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 은혜 주일 060820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06-08-27 04:47
조회
10172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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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사 61:1(1042면)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아멘.



신약성서/마 5:1~3 (5면)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아멘.


아주 신통한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너희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다 들어주겠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첫째가 저는 유명한 스타가 되게 해주십시오. 펑 되어라~ 유명한 스타가 되었습니다. 둘째도 소원을 빌었습니다. 저는 킹, 즉 왕이 되게 해주십시오. 펑~ 되어라~ 그러자 그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욕심이 아주 많은 막내도 자기가 받을 복이 무엇일까? 한참 생각을 하다가 얘기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형들이 받은 것 다 받게 해주십시오.~’ 한참 고민을 하다가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모아서 ‘펑~ 되어라’ 무엇이 되었을까요? 스타와 킹이 합쳐진 스타킹이 되었답니다.



물론 우스게 소리입니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한이 없는가?가 잘 나와있구요. 또한 인간이 얼마나 복을 좋아하나를 알 수가 있습니다.



유달리 한국사람들은 복을 좋아합니다. 집 대문 손잡이로 부터, 문갑, 은수저, 옷 무늬, 베개 모, 방석, 밥 주발까지 모두 한글자 ‘복’자로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연초가 되면 뭐팔죠? 복조리 팝니다. 요즘 많이 긁는 로또가 한국말로 뭐죠? 복권입니다. 땅투기를 많이 하는 있는 집 여자분들을 우리는 복부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집을 사도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덕방’에 가서 집을 봅니다.



옛 어른들은 오복이라하여 장수, 복된 삶을 영위하는 것, 우환이 없이 편안한 것, 덕을 좋아하며 즐겨 덕을 행하려고 하는 것, 天命(천명)을 다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의 전통 복사상은 우리들의 신앙속에도 많이 뭍어 있고, 때로는 성경에 나온 복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별히 산상수훈에 대해서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팔복설교가 들어있는 산상수훈은 주님께서 설교를 듣기 위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산에서 설교하신 말씀입니다.



성지에 가면 이 산상수훈을 한 장소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갈릴리호수 북단에 있는 교회인데요. 이 교회의 이름은 팔복교회이구요. 아주 독특한 것은 이 교회의 모양이 어떨까요? 정 팔각형으로 팔복교회다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복, 잘못된 천국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독립국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로마의 압제로 인해서 나라는 수탈 당했고, 그들에게는 황제숭배가 강요되어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던 신앙마져 저버려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야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바랬으며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복이며, 로마에서 해방된 그 삶을 천국이라,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복과 천국은, 다시 오실 메시야께서 천군천사를 이끌고 로마제국을 쳐부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랍비가 나오셨다. 정말 대단한 구원자, 해방자, 메시야가 나오셨다. 그리고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제국에 억압받던 사람들, 세리에게 착취당하던 가난한 사람들, 수십년동안 병마에 시달려 심신이 모두 지쳐버린 사람들, 조국을 어떤 힘으로든 해방시키기를 갈구하는 민족독립운동가들도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첫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바로 그 첫 가르침의 말씀이 오늘 산상수훈이며, 팔복입니다. 잘 못된 복과 메시야와 천국에 대한 생각들을 바로 잡아 주시는 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의 복과 메시야와 천국에 대한 신앙들을 바로 잡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1.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입니다.



팔복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합니다. 가난이 복이고, 가난이 자랑할 것입니까? 가난은 부끄러워 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분명 산상수훈을 들으러온 사람들이나, 지금 이 설교를 듣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말씀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가난은 복으로 생각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가장 중요한 설교의 시작을 이런 넌센스로 시작하셨을까요?



