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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목사의 홈페이지</title>
		<link>http://kimdongwon.net</link>
		<description>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목사 가족 이야기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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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Chase Center, Coit Tower, Chinatown]]></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64]]></link>
			<description><![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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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가 SF로 돌아왔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맛있는 샤부샤부로 해먹고, 배불러서 산책하러 체이스센터로 나왔습니다. Golden State Warriers 농구경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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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말이야.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올랐지!"
진수도 해보겠다고 해서 같이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진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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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스는 남자 농구팀, 발키리스는 여자 농구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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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은 노동절입니다. 엄마도 오늘 쉬는 날이라서 시내관광을 나갑니다.
웨이모 택시를 불러서 Little Italy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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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Square Park 앞에 있는 Saints Peter and Paul Church입니다. 1884년 세워졌지만, 1906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1924년에 재건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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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TransAmerica 빌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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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부터 여는 Tony's Pizza 앞에 30분 전부터 대기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딱 73판만 주문을 받는 마르게리타 나폴레타나(Margherita Napoletana)입니다.
오<span class="citation-102 citation-end-102">너 셰프 토니 제미냐니(Tony Gemignani)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세계 피자 컵(World Pizza Cup)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할 때 선보였던 상징적인 피자입니다.</span>

왜 73판인가 알아보니, 좀 황당한 이유가 있네요. <span class="citation-137">오너 셰프인 토니 제미냐니(Tony Gemignani)가 </span><span class="citation-137">1973년생이라서 73판만 한정 판매한답니다. </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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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Coit Tower입니다. 피자집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진수는 여기 처음 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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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차이나타운입니다. "부국은행"이라고 한자로 간판이 되어 있네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1848년 골드러시와 함께 세워졌습니다. 미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6 Sep 2026 17:01:2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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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라-은혜주일-눅14:11-260913]]></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63]]></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13-260913.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WjKZRTzHVPI?si=C9Bv3Ow-V2BVtgBC&amp;start=1384"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 *1912년 세계 최첨단 초호화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건조되었습니다. 이 배의 별명은 unsinkable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다.”라고 사람들은 말 했습니다.  
배에 작은 격벽들을 만들어서, 어디 한 군데에 구멍이 나도 그 지역만 막으면 침몰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사우스햄턴을 떠나서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배였고, 당시 최고의 부자들이 비싼 돈을 내고 이 배에 탑승했습니다. 
이 배를 건조한 최고 경영자인 브루스 이스메이도 이 배에 탑승했고, 빙산이 많은 대서양 북부 바다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게 했습니다. 어차피 이 배는 빙산에 충돌해도 침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4월 14일 밤 타이타닉은 거대한 비상에 충돌했고, 배의 측면이 찢기면서 배는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메이는 승객의 대피를 돕지 않고, 여자와 아이들이 타는 구명정에 몰래 숨어서 탈출합니다. 
▶1500명 이상 이 사고로 사망을 했고, 뉴욕에 도착한 이스메이는 “겁쟁이” “살인자”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평생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우울증과 죄책감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스메이는 왜 이렇게 교만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교만은 옵션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교만함이 있습니다. 잘 되는 게 없어서 교만할 수 없고, 잘되는 일이 있어도 마음속에 교만을 잘 숨겨두는 거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자신을 낮추라.

*예수님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렸고,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너무나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로마의 강력함에 협력해서 권력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돈과 권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명예와 인정에 민감했습니다. 로마에 협력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려고 했습니다. 사두개인보다는 훨씬 신앙적인 사람들이었기에,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을 존경했습니다. 길에서 바리새인들을 만나면,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서서히 이런 백성들의 인정과 자신의 명예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눅14:7 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아멘. 

*예수님께서 잔치에 가셨습니다. 자리를 앉는데, 바리새인들이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잔치에는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있습니다. 집주인과 가까운 자리가 좋은 자리입니다. 나쁜 자리는 집주인과 멀리 앉은 자리가 나쁜 자리입니다. 집주인과 가까이 앉은 사람은 좀 더 중요한 사람이기때문입니다. 더 좋은 음식을 먼저 받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있습니다. 목사 옆자리는 좋은 자리일까요? 나쁜 자리일까요? 나쁜 자리랍니다. 목사님 근처에 앉으면 부담스럽답니다. 거룩한 얘기만 해야 할 것 같아서 소화가 잘 안 된답니다. 그래서 제 옆자리는 주로 장로님들이 앉으십니다. 교인을 대표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거랍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람들의 인정에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 보기에 자기가 이 정도 순위는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차지했는데, 자기보다 더 순위가 높은 사람이 잔치자리에 참여했습니다. 주인은 당연히 먼저 자리 잡은 바리새인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이 바리새인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제일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가 엉뚱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높은 자리로 올라오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이리 낮은 자리에 않으셨습니까? 라고 물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하다라고 하며 칭찬을 할 것입니다. 

▶눅14: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아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게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겸손의 말씀입니다. 누군가 나를 낮추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걸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남이 나를 낮추기 전에, 스스로 나 자신을 낮추세요. 

▶*예수님은 억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고, 나를 낮춰도 화내지 마세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세요. 이 겸손을 연습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를 허락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2/3 거짓 겸손에 속지 말라.

*한국 사람들은 잘못된 겸손의 태도를 갖고 삽니다. 한국 사람들은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중고등학교때, 기말고사시험을 치고 나와서 친구들이 “시험 잘 쳤니?”라고 묻습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잘 쳤든 못 쳤든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시험 망쳤어.”라고 답을 해야지 친구가 안 떨어집니다. 사실 그대로 “잘 쳤어. 쉽던데.”라고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버립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태도가 더 이상합니다. 일을 잘 해서 “참 잘했다.”라고 칭찬하니 칭찬을 들은 한국직원이 “아니에요. 부족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죠. 한국문화 속에 거짓 겸손이 숨어 있습니다. 

*칭찬을 듣고 난 후, 겉으로는 “아니에요.”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교만이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나니까 이런 칭찬을 받는거지.”라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교만을 거짓 겸손이라는 탈로 가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겸손은 진짜 겸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겸손은 성경이 말하는 겸손도 아닙니다. 

▶1) 위선적 겸손
방금 말씀드린 겸손은 위선적 겸손입니다. 겉으로는 자신을 낮추는 것 처럼 말하지만, 이렇게 해야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고, 잘난 척 한다는 소리도 안 듣고, 저 사람은 능력이 있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네. 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아니에요. 부족합니다.”라고 말한 뒤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아니에요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부족한 부분을 지적을 하면 더 크게 화가 납니다. 교묘하게 더 많은 칭찬과 인정을 요구하는 교만함이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교만에 겸손이라는 옷을 입히지 마세요. 위선적 겸손은 교만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서 이런 교만을 늘어 놓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추는 시늉을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교만을 숨기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위선적 겸손을 다시 확인하세요. 주님 앞에 온전히 겸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자기비하적 겸손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낮춰야 할까요? 악수할 때, 허리를 더 숙이는 사람이 겸손할까요? 한국 문화에는 자신을 더 많이 낮출수록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더 많이 낮춘 사람이 더 겸손한 사람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지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한참동안 하나님의 계획을 모세에게 설명했습니다. 그 설명을 들은 모세는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출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아멘. 

*모세는 자신이 그 일에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이건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나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하나님의 걸작품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옆에 있는 하나님의 작품을 감상해주세요.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라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3) 객관화 되지 않은 겸손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겸손하다고 착각하며 사는 겁니다. 이 정도면 능력있고, 겸손하다. 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내가 겸손한 것을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목사님들 중에서 설교 못하는 목사님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모두 저를 보고 계시죠? 목사님들 중에 설교 못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절대로 설교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광팬이 있기때문입니다. 주로 사모님들이 목사님의 광팬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스스로를 잘 못 봅니다. 

*저는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아내는 저의 광팬이 아니라, 예언자입니다. 아내도 신학대학원을 나왔는데, 설교 끝나면 불려가서 정말 많이 혼났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제가 있습니다. 혹시 마음에 교만함이 올라오시는 분들은 제 아내에게 상담 받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겸손해집니다. 

*지금까지 3가지의 거짓 겸손을 살펴봤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저거 다 내 얘기인데. 라는 생각이 드셨나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겸손은 옵션입니다. 겸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겁니다. 나만 낮춘다고 겸손해지는 게 아닙니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라.

*전에 다니던 교회에 아주 겸손한 여자 연예인이 있었습니다. 이 배우가 SBS에서 주는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는 소감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참 겸손한 배우였고, 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배우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세상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끝내 교회를 떠났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겸손입니다. 제대로 겸손한 것 같은데, 뭘 잘못한 것일까요? 잠시 겸손할 수는 있습니다. 계속 겸손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을까요?

▶1) 자기를 비우라. 
예수님은 겸손해지기 위해서 매일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높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밤늦게 기도하시고, 새벽에 기도하시면서 자신을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렇습니다. 내 속에 가득찬 교만한 나 자신을 비워야, 하나님의 은혜를 채울 수 있습니다. 나의 교만한 모습 때문에 주변에 있는 이들을 힘들게 하고, 가족들을 괴롭게 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받을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나의 교만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하세요. 내 영혼을 비우고, 주님의 은혜를 채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낮은 자를 섬기라.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만 자신을 비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권력자들의 섬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예루살렘성 밖의 마을인 베다니를 사랑하셨습니다. 

*종들 중에서 가장 낮은 종들이 하던 발씻는 일을 직접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을 수가 있겠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낮은 자를 섬기면 겸손해집니다. 몸으로 섬겨야 합니다. 몸으로 섬기면,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신의 몸으로 낮은 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오늘은 노숙인봉사를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들을 섬기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이들을 섬기셔서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철저히 순종하라. 
우리들은 가끔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안 할 텐데. 왜 하나님께서 이러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명령을 거부할 때도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교만이 있기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셨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교만이 몰려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을 통해서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뜻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순종으로 겸손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고 배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겸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을 높이셨습니다. 이게 진짜 겸손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내가 못 할 일이 없다고 믿는 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교만한 우리들을 용서해주옵소서. 
오늘 말씀에 나온 높은 자리를 찾는 바리새인이 바로 우리들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정과 명예를 좇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의 죄악을 용서해주옵소서. 
마음속에는 교만이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 머리를 숙입니다. 우리들의 가식을 용서해주옵소서. 스스로 자신은 겸손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은 자를 섬기고, 철저히 순종함으로 겸손하게 해주옵소서.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6 Sep 2026 11:09: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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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36]신앙의 경계를 정하라-은혜금요-민34:12-26091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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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11-26091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34: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아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정복할 땅의 경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영역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보통 국토는 싸워서 이긴 만큼 가지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영토의 경계를 정하셨을까요?

