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삽니다. - 은혜 부활 주일 060416

작성자
Dongwon
작성일
2006-04-22 16:08
조회
28335


죽어야 삽니다.



요한복음 12:24, 25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아멘.



어떤 목사님께서 부활절에 설교를 열심히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하려면, 믿음이 중요하다. 오직 믿음으로 부활할 수 있다.... 열심히 설교하신 후에, 교인들에게 잘배웠나?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두 까 잡수셨는지, 예배당이 찬물을 끼어 얹은 것처럼 조용해 집니다. 잠시 뒤에, 앞에 앉은 꼬마하나가 벌떡일어나서 말합니다.

‘목사님!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엉뚱한 대답이지만, 정말 맞는 말이죠? 죽어야 삽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엉뚱한 인사 한마디 하시죠. 죽어야 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썩어진 밀알의 삶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아침,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부활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썩어진 밀알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시다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지시하는 썩어진 밀알이란.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23절에 보면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나옵니다. 이 때가 무슨 때입니까? 바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실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말씀을 많이 씁니다. 유월절 어린양이란 바로 주님을 지시하는 말씀인데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10가지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재앙은 장자재앙이었습니다. 모든 애굽땅의 장자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의 집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그것을 바르면 그 재앙이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절기를 유월절(넘어간다.)이라고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뭡니까? 이집에 장자가 죽어야 하는데 그 대신 어린양이 대신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집 아들이 사는겁니다. 그게 바로 유월절어린양의 의미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이란.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분이 나 대신 썩어진 밀알이 되셔서 나를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모두 정복하려고 했던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저 나사렛청년 예수그리스도에게 졌다. 나는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사랑의 힘으로 전세계를 정복하고 말았다.”라고 이야기하며 세인트헬레나감옥에서 쓸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그 분이 흘리신 피로 인해서 지금 우리들과 수많은 죽을 생명들이 살아났습니다. 그 분이 바로 썩어진 밀알되신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유행하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축구, 야구가 유행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야구, 미식축구 같은 것들이 유행이죠.

로마시대에도 유행하던 경기가 하니 있었으니 검투사경기였습니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한 장면을 보시고 계속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좀 잔인하지요. 당시 로마 사람들은 삶이 지루했습니다. 전세계의 식민지에서 걷어온 수많은 보석들과 음식들로 풍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우면 행복할 줄 알았던 그들의 삶이 너무 너무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로마황제는 검투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지루하고 할 일이 없어지면, 정치에 관여합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스포츠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죠. 노예로 잡아온 사람들을 서로 싸워서 죽이게 하고, 사자들의 밥으로 던지고,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사자들이 들끓는 원형경기장에 던져놓았습니다. 물론 관객들은 열광을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어서 죽이라구요.



이날도 어김없이 검투경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루한 날의 볼거리를 위해서,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검투사대신 어떤 노인내가 원형경기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소리질렀습니다. ‘이 보시요.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귀한 존재들이요. 절대로 이런 경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당시 유명한 수도사 텔레마쿠스였습니다.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고 그를 죽이라고 손짓했습니다. 마침내 검투사들은 그를 죽이고 검투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사람을 죽였구나. 우리가 미쳤지... 이게 뭐람? / 그의 의로운 죽임으로 인해서 로마제국에서는 영원히 검투경기가 사라졌으며, 그날이후 원형경기장에서 죽어가는 노예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힘없는 늙은 노인입니다. 그냥 자기목숨 부지하며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요. 그러나 자기 목숨을 바쳐서 주님의 뜻을 전한 그로 인하여 지구상에서 영원히 검투경기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썩어진 밀알입니다. 내 귀한 몸, 아끼고 아껴서 쓰다가 화장터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일 열심히 하고 사람들 열심히 사랑하시다가 쓸만큼 다 쓰고 천국가시겠습니까? 내 몸 너무 아끼지 마십시오. 일 안하고 아끼시다가 주님 만나서 뭐라고 변명하시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썩어진 밀알이 되라고 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내가 바뀌어서 변하는 세상, 내가 바뀌어서 변하는 교회, 내가 바뀌어서 변하는 가족 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성경은 우리에게 ‘죽어야 산다’라는 이해가 되지 않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모순의 종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종교입니다. 언뜻 바라보면 말이 안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전도했습니다. 교회에 데리고 나와서 기도를 하라고 하니 참 가관입니다. ‘하나님 할아버지 참 감사합니다.....’라고 아들이 기도하는 겁니다.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얘야 왜? 하나님 할아버지냐?

아들: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라구 하니까. 나한테는 할아버지 잖아요?

아버지: 그게 아니란다. 너 한테도 아버지고, 나 한테도 아버지야. 우리 모두의 아버지지...

