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복강의 기도-창32:24~21 은혜 금요 060519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06-05-27 05:10
조회
21885
얍복강의 기도(24~32)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오늘의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야곱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할까? 알기를 원합니다.


먼저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쌍둥이로 출생했습니다. 몇 초 차이로 동생이 된 사람입니다. 그 출생이 아주 기이합니다. 형인 에서가 나가는 것을 보고, 그 어린 아기가 본능적으로 경쟁적으로 형님의 다리를 붙잡고 나왔습니다. 얼마나 철저한 경쟁정신인지 모릅니다.



그가 형에게서 장자명분을 빼앗고, 도망하여 수십년을 고생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 길에서 있는 일이 바로 오늘의 사건입니다.


1.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낮아진 순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를 낮아지는 순간으로 몰고 가십니다.

사면초가의 의미가 ‘사면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라는 뜻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를 말합니다.’

인생은 사면초가입니다. 오늘 야곱의 모습을 보십시오. 진정한 사면초가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님인 에서대신에 장자의 축복을 도둑질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을 무릎쓰고 장인인 라반의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거기서 우여곡절끝에 장인과 다투고 이제는 정처없이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향합니다. 세상에 아무도 자기를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앞에는 얍복강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얍복강 건너에는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온 형 에서의 군대 400명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 곳도 자기를 반기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계획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인생에서 깨어지고, 찢겨지고, 완전히 부서져 버려서 고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차가 어지간히 고장이 나면 고쳐서 씁니다. 그런데 차가 그 이상 고장이나면 어떻게 합니까? 폐차를 하지요. 거의 폐차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뜻대로 나의 계획대로 하다가 완전히 파산한 나의 모습을 야곱에게서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주 지능적인,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디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 쉽습니까? 아무리 앞을 못보는 아버지 이삭이지만, 그는 교묘하게 아버지에게 자기가 형인 에서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아주 지능적인 사기군이지요. 그래서 성경최초의 사기군을 야곱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곱에게 사기를 치려고 들다가는 오히려 된통 당하기 쉽상입니다. 그의 외삼촌인 라반이 평생 야곱을 붙잡아 두려고 그에게 사기를 쳤습니다. 야곱이 좋아하는 라헬을 미끼로 해서 언니인 레아까지 시집보내고, 주기로 했던 품싹도 주지 않고 영원히 그의 밑에 데리고 있으려고 합니다. 왜냐면 똘똘하니까요. 데리고 일하기 좋으니까요.

라반과 약속을 합니다. 라반이 얼룩진 양만 가져가라고 하자. 야곱은 얼룩덜룩한 먹이를 먹게 해서 양들의 모습을 얼룩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인류 최초의 유전자 조작을 한 사람도 야곱입니다.

그만큼 지혜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잘난 사람이지요. 요즘 같으면 고시를 쳐도 몇 번 붙었을 만한 지혜로운 인재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지혜를 가지고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악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얍복강에 엎드려져 있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 없고, 자기에게 하나밖에 없는 형님에게 맞아 죽게된 신세라는 것입니다.

비참하지요. 얍복강에 엎드려있는 야곱의 모습이 바로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정처없고, 의지할 곳없고, 나의 계획대로 살다가 실패한 인생이 바로 오늘의 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나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까? 우리가 가장 약하고, 의지할 곳없고, 도무지 되는 것이 없는 그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응답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낮아짐이 응답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낮아져야만 나에게 나타나십니다. 자기 잘났다고, 내맘대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주님 없이도 세상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필요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도 되어있지 않구요.


그런데, 이 약은 야곱이 왜 제발로 걸어서, 죽을 곳으로 가는 겁니까?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아멘.


갈 리가 있습니까? 제발로 죽어도 안가게 생겼으니. 하나님께서 억지로 몰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거기 있어서는 믿음의 조상될 수 없고, 바른 믿음의 사람역할할 수 없고, 장자의 축복 빼앗아서 그 축복 누리지도 못하고 살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서 모시는 겁니다. 궁지로 모시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며 보냅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거보다 확실한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보다 더 귀한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기도 안합니다. 의지하지 않아요. 자기 나름대로 내뺄 궁리를 다 하고 나서도, 겁이 나서 나가질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궁지로 몰아가십니다. 죽기 싫으면 기도해라! 궁지로 모세요. 그런데 그 궁지는 야곱을 죽이는 궁지가 아닙니다. 야곱을 기도하게 만드는 궁지입니다. 야곱을 일으키는 궁지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도 궁지로 모십니다. 그 궁지는 기도하는 궁지입니다. 나를 바로 세우는 궁지입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기도 안하던 사람도 궁지에 몰리면 기도합니다. ‘하나님!’ 찾잖아요. 돌아서면 잃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궁지로 모시어, 낮아지게 하십니다. 넙죽 엎드리게 합니다. 기도응답의 비결은 낮아짐입니다. 절박함입니다. 나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응답의 시작인 것입니다. 오늘 기도 응답받고 싶으시지요? 낮추십시오. 그리고 야곱과 같이 처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은 찾아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2. 우리는 옛본성과 싸워야 합니다.  