1/2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가라.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부릅니다. 구약은 오래된 약속,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1) 약속을 붙잡으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였던, 우르를 떠나서, 상당히 위험한 지역인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고, 땅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어려운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받았습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나의 약속으로 잡는 것입니다. 열심히 말씀보세요. 성경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나의 약속으로 받고, 순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약속을 지키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살기 좋은 우리를 떠나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갑니다. 믿음의 시작은 익숙한 곳을 떠남에서 시작됩니다. 매일 매일 내가 익숙했던 삶을 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변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부터 열어서 세상 돌아가는 것부터 확인하던 습관을 버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면, 내가 변해야 합니다. 익숙한 나의 삶을 끊고,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노력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약속의 백성으로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3) 약속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약속도 있지만, 평생 기다려도 이뤄지지 않는 약속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속도 그랬습니다.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후에, 25년을 기다려서 아들을 받습니다. 평생 땅은 받지 못했습니다. 650년 지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집니다. 

민34: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아멘. 

*650년 동안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요?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비웃었을 겁니다. 약속을 잊고 살고, 그 약속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나의 약속으로 삼으세요. 주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신앙의 경계를 정하라. 

*제가 아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오시자 마자 교회 근처에 아파트를 구하셨습니다. 목사집은 교회와 마찬가지니 24시간 아무 때나 오라고 하셨습니다. 청년들이 아무 때나 들려서 밥먹고 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사모님이 중풍을 맞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사임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경계를 정하는데 실패한 겁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는 교인들과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가까운 게 좋은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목사가 교인들과 너무 가까워서 형 동생 같이 지내면, 교인들이 목사의 삶을 보고 실망합니다. 목사의 삶때문에 교인들이 시험당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너무 멀면, 목사가 교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 주에 교단에서 하는 바운드리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이게 무슨 교육이냐면 목사와 교인 사이에 관계를 어느 정도 맺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교육입니다. 무조건 가까우면 좋을 것 같지만 무조건 가까우면 무조건 무너진다는 거에요. 

민34: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아멘. 

*남한과 북한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경계가 정해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휴전선이라는 경계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다투지 않는 겁니다. 경계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서 전쟁을 할 겁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로운 삶을 살려면 경계를 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경계가 모호하면 다툼이 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삶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항상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밤 늦게, 새벽에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놓으셨고, 그 시간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제자들도 그 시간에는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경계 덕분에 예수님은 사역에 더욱 집중하실 수 있었습니다. 

1) 거룩이라는 경계를 정하고 사세요.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삽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한 경계를 그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 속에서 살지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경계를 긋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거룩한 시간을 정하세요. 매일 말씀보고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산다면, 내 삶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지키는 거룩한 경계를 쌓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뜻과 내 욕심에 경계를 정하라.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경계를 알려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욕심을 내서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그들에게 큰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큰 영토를 얻었다고 한들, 그 영토를 지킬 수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내 욕심 사이에 경계를 그어야 합니다. 그 경계가 없으면, 하나님을 내 욕심대로 이용하게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 계속 해서 하나님을 졸라대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나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고 만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욕심이 하나님의 뜻을 가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욕심과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게 정말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제목 중에서 내 욕심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말씀에 비춰보면, 내 욕심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기도를 비춰보세요.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계속 기도할 수 있지만, 내 욕심은 스스로 부끄러워서 포기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거룩한 경계를 쌓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약속의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의 익숙한 것을 떠나서, 하나님의 거룩을 따를 수 있게 해주옵소서. 
아브라함이 650년을 기다려서 땅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지치지 않고 기다려서 주님께서 주시는 땅을 얻을 수 있게 해주옵소서.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거룩의 경계를 정하게 해주옵소서. 내 삶의 거룩한 성을 쌓게 해주시고, 하나님과 내 욕심을 구분하는 지혜를 허락해주옵소서.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6 Sep 2026 11:07: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참된 겸손이란?]]></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61]]></link>
			<description><![CDATA[존 뉴턴(John Newton)은 우리가 잘 아는 찬송 「Amazing Grace」를 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과거를 알게 되면 이 찬송의 가사가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그는 잔혹한 아프리카노예상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서 유럽에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그의 삶은 조금씩 변화되었고, 결국 목사가 되어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p class="isSelectedEnd">뉴턴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두 가지는 기억합니다. 내가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크신 구주라는 것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이 말에는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참된 겸손은 자신을 무조건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자기비하도 아닙니다. 참된 겸손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그러나 겸손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죄와 부족함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는 큰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의 크신 구주이십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서의 겸손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p>
<p class="isSelectedEnd">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를 붙드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존 뉴턴은 자신이 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 크신 구주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Amazing Grace」의 가장 깊은 고백인지도 모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참된 겸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p>
오늘도 나를 바라보며 낙심하기보다, 나를 구원하신 크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나의 부족함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바라보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at, 12 Sep 2026 18:29: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어떤 노숙인 이야기1]]></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9]]></link>
			<description><![CDATA[<em>아래의 이야기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탕으로 노숙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쓴 가상의 이야기입니다.</em>

존은 샌프란시스코의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시간에는 웨이터로 돈을 번다. 존은 걱정이 많다.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요즘 샌프란시스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최근에 AI 기업들의 고용확대로, 돈 많은 직장인들이 늘어났고, 1베드룸 아파트가 4200불까지 올랐다. 존은 어쩔 수 없이 룸메이트를 구해서 방값을 나눠서 냈다.

존은 자전거를 타고 식당에 출근을 한다. 자전거를 타고 식당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존이 신호를 지키지 않고 사거리에 들어갔다가 차에 치인 것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걸을 수가 없다.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응급실에 갔다. 병원비도 걱정이지만, 당장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걱정이다. 다리가 부러졌고 기브스를 했다. 최소 몇 달 동안은 일을 못할 것 같다. 이번 달은 방값을 낼 수 있지만, 다음 달부터는 낼 돈이 없다. 집 주인은 존의 딱한 사정을 알고, 당장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다리의 회복은 더뎠고, 기브스를 푼 뒤에도 오래동안 서서 일할 수가 없었다. 다음 달 주인은 존에게 방을 빼달라고 했다.

이렇게 존의 노숙은 시작되었다. 존은 친구와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3천불짜리 중고차를 샀다. 존은 이 차에서 잠을 자면서, 구직을 해볼 생각이었다. 차에서 사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앞유리에 108불짜기 주차티켓이 끼워져있었다. 밤에 차의 문을 두드리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빨리 직장을 구하는 게 답이다. 지원한 회사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란다. 존은 공원의 화장실에서 대충 몸을 닦고, 인터뷰에 갔다. 몰골이 엉망이다. 어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인터뷰를 망쳤다. 쉬운 질문이었는데, 그냥 머리가 멍해졌고, 답을 못했다. 당연히 떨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차가 사라졌다. 벌금을 계속 밀렸더니, 시에서 차를 압류해버린 것이다. 차를 찾으려면 지금까지 밀린 벌금과 견인료와 이자를 내라고 한다. 존은 돈이 없었다. 차를 포기하기로 했다. 존의 진짜 노숙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길거리는 지옥과 같았다. 단속반이 갑자기 들이닥쳤고, 내 텐트를 뺏어갔다. 존은 인근의 마트에서 카트 하나를 훔쳤다. 카트에 물건을 다 실었다. 카트를 놔두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다른 노숙인들이 카트 물건을 훔쳐간다. 어제는 덩치 큰 노숙인이 주먹질을 하며, 내 슬리핑백을 뺏어갔다. 다른 노숙인이 다가와서 마약을 권한다. 이거라도 먹어야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존은 이렇게 마약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자고 일어나니 몸이 상쾌하다. 오늘 밤은 어떻게 자야 하나? 잠이 오지 않으니 다시 마약을 찾게 된다. 나에게 마약을 준 노숙인은 돈을 내라고 했다. 그때부터 존은 마약값을 벌기 위해서 구걸을 했다.

6개월 전만 해도 존은 웨이터로 일하며 미래를 준비하던 건강한 청년이었다. 그의 삶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09 Sep 2026 11:23: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좁은 문을 선택하라-은혜주일-눅13:24-260906]]></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8]]></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06-260906.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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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 *앙드레지드의 좁은문 이라는 소설의 내용입니다. 제롬과 알리사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고,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제롬은 교회에서 설교를 듣던 중,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누가복음 13장의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고, 평생 좁은 문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둘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좁은 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은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건 좁은문을 걸어가는 길이 아니기에 하나님만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결혼하지 않고, 쓸쓸하게 죽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좁은 문은 무엇일까요? 구원을 받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1/3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학교입학 시험을 치고, 면접시험을 쳤습니다. “10명 모이는 시골 교회와 천명 모이는 서울 교회 중에 어디를 선택하겠습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천명 서울 교회를 가고 싶지만, 그대로 대답하면 떨어질 것 같았기때문입니다. 저는 제 마음의 욕심을 누르고 10명 시골 교회라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면접을 진행하신 목사님께서는 목사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명 시골 교회가 좁은 문일까요? 천명 서울 교회가 좁은 문일까요?

▶눅13: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가?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의 수를 묻습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이 구원을 받을지? 그 정도 구원받으면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원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버지 90점 받았어요? 몇 등이냐? 구원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합니다. “저렇게 예배도 똑바로 안드리면, 저 사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예수믿고도 저렇게 안 변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저 사람은 지옥갈게 분명해.”

*제가 받은 당황스러운 질문이 있습니다. “스티브잡스는 지옥갔죠?”라는 질문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걸 알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지옥간거로 정하면 그 사람 가는 겁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결정입니다. 하나님 마음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잘나고, 내가 뭘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눈이 있어서 항상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비교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판단대신 나 자신을 돌아보세요. 내가 지금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지 점검하세요. 다른 사람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 정죄대신에 기도하세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몇 명이 구원받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매일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의 구원을 준비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예수님때문에 좁은 문을 선택하라.

