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같이 - 마태복음 18:1~3 - 은혜 060507 어린이주일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06-05-07 12:42
조회
16093


아이들과 같이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지난 부활절에 아이들이 올라와서 찬양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따로 올라와서 인사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에 영상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매일 시간이 겹쳐서 애들 어떻게 예배드리나 못 보시잖아요?



이렇게 아이들이 뜨겁게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항상 아동부와 유스와 청년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유학생들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국와서 중고차 잘못하면 부전공하는 거랑 똑같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또, 애 하나 낳아서 키우는 것이 부전공하나 더하는 거랑 똑같다. 부전공 이거 정말 힘들 거든요. 그만큼 애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 어려울까요? 우리 청년들은 뭐 어렵겠거니... 그냥 낳을 수 있을 때, 낳고 밥먹으면 크는 것을...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애키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종종. 임산부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배 속에 가둬 놓고 있을 때가 좋을 때요. 나오면, 통제가 안 돼...



왜 애들 키우는 것이 어렵습니까? 애키우는 것은 연습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실전투입되지요. 준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버리고, 그날부터 기쁨과 고통이 교차하는 시간들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는데는 후회가 많습니다. 그때 좀 잘할 걸, 그때 좀 더 신경써 줄걸, 그때 잘했으면 애가 안 다쳤을 걸...



전에는 애를 많이 낳는 집은 가난한 집... 그랬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집안에 애가 많은 것이 부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애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대단하다고 하죠? 그게 겁나서 애를 못낳는다고 합니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한국은 애 낳으면, 최대 한명에 36만원까지 지원해 준다고 하네요.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합니까? 어떻게 손자손녀들을 키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 마땅히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멘.

마돈나라는 여자 가수가 있습니다. 80년대에 유명했던 가수죠. 이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파파 돈 프리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빠, 제발 설교 좀 하지 마세요.’라는 말이죠. 설교가 아주 나쁜 의미로 씌이더라구요. 설교는 목사만 합시다. 아버지가 애들에게 설교하면 애들이 싫어합니다. 그런데, 얼마전 인터뷰에서 마돈나가 요즘 애들은 좀 설교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버릇이 없다라고 고백했답니다. 애를 키워보니까 알겠나 봅니다.



전문가들은 그 부모에 그 자녀라고 합니다. 부모의 양육방식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버드대학의 댄 킨드론 교수는 “대다수 부모들이 자녀를 신경안정제쯤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배우자나 직장생활에 불만을 느끼는 부모는 자녀를 야단칠 때 야단치지 못하고, 자녀로부터 대리만족을 하려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어린 시절부터 학교공부부터 운동경기에 이르기까지 무엇에든 이겨야 한다는 ‘성공지상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부모가 자녀에게 가치관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가르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졌다고 비판했다.



애들 하나 바라보고 이 고생을 하는데/ 애들 잘 못되는 원인이 부모라고 하니, 참 기가막힌 노릇입니다.



애들에게 뭔가 가르친다는 것은 힘이 듭니다. 잘 듣지도 않고, 바쁘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공부 외에 뭔가를 강요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러한 경쟁사회에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무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가르쳐야 할 가치들이 있습니다.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아이들이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종종 내가 지키는 그 가치가 / 반대로 나를 지킬 때도 있습니다.



서울 신촌에 가면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신촌장로교회입니다. 오창학목사님이 담임을 하시는데, 이분 참 유명한 분이죠. 특별히 저희 교회에서는 소년 서기남의 담임목사님으로 유명하시죠? 이분이 저희 신학교에 와서 간증을 하시던 내용 중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항상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하셨다고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나 항상 새벽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완전히 몸에 체질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목사님이 되셨으니, 당연히 열심히 하셨겠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분이 새벽기도를 안 나오시는 거에요. 목사도 사람인지라, 새벽기도 펑크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다른 목사님이나, 장로님께서 인도하시죠. 그런데, 이 분은 평생에 그런 적이 없는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교회 관리집사님께서 아이고! 목사님 무슨 일이 있으시구나. 걱정이 되어서 바로 목사님 사택으로 뛰어 갔답니다. 가보니, 목사님 가족이 모두 연탄가스에 질식해서 의식을 잃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동원연탄은 아님) 바로 병원으로 옮겨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새벽재단를 지킨 것이 아니고, 새벽기도가 나를 지켰다’ 라구요. 아멘!



