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은혜주일-요11-220911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2-09-13 17:35
조회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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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샌프란시스코 은혜장로교회 김동원목사


성경말씀: 요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아멘.



말씀요약:

예수님께서는 왜 우셨을까?

"크리아"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3번 우신 곳은 어디인가?

1. 죽음 앞에 우리는 무력하다.

2. 주님께서 나와 같이 아파하신다.

3. 주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된다.


 


-------------


 


▶ *저는 저희 막내 아들 출산현장에 가위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아빠가 가위질을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막내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옆에서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태어나서, 세상이 너무 좋았던지, 한번 씩 웃었습니다. 그러자 간호사가 “어머 얘 웃네.”라고 하며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후려쳤습니다.

웃고 있던 진수는 울음을 터뜨렸고, 간호사들은 좋다고 웃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그런 빌런들이 있습니까?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울지 않으면 목 안에 들어있는 이물질이 나오지 않아서 아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울어야 삽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우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가겠습니다.



▶1/3 죽음 앞에 우리는 무력하다.



*지난 이야기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지 벌써 4일이 지났습니다.



*나라마다 장례식은 참 많이 다릅니다.

한국장례식에는 눈물이 가득합니다. “아이고, 아이고”라고 곡을 합니다.

미국장례식은 유머가 가득합니다. 돌아가신 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어차피 슬픈데, 좀 웃어주기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지 W 부시 대통령 장례식 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조지는 대통령선거유세를 할 때, 백화점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네킨 하고도 악수를 했어요.”

나라마다 장례식은 참 많이 다릅니다.  



▶요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아멘.



▶*크리아(Kriah)

유대인들은 크리아라는 곡을 하게 됩니다. 매장을 하기 전까지, 옷의 윗부분을 찢고 슬퍼하며 우는 것입니다. 화면에 보면, 유대인들의 크리아리본이 나옵니다. 옷을 찢을 수는 없으니, 리본을 찢어서 가슴에 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주로 가족묘지입니다.

살고 있는 동네에 저런 동굴로 된 무덤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장례식은 바로 진행합니다. 시신이 쉽게 썩기 때문에 바로 장례식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장례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그날 무덤에 넣게 됩니다.



▶*장례식이 끝나면, 저 시신이 자연히 썩게 둡니다. 다 썩으면 그 뼈를 잘 추려서, 뼈 보관소에 넣어서 섞어 버립니다. 죽어도 같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가족들과 헤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객지에서 죽은 사람들은 이 복이 없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곳에서 죽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아들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 비교도 안 되는 행복한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죽으면, 영원히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신은 무조건 헤브론의 막벨라굴에 넣어 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룻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아멘.



*이 문화를 아시면, 룻기의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지킬 것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동굴무덤에 묻어 드릴 것이고, 나도 죽으면 거기 묻혀서 영원히 같이 있겠다는 고백입니다.



*무덤의 입구에는 큰 돌을 굴려서 막았습니다.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돌이었습니다. 저것으로 막지 않으면, 짐승들이 시신을 먹습니다. 그리고 가끔 가난한 사람들이나 미친 사람들이 저 속에 들어가서 살기도 했습니다.



▶막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아멘.



*이 사람은 힘이 대단해서, 혼자서도 저 돌을 밀어버리고, 그 속에서 살 수 있었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도 이렇게 큰 돌로 막아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서 곡을 하시는 줄 알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곡을 하며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이들은 슬픔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생만 하다가 죽은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는 눈물을 흘렸고, 이제 여자들 둘 만 남아서 살아야 하는 험한 세상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죽음의 문제 앞에서 우리들은 무력합니다.

같이 울어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만나면, 이 죽음이 생명으로 변하는 줄 믿습니다.

답없는 죽음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주님께서 나와 같이 아파하신다.



▶요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아멘.



*성경에서 제일 짧은 절입니다.

영어로는 2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제일 짧은 절입니다. 그러나 정말 강력한 말씀입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3번 우셨다고 기록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고,

죽은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고 우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시며 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우셨을까요?



▶요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아멘.



1)비통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통히 여기다. “엠브리 마오 마이”에는 “억울함에 한숨짓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르다가 예수님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거에요!”라는 원망이 억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이셨나요?



2)백성들이 믿음이 없어서 우셨습니다.

 

▶요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아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것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도무지 없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며 따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이 되지 마세요. 예수님을 따르지만, 믿음없이 따르는 이런 무리들이 되지 마세요.



3)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요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아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더 사랑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십니다. 주님의 큰 사랑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이가 레고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맘대로 되지 않고, 만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옆에 있던 엄마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엄마는 아이를 위로하고, 무너진 레고를 다시 세워주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 좋은 엄마입니다.

만약, 그 아이와 같이 무너진 레고 앞에서 울고 있다면, 이 어머니는 정상일까요?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과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나사로를 살리러 오셨습니다. 분명히 나사로를 살리실 것입니다. 무너진 레고를 세우는 것보다 더 쉽게 나사로를 살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시죠?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아픔을 보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과 같이 아파했던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같이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의 기쁨에 같이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아파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아픔을 당할 때, 우리는 주님께 해결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의 아픔을 바로 치료해주시지 않습니다. 내 문제에 대한 답을 바로 내려주시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바로 바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신가?’



*그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울고 계십니다.

같이 아파하십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무력한 눈물이 아닙니다. 나의 문제를 같이 아파하시고, 분명히 해결해주실 눈물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세요.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같이 우시며, 해결해주실 주님인 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주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된다.



▶요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감사하실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믿었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정말 실망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분통이 터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옵니다. 감사의 제목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감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의 원수가 되었다고 해도, 감사할 수 있는 유일한 감사제목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우리도 행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능력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만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다닌 신학교의 구약학교수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의 말씀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하셨을까요? 신학생들은 무슨 심오한 진리가 숨어있는가? 기대했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한심한 듯 대답하셨습니다.

나사로라고 정해서 부르지 않으시면, 그 무덤 안에 있는 시체들이 다 일어납니다. 그래서 나사로만 일어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느낌을 살려서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아멘.



*나사로는 누워있던 동굴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몸은 이미 묶여 있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몸을 묶은 천을 풀어줘서 돌아다니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죽은 나사로는 4일 만에 다시 살아 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활은 아닙니다.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사로는 다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지 않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사셔서, 영원히 죽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봐야 다시 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천국을 믿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답없는 장례식이었습니다.

예수 잘 믿던 집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집 안에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나사로가 죽으면, 남겨진 여동생들은 친척들에게 재산을 모두 뺏기게 됩니다.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르는 그런 장례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곡을 하며, 무덤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렬에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의 장례식에 참석하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셔서, 장례식을 기쁨의 잔치로 만드셨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고, 무덤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아프냐? 나도 아프다.

2003년에 나온 한국 드라마, “다모”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아픈 여주인공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주님의 마음이 이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아파하십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와 함께 웃으시고, 함께 울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와 가족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신 것처럼, 고통받는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같이 울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장례의 행렬을 잔치의 행렬로 바꾸신 주님. 우리의 문제들이 변하여 감사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감사제목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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