만, 딱 하나의 단점이 있었으니, 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 개의 샘이 기혼샘인데, 그게 성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 적들이 쳐들어 오면, 목말라서 죽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공사를 했고, 그로 인해서 실로암 연못이 생겼습니다.



이런 히스기야는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1.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19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기가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앗수르가 침범합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강대국이었습니다.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강한 적이지요. 이것을 히스기야는 기도로 이겨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이 내리는데, 앗수르의 멸망이었습니다.



19장 16절을 읽습니다.

19:l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 아멘.

히스기야는 대단한 기도의 용사였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게 단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는가? 나보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의 영성이 제일 좋지???



히스기야는요, 자신이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던 왕이었지만, 여호와의 종들의 말에 대해서는 100% 순종이며, 경청이었습니다.

다른 왕들이 잘못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왕인데, 그까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항상 선지자들과 주의 종의 말에 대해서 경청하며, 순종했습니다.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임합니다. 20장 1절의 말씀입니다.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 아멘.



(비행기- 부시(세계평화), 고이즈미(신사참배), 목사님, 꼬마)

잠수함



-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사도 살고 싶습니다.  히스기야도 죽기 싫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들은 말도 아닙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아니 이런 일이 있으면, 기도하는 나에게 말씀하실텐데, 무슨 선지자에게랴?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말씀하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실 수도 있고, 성경말씀을 통해서 들려주실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응답은, 계시는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받을 수도 있고, 주일날 설교말씀을 들으면서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말은 주의 종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특별한 언어양식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코 아마르 야웨’입니다. 우리 나라말로 하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등의 말입니다. 히브리말로 하면 똑같이 ‘코 아마르 야웨’입니다. (가라사대 게임)

내가 하는 말은 나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이며, 나는 택배기사며, 오토바이 배달원이다. 라는 말입니다. 전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 내용물은. 내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목사님들의 설교도 그렇습니다. 저도 항상 말씀을 준비하면서, 딱 한가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히스기야와 같이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은 항상 주님의 말씀 경청하시어, 기도의 용사, 히스기야와 같은 복을 받으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히스기야는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시는 분들마다 습관이 있고, 자주 쓰시는 말들이 따로 있습니다. 전에 아는 한 목사님은 기도하실 때, 제가 봤습니다. 손을 가만두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참 재미있고 호소력있는 기도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습관은 좋은 겁니다. 가장 나쁜 기도습관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기도하고 나니까, 내 성경이 하얗게 눈이 내렸습니다. 그건 약괍니다. 앞 사람 등이 다 젖었어요. 왜 그렇습니까? 침 튀겨서 그렇지요. 그래도 이건 약과입니다. 가장 나쁜 사람은 손붙잡고 도망도 못하게 하고, ‘기도해 줄게’ 그러며 마구 타액을 날리는 사람입니다. 뭡니까? 이게... 침튀기는 것 나빠요.



사람마다 기도습관이 다 다릅니다.

히스기야는 기도의 기도습관은 어떻습니까?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아멘.

벽을 보고 기도를 했다고 나옵니다. 참 특이한 기도습관입니다. 그런데 왜 벽을 보고 기도했겠습니까?



사람을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애들이 삐지면 어떻게 합니까? 벽을 보고 돌아 앉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랑 안놀겠다는 겁니다. 너 안보겠다는 겁니다.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라는 의미에서 벽을 봅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바라보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병에 걸렸으면, 의원을 찾아야지요. 용한 의사를 만나서 먼저 병명이라고 진단해 봐야지요. 진찰은 해보고 기도라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히스기야가 왕인데, 어찌 상의해볼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많지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사람과 먼저 상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상의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를 위대한 기도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지 한번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사람을 먼저 의지하는가? 문제가 생기면, 유력한 사람, 전문가를 찾아가는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의 열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가족회의는 하세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가족회의가 아니고, 하나님과 회의입니다. 우리 가족이 하나님과 열심히 회의하고 계십니까? 가끔 벽을 보시는 가족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선교회, 우리 다락방은 어떻습니까? 맨날 회의만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회의가 아니라,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회의하세요. 안그러면, 싸웁니다. 회의하면서 다툽니다. 오죽하면, 회의가 많은 교회는 나쁜 교회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신앙에 회의가 든대요. 회의를 많이하면요.



인생살다보면 벽같은 것을 만나게 됩니다. 꽉 막혀가지고 나를 꼼짝도 못하게 하는 인생의 벽이 있습니다. 그 벽 만나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두가지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 벽 앞에서 좌절하는 것과 그 벽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벽을 바라보는 자세로, 하나님만 바라보시어, 응답받고 돌아가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복이 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기도 응답되면, 겸손해야지, 교만하게 자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간절한 기도대로, 복을 받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어떤 복입니까? 6절을 같이 읽습니다.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였다 하라 하셨더라. 아멘.



수명을 15년이나 늘려주구요. 이 나라도 구원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기도는 살려달라고만 했는데, 응답은 덤으로 내립니다. 그 덤은 이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오히려 덤이 더 큽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하나를 알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낫다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 때문에, 이스라엘은 기도하지 않는 민족, 앗수르를 앉은 자리에서 물리쳤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구원해 주신 역사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이 기도의 백성 되셔서, 이 나라를 이끌고 구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나라는 대통령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기도하는 백성들을 통해서 지키십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와 같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이 응답의 징표까지 받습니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뒤로 물러가게하는 것입니다. 참 자상하신 하나님이시지요. 히스기야가 불안할까봐. 이 우주의 질서까지 흩으시면서 징표를 보여주십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이보다 더 귀한 징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사랑의 하나님만 의지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런데요. 설교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야기도 여기에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기도는 응답받고 나면 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응답받은 것은 시작입니다. 응답받고 나면, 끝이 아닙니다. 감사와, 겸손의 시작이 되어야 하는데, 히스기야는 그것에 대한 감사나 겸손의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죽을 목숨 살게 되어 교만해집니다. 경솔해집니다.



13절을 읽습니다.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 아멘.



앗수르를 이어서 새로 떠오르는 강국이 있었으니,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서 사절단이 왔는데, 의기양양한 히스기야는 자가 보물창고를 보이고 자랑하고, 자기 군대창고를 열어서 무기를 보여주고, 모든 창고를 보여주며 자랑합니다. ‘나 응답받은 사람이다. 나 15년 보장된 목숨이다.’ 자만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은 이 히스기야의 잘못으로 바벨론에게 끝내 멸망합니다.



게다가 히스기야가 늦동이를 이 때 낳습니다. 므낫세라는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12살 때 왕이 되었다고 하니, 히스기야가 15년 살동안 낳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막나니입니다. 여호와를 모르고 우상숭배를 하고,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합니다. 차라리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한 자식입니다.



히스기야는 늙어서 정신이 이상해졌던지, 선지자들까지 박해하는 실정을 저지릅니다.



결론은 어떻습니까? 차라리 15년 일찍 죽었으면, 더 좋을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15년을 덤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덤으로 주신 인생, 히스기야같이 막 살까요? 아니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원래, 지옥의 죽음으로 향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덤으로 살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게 덤으로 사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아동부를 위해서,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들이 되도록.



2. 교회의 일꾼들을 위해서, 담임목사, 청년부, 반주자 등.

교역자들, 장로님, 실행위원들



3. 환우들. 찬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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