참 맞는 이야기지요 내가 새벽기도를 하는 것 같지만,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신앙의 가치가 나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없어도 주일만은 지킨다. 주일성수를 합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내가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성수가 나의 신앙과 나의 가정과 나의 사업을 지킵니다. 넌센스같죠? 주일 성수를 해도 하나님께서 더 많은 매상을 올려주시고, 더 큰 비즈니스를 하게 해주십니다. / 일주일 내내 일하고, 쉬지 못해 몸버리고 사업 망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땅히 애들에게 가르칠 것은 가르치라고 합니다. 애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결코 애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르칠 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바로 앞의 4절에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가치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 자녀가 평생 살아갈 소중한 유산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녀와 알지 못하는 자녀는 천지 차이가 납니다. 내가 아버지 눈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성실한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데 어떻게 거짓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 아버지! 아버지는 깜깜한데서 이름 쓸 수 있어요?

아버지: 그럼 그까짓거.

아이: 그러면 아버지 불끄고, 저 성적표에 싸인 좀 해주세요.

부모님은 속일 수가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되는 모릅니다.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어떻게 된다구요?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가르치느라고 힘들고, 자녀들과 갈등이 있겠지만, 후에는 그렇게 하길 잘했지... 라는 기쁨의 날이 온다라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무슨 신앙의 습관과 가치를 가르치시겠습니까? 마땅히 가르치시어,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긴 선물이다.

시편 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127: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3절에 나옵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내가 낳고 내가 키운 것 같지만, 그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겁니다. 내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를 자기 소유로 생각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소유는 맘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학대하다가 양육권을 뺏기는 분도 있지요? 자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사회라는 것이 이런 문제가 있으면 덮어두려고 하기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딸을 성추행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딸을 제 손으로 술집에 팔아버린 어머니의 이야기...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패륜의 일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맡긴 아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주 주신 것이 아니고 맡기신 것이라고 합니다. 청지기이지요. 관리인입니다. 천국가면, 얼마나 자녀를 잘 관리하고 키웠나 심판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녀를 만든 것입니까? 아니요? 인간의 과학기술로는 사람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저는 종종 제 2째 아이를 보면서 섬찟 섬찟 놀랍니다. 왜 놀랄까요? 너무 닮아서 놀랍니다. 제가 홈페이지에 제 돌사진을 올려 놓고 누굴까요? 하고 물어봤더니. 바로 첫 번으로 석원형제가 진수네요. 진수... 그러더라구요. 너무 닮았습니다. 혹자는 그 모습을 보고 인간복제다. 미니미라고 놀렸었습니다. 전에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이 작은 녀석이 예배당에 오면, 제가 있는 앞에서 ‘아이구 동원아 어디가니’ ‘새끼 목사’라고 엄청 놀려댔습니다.



저는 사람을 그렇게 낳는 기술이 없습니다. 저랑 똑같은 그런 사람을 만들 기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받은 것이기에 선물 이라고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거지요. 공짜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대할 때, 하나님 대하듯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언젠가는 다시 찾아 가실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간수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을 가르친 대로 나옵니다. 한 대로 나옵니다. 너무 너무 정직한 존재들이 아이들입니다.

제 취미생활이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제가 좀 일가견이 있습니다. 자동차게임을 좋아하는데, 제가 자동차 게임을 하고 있으면, 두 아이가 와서 옆에 서서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좋아합니다. 큰애가 이야기합니다. ‘나는 커서 아빠처럼 오락 잘하는 사람이 될거에요’ 그런데, 제가 이 자동차게임을 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차를 한 대씩 제낄 때마다. 한놈제끼고... 제가 입버릇처럼 그랬나 봅니다. 이걸 애가 따라하더라구요. 그러던 어느날 교회를 아들하고 가다가 담임목사님을 우연히 만났네요. 이 아이가 담임목사님을 보고 인사는 하지 않고, 옆으로 쑥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놈 제끼고’



무지하게 회개했습니다. 자녀는 가르친대로 나옵니다. 맨날 존대말로 키운 아이는 부모님께 존대말을 합니다. 그러나, 맨날 반말과 욕으로 키운 아이는 반말과 욕을 합니다. 나의 감정대로 아이들을 대하지 마십시오. 나의 나쁜 모습만 아이들이 배웁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입니다.



