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 은혜 금요 060825

작성자
Dongwon
작성일
2006-08-27 13:52
조회
11202
요한계시록 강해.



요한계시록은 참 설교하기 어렵고, 그래서 목사님들도 설교하기 꺼리고, 저도 이게 제 생전 처음으로 하는 설교입니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QT본문이 계시록이죠? 정리차원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제가 중학교때의 일입니다. 중학교때, 선배들과 같이 서울역에 노방전도를 나갔습니다.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할아버지, 말세에요. 하나님의 나라가 까웠습니다. 예수님 믿고 천국가세요.’

라고 했더니, 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을까요?

‘내가 어렸을 때도 예수쟁이들이 그렇게 전도하고 다녔어... 난 그 때 세상 끝나는 줄알았어. 그런데 지금도 멀쩡하네???’

전도하던 제가 할말이 없더라구요...



도대체 세상의 종말은 언제 옵니까? 오기는 오는 겁니까? 왜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겁니까? 그 근거가 요한계시록에 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특별한 형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형식은 계시, 묵시입니다.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요. 이스라엘은 로마정부에 의해서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황제숭배를 강요당했습니다. 로마정부는 식민지의 반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황제숭배라는 social glue를 선택했고, 세상의 모든 것은 황제의 것이며, 황제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므로, 절대로 복종하고 숭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일제시대랑 똑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래서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당시 황제숭배를 거부하면, 상거래도 할 수 없었고, 산에 올라가서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로마의 황제숭배를 하지말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순교해라’라는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이 책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란 무엇인가? 묵시라고 하는 아포칼룹시스는 묵시라고도 말한다.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라는 말로서, 아주 독특한 문학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이 묵시문학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586년이후의 일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시기였다. 그래서 묵시 문학에는 바벨론이 나온다. 당연히 나쁜 나라로 나오고,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대명사로 나온다.



은밀한 언어와 기괴한 상징으로 박해자를 피해갔다. 예> 사발통문. 걸리면 죽으니까. 걸리면, 책을 돌려볼 수가 없으니까.



에스겔, 스가랴, 이사야, 요엘 등에서도 일부 묵시적인 문학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카비혁명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수리아의 폭군 안니오커스 에피파네스는이스라엘을 식민지로 만들고, 성전모독을 했다. 성전에 돼지 피를 바르고, 제우스의 신상을 번제단 위에 세워뒀다. 거기에 절하게 하고, 율법도 못 읽게 하고, 할례도 못하게 하고, 안식을도 폐지한다.



이러한 박해 속에서 신앙인들이 택할 길은 3가지였다.

1)신앙을 지키다가 죽

2)세상과 타협하며 행복하게 산다.

3)사람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숨어삶.



이러한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직접적으로 기독교를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나라는 기독교의 이념위에 지어진 나라입니다.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도망온 나라가 미국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이 나라의 문화가 기독교적인 문화입니까? 제가 본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기 보다는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돈나라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미국교회들을 보면, 너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있는데, 교인은 없습니다. 교회는 있는데, 노인들만 있습니다. 교회는 있지만, 목회자는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없고, 신학을 하겠다는 젊은 학생들이 없어서, 신학교가 문을 닫고, 그 빈자리를 한국학생들이 와서 채웁니다. 한 반정도의 학생이 한국학생들입니다. 감사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 나락가 세워진 지가 얼마인데,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목숨걸고 온 이 분들의 조상님들이 보시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동일하게, 일본교회에도 일어납니다. 먹고 살만하고 잘 살만하니까. 교회 안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이태리사람들은 이민가면, 마피아 만들고, 한국사람들은 이민가면 교회세운다고 하죠? 한인교회는 단순히 한인들만의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한인교회는 앞으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교회가 너무 약해지고 쓰러지고 있지요? 교회에 교인이 없어서 교회를 한국교회에 넘겨줍니다. 교회를 다른 용도로 쓸 수는 없잖아요?

이 세상은 기독교적인 문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치를 즐기게 하고, 하나님보다는 자기의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이기적인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겠습니까?