*신학교 입학면접때 들었던 질문에 저는 스스로 답을 정했습니다. 10명 시골교회든, 천명 서울교회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대로 간다. 내가 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가겠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무조건 처음 저를 부르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좀 신경 써서 보내주십시오.” 파트타임전도사를 나갈 때, 제일 처음 부른 곳에 갔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 그 교회는 가면 안 된다고 말리셨지만, 하나님께 했던 약속대로 처음 부른 교회로 갔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서 교회를 옮길 때도, 처음 저를 불러주신 교회로 갔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그 교회는 가면 안 된다고 말리셨지만, 저는 하나님과 약속을 지켰습니다. 미국와서 처음 저를 불러주신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역시 주변에서 말리는 분들이 있었지만, 저는 하나님과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좁은 문을 선택한다고 살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 고난의 길로 이끄시지 않으십니다. 내 삶에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 하루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눅13: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멘.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를 묻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힘써야 합니다. 좁은 문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누구나 넓은 문, 편안한 길을 선택하고 싶어합니다. 남들 많이 가는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평탄한 삶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좁은 문을 힘써서 선택하세요. 본능적으로 넓은 문을 선택하고, 편한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 길이 주님과 같이 가는 길인지를 생각하세요. 주님께서 이 길을 기뻐하실지? 고민해보세요. 늘 주님께 길을 물어보세요. 너무나 당연한 길도 주님께 길을 물어보세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는 그 문을 오해했습니다. 좁은 문이라고 고난의 문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주님과 함께 하는 문입니다. 고난의 문이 아닙니다.

*저는 회사를 다니다가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이렇게 저를 걱정해주셨습니다. “그 험한 길을 어떻게 가려고?” 어떤 분은 걱정해주시고, 어떤 분은 겁주셨습니다. 지금까지 28년 동안 목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목사로 살아온 길은 좁은 문인 것은 맞습니다. 제 맘대로 뭔가를 정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험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정말 기쁘고 즐겁게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이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좁은 문을 선택하세요. 좁은 문을 선택하신 이들에게는 주님께서 더 큰 은혜내려 주실 줄을 믿습니다.

▶눅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아멘.

*참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먹고 마시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대단한 주님의 일꾼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과 얼마나 친하면 같이 식사를 합니까? 예수님의 길에서 증거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대단한 열심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너는 누구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얼마 전 어떤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그 목사님의 노회에 큰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없어서 문을 닫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문을 닫기 전에 교회건물의 명의를 담임목사로 옮겨놓는답니다. 그리고 교회 문을 닫으면 교회건물이 목사것이 되기때문에, 그 건물을 팔아서 목사의 은퇴비로 쓴다는 겁니다.

*목사로서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교단은 무조건 교회건물은 노회가 가지고 있고, 교회가 어려워지면, 이 건물은 다른 민족의 교회가 될 겁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가 더 열심히 예수님 믿고, 교회를 지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10명 모이는 시골교회를 선택하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의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삼고, 예수님께 길을 묻는 겁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겁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도우미로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사고치면 수습하는 분이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는 그분의 종이 되어, ▶주님께 내 삶의 길을 묻는 겁니다. 내가 다 결정해놓고, 예수님께 통보한다면, 예수님은 내 삶의 주인이 아닌겁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문들로 들어가세요.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길을 준비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행복한 복된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망하는 겁니다. 주님과 함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두 개의 기관이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우리 삶의 기초가 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을 조사해보면, 불안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참 많습니다.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했다든지, 매일 다투는 가정에서 자란 경우입니다. 가족은 우리가 서 있는 발판과도 같습니다. 이게 흔들리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일하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기본적 신뢰”라고 합니다.

*얼마 전 큰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20%의 인원을 감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들이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짤리면 집에 와라,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줄테니, 염려하지 마라.”
“회사를 잘 다녀도 내 아들이고, 회사에서 짤려도 내 아들이야. 걱정하지마. 네 뒤에는 가족들이 있다.”

*아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웃었지만, 속으로는 든든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은 감원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우리 삶에서 기본적인 신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과 구원을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아멘.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게 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만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시나요? 그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속에 의심이 생깁니다. 그렇게 쉽게 구원을 받는다고? 나는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구원받을 수 있을까? 나는 예수님을 믿고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구원받으려면 교회일을 좀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면, 정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걸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흔들리면 우리의 삶이 흔들립니다. 하나님과 기본적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내가 똘똘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봐도 나는 답없고, 흔들립니다. 나보다 괜찮은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을까요?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십니다. 내 마음은 항상 흔들리고 변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의 덕분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원받습니다. 내 모습이 초라해도, 세상사람들이 무시해도, 나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을 이 말로 축복하겠습니다. ▶“당신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확신이 있으면 구원받는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 구원의 확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은 예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내가 만든 확신은 나 자신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은 늘 예수를 의지하게 합니다.

▶*참 구원의 확신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내가 잘난 것이 없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구원의 확신은 나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나의 잘남을 찾습니다.

▶*참 구원의 확신은 거룩하게 살려는 부담을 줍니다. 이것을 거룩한 부담이라고 부릅니다. 더 말씀보고, 기도하고, 봉사하려는 부담을 갖고 삽니다. 거짓 구원의 확신은 영적 게으름과 자만에 빠지게 합니다. 어차피 구원받았으니, 그냥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제대로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하려고 말씀보고 기도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짓 구원의 확신은 나는 하나님과 충분히 친밀하다고 자만합니다. 하루에 5분도 성경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배필요없음?

▶*저는 성도님들이 확실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기를 원합니다. 주식시장처럼 변하는 세상 속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사세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매일 매일 주님을 가까이 한다면, 언젠가 좁은 문 뒤에서 기다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때문에 좁은 문을 선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함께 모여 주님께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교만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미워합니다. 주님, 우리들의 마음을 주께 드리니, 주님께서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항상 예수님때문에 좁은 문을 선택하게 해주옵소서. 당장 손해보고 억울할 지라도, 주님께서 갚아주심을 믿고 좁은 문을 선택하게 해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흔들립니다. 내 마음속에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넘치게 해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7 Sep 2026 21:45: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35]은혜를 기억하라-은혜금요-민33:1-260904]]></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7]]></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04-26090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33:1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아멘. 

*이제 민수기도 4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날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지도자가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과연 모세도 없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처방은 오늘의 말씀입니다. 

1/3 익숙함을 떠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 동안 지나온 여정을 다시 알려주셨습니다. 그 시작은 이집트였습니다. 

민33:3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난 것은 첫째 달 십오일, 곧 유월절 다음날이었다. 그들은 모든 이집트 사람이 훤히 보는 앞에서, 팔을 휘저으며 당당하게 행군하여 나왔다. 아멘.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세대는 광야세대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나고 광야에서 자란 세대입니다. 그들은 광야가 자기 집입니다. 평생 광야만 보고 살았으니까요. 

*요즘 한국에서는 아파트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평생 아파트에서 산 세대들을 말압니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을 보면, 고향같이 느껴진답니다. 

*광야세대들이 이집트 이야기를 들으면, 별로 느끼는게 없을 겁니다. 그냥 자기 부모님을 통해서 그 시절 이야기를 들었겠죠. 출애굽세대는 모두 죽었으니까요. 

*오늘 성경말씀은 아주 지루합니다. 어디서 진을 치고, 어디로 떠났다. 여기 저기 머문 곳에 대한 기록만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어디 한 군데에서 40년을 살게 하시지 않고, 계속해서 광야를 떠돌아다니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어느 지역에 익숙해지면, 그곳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이웃과 친해질 기회도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순종하고, 매일 매일 익숙한 것을 떠나서, 하나님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익숙한 것을 떠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왜 떠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미국으로 보내셨을까요? 친구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는 곳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익숙함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익숙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익숙함을 떠나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은혜를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없는 이스라엘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없으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말씀하실까요? 가나안에 들어가면 매일 전쟁을 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을 차지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시 쫓겨나서 광야로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민33:5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진을 치고
33:6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아멘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20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지 않으시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싸워서 이긴 적들을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이집트를 이겼고, 아말렉, 미디안 등을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40년 짜리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험한 광야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아주 강력한 군대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시간을 불평하며 따라갔습니다. 아무 의미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무의미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고난을 훈련으로 여기면, 나에게 복이 됩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은혜였던 겁니다. 먹고 사느라 힘들어서 잊고 살았는데,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미국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알지도 못하는 이 땅에서 직업을 주시고, 가족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힘겨운 삶의 길을 이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신앙을 타협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증거합니다. 가나안백성들이 가증한 일을 행했고, 가나안 땅에 살 자격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신들이었고, 그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면 온갖 음란한 짓을 해야 했습니다. 몰렉은 최악이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몰렉에게 태워서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이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유로 가나안 땅에 사람들을 쫓아내기로 결정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백성을 이주하기로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민33:55 너희가 그 땅의 주민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 너희와 함께 있도록 허락하였다가는, 그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옆구리를 찌르는 바늘이 되어서, 너희가 살아갈 그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아멘. 