성경 말씀 처럼 마땅히 행할길을 아이에게 가르치시는 바른 주님의 종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천국은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아멘.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한주간 묵상하고 고민 많이했습니다. 특히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1주일동안 아이들의 모습을 밀착 관찰했습니다. 관찰한 후에 더 갈등에 빠졌습니다.



애들이 순박하다고 하지만, 제가 한주간동안 보아온 바에 의하면, 서로 싸우고, 제꺼라고 우기고, 형은 동생을 치고, 동생은 울고 불고 엄마에게 가고, 동생도 맞고만 있지는 않네요. 이 친구가 10대를 맞아도 1대를 받아 치고, 10대를 또 맞습니다. 남자애들 둘 키우기 힘듭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자라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애들이 태어나 처음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내꺼야라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내꺼야. 미국말로 it's mine.



아이들은 이기적입니다. 남생각 잘 못합니다. 그리고 대책없습니다. 하다가 안되면, 울면 끝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낮추는’이라는 말에 열쇠가 있습니다. 여기서 낮추다는 원어인 헬라어로 타페이노오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아니라, 다른 이에 의해서 낮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보면, 말이 딱 맞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스스로 겸손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에 의해서 낮아지지요.



한국에 가면 지금도 약장수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정말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약장수를 쫓아가봤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뭘파는 건지, 항상 가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가’ 아이들은 항상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낮아집니다. 그래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이들인 것입니다.



서로 누가 높냐라는 싸움을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아주 적절한 말씀이지요. 겸손한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12세 전의 아이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사람 수를 셀 때 사람으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취급받지 못하는 그 존재들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사람이 진짜 천국에서 높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겸손하다. humble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어원을 풀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영어로 hum은 흙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human이라고 하는 이유도, 인간이 흙에서 만들어진 존재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즉, 험블이란, 흙처럼 낮아진 존재를 말합니다. 땅에서 짓밟히는 흙처럼 밟아도 아무 느낌이 없는 상태가 바로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사에 아주 유명한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금산교회라는 교회입니다. 1902년에 지어진 교회인데, 기역자로 생겼습니다. 심한 유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목사님이 가운데 서시고, 교인들은 한쪽에는 여자, 한쪽에는 남자가 나눠서 앉습니다. 옛날이죠? 이교회에 출석하던 두명의 교인이 있었습니다. 이자익이라는 머슴과 그의 주인인 조덕삼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머슴과 같이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머슴인데도 틈틈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조덕삼씨가 학교도 다니게 해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서 장로투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투표를 했더니, 이자익이라는 머슴이 장로님으로 뽑힌 겁니다. 이런 보수교회에서,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머슴은 장로, 주인은 집사... 그런데, 이 조덕삼씨가 정말 겸손한 분이에요. 집에서는 머슴이지만, 교회에 오면 장로님입니다. 깍듯하게 장로님으로 모십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이 일에 너무 감동했습니다. 당시는 노비제도가 있는 신분사회입니다. 있을 법도 하지 않은 이야기지요. 이 일이 화제가 되어, 교회가 더 부흥하고, 끝내 조덕삼씨가 장학금을 내서, 이자익장로님을 평양신학교에 보냈고, 이 분이 장로교 총회장을 3번이나 지내신 이자익목사님이십니다. 항상 이분을 볼 때는 그 뒤에서 오히려 겸손히 머슴같이 섬기신 주인 조덕삼씨의 겸손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 3년을 다 제자들과 보내시고, 이제 마지막 시기를 맞이하고 계십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은 다툽니다. 주님이 왕으로 올라가시면, 누가 다음 자리를 맡을 것인가? 누가 더 높은 사람인가? 누가 더 좋은 제자인가? 낮아지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과 같지는 않습니다.

서로 높아지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아이와 같이 낮아지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다. 겸손의 도를 배우기 원하는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서 아이들과 같이 낮아지고 겸손함으로 서로를 섬기시는 은혜장로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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