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기도2(김동원목사) 창18- 은혜 금요 060421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06-04-22 16:09
조회
24522
아브라함의 기도2(김동원목사)

창 18:10~15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은혜 많이 받으세요.



2주 전에도 아브라함에 대해서 같이 배우고, 아브라함과 같이 딜하는 기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기도2입니다. 저번 한주 만으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제대로 볼 수가 없기에... 한주 더 심층 탐구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분이죠. 항상 믿음의 조상이라는 호칭이 따라가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 번이나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죠. 왜요? 자기 목숨 건지려고...

창세기 20장에 보면, 잘나오죠. 거짓말 했다가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깁니다. 그런데, 결국은 잘 해결이나고, 아브라함은 한밑천 단단히 챙겨가지고 나옵니다.



창20: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참 독특한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분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분이 윤리적으로 아주 뛰어납니까? 뛰어난 군인이었나요? 정치를 잘 했습니까? 그다지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을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많이 나오는 말이 있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출산에 대한 기도가 가장 간절한 기도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는 지금도. 안되는 집에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죠. 정말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있어도, 자식이 없으면 그만이잖아요. 미래가 없으니까. 자식은 나의 미래잖아요. 나가 살지 못할 그 세계를 나 대신 살아줄 미래. 나의 신앙을 이어갈 미래, 그런 의미에서, 전근숙집사님 가정은 하나님께 감사하셔야 됩니다. 수정같은 미래가 있잖아요.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교회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교육부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 교육부 열심히 담당하고 계신, 전근숙집사님, 그리고 각 부서 부장 집사님들. 일어나 주세요. 수고 하시라고 박수 한번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에요. 나혼자 잘먹고 잘살다 죽으려면, 왜 애들은 낳습니까? 내 신앙 여기서 끝나면 안되잖아요. 아이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세요. 신앙의 자녀는 절대로 다른 길로 가지 않습니다. 가다가도 돌아와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집에는 이 자녀가 없었습니다. 대를 이을 후손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17장에 나타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바꿔줍니다.



원래 뭐였죠? 아브람은 원래, 큰 아비라는 뜻이었는데,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독교의 조상이기도 하지만, 이스마엘을 통해서 이뤄진, 이슬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를 구성하는 두 커다란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지금도 중동의 화약고라는 예루살렘에 가면, 묘한 곳이 있습니다. 이슬람의 황금사원이라는 곳인데, 이곳이 어디냐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그 장소에요. 모리아산. 기독교와 유대교도 거기를 차지하려고 하고, 이슬람도 차지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두 종교의 성지에요. 지금은 안타깝게도 이슬람 성전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라는 어땠죠? 사래. 여주인 이라는 뜻에서 사라. 많은 무리의 여주인 이라는 뜻으로 열국의 어미로 바뀝니다.

성경에 사람의 이름이 바뀐다는 그 이름에 맞는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말로 이름대로 삽니다. 야곱은 사기꾼이라는 이름을 가졌죠? 그래서 평생 사기치고 사기당하고 삽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 사울은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뒤, 바울의 이름을 갖고 그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도 중에 사도가 됩니다.



이름대로 삽니다.

제 처남이름이 장요셉입니다. 꿈의 사람 요셉... 이 친구가 이름에 대해서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놀렸을까? 제 후배중에, 모세가 있었습니다. 정모세... 그 친구랑 버스타고 한강을 건너가는데, 애들이, 모세야, 갈라봐...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이 친구가 이 이름가지고 절에 갈 수 있을까요? 새신자 등록할 수 있겠어요? 요셉스님? 생각해보세요. 웃겨서 말이 안나오잖아요. 이 이름가지고 어떻게 딴 종교 갖습니까?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더라구요. 이름대로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라에게는 열국의 어미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애도 하나 없네요. 사람들이 그 이름을 보고 얼마나 놀려댔겠습니까? 열국이라하면, nations입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나올 것이라는 약속인데... 현실은 무자식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와 응답 사이에는 갭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대로 바로 바로 이뤄지면 너무 너무 좋지요. 그런데 말처럼 그렇게 됩니까?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의 시간에 따라서 3가지의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1. 바로 바로 응답되는 기도

2. 한참뒤에 응답되는 기도

3. 죽고 나서 응답되는 기도

이 갭이 사람을 미치게 하고, 애타게 합니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이스마엘을 낳죠.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정에 풍파가 생기죠. 그리고 그의 후손들과 기독교는 철천지 원수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슬람이잖아요. 유대인들과 싸우죠. 이스람사람들이 911테러도 내고, 기독교 국가들과 싸웁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기도는 기다림입니다. 잘 기다리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기도는 기다림이다.’