*만약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너희들도 이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들은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주변에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에게 농사를 배우면서, 농사의 우상도 같이 배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저지를 죄악을 이미 다 알고 경고하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우습게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경고는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우상숭배하고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추방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들도 가나안 땅에서 모두 쫓겨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신앙의 타협을 하지 마세요. 믿음의 원칙은 그대로 지키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 하나 타협하다가, 우상숭배하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을 문자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광야같은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시작은 나의 익숙함을 떠나는 것임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을 나의 명령으로 받게 해주시옵소서. 나의 익숙함을 떠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주옵소서.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주님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앞으로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믿음의 타협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과의 약속을 바로 지키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7 Sep 2026 21:42: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영적 지침을 어떻게 극복할까?]]></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6]]></link>
			<description><![CDATA[지난 주간에 샌프란시스코 노회에서 개최한 한인목회자 1박 수련회에 잘 다녀왔습니다. Danville에 있는 아름다운 가톨릭 수도원에서 PSR의 황희성 교수님을 모시고 "영적 지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했습니다. 목회자에게도 쉼과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p class="isSelectedEnd">열왕기상 19장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엘리야의 모습이 나옵니다. 바로 전날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던 엘리야가 이세벨의 한마디에 두려워하며 도망갑니다.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합니다. 우리도 때로 그렇습니다. 큰일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데도 어느 순간 작은 말 한마디나 예상하지 못한 일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영적 지침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strong>먼저 쉬게 하시는 하나님</strong></p>
<p class="isSelectedEnd">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 먹이시고 마시게 하셨으며 다시 잠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친 사람에게 먼저 “더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먼저 쉬게 하십니다.</p>
<p class="isSelectedEnd"><strong>세미한 음성을 들으라</strong></p>
<p class="isSelectedEnd">하나님은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미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갈멜산 기적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strong>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라</strong></p>
<p class="isSelectedEnd">엘리야는 “나만 남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보지 못했을 뿐, 하나님께서는 이미 함께할 사람들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strong>다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strong></p>
<p class="isSelectedEnd">하나님은 엘리야를 쉬게 하신 후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침의 회복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쉼을 통해 힘을 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관점을 얻어 다시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지침을 극복하는 길은 억지로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멈추어 쉬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내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히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먹이시고 쉬게 하시고 말씀하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지쳐 있다면 잠시 멈추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우리의 걸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7 Sep 2026 16:56: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네팔홍수와 우리의 책임]]></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5]]></link>
			<description><![CDATA[지난 주에 발생한 네팔의 홍수를 보면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깨달았습니다.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이번 홍수는 엄청난 양의 물과 토사, 바위를 휩쓸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물의 흐름은 최대 시속 150km를 넘었고, 순식간에 마을과 도로와 다리를 집어삼켰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신앙의 한 부분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8). 오랫동안 교회는 이 말씀을 자연을 인간이 마음대로 지배하고 이용해도 된다는 뜻으로 착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연을 맘대로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정복신학"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단순한 자연의 지배자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2:15).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창조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입니다. 자연의 주인은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생태신학"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관리인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보존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는 신학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온 선진국들의 산업화가 지구 온난화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 피해는 네팔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더 크게 감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생태적 불의의 문제입니다.

기후위기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베이 지역도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만의 해수면은 금세기 말까지 약 3~6.6피트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샌프란시스코의 대부분 저지대가 바다속에 잠기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거창한 일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세요.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합시다. 우리 교회에는 일반 쓰레기통과 재활용쓰레기통이 있습니다. 분리수거를 안 하시면, 누군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시 분리수거를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게으름과 편리함 때문에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네팔의 비극을 바라보며, 우리를 자연의 청지기로 부르신 하나님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7 Sep 2026 16:56:0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반역자 고라자손은 멸망했을까?]]></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4]]></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민수기 16장에는 고라의 반역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의 지도자였지만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도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반역을 엄중하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갈라서 고라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산 채로 땅속에 매장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6장에 이르러 아주 뜻밖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짧은 한 구절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고라의 죄는 고라의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을 심판하셨지만, 그 죄를 그의 자녀와 후손에게 운명처럼 물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고라의 아들들은 살아남았고, 그 후손들은 훗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고라의 자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윗 시대에 고라 자손은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일을 맡았고, 찬양과 음악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우리가 시편에서 만나는 “고라 자손의 시”도 바로 그들의 후손이 남긴 찬양입니다. 시편 42편, 44–49편, 84–85편, 87–88편이 고라 자손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놀랍습니다. 고라는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고라는 하나님께 반역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조상의 실패가 후손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우리도 때때로 자신의 과거나 가정의 상처 때문에 “나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의 실패 때문에, 과거의 죄 때문에, 혹은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앞으로의 삶도 결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에 묶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는 분명히 심판하시지만, 사람을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라의 아들들을 살려 주셨고, 그 후손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그러므로 우리의 과거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우리의 가정과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우리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7 Sep 2026 16:55: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진수가 데이비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왔습니다.]]></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3]]></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9faae55ce57275315.jpg" alt="" />

진수가 친구들과 같이 살던 아파트입니다.
고등학교친구와 교회친구들과 같이 4명이 2베드룸을 나눠서 썼습니다. 둘이 한 방을 나눠 썼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9faae514806701277.jpg" alt="" />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9faae59dcb4202670.jpg" alt="" />

마지막으로 데이비스 학교 소방서에 들려서 EMT 유니폼과 배지와 벨트 버클을 반납했습니다.
진수가몰고 다니던 트럭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9faae5f3997148521.jpg" alt="" />

저 밴도 진수가 몰고 다니던 밴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c5e6a208763552465.jpg" alt="" />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c5e6a2c3e15682992.jpg" alt="" />

진수가 공부할 때 썼던 메모들입니다. A4 반 정도 사이즈에 작은 글씨로 적어넣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9faae644e93999236.jpg" alt="" />

샌프란시스코 방은 진수가 다시 정리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9faae6be495568026.jpg" alt="" />

진수는 지금 열심히 의대원서를 쓰고 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9a00c8ae6fe4183478.jpg" alt="" />

집에 오니 먹을 것 많아서 좋습니다. 이발도 했구요.]]></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03 Sep 2026 14:57: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주일은 무엇을 하는 날일까?-은혜주일-눅13:10 -260830]]></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51]]></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30-260830.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haJvfKibLJI?si=sqF6GC5VBQA8aEhV&amp;start=1673"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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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때는 군대 훈련소있었을 때였습니다. 군대훈련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처음 3주 동안 교회를 못 가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못 가는 것도 훈련이라고 해서, 3주 동안 교회를 못 갔는데, 그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는데, 주일날 교회를 안 가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믿음의 중심에는 주일성수가 있었습니다.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고, 목사로 살고 있지만, 제가 제 믿음을 지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주일을 지켰더니, 하나님께서 저와 저의 믿음을 지켜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 예배에 오셨나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주님께서 온전히 받아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3 주일은 예배드리는 날이다. 

*제가 어릴 때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은 아주 보수적인 목사님이었습니다. ▶주일날에는 절대로 돈을 못 쓰게 하셨습니다. 가게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주일에는 공부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셔도, 저는 “주일을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라고 하며 공부 안 하고 놀았습니다. 이럴 때는 주일이 참 좋았습니다. 주일은 정말 아무 것도 하면 안 되는 날일까요?

▶*유대인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오래 살고 계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동네의 유대인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금요일에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안식일이 되면, 동네 유대인들이 이 목사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우리 집에 와서 에어컨 좀 켜달라.” “우리 집에 와서 히터 좀 켜달라.” 안식일에 히터나 에어컨을 켜게 되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목사를 불러서 이런 심부름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제대로 안식일을 지키려면 히터나 에어컨도 일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눅13: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아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무엇을 했을까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유대인을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음식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해 놔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가족들끼리 모여고,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가족에게 집중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킵니다. 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지, 주일을 지키라고 했나요? 왜 우리는 안식일을 안 지키고 주일을 지키는 걸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일요일은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었는데 기독교인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을 예배드리는 날로 바꿨다는 주장입니다. 이건 틀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3일 째인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주일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전통을 이어서, 지금까지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에게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금요일과 토요일이 휴일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요일은 그냥 일하는 날입니다. 회사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요? 토요일에 모이거나, 주일 저녁 예배시간을 만들어서 주일 저녁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게 편리한 일일까요? 회사에서 힘들에 일하고 돌아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날 쉬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였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주일을 따로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AD 321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을 휴일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요일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쉬셨으니,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는 날입니다. 내 맘대로 살고 내 맘대로 일하다가, 주일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립니다. 내 삶의 참된 주인이 예수님임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바쁜 걸음을 멈추세요. 그리고 오늘 이 시간만은 우리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주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백성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설교하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전통을 전하고, 유명한 랍비들의 말을 인용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만 인용하셨고, 직접 경험하신 천국의 이야기를 전파하셨기때문입니다. 

▶눅13: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아멘. 

*이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여자 중에 환자가 있었습니다. 허리가 꼬부라져서 몸을 펼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병명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척추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허리를 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일상생활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허리가 펴지지 않으니, 어디서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걷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이 고통이 18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런 병이 나에게 생겼을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고쳐주겠지. 이 병을 고칠 의사를 찾아보자.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세월이 18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갈 수록 몸은 망가지고, 몸과 함께 마음도 망가져갔습니다. 

*성경은 이 여자가 귀신들려 꼬부라졌다고 기록합니다. 귀신이 들려서 꼬부라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여자를 이렇게 보고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이 고통받는 여자를 보면서, 안타까워 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불치병에 걸린 이유가 귀신들려서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귀신들린 여자는 가까이 할 수도 없습니다. 몸의 아픔보다 더 아픈 것은 사람들의 차별과 낙인이었습니다. ▶남의 고난을 해석하지 마세요. 그냥 같이 아파하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고난을 해석할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귀신 들린 여자를 멀리 했습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회당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 여자를 피해서 멀리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했던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했다는 겁니다. 그 괴로운 시간 속에서 이 여자는 회당에 나왔습니다. 자신의 소망을 하나님으로 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몸이 말을 안 들어도,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렸고, 그 힘으로 살아갔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나요? 이 여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요청하지 않은 병고침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여자가 그 괴로움의 시간인 18년 동안 지켜온 예배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만나고, 치료하고 위로하시기 위해서, 그 회당에 가셨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겁니다. 이 여인의 마음으로 예배드리세요. 내 몸이 말을 안 듣고, 내 마음이 무너져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세요. 주님께서 그런 이들을 이 시간 만나주시고, 회복의 기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눅13: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하였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아멘. 

*예수님께서 병든 여자를 예배 중에 고쳐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인데, 이런 기적을 행하는가!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서 탄성을 질렀고,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기적을 보고 예배에 나온 교인들에게 소리쳐 말했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평일에 해야지, 안식일에는 하면 안 됩니다.”

*회당장은 회당을 운영하는 대표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보고 그는 놀라서, 자기 교인들에게 안식일에는 병고치는 일도 하면 안 된다고 소리를 친 것입니다. 그는 회당의 책임자였기때문입니다. 

*이 날이 안식일이기때문에 안식일에는 병고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병을 고칠 거면 다른 날 고쳐야지, 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냐는 겁니다. 허리굽은 여자의 안타까운 상황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회당장일 겁니다. 이 상황에서 제일 기뻐해야 할 사람도 회당장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은 없었습니다. 오직 율법대로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일은 아무 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닙니다. 6일 동안 내 맘대로 내 욕심대로 살았다면, ▶주일 하루 만은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살라는 겁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착각하지 말고, 내 삶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세요. 내 가족과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세요. 이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주일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주일을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주일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날이다.

