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4]세례와 분파-은혜금요-고전1:14-240927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4-10-04 13:47
조회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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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1: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아멘.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례를 받으려면 4번의 교육을 모두 참석하고, 문답을 통과해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엉뚱한 분이 있었습니다.
교육은 한 번도 참여하지 않으시고, 문답시간에 나타난 교인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교육을 참여하지 않았기에, 문답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더니, 자신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 알고 있으니, 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교육내용을 테스트 해봤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교재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있더라구요. 그 분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끝내 그 분은 문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례는 검정고시가 아닙니다. 학교도 안 다니고, 자기 혼자 머리에 지식을 가져왔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번에 꼭 교육을 참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돌려보냈습니다.

*모두 세례받으셨죠?
세례받은 기억 나시나요? 어떤 마음으로 세례를 받으셨나요? 그때를 기억하시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1/2 세례는 죄용서함과 거듭남의 상징이다.

*고린도교회에 세례 때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누구에게 세례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13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아멘.

*사람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목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을 기억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다.”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 제대로 믿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시 제대로 세례를 받겠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를 세례 준 목사님이 교회에서 사고치고 나갔다. 평생 한 번 받는 세례인데, 기분이 나쁘니, 새로 받고 싶다.”

*먼저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잘 아셔야 합니다.
▶세례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죄사함과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물로 죄를 씻을 수는 없습니다. 물은 상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것은 물입니다. 우리는 물이 아닌,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으심을 믿습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는 이유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낸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거듭남입니다. 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물 속에서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이제는 내 뜻과 계획대로 살지 않고, 예수를 위해서 충성다하며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는 매일 매일 반복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말씀으로 나의 죄를 비춰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세례교인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앞의 이야기 중에서, 나에게 세례 준 목사님이 교회에서 사고를 치고 나가서, 동네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은 A집사님은 일반인으로 돌아간 그 목사님을 볼 때마다, 내가 세례를 잘못 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다시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세례를 받는 것은 안 됩니다.

▶*인효론과 사효론
서기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황제는 기독교박해를 금지했습니다. 드디어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평화를 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백자라고 부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로마박해시대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했습니다. 고백자들의 눈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배교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목사들 중에서도 배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백자들은 배교한 목사들에게 세례받은 사람들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게 당시 교회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배교자에게 세례받은 사람들이 다시 세례를 받겠다고 교회에 요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시 세례를 줘야 할까요? 평생 한 번 밖에 받지 못하는 세례를 배교자에게 받았으니, 정말 찜찜합니다.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원회를 열었고, 위원회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배교자에게 세례받은 사람들이 기분나쁜 것은 인정하지만, 세례는 목사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므로 배교자의 세례도 유효함. 다시 받을 수 없음.”

▶고전1:15 그러므로,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멘.

*똑같은 문제가 고린도교회에 있었습니다.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느냐를 자랑하는 교인들이 있었고, 자기가 세례준 사람을 중심으로 패거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장로님은 새로 오신 목사님의 사역을 계속해서 훼방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장로님을 불러서 이야기해보니, 장로님이 이렇게 말하십니다.
“저는 전임 목사님이 세운 장로라서, 그 목사님께 충성을 다합니다.”
사람이 세운 직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는 세례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 눈 앞에 세례를 주는 목사가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목사의 손이 보이지 않고, 나에게 세례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교회의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냥 사람일뿐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이름으로 거룩한 성도로 부름받은 우리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들과 함께 하여 주옵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세례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 세례받은 사람으로 거룩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우리들의 눈에는 사람이 더 많이 보입니다. 세례를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고, 임직을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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