전도할 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예수믿고 천국가세요. 예수믿고 복받으세요.’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믿는 분들, 기독교인들의 삶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처음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잘 사시는 분들이 기독교를 많이 믿었고, 또한 기독교를 믿음으로 인해서 잘 살게 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음주, 도박, 흡연 등을 금기시 하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 대부분의 말씀이 술 안먹으면 돈모으고, 담배 안피우면 건강해진다. 라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고 나면 복을 받아 잘 살게 되는 경우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너무 너무 가난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의 직접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복받는다는 그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이야기 하는 진정한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온 인물들을 통해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에서 복이라면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믿음의 근원, 복의 근원이라고 불리우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세상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이 복받은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살던 곳은 당시 세계 최대의 문명국이라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갈대아 우르라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대도시였지요. 그런 그가 본토친적아비집을 떠나서 알지도 못하는 시골인 가나안으로 가서 수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죽음의 위험에 빠지기도 하구요, 2번이나 아내를 빼앗길 뻔하기도 하구요, 아들이 죽을 뻔 아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무슨 복 받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장 복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복이란 단순히 잘 먹고 잘살고, 재산이 늘어나는 현실적,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가 들끓는 자기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어 나아가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앙의 후예들을 낳는 것이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



복 중에 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복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변화가 내 영혼 속에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에 대해서 가장 많은 글을 쓰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복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습니까?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나와있습니다.



성경에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육체의 복, 물질의 복있는 사람을 말하기 보다는 영적인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복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나와서 부자되려고 나온 사람이 있다고 해보십시오. 그 사람이 백만장자가 되고 나면 하나님은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나와서 병고치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이 건강해 지고 나면 주님은 필요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 복은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진정 성경이 말하는 복입니다.



군대에서 장군이 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대령에서 준장되는 것이 참 어려워요. 그래서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 별달게 하려고 백방으로 수고하던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가면 별단다라구요. 그래서 이 여자분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첫날부터 새벽기도도 나가고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참 놀라운 기적은, 이 분이 맨날 별별별별~ 하고 기도를 하는데. 어느 순간 자기의 기도가 바뀌더라 이겁니다. 하나님! 별 못달아도 좋아요. 내가 주님 만나게 된 것, 이것이 더 큰 복입니다.



돈 많으면요. 가족들이 싸우더라구요. 제가 얼마 전에 아주 유명한 기업의 회장님 장례식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여러 장례식을 치러봤지만, 그런 장례식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없는 장례식은 처음이었습니다. 방송국에서 뉴스카메라가 나와서 취재하고 유명인사들의 화환이 더 이상 놓일 자리도 없었지만, 모두 다 고인이 남긴 재산문제로 고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눈물한방울 없는 장례식이었습니다.



미국생활을 통해서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돈을 얻으셨습니까? 명예를 얻으셨습니까? 권력을 얻으셨습니까? 더 귀한 복은 아브라함과 같은 복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 만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가장 큰 복이지요. 어쩌면 우리와 이리도 같습니까? 아브라함의 복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 고향, 한국본토를 떠났지만, 이 낫선 땅에서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된 복이지요.



성경이 말씀하는 참 복이 무엇입니까? 비록 가난할 지언정 나와 나의 가족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으로 인하여 행복한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인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복이 우리들 가운데 넘쳐흐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진정한 복은 비움에서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원어성경인 헬라어성경에 보면 이 ‘심령’이라는 말은 ‘프뉴마’라는 단어로 나옵니다. 이 프뉴마는 단순히 인간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깊은 곳의 자아SELF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는 무엇입니까? 가난이란 단어는 역시 헬라어 본문에 ‘프토코스’라는 단어로 나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웅크린다. 거지가 구걸할 때 궁크리는 모습, 등을 나타내주는 말씀입니다. 거지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그 낮아지고, 처참하고 비굴한 모습이 바로 가난이라는 단어의 원뜻입니다.



제가 대학시절에 저희 학교에 아주 유명한 거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항상 횡단보도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껌을 파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항상 아무도 거절하기 힘든 그 불쌍하고 약간 앞으로 궁크린 자세를 가지고 계셔셔 많은 학생들이 그 거지 할머니 껌을 사줬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은 당당하고 담대하지 않습니다. 항상 불쌍하고 웅크리고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간절히 청합니다.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란 나의 가장 깊은 곳의 내가 주님 앞에 처절하게 웅크리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죽도록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즉, 주님 없으면 나 죽습니다. 주님 안계시면, 나 살 수 없습니다라고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의 교훈이 있습니다. 이 부자는 추수한 많은 곡식들을 쌓을 창고가 없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시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는 주님의 가난에 관한 교훈입니다. 육에 대한 재산들을 많이 쌓아 놓고 영혼아 편히 쉴지어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영혼에 대한 투자를 해야지요. 나의 육신은 좋은 음식, 좋은 약으로 건강해 졌을지는 모르지만 나의 영혼은 지금 굶어죽을 상태인데요. 육신에 대한 투자에는 아끼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에 보약에 헬스클럽에... 그러나 정녕 나의 영혼을 위한 투자는 무엇입니까? 나의 영혼은 주님이 들어오실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의 잡것들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가난이란 바로 주님을 향한 목마름이며, 크나큰 갈망입니다. 주님없으면 나 죽습니다. 나의 심령이 주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목마릅니다. 라는 것을 느끼시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셔야 합니다.