▶눅13:15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아멘.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위선자”라는 아주 강한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집에 있는 소나 나귀도 안식일에는 묶인 것을 풀어서 데리고 나가서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합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서 고통을 받은 여자를 풀어주는 것이 어찌 나쁜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이게 안식일을 어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위선이 가득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 여자를 소와 나귀만도 못하게 생각했을까요? 그 여자가 내 가족이 아니었기때문입니다. 내 소와 내 나귀가 귀하지, 나와 상관없는 남은 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 회당장의 아내고 딸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모인 예배자들에게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안식일과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은 개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는 하나님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는 날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바리새인의 안식일을 지키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주일이라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닙니다. 주일날 더 바쁘게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에 와서 교인들의 식사를 준비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성가대와 찬양팀을 위해서 교회에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예배 안내와 교회청소로 수고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안식일을 지킨다면, 아무 것도 하면 안 됩니다. 길에 있는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줘도 안 되고, 지난 주일처럼 교인들과 오후에 소풍을 나가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리새인의 안식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주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더 많이 일하는 날입니다. 

*코로나기간이 지난 후에 교회에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온라인예배가 생겨서 멀리 계신 분이나 아픈 분들도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변화입니다. 반대로 나쁜 변화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오후가 다른 약속들로 바빠졌다는 겁니다. 교인들이 오후에 모이려고 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주일은 예배만 드리는 날이 아닙니다. 교인들과 같이 친교하는 날입니다. 이웃을 섬기는 날입니다. 

▶*주일은 말 그대로 내 삶의 주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내 주인님의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6일 동안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줄 알고, 내 맘대로 살았다면, 주일날 만은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이신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정해진 예배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나와서,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저는 지미카터 대통령을 참 좋아했습니다. 1979년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기념 우표도 샀습니다. 
조지아의 땅콩농장에서 태어난 카터는 18살 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그는 미해군장교가 되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그랬던 그가 미국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대통령은 잠깐 할 일이지만, 주일학교 교사는 평생 할 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출근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퇴근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루 종일 급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지만,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주일을 지켰습니다. 
▶2015년 카터는 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온지 3일 만에 다시 주일을 지키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의 나이 90세 때였습니다. 그날 700명이 전국에서 카터의 성경이야기를 들으러 모였습니다. 
카터는 주일성수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제 평생소원은 죽기 전 날까지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죽는 게 소원입니다. 하나님. 저 계단을 걸어서 올라올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게 해 주옵소서. 

*평생 주님을 예배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님의 날을 알려주시고, 주님의 집에서 예배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온 고통받는 여인이 우리들임을 고백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온 주의 백성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주시고, 치료해 주시옵소서. 
세상 속에서 교만하게 살아가던 우리들을 부르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날은 나의 날이 아니고 주님의 날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주시고, 주님께서 내 주인이심을 고백하게 해주옵소서. 
카터 대통령이 그랬던 것 처럼, 마지막 주일까지 이 성전을 지키게 해주옵소서.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을 사모하는 예배자로 살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03 Sep 2026 13:54: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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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34]복에는 책임이 있다-은혜금요-민32:2-26082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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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28-260828.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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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32:2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멘.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맨날 일하는 사람만 한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에서 섬길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구역장뽑는 것였습니다. 교회는 큰데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이유가 있죠. 특히 손주봐줘야 한다는 분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도 그런 문제가 나옵니다.

1/3 복에는 책임이 있다.

*르우벤지파와 갓지파는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습니다. 두 지파에 가축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지파에 큰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의 눈에 야스엘과 갈르앗 땅이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이 땅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땅이었고, 이 땅을 정복하고 분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요단 동편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했고, 시혼왕에게 땅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시혼왕이 거절하고 군대를 이끌고 나옵니다. 그래서 전쟁이 났고, 시혼왕이 이스라엘에 패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옆의 나라도 위기를 느낍니다. 당하기 전에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산의 옥도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다시 이스라엘이 또 이깁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땅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지파가 이 땅에 관심을 갖습니다.

민3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가축 떼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들이 야스엘 땅과 길르앗 땅을 둘러보니, 가축 떼를 놓아 먹이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었다. 아멘.

*르우벤과 갓 지파는 가축이 많았습니다. 야스엘과 길르앗 땅은 높은 산악 고원지대입니다. 계곡이 많았고, 그 물은 갈릴리호수로 들어가는 물이었습니다. 덕분에 풀이 많아서 목축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대관령에 목장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지파는 엉뚱한 요청을 합니다. 자기들은 이 땅에 정착하고 요단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건 공동체에 큰 문제가 생길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점령지를 차지하고 나면 누가 전쟁에 참여하고 싶겠습니까? 다른 지파는 이 두지파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누가 목숨걸고 전쟁터에 나가고 싶겠습니까?

*르우벤과 갓지파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공동체를 깨뜨릴 뻔 했습니다. 종종 우리들은 자신의 이익때문에 다른 이들과 갈등할 때가 있습니다. 복이 화가 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생긴 땅이 화가 될 위기입니다. 복은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을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복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먼저 공동체를 생각하라.

*모세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39년 전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낸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민32:9 그들은 기껏 에스골 골짜기까지 올라가서 그 땅을 둘러보고 와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사기를 떨어뜨려, 주님께서 주신 그 땅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였소. 아멘.

*39년 전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돌아온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은 이미 거인들이 살고 있어서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정탐만 하고 오라고 했는데, 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내 삶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주신 명령에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이들의 보고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사기를 꺾어버렸고, 광야생활 40년이라는 벌을 받게 됩니다. 모세는 이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민32:17 이 땅 원주민들도 있고 하니, 우리에게 딸린 어린 것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성을 단단하게 쌓은 다음에, 모두가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선발대가 되어, 그들이 가야 할 곳까지 그들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아멘.

*모세의 지적에 르우벤과 갓지파가 회개합니다. 이 땅을 주시면, 이 땅에 성을 쌓고, 전원 전쟁터에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선발대로 가겠다고 합니다. 선발대가 제일 위험하고, 제일 희생이 큽니다. 르우벤과 갓지파는 회개했습니다.

*이기적으로 내 것만 챙기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공동체를 생각하세요. 이기적인 사람만 모인 가정은 불행합니다. 이기적인 사람만 모인 교회는 무너집니다.

*복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성경의 복은 항상 그렇습니다. 두 지파는 복에 따르는 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이 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회개했습니다. 우리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께서는 나의 수고를 기억하신다.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지파는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 반입니다. 2지파 반인거죠. 그런데 왜 갑자기 므낫세가 여기 나옵니까? 땅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민32:33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반쪽 지파에게, 아모리의 시혼 왕국과 바산의 옥 왕국을 주었다. 그것은 그 땅 전체와 거기에 딸린 성읍들과 주변 영토를 포함한 것이다. 아멘.

*므낫세지파는 이 지역을 점령할 때 가장 앞장서서 전투에 나섰던 지파였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목숨을 바친 므낫세 지파에게도 땅을 나눠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지파는 각각 4만명 정도였지만, 므낫세는 5만명 정도의 큰 지파였기때문에 모세는 므낫세의 반을 요단동편에 거주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기억하십니다. 므낫세지파는 스스로 나서서 르우벤과 갓지파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고생은 므낫세가 하고, 르우벤과 갓은 거져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므낫세는 침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좀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지고 가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섭섭해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알아주면 칭찬해주겠죠. 칭찬에 목말라 하지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모두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수고에 반드시 복주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나의 수고를 아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분명한 책임이 있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하시고, 그 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복의 책임을 다하게 해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이기적입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편한대로 살려고 하고, 교회에서도 나 편한대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이기심때문에 가정과 교회가 힘겨워집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수고를 아시는 주님, 사람들의 칭찬에 목마르지 말게 하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시고 쉬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03 Sep 2026 13:53: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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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고난의 해석-은혜주일-눅13:3-2608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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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23-260823.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SDCnszxaDq4?si=ihalE3A7M7xDE4y3&amp;start=1401"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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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해저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인도양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 한국의 어떤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번에 지진해일로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를 안 믿는 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믿는 사람들을 박해했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천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요? 남이 당한 고난이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네요. 거기서 자기 가족이 죽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남의 고난을 왜 자기가 맘대로 해석을 합니까? 목사의 양심이 있다면, 고난당한 인도네시아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구호헌금합시다. 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고난을 해석합니다. 내 고난을 해석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일이 생기지?” 남의 고난도 해석합니다.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했을까?”

*우리는 고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으로 답을 찾기를 축원합니다. 

▶1/2 고난은 회개의 기회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몰려와서 놀라운 뉴스를 전했습니다. 

▶눅13: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아멘. 

*갈릴리는 이스라엘에서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대부분 산지와 사막으로 이뤄진 이스라엘에서 갈릴리는 아주 특별합니다. 사막을 지나다가 갑자기 ▶푸르른 호수가 나오는데 바로 갈릴리호수입니다. 레익타호의 1/3 정도의 크기입니다. 호수같지 않고 바다처럼 넓게 보입니다. 

*갈릴리호수에서는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 주변에는 농지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근처에는 키부츠라는 집단농장들도 여러개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풍경과는 너무 다른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래서 갈릴리지역은 항상 수탈을 당했습니다.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예루살렘의 중앙정부가 세금으로 걷어갔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후에는 로마제국에 세금으로 뺏겼습니다. 갈릴리지역은 반란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냥 맨날 뺏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니, 반란이 잦았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BC 4년 경에 갈릴리에 세포리스에서 유다라는 사람이 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세포리스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의 바로 옆동네였습니다. 로마군대가 진압군으로 투입되었고, 반란자 2천명을 잡아서 ▶십자가형으로 처형했습니다. 그 이후 갈릴리사람들은 말 안 듣는 반란자들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차별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도 갈릴리사람들의 반란이 지겨웠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사람들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려고 올라왔는데, 빌라도는 갈릴리사람 몇 명을 붙잡아서 죽였고, 그들의 피를 성전제물에 부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예수님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멀리 갈릴리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내려왔다가, 정말 억울하게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겁니까? 

*저와 한국에서 같이 사역했던 여자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남편이 없이 어린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의 남편도 부목사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기도를 가다가 차가 미끄러져서 돌아가셨습니다. 교인들은 전도사님을 위로하기도 했지만, 뒤에서 “무슨 죄를 졌기에 새벽기도오다가 사고로 죽었을까?”라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남의 고난을 해석하지 마세요. 