그러자 이 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들: 알았어요. 형!



둘다 아버지래니까. 얘가 아버지와 형제간인 줄 안 겁니다.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셨지만 모순이지요. 어떻게 배다른 여러분들과 제가 한 아버지를 두고 삽니까? 기독교는 인간의 이성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그 대표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25절의 말씀이지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아멘

생명을 사랑하면 잃어버리고 생명을 미워하면 영생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이런 역설적인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

사도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역설을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철저히 인간의 노력을 배제시키고 하나님의 이름만이 영광받기 위함입니다.



강한 사람을 강하게 해서 성공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 한 줄 압니다. 먼저된 사람을 먼저되게 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반대로 약한 사람, 늦게 온사람을 성공하게 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사람도 성공을 하나님께 영광돌리죠. 자기가 못난 것을 알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야~! 하나님께서 하셨어....”



왜 하나님께서는 세계 150개 국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세우셨습니까? 그 이유는 그렇습니다. 하나님 맘입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이유는 가장 약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그마치 3개 대륙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유럽이 세지면 전쟁, 이집트가 세지면 전쟁, 아시아가 커져도 전쟁, 그래서. 세상 끝 날에 있을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죠. 인류 최후의 전쟁이 있을 곳이라고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이 아마겟돈(아줌마들 아마겟돈, 아이들 아마게돈), 즉 므깃도라는 지역은 지구상에서 전쟁이 가장 많이 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땅도 나쁘고 농사짓기 힘든 땅, 먹고 살기 힘든 땅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을 보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제일 살기 힘든 나라입니다. 뭐하나 잘난 것이 없는 나라에요. 하나님이 이런 나라를 택하신 것은 그들이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려고 가장 약한 나라를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나를 왜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셨습니까? 내가 잘나서입니까? 아니요. 약하고, 못나고, 부족하니까 불렀습니다. 그래서 존귀한 사람 만드셨습니다. 왜요?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살라구요.



우리가 잘나서 부르신 것 아닙니다. 불러주면 제일 고마워 할 것 같아서 부르셨어요. “고마운 줄아세요.” 그게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입니다. 부활에 아침을 맞아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밀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박물관(사진)에 가면, 수천년이 넘은 유물들이 있습니다. 이집트사람들은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언젠가는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활때 입을 몸, 미이라로 만들고, 그때까지 먹고 살 것을 다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심지어는 볍씨까지고 가지고 갔어요. 그 당시 볍씨가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의 보관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같다가 심으면 금방이라도 싹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답습니까? 그 볍씨는 땅에서 썩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 볍씨 한톨로 남아있습니다. 그 볍씨가 만약 심기워져 썩어서 열매를 맺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수천명이 넘게 먹을 수 있는 곡식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썩을 x는 욕이지만, 교회에는 칭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입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가 헌신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 아주 큰 것이 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입니다.



어느 중년의 남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노라고. 그 아버지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병원으로 달려 갔지만 그 아이는 아버지의 오는 모습도 못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아버지는 몇 일간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냈습니다. ‘하나님, 어찌 당신을 그리도 사랑하던 내 딸을 빼앗아 가십니까?’ 그는 딸이 믿던 신을 저주하며 하루 하루 자기 자신을 망가뜨려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자기 딸의 유품을 버리려고 챙기다가 딸의 일기장을 펴들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땅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면 내가 죽어도 좋아요. 하나님.’

그 아이의 유언같이 이뤄지고야 말았습니다.

‘아~ 내 딸이 죽기까지 원했던 그 나의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 남자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교회에 가면 자기 죽은 딸을 만날 수 있을까하는 한올같은 기대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국제대학생선교회(CCC) 부총재가 된 스티븐 더글라스입니다.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복음전하는 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위대한 사람, 많은 재물, 큰 결단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과 같이 자기 자신을 한알의 썩어지는 밀알로 내어 놓는 초라하고 작은 우리들의 모습을 통하여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없어져야 합니다. 내 주장이 사라져야 합니다. 내가 썩어져야지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우리 교회에서 한알의 밀이 되어라, 네가 우리 다락방에서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라. 네가 우리 가정에서 한알의 밀알이 되어라.

썩어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한알의 썩어진 밀알로서의 역할, 잘 감당하시는 은혜장로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부활의 영광되신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부활을 사모하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모였습니다. 우리도 부활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이뤄지게 하여주옵소서.

썩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내가 먼저 썩어져서  섬기게 하여주옵소서. 내가 변화하여,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화받게 하여주옵소서.

남이 먼저 바뀌게 마시고, 내가 먼저 바뀌어서 주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감사를 돌리며, 부활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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