아시스의 성자 프란시스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원래 아주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분입니다. 뭐하나 부러울 것없이 살던 그의 꿈은 군인인 기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고 큰 공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던 그에게 어느날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프란시스야! 너는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겠느냐, 네 인생의 주인은 누구냐?’ 프란시스는 자기의 육체는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자기의 심령은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서 굶주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가던 길을 돌이키고 주님의 품에 안기어 평생을 주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정에서 세상에 찌든 자신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기 위하여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광야에서 자신을 비워나갔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약속받은 땅의 백성으로서 심령을 비웠습니다.



심지어 우리 구주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성령받기 위하여 40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심령을 가난하게 비웠습니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없이도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모세와 같이 주님과 같이, 하나님없이는 나의 심령이 굶주리어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진정한 복은 채움에서 시작합니다. (채움의 영성)

2번째 말씀과 반대되는 것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가난하게 비워진 후에 반드시 주님의 성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은 항상 이 작업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항상 나자신을 주님 앞에서 비우고, 그 비운 자리에 주님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비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주님 앞에 성령을 주십시오. 능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먼저 비우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비우신 후에 중요한 것은 바른 주님의 심령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비움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바른 것들로 채우는 영성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심령이 가난해지면 무엇으로든지 채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바른 심령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여름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온통 심령에 관련된 귀신의 영화들이 많습니다. 신문을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광고가 바로 이 철학관, 당신의 미래를 알려드립니다.라는 광고입니다. 사람들의 공허한 심령은 빈공간을 뭔가로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헛된 것을 쫓게 되는 것입니다.



제 고향은 봉천동입니다. 봉천동의 뜻은 하늘을 받드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무당들이 많았습니다. 철학관도 많구요. 지금은 봉천동 넘어가는 고개가 아주 넓지만 전에는 좁은 길이었습니다. 길을 트게 되면 한쪽 편은 철거를 당해서 쫓겨나기지만 한쪽 편은 길이 넓어지고 상권이 좋아져서 큰 시세차익을 볼 수 있습니다. 넘어가는 길 오른 쪽으로 떡하니 철학관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모두들 어느 쪽이 철거가 될까 궁금했습니다. 어느 쪽이 철거되었을까요? 그 철학관 쪽이 철거되어서 쫓겨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의 미래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찌 남의 미래를 봐줍니까? 세상의 헛된 영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우지 않으면 세상은 다른 잡 영들로 채워집니다. 비워진 심령에 주님의 성령이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계속 돌고 돌아야 합니다. 비워지고 채워지고, 다시 다른 이를 위해서 비우고, 또 그 비워진 곳을 주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예배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주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나의 심령이 굶주려서 견딜 수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이며, 그런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약속하고 계십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아멘.



못먹고 못살던 시절, 가난은 우리 민족의 최고의 적이었습니다. 잘살아보세. 새마을운동으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보자를 목놓아 외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벗어난 가난.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육신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주님을 갈망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우리들의 심령은 세상의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부와, 힘과, 재물을 원하며 나왔던 무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역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라.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으로 인하여 행복하기 위하여 나온 우리에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라.



심령이 가난한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주님의 성일에 저희들을 주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가난한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의 심령이 항상 가난하게 하시고 그 가난한 빈 심령에 주님의 성령을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항상 비우고 채우는 과정들이 원활하게 일어나게 하옵시며, 이 영성이 우리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넘쳐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복을 바라며 나온 우리들에게 주님과 항상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복이 가득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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