▶눅1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멘. 

*예수님께서는 이 소식을 전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너희들보다 큰 죄인이라서 심판하셨다고 생각하냐?”

▶눅13: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남의 고난을 보면서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남의 고난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일을 보면서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나도 저런 일을 당하겠구나!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죽고, 내가 산 것은, 나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살아있어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죽고 나면 회개가 아니라 후회를 하게 됩니다. 남의 고난해석하지 마세요. 내 죄를 하나님께 아뢰고 회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눅13: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멘. 

▶*실로암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에 침을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실로암에는 샘이 있습니다. 이 샘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일한 샘입니다. 원래 예루살렘에는 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왕은 이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예루살렘성 밖에 있는 기혼샘에서부터 실로암까지 연결되는 지하수로를 만들었습니다. 길이는 533미터입니다. 양쪽에서 각자 돌을 깨서 파기 시작했고, 가운데서 만났습니다.

*실로암연못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었습니다. 누군가 연못에 독을 타면 예루살렘은 단숨에 무너집니다. 그래서 실로암에 감시탑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감시탑이 무너졌습니다. 그 탑에 깔려서 18명이 사망했는데, 그 사람들은 연못에 물을 길으러 나온 주민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죄때문에 죽은 것일까요?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갖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고난을 해석하지 마세요.

▶눅13: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남의 고난해석하고 있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라. 

*다른 사람에게 병이 생기고, 사고가 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1) 내가 안 당해서 다행이다. ▶2)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할까? 이게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반응을 바꿔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세요. 내가 더 선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거에요. 
▶2) 판단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세요. 연락하시고, 옆에 가서 같이 울어주세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3)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세요. 언젠간 내가 당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남의 고난을 통해서 내가 회개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혹시 지금 내 마음속에 생각나는 고통당하는 이웃이 있나요? 그들에게 연락하시고, 그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고난의 해석하지 말고 의미를 찾으라.

*1983년 한국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버마에 있는 아웅산묘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북한 공작원들이 이미 폭탄을 설치해놨고, 17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중에 교회를 잘 다니던 집사님도 계셨습니다. 한경직목사님께서 장례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서 슬픔에 빠진 유가족이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 잘 믿는 내 남편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목사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도 안 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시며 같이 우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예수 잘 믿어서 복 많이 받으시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항상 이렇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은 순서대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 잘 믿은 순서대로 건강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예수 잘 믿은 순서대로 자식들이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요? 이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죄때문에 고통이 온다. 
*다윗도 죄를 짓습니다. 자기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을 했습니다. 밧세바는 아기를 가졌고, 다윗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충실한 부하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전사하도록 꾸밉니다. 우리야를 최전선에 내보내고 모두 철수시켜서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아주 교활한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때문에 다윗의 집이 벌 받게 하셨습니다. 밧세바가 가진 아기도 죽었습니다. 분명히 죄때문에 아기가 죽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때문에 고통이 옵니다. 죄짓고 복받으면, 더 신나서 죄를 짓겠죠. 그리고 영원히 망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막기 위해서 죄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십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스스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세요. 죄가 고통의 원인일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원하시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분들은 함부로 남의 고통을 해석하지 마세요. 회개를 강요하지도 마세요. 회개는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회개하는겁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 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이유를 모르는 고난도 많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소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9:2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아멘. 

*소경들은 귀가 밝습니다. 소경의 앞에서 제자들은 신학논쟁에 빠진겁니다. 죄때문에 이런 벌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 죄는 누구 죄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면, 엄마 뱃속에 있으면서 죄를 지은 겁니까? 아니면 부모가 죄를 지어서 소경으로 태어난 겁니다?

*제자들의 눈에 이 소경은 흥미로운 논쟁거리였지, 불쌍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이유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아멘. 

*자식이 아프면, 부모들은 흔히 이런 죄책감에 빠집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내 자식이 이렇게 되었나?” 저도 제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죄책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죄책감을 바로 풀어주셨습니다. 죄때문이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 소경을 고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왜 소경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치셨고, 그는 예수님을 믿고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증거합니다. 

*소경의 고난은 죄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난과 슬픔을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바꾸셨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모두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사용하셔서 내 인생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 고난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고난중에 주님을 의지하면, 분명히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고난을 통해서 훈련시키신다. 
*요셉은 17살에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노예생활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러다 여주인의 누명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죽을 고생 다 하고, 30살에 이집트 총리가 됩니다. 이 괴로운 시간을 요셉은 어떻게 버텼을까요?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아멘. 

*요셉은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형들에게 뭘 잘못했지? 형들은 나에게 왜 그랬을까? 아버지는 왜 나를 찾지 않는거지? 요셉이 고통의 원인을 찾았다면, 그는 복수를 위해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그의 복수심때문에 그의 인생은 망했을 겁니다. 

*요셉은 고난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해서 뭘 하시려고 하는 걸까? ▶요셉은 고난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이 고난으로 무슨 일을 계획하셨을까? 생각하고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13년을 견딘 후에, ▶요셉은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가족 굶어죽지 않도록 하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시려고,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나보다. 그는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제대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고난때문에 요셉을 망하게 하지 않았고, 그 고난 덕분에 요셉은 세상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당했던 고난은 이후에 자랑거리가 되었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고난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은 무엇인가요? 찾을 수도 없는 고난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오히려 어떻게 이 고난을 이길까? 어떻게 이 고난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까를 기도하세요.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고난을 묵상하지 말고, 고난 중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고난 중에 돌보시는 하나님아버지. 
주님, 우리들은 쉽게 다른 이들의 고난을 판단합니다. 남의 고난을 판단하지 말게 하시고,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도울까를 생각하게 해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항상 고난의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까? 하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를 생각하며 불평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없을 용서해주옵소서. 
고난의 이유를 찾기 보다는,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옵소서. 이 고난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이 고난을 넉넉히 이기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손붙잡고 고난과 싸워서 이기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4 Aug 2026 11:12: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33]우리는 은혜로 산다-은혜금요-민31:18-260821]]></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46]]></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21-26082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31:18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둘 것이니라. 아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비난하고 교회 안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잔인하실까요? 말씀을 통해서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모세는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명령합니다. 미디안에 무슨 원수를 졌을까요? 다시 발람과 발락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저주하려고 발람선지자를 매수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죠. 그러자 전략을 바꿉니다.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바알브올 제사에 참여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전염병으로 24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에 충격적이었습니다. 


*모압과 함께 이스라엘백성들을 음행하게 했던 나라가 바로 미디안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잊고 지나가면 안 될까요? 왜 이걸 복수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민31:15 모세가 그들을 꾸짖었다. "어쩌자고 여자들을 모두 살려 두었소? 아멘. 

*전쟁에서 여자들을 죽이는 법은 없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살려줍니다. 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잡아와서 노예로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전쟁에서 멋지게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부하들을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민31:18 여자들 가운데서 남자와 동침하지 않아 사내를 안 일이 없는 처녀는, 당신들이 차지할 몫으로 살려 두시오. 아멘. 

*이 말은 처녀는 살리고, 아줌마는 죽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모세는 왜 갑자기 미디안에게 복수하라고 했을까요?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음행과 우상숭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뒤에 일어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우상숭배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음행과 우상숭배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서 이 전쟁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미련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미디안의 여자들을 잡아서 온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직도 음행과 우상숭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기가막혔습니다. 죄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라고 전쟁에 내보냈더니, 죄지을 계획을 하고 여자들을 잡아왔던 것입니다. 


*죄는 내 힘으로 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실패하고, 성공해도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끊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4 Aug 2026 11:09: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오늘을 마지막처럼-은혜주일-눅12:40 -260816]]></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45]]></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16-260816.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vcWQnqhAdFw?si=4sOHqtP5MwMG67Hk&amp;start=1264"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 *제가 고등학생 때 서울역 앞에서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를 전도했습니다. “할아버지 예수믿으세요. 천국이 가까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도 그렇게 전도하나? 내가 어렸을 때도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어. 아직 천국 안 왔나?”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실까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까요?

▶1/3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도 알려주셨습니다. “비오는 수요일밤 수요예배시간에 오십니다.” 비오는 수요일 밤에 누가 비맞으며 교회를 가고 싶겠습니까? ‘그냥 오늘은 예배가지 말자.’나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저는 목사님의 말씀에 아멘을 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중학생이었지만 어른 수요예배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몇명이 나오셨나? 항상 확인을 하며,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예수님, 오늘 오시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제일 적게 왔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주시기 않으셨습니다. 

▶행1: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아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이 되셨을 때,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하셨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넋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저렇게 하늘로 가시는 건가? 아니면 다시 내려오시는 건가? 그때 옆에 있던 천사들이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봐라. 예수님께서는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당시 세상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황제가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에게 박해를 당했습니다. 같은 교회 교인 중에 잡혀가서 순교당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일 먼저 잡혀가는 사람은 목사들이었습니다. 도무지 이 세상에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이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초대교인들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 이렇게 외치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마라나타”

*그들의 상황은 도무지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로마가 멸망할 것 같지도 않고, 황제가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잡혀간 목사님과 성도들은 돌아올 가능성도 없습니다. 오늘은 다른 이가 잡혀갔지만, 내일은 내가 잡혀갈 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그들은 “마라나타”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 내 인생에 답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 삶에 오시지 않으면 내 인생은 답이 없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이 오셔야 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는 명확한 답이 있나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할 때, 우리가 찾아야 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주님 내 삶의 자리로 와주셔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안 계시면 내 인생에 답은 없습니다. 괴로운 삶의 상황에서 우리는 “마라나타”를 외쳐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종말론적으로 살았습니다. 종말론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내일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최선 다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만나면, “마라나타”를 외치는 겁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혹시나 주님께서 오시는데, “주님 오지 마세요.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시는 않나요? 종말론적인 믿음을 가지세요. 오늘 죽어도 천국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세요.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루를 최선다해 사세요. 이런 이들을 주님께서는 칭찬하실 것입니다. 

*오늘을 마지막같이 살며,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재림의 날은 알 수 없다.  