신앙을 지키든지, 타협하고 살든지, 숨어살든지 역시 이 3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타협하고 사는 것이 가장 세상살기는 좋습니다. 편하고, 성공할 수 있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저사람 융통성이 있어, 저 사람 사교성이 있어, 저 사람참 멋지게 믿는 사람이야... 라고 칭찬받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일까요? 그것에 대해 당당하게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원하시는 삶은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세상의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순교자적인 그리스도 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렵니까?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 앞에서 어떤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떳떳한 모습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커플이 누굽니까? 이몽룡과 성춘향이죠? 이 둘이 처음 그네 뛰는 것을 본 이후로 같이 정혼을 하기까지 얼마가 걸렸을까요? 고서를 펴놓고 이것을 연구한 학자에 의하면 정확히 5시간만에 벌어진 일이랍니다. 대단히 속도감이 있지요?



춘향이가 변사또의 유혹에 넘갔으면, 아마도 억울하게 옥살이는 안하겠죠. 떵떵거리고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도령이 심판하러 왔을때,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두렵지 않은 그런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들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상징을 제 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관한 이단들이 많은 이유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글짜 그대로해석할 성경은 아닙니다. 계시록은 묵시의 문학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정부에 부정이 되는 말은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학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의 한국문학이 그랬습니다. 묵시문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구요.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광야 - 이 육 사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숫자의 상징이 많다.

1 - 하나님, 2- 인간 3 -삼위1체, 4- 동서남북 6-사탄의수(13:18) 7 - 하나님 10 -세속적인 완전수, 12- 이스라엘전체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666의 해석,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666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A=6,B=12 ....Z=156



이라 할 때

        c  o  m   p  u   t  e  r

       18+90+78+96+126+120+30+108=666

이 된다. 이번에는 반대로 Z=6,Y=12,........A=126이라 할 때,



       I  N  T  E  R  N  E  T

      108+78+42+132+54+78+132+42=666

이 된다.



  B  I  L  L  G  A  T  E  S

     66+ 73+76+76+71+65+84+69+83=663

인데, 빌 게이츠는 게이츠 3세이므로 663에 6을 더하면 666이 된다.

여기서 663에 3을 더한것은 아무래도 억지인듯......



신용카드다. 매매를 못하니까. 그러면, 산에 들어가서 살아야지. 실제로 그렇게 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실까?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실까?



당시 로마황제인 네로황제라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네로카이살(헬라식 이름을 히브리식으로 쓰면) 666이 나온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악마와 같은 황제들을 의미합니다. 네로, 도미시안 - 믿는 이들을 십자가로 처형하고, 로마시내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원형경기장에서 믿는 이들을 죽이던, 당시 황제를 감히 문서에 넣지 못하고, 그들이 부르는 닉네임으로 부른 것이었다.



학교 다닐 적 별명들이 있지 않나?(미친개, 살살이) 군대시절 가가멜의 추억.



요한계시록은 일단,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의 해석도, 제 나름대로 계시받아서 해석한 것 아닙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사의 공식 주석인 박수암교수님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참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과거형이 아니다. 신앙에 과거형은 없습니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라고 수차 말씀드렸습니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 말하기 싫은 과거는 왜 묻고, 듣기 싫은 과거는 왜 이렇게 소문이 잘나는지... 교회가 사람에 대해서 과거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과거 때문에 교회 못나오고, 과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김목사 가슴 찢어집니다.



신앙은 과거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그 과거를 넘어섭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요한의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절대로 로마의 황제숭배하지마라라는 것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신앙의 절계를 치키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킬 것들은 타협하지 말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주일성수가 신앙의 정신이라면, 그것을 목숨걸고 지키십시오. 십일조 생활이 신앙의 정신이라면, 목숨걸고 지키십시오. 지킬 것은 분명히 지키고 살아야, 그 가치들이 결국 나를 지키게 됩니다. 내가 주일성수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주일성수했으니까 신앙이 지켜지지... 교회 2번만 빠져보십시오. 자기 힘으로 다시 교회 나오기가 쉬운줄 아십니까? 괜히 미안하니까 피해다니고 그러다가 다른 교회가고, 아니면 신앙을 져버리고... 지킬 것은 지키라는 것이 요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 것을 넘어서, 분명한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봅니다. 그날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징조로 말씀하신다. 분명히 어제보다는 오늘이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마라...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이죠.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내일 종말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늘 모임을 마치고 돌아서는 그 순간에 올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사셔야 할까요? 성실하게 후회없이 사셔야 합니다. 내일 말씀보시겠다구요? 내일 기도하시겠다구요? 내일은 오늘을 성실하게 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안 받아도 뭐라고 한마디 못할 것이 선물입니다.



성실하게 오늘에 충실하게 사시는 믿음의 종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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