야곱은 아주 지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좋고 싫은 것이 아주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1)일단 사람들을 두패로 나눕니다. 가축들도 두패로 나눕니다. 왜냐구요? 혹시라도 한쪽이 에서형님에게 몰살을 당하면 한쪽 무리는 건질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통령경호를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물론 열심히, 잘 합니다.

최근에 대통령 경호가 잘 되지 않는다고 질책을 받은 적도 있었죠. 그러나 경호중에 경호는 대통령경호입니다.

저도 대통령경호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김영삼대통령이 상주에 모내기 하러 오신다고 제가 있던 비행장을 경유하셨습니다. 몇일 전부터 경호팀에서 난리를 치더라구요. 결국, 오시는 당일 날에는 제 부대에 있는 총의 방아쇠를 다 빼가더라구요. 왜 빼가냐구? 우리도 경호하겠다고 하니까. 방아쇠없는 총 들고 있는게 돕는 거라는 겁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군요...

대통령차 지나가는 것 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얼마전에 용산 쪽에서 봤습니다. 갑자기 사거리 신호등 다 막아놓고, 차들이 고속으로 지나가는데, 똑같은 리무진이 두 대가 가더라구요. 어디에 대통령이 탔는지 모르게 하려고 그런답니다. 그 경호의 기술이 어디에서 온 줄 아십니까? 이 야곱의 처세술에서 왔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경호를 위해서 모든 것을 두팀으로 나눠서 들어갑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합니다. 9절을 읽어 볼까요? 9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할아버지이름, 아버지이름 다 팔고, 전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 정확하게 기억하며 꼬치꼬치 따집니다. 전의 저의 조상을 아껴주신 하나님, 하나님말씀에도 나를 지켜준다고 하셨죠? 그러니 나를 구해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참 얄미울 정도로 지능적인 야곱입니다. 하나님의 다른 말들은 기억하지 않고, 오직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3)뇌물은 준비합니다. 17절에 나오지요?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 것은 뉘 것이냐하거든

32: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32:19 그 둘째와 세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고하고

뇌물을 준비하는데, 그것도 3개조로 나눠서 뇌물을 먹일 준비를 합니다. 한번으로 형의 진노가 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자기만 남고 가족은 모두 앞장세워서 보냅니다.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위와 같이 행동하는 야곱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신앙적인가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나요? 예전의 모습을 버렸나요?

아닙니다. 야곱은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이라곤 필요치 않은 그런 사람입니다.

하도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서 씨름을 하십니다. 24절의 말씀이지요.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누가 먼저 씨름을 겁니까? ‘어떤 사람’입니다. 뒤에 보면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나옵니다. 너무 너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만 하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이 사람을 야곱이 붙잡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분입니까? 금나와라 뚝딱, 은나와라 뚝딱! 아니면, 평소에는 관계없다가, 내가 아쉬우면 찾아가는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까?

우리의 옛본성은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없이도 너무 잘 살 것 같습니다. 야곱은 그 본성을 버리기 위해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밤, 하나님을 멀리하는 나의 본성과 한판 씨름하시고, 승리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우리는 간절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얼떨결에 씨름을 걸어온 상대와 야곱은 한판 씨름을 벌입니다. 잔기술이라면 자신이 있었던 야곱은 기꺼이 그 씨름을 받아서 싸웁니다. 그러나 그 상대가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었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야곱과 씨름을 하시는 것일까요? 씨름이란 영어성경에 wrestle로 나옵니다. 레스링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너무나도 자기 중심적이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약속의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돌려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씨름을 거십니다. 그러나 그 씨름을 이기려고 거신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야곱은 최선을 다해서 그 씨름을 합니다. 죽을 각오로 합니다. 성경 25절에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못이기십니까? 이기지요. 야곱을 못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져주는 거지요. (진성이와 농구) 야곱은 목숨을 다해서 죽자 살자로 덤비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사람 죽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죽으려고 덤비는 사람입니다. 죽으려고 덤비는 사람하고 살려고 싸움하는 사람이 만나면 무조건 죽으려는 사람이 이깁니다. 차원이 다르거든요. 야곱은 여기서 지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이 임합니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왜 뻔한 이름 물어보십니까? 이름 바꿔 주려고 물어보는 겁니다. 너의 교왈하고, 남의 바지가랑이 붙잡는 그 이름, 사기꾼 ‘ 야곱’의 이름을 버려라.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리라. 이스라엘, ‘엘’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는 겨루어 이긴다라는 의미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으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담대하게 너의 형, 에서에게 나아가라. 그리고, 34:1에 보면, 이 씨름이 끝나고 휴! 하는 순간, 형님이 찾아옵니다. 제발로 못걸어갈 것 같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모든 것을 세팅해 놓으신 거에요.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밤 기도하러 왔습니다. 기도 설렁설렁, 노니 뭐하니, 기도나하지... 하러 오셨습니까? 아니시지요? 이밤 목숨걸고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비록 야곱과 같은 우리들이지만, 이 시간 주님과 씨름할때에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때에,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우리의 문제들과 맞닥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순서

1. 야곱과 같은 나를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스라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자신, 내중심의 환도뼈를 위골시키시어, 하나님만 바라보는 나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교회를 위해서, 목회자를 위해서, 청빙위원회구성, 담임목사님을 위해서, 바른 종 보내주시옵소서.


3. 다락방, 제자훈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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