▶*1844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침례교 목사인 윌리엄 밀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구약 다니엘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1844년 10월 22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약 10만 명의 교인들이 그를 추종했습니다. 그들의 종말에 대한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자기 전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헌금한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직장을 관두고 교회에서 살았고, 어떤 이들은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서 먹고 자며 주님의 오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10월 22일이 최고의 절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당연히 예수님은 그날 오시지 않았고, 이 문제로 가정이 파괴되고,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교회는 밀러를 교회에서 제명해버렸습니다. 

▶*1910년 할리혜성이 지구 가까이 지나간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 혜성의 꼬리가 길었는데, 그 꼬리에는 독성물질이 가득하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할리혜성을 통해서 지구를 심판하시고, 재림하실 것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스마스크를 사서 교회로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1910년 5월 18일 혜성이 지구근처를 지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예수님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라는 단체가 이 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저도 그 날을 기억합니다. 제가 학교에 가는데, 학교 교문 앞에 스프레이로 “예수님께서 10월 28일에 오십니다.”라고 크게 낙서를 해놨더라구요. 마포에 있었던 다미교회에는 천 명이 흰 옷을 입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고, 늦은 밤 흰 옷입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귀신인 줄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내일 오신다고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목사님이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집이 있습니까? 내일 예수님이 오시면 그 집 필요없겠네요. 나 주세요.” 그러자 전도하던 사람은 화를 내면서 다른 데로 가버렸습니다. 이 전도자의 믿음은 진짜 믿음일까요? 정말 믿는다면, 이 땅에 있는 집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눅12: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재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재림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오실 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헛소문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날은 분명히 안 오시겠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실 것이니까.”

*앞에 나온 사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요? 목사들이 먼저 잘못된 말씀으로 선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세상에는 별의별 목사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목사가 아니라, 성경말씀입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목사입니다. 목사의 말에 흔들리는 믿음을 갖지 마세요. 우리들의 믿음은 말씀 위에 서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는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늘 사람에게 위로받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인간은 인간과 살면서 위로받고 상처받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좀 달라야 합니다. 큰 믿음 가진 분들을 보면, 사람에게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분들의 믿음은 사람 위에 세워진 믿음이 아니더라구요. 말씀 위에 믿음을 세우면 흔들지 않을 줄을 믿습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이 어떤 날짜에 집착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시한부종말론이라고 부릅니다. 재림의 날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날짜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날만은 좀 제대로 믿고 예수님을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속아 넘어가실까요?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제대로 된 믿음을 갖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때 물리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은 수업시간이 항상 시험과 퀴즈였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나 학생에게나 배운 것을 질문을 하고, 답을 못하면 매를 맞았습니다. 학생들은 매를 맞지 않으려고 매일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금도 물리학공식들을 외우고 있습니다. 언제 시험을 칠지 모르니, 긴장하고 평소에 공부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생활도 이런 형태가 아닐까요?

*무엇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딱 하나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입으로만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이 있다면, 너무나 당연하게 매일 말씀보고 기도합니다. 매일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명령을 미루지 않고 순종합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믿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할 지를 고민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 그 날을 알 수도 없지만, 그 날을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날에 맞춰서 제대로 된 믿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날에 맞춰서 믿는 척을 하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속아넘어가실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재림의 날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누가 주변에서 그런 얘기하면, “저 날은 안 오실게 분명하다.”라고 생각하세요. 매일 매일 내 믿음을 확인하세요. 매일 매일 나 자신을 훈련시키세요. 하루 하루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세요. 재림의 날에 주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상주실 줄을 믿습니다. 

▶3/3 재림의 날은 심판과 완성의 날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1)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다시 오신다. 
이 날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은 주님께서 내 마음에 찾아오셨어요. 이런 게 아닙니다. 이거 개인적인 것이고, 남들이 알 수도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에는 올라가셨던 그대로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 오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마24:30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아멘. 

*예수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모두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이 시작입니다. 

▶2)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 
지금까지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들의 몸이 부활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부활때문에 화장하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벌써 수천년 전에 죽은 사람의 몸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만드실 수 있습니다.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부활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3) 산 자와 죽은 자가 주님 앞에 서게 된다.

▶롬14:1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아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과 지옥에 가는 사람을 구분하게 됩니다. 그 기준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냥 그 앞에 서면 “믿습니다. 아멘”하면 될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분명히 구별하십니다. 진짜 믿음은 그 믿음에 맞는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바른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고, 또 그 믿음에 맞는 열매도 맺고 살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믿음은 제대로 된 열매를 맺고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날은 어떤 이들에게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후회의 날이 되지만,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칭찬받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무시당하며, 손해보며, 예수이름을 위해서 산 것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칭찬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4)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내 마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우리 가정이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예배드리는 순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예수믿을 자유도 없는 북한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전쟁으로 평화를 잃은 우크라이나의 전쟁터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있습니다.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직이 되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너무 집값이 비싸서, 이제는 젊은이들이 집을 사기도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부자들은 너무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집도 없이 길에 노숙인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고 말하지만, 그러면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 오게 될까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세상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폭력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이 땅을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이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너무 세상 속에서 세상에 취해서 살지 마세요. 그날이 오면 내가 가진 것들이 의미없게 됩니다. 늘 주님을 기다리며 사세요. 마라나타!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의 고통과 문제가 해결납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연습을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기쁜 만남의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문
세상의 창조주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괴로운 상황에서 마라나타를 외친 것처럼 우리들도 삶의 고난 속에서 마라나타를 외치며 예수님을 기다리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들을 체험하고 좌절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항상 믿음을 준비하고 주님의 오실 날을 기다리게 해주시옵소서.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며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4 Aug 2026 11:08: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32]서원은 신중하라-은혜금요-민30:2-260814]]></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44]]></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14-26081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div>
▶ 민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아멘.

*어머니께서 저를 낳고, 키워서 목사를 시키겠다고 서원기도를 하셨습니다. 어릴 때 저는 온갖 공갈과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서원기도했으니, 너는 목사가 되야 한다. 안 그러면 벌받아서 죽는다.” 아니 남의 인생을 이렇게 정하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중학교때 큰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겠다고 제가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상황이 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 하기 시작했고, 대학도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목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한 약속을 왜 네가 지키냐? 벌은 내가 받을테니 목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아들 뺏긴 기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서원기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성경을 몰라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처음에는 참 좋았습니다. 목사라는 직업이 돈은 못 벌지만, 보람이 참 많습니다. 교인들이 존중해주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담임목사가 되고 나니,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누구에게 얘기도 못 하고, 상의도 못합니다. 모든 책임을 담임목사가 져야 합니다. 종종 그만둘까? 도망갈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저를 지켜줬던 것은 중학교때 했던 서원기도였습니다. 서원기도가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 줬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서원기도입니다.

1/3 서원기도는 신중하게 하라.

민30:2 "남자가 나 주에게 서원하였거나 맹세하여 스스로를 자제하기로 서약하였으면, 그는 자기가 한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 그는 입으로 한 말을 다 지켜야 한다. 아멘.

*성경에서 서원기도는 자주 나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그 이유는 함부로 서원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기때문에 그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고, 다른 이유는 정말 필요할 때 서원기도를 하라고 권하기 위함입니다.

*서원기도는 하나님과 내가 약속을 하는 겁니다. 내 마음속으로 하는 약속입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은 소문을 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맘대로 서원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서원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서원기도를 하는 상황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1)절박한 상황에 서원기도하라.
야곱이 집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 야곱은 다시 살아서 돌아올 자신이 없었습니다. 쌍둥이형이 일찍 죽을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원기도했습니다. 살아서 돌아오면, 재산의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응답이 됩니다.

2)감사한 상황에 서원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너무 감사한 일을 허락하셨을 때, 하나님께 약속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으니 매년 장학헌금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감사가 줄어들어요. 감사의 마음이 사라지면서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어기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집에 감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3)특별한 목적으로 서원기도하라.
한나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당장 사는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듬뿍받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 만족하며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특별한 목적을 세우고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서원기도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지키지 않으면, 가장 큰 벌이 내립니다. 하나님과 신뢰가 손상됩니다. 신중하게 하나님께 서원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서원기도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전에 어떤 청년이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이 청년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흥회에 참여했고 작정헌금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었던 이 청년은 10억을 헌금하겠다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평생 짐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늘 마음속에 이 약속이 돌덩이처럼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벌받게 될텐데. 이 청년은 어떻게든 10억을 바쳐야 할까요? 아니면 잊고 살아야 할까요?

민30:3 여자가 아직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집에 있으면서 나 주에게 서원하였거나 스스로를 자제하기로 서약하였을 경우에는, 아멘.

*서원은 본인 혼자만 하는게 아닙니다. 가족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미성년자 딸이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을 경우, 그게 감정에 휩싸인 섣부른 결정일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그건 좀 힘들겠다라고 하는 순간, 그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서원은 혼자 지키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같이 하는 겁니다. 그 청년을 상담하신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네가 어렸고, 부모의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기에, 그 기도는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에게 그 이상의 복을 주시면 그 약속을 지켜도 된다.

*서원기도는 나 혼자 하는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가족들과 공유하시고, 가족들과 같이 하나님께 약속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서원을 지키면 복받는다.

*어떤 분들은 이래서 내가 하나님께 약속을 안 한다.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벌받는데 왜 내가 서원기도를 하냐?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잘못해서 받는 벌보다, 훨씬 큰 복이 있습니다.

*저와 약속해보신 분이 있나요? 저와 약속을 해보신 적이 있는 분은 그렇지 않은 분들보다 저와 친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친한 사이는 더 많은 약속을 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수많은 약속을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 수록 더 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을 지킴을 통해서 관계는 더욱 친밀해집니다.