배구에 시간차공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비수가 토스해주면, 그것을 이 사람이 칠 것같이 하면서, 다른 사람이 쳐서 공격하는 겁니다. 이 공격에 걸리면, 꼼짝없이 당합니다. 왜요? 기다리지 못해서죠? 어느 공격수가 때릴지 모르니까 그런거잖아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기다려야 되요.



급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의 열림 단추를 누른 채

“엘레베이타가 기다려. 빨리와~엄마!” 하고 소리치자

함께 탄 남자는 기다리다가 짜증이 났다.

잠시 뒤 엄마가 타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랬지!” 하며 아이를 꾸중했다.

남자는 속으로 ‘잘못한 것은 혼을 내야지’하며 만족해 했다.

그런데 엄마 왈.

“엘레베이타가 뭐야! 자 따라해봐,

(혀를 굴리며)엘러베이러~.”



기다리면 복받습니다. 기다려서, 응답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계획이 있습니다.

인간의 계획, 하나님의 계획 두 계획이 있다.



하나님께서 100살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도 속으로 웃었고,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사라도 웃습니다.

18: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왜 웃었겠습니까? 완전히 여자로서 끝났고, 남편도 남자로서 끝났는데, 늘그막에 무슨 주책이요....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요? 완전히 포기한 상태라는 거죠.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포기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기도해 놓고도, 그 기도 잊어버려서, 후에 지나고 나면, 그게 기도제목이었는지 아닌지도... 파악이 안됩니다. 그래서 머리가 나쁘면, 바른 신앙생활하기 힘듭니다. 열심히 적어서라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께 상달되고, 바로 응답의 작업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가장 적당한 때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거죠.



왜? 하나님께서 100살에 아이를 주실까요? 주시려면 좀 일찍 주시지. 왜 그럴까요? 완전히 포기할 나이입니다. 그 누구도 100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합니다. 가능한 일이 아니죠. 그 때 아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꼭 이럴 때 응답을 극적으로 들어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여기서 귀중한 응답의 원리를 알게 됩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노력 다하고 , 지쳐서 지쳐서 쓰러지면, 하나님께서 시작합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반복)



왜요? 100살에 아이를 나았으니. 그 아이는 아브라함이 나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맞죠.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이 20에 아이를 주셨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브라함이 그 아들 그냥 우연히 낳은 아이인지. 정말 하나님 주신 아이인지. 헤깔리 잖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이렇게 우연이라는 말로 값없이 여겨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다른 이에게 돌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렇게 얻은 아들을 아브라함은 정말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웁니다. 늦게 얻었기에 더 귀하고, 늦게 었었기에... 더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아이를  키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똑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비웃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나님 무시하는 것도 똑같네요. 다 똑같아서 사는 겁니다. 누가 더 잘나지 않았습니다. 아내, 남편 무시하지 마세요. “딱 내 수준입니다. ” 한번 해주세요.



그런데요. 여기서 또하나의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을 봅니다.



사라가 열국의 어미가 된다는 말을 들은 아브라함의 반응은 믿음의 조상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입니다. 17장 17절에 마음 속으로 비웃었다고 합니다. 17장 18절에서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정면에 대고 비웃은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19절에 '정녕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원어인 히브리어를 살펴보면요. ‘이츠하크’ 이삭의 뜻은 비웃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비웃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식 이름을 '비웃음'이라고 해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간 섬찟했을 것입니다.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망령되게 일컽었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속좁은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 '이삭'이라는 단어의 뜻에는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비웃음'과 '기쁨의 웃음'입니다. 비웃음은 나쁜 의미이지요. 그러나 기쁨의 웃음은 좋은 의미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이 노부부의 가정에 귀여운 아기를 허락하셔서, 이삭의 뜻인, 웃음이 가득한 가정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웃음이 아니라 웃음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항상 선한 것으로 갚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도 그 신실하신 주님께 우리들은 기도하러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개떡같이 기도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기도도 안하는 사람에게는 응답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내 약함과 악함을 그대로 갚는 분이 아니에요. 더 좋은 것으로, 나의 비웃음의 이삭을 나에게 웃음의 이삭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 의지하시어 기도로 승리하시는 아브라함과 같은  은혜장로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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