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35]섬김의 제자도-은혜금요-막9-220930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2-10-01 15:04
조회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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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아멘.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주셨고, 그 이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1/3 십자가를 바라보라.



*앞에서 그 망신을 당하고,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한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방금 전, 길에서 무엇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냐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집에 들어오기 전에 길에서 무슨 일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아멘.



*정말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높은 사람인가? 논쟁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런 논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 중에 누구에게도 서열을 정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베드로가 수제자이다. 뭐 이런 말은 후에 사람들이 붙인 말이고,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제자들의 서열을 정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당했던 망신은 기억도 못하나 봅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합숙훈련했던 제자들의 모습은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요?



*무엇을 보고 주님을 따르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바라본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광야에서 먹을 것을 만들어서 먹이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을 보면서, 제자들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저 능력이면, 왕이 되고도 남는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의 제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애써 무시했던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봐야 했던 것은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후, 제자들이 변화됩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십자가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아닌,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는가?

얼마나 오래 예수를 믿었는가?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인가? 이게 더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서로 다투게 됩니다.

누가 더 높은가?를 가지고 서로 다투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섬김이 사명이다.



▶막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아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두 부르셨고, 그들에게 섬김의 제자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어서, 더 좋은 레스토랑에 가려고 하고,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부리고 살려고 합니다.



*어느 교인이 불평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인 100명 넘어가면, 목사님들의 태도가 바뀝니다. 섬기려고 하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 목사님은 섬김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섬기고, 더 많은 섬김을 받겠다는 생각인거죠.



▶막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아멘.



*그리고 옆에 있는 어린 아이를 제자들의 가운데에 세우시고, 그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해야,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 대접을 잘 받습니다.

집안의 왕자와 공주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 전 고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은 하찮은 존재들이었고, 무시당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죽일 수도 있고, 팔아버릴 수도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당장 집안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이들은 집안에 귀찮은 존재들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13살이 되면, 성년식을 해주고, 어른 대접을 해줍니다. 그 때부터는 노동을 할 수 있고, 밥값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하찮은 아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영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접”이라는 말은 귀한 손님을 받을 때, 하는 말입니다. 하찮은 손님을 받을 때는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섬김을 통해서 아름다워집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섬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셨고, 세상을 아름답게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예수 믿는 길은 섬김의 길이다.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사실상 제자들을 혼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한이 예수님께 자랑을 늘어 놓습니다. 예수님께 칭찬받고, 더 높은 서열로 올라가려고 한 것입니다.



▶막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아멘.



*무슨 봉숭아학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제자들은 왜 이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분위기 좋을 때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지금 혼나고 있는 상황에, 요한이 잘난 척하고 끼어든 겁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하지 말라고 막았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도 못 쫓아서 망신을 당했는데, 다른 사람이 귀신 쫓는 것을 보고, 그건 저작권 위반이니, 예수이름을 쓰지 말라고 막았다는 겁니다. 이게 자랑거리입니까?



*제자들은 자기들 외에 다른 사람이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더 높아지면 어떻게 합니까? 모두 경쟁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죠.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도 막았다고 합니다. 참 한심한 제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도 십자가를 보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광의 자리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예수 믿는 길은 섬김의 길입니다. 스스로 섬기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스스로 섬김의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섬김의 종들로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서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경쟁했던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매일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섬김이 우리의 사명임을 믿습니다. 주님처럼 늘 섬기며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믿는 길은 섬김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먼저 걸어가신 섬김의 길을 우리도 따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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