*아무 약속도 하지 않는 관계는 아무 관계도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하나님께 약속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예배 빠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하고 지키면 내가 복받는 겁니다. “하나님 올해 성경 1독하겠습니다.” 이거 약속하고 안 지켜서 벌받은 사람이야기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우리는 약속을 통해서 도전을 하는겁니다. 그 도전이 내 믿음을 성장시키는 겁니다. 약속을 통해서 받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긴다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믿으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구나. 이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반대로 약속을 안 지킨 가장 큰 벌은 하나님을 향상 죄책감이 생기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커진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실패를 격려하시고 다시 성공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지키는 사이가 되십시오. 약속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기도를 들이시는 하나님 아버지.
신뢰할 수 없는 우리들을 믿어주시고, 우리의 약속을 믿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 내 삶의 어려운 순간 속에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주옵소서.
감정에 휩쓸려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지 말게 하시고, 신중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약속할 때 더욱 신중하게 해주시고, 그 약속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해주옵소서.
우리에게 천국의 약속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4 Aug 2026 11:05:0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국의 배심원제도]]></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41]]></link>
			<description><![CDATA[미국 시민권을 받고 나면 안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1년에한 번은 배심원으로 호출된나는 겁니다. (Juror Sermon)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한 주에 2000~3000명 정도를 우편으로 호출합니다. 호출 당한 사람은 바로 전날 법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호출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300~500명은 법원에서 대기하라고 명령이 납니다. 그 중에서 실제로 재판장에 불려가는 사람은 100~200명 정도이고, 그들 중에 24~48명은 실제 재판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건당 12명의 배심원이 필요합니다. 보통 재판이 2~4개 정도니 이런 계산이 나오는 겁니다.

배심원우편을 받고 월요일부터 계속 대기를 했습니다. 확인할 때 마다 "내일 다시 확인하시오." 라는 메시지가 나와서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목요일은 실제 호출이었습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10분 정도인 Bryant st.에 있는 법원으로 갔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08/6a7df2fe99dd69433713.jpg" alt="" />

들어가자 마자,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경찰들의 검문을 받습니다. 3층 배심원대기실로 가니 수백명의 배심원후보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날이 마지막이었고, 귀가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는 이걸 매년 반복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걸까요? 최근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서 배심원제도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2022년 11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시티에서 17세 운전자 시저 모랄레스가 시속 100마일이 넘는 속도로 불법 스트리트 레이싱을 벌이다 맞은편 차량을 충돌하여 어린 두 자녀를 둔 40대 부부를 현장에서 사망하게 했습니다. 17세 운전자는 고성능 벤쯔를 타고, 친구의 BMW와 함께 35마일 제한속도인 동네 길에서 불법레이싱을 했습니다. 당시 속도는 100마일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불법레이싱을 하던 중 도로에 있는 세보레 볼트 소형 전기차를 측면 충돌했습니다.  7살 먹은 쌍둥이 딸들도 사고를 당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여기서 아주 당황스러운 판결이 나옵니다. 17세 범인은 소년범임으로 소년원에 2년 3개월 동안 구금되어 재판을 받았고, 90일 전자발찌착용과 가택연금 및 집행유예 처벌을 받았습니다. 23세 공범은 8년 형을 받고 감옥에서 약물오남용으로 사고사합니다.

17세 범인은 이미 고속도로에서 108마일로 과속티켓도 받은 상태였습니다. 누가봐도 일반 교통사고는 아닙니다. 저렇게 과속하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 나이는 아닙니다. 아마도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서 감형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입니다.

<span class="citation-220">유가족들은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열었습니다. 2026년 8월 11일 화요일, 3주간의 배심원재판을 통해서 3천 3백 만불(500억원)의 손해배상결정을 내렸습니다. 17세 운전자는 60% 책임, 가해자 부모는 25% 책임, 공범 15% 책임이었습니다. 비싼 변호사를 써서 요리조리 피해가던 가해자를 배심원들의 상식으로 처벌해버린 것입니다. 자식에게 고성능차량을 사주고, 과속티켓을 받아와도 관리도 안 했던 부모까지 책임을 물었습니다.</span>

이게 배심원제도의 목적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을 위배한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나니 배심원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13 Aug 2026 09:02: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87"><![CDATA[usa]]></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국마켓에 한국음식이 들어옵니다.]]></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39]]></link>
			<description><![CDATA[요즘 미국에 한국음식인기가 대단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일본음식이 인기가 많았고, 일식집에서 식사하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한국음식이 유행이고, 한식집에서 밥먹는 게 유행입니다. 덕분에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같이 상승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만 해도 하나 밖에 없었던 대형 한인마켓이 지금은 3개가 되었습니다. 한인마켓을 이용하는 고객들도 다양합니다. 한국마켓에서 한국말 하는 한국 사람들 만나는데 더 어렵습니다. 대부분 외국인들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08/6a7cd574eddef5045039.jpg" alt="" />

여기는 미국 마켓인 Trader Joe's입니다. 한 구역이 한국음식으로 가득합니다. 부추전, 잡채, 떡볶이, 주먹밥, 냉동김밥...

한 나라의 음식으로 한 구역을 채우는 일은 처음 봅니다.

오늘도 장보러 갔다가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2 Aug 2026 12:25: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87"><![CDATA[usa]]></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오늘을 믿음으로 살라-은혜주일-눅12:26-260809]]></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38]]></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8-09-260809.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Wulr1n0i-bM?si=9IESg-XeBVP36_vq&amp;start=1467"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2004년에 미국 코넬대학교 교수인 Karl Pillemer가 Cornell Legacy Project를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노인들 1500명에게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설문조사했습니다. 칼교수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후회는 결혼, 돈, 직업에 관한 것들일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이 가장 많이 후회한 것은 “걱정”이었습니다. “걱정하느라 내 인생의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상상하며 걱정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겁니다. 걱정하느라 잠 못 이룬 날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102세 Eleanor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is too will pass.” 이것도 그냥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내려놓으라는 겁니다. “계속 걱정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당신과 삶을 파괴한다”

*우리는 늘 걱정하며 삽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까지 연구하며 걱정합니다. 남의 걱정도 내가 가져다가 대신 해줍니다. 우리는 왜 이리 염려하며 살까요? 걱정하고 근심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1/3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라.

*어느 부부의 이야기
FIRE 1밀리언 을 모아서 일찍 은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남편의 계획에 따라서 아내도 어쩔 수 없이 아끼고 아끼며 살았습니다. 돈 아까워서 애도 안 낳고, 아끼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1밀리언을 모았고, 남편은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이제 편안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오니 아내가 이혼하자는 겁니다. 남편은 자기 욕심대로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이루는 사이에 그 사이에 관계는 다 깨져버린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돈에 우선순위를 생각했지만,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를 우선순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눅12:23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아멘. 

*무엇이 중요한지?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예쁜 옷이 있습니다. 그 옷을 입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그 옷의 사이즈에 맞추려고 굶습니다. 끝내 그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지만,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돈을 열심히 벌려고 밤낮 없이 일을 합니다. 젊을 때는 건강을 희생해서라도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몸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합니다. 나이 들어서 벌었던 돈을 병원비에 사용합니다. 

*자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호랑이부모가 됩니다. 이렇게 성공해야 자녀들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깨집니다. 자녀가 대학에 간 후, 부모를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가요?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 그 우선순위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겁니다. 열심히 인생을 살다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깨닫지 못해서 열심히 살고도 끝내 후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눅12:24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아멘. 

▶*까마귀는 놀고 먹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까마귀처럼 놀고 먹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까마귀는 항상 열심히 먹이를 찾아 다닙니다. 교회에서 저녁때 집에 갈 때 보면 하늘에 까마귀들이 가득합니다. 한쪽 방향으로 무리를 지어서 이동을 합니다. 정말 장관입니다. 까마귀들이 자기 전에 같이 먹이 사냥을 하고, 같이 모여서 자기 위해서 집단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까마귀는 뭘 먹고 살까요? 곤충, 달팽이, 씨앗, 과일, 작은 동물, 죽은 동물, 쓰레기 등. 거의 모든 것을 먹는 잡식성입니다. 까마귀는 아무거나 다 먹습니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습니다. 2006년에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이 시애틀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한 연구자가 까마귀들을 괴롭혔습니다. 그 이후 그 연구자가 길을 지나가면 까마귀들이 이 사람을 알아보고 집단으로 공격했습니다. 17년 동안 까마귀들이 공격했습니다. 

*까마귀는 레위기 11장에 먹으면 안 되는 부정한 새로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까마귀도 먹이십니다. 부정한 까마귀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이 없으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먹이시고 입히심을 믿습니다.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지만 지식을 살 수는 없다.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엉뚱한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합니다. 내 삶에 더 중요한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걱정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라.

*맨 날 걱정하며 살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교회에는 목사님과 교인들을 괴롭히는 특이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교인이 병에 걸려서 죽었고, 장례식날 목사님께서 너무 많이 우셨습니다. 교인들은 그 속썩이던 교인이 사라졌는데, 왜 이렇게 우시냐고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 교인이 천국가면 하나님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고 우셨답니다. 정말 걱정도 팔자죠. 하나님걱정까지 해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눅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아멘. 

*제가 이 말씀을 읽고 회개했습니다. 제가 키가 작은 이유가 염려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염려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염려하면 같은 생각을 반복합니다. 잠을 잘 못 잡니다. 그러면 그날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 염려때문에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염려가 모두 쓸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걱정을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그 옆에 대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걱정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겁니다. 집안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쓸모있는 염려와 쓸데 없는 염려가 있습니다. 쓸모있는 염려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걱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준비한 후에 그 걱정을 멈출 수 있습니다. 현재 내가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합니다. 걱정이 막연합니다. 똑같은 생각을 반복합니다. 준비해놓고도 계속 걱정을 합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합니다. 

*예를 들자면 내일 비가 오면 어떻하지? 걱정을 한 후 우산을 들고 나갑니다. 이건 쓸모있는 걱정입니다. 반대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길이 잠기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으로 잠을 못자면 이건 쓸데없는 걱정이 되는 겁니다. 

▶눅12:26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아멘. 

*걱정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최선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바른 믿음의 태도입니다. 

*여기에 걱정과 염려가 없는 분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저도 똑같이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과 염려를 기도로 바꿔서, ▶십자가 밑에 내려놔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걱정과 염려를 기도로 바꿔서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열심히 걱정과 염려를 기도로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집에 갈 때 다시 내 걱정과 염려를 챙겨서 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집에 가져가지 마세요. 걱정과 염려는 십자가에 못을 박으세요. 그래야 그것이 나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염려하고 걱정하는 나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자신의 걱정과 염려를 성전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 수도 있고,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동네사람들의 망신거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나는 이 모든 걱정때문에 괴로웠고,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염려와 걱정을 하나님 앞에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에게 한나가 받은 평안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서 하세요. 여러분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도움을 구하세요. 믿음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이 마음을 누를 때, 그 걱정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맡기는 것입니다. 한나처럼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평안을 얻고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1985년 우리가 속한 미국장로교 총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흑인을 차별하는 남아공 정권에 협력하거나 이익을 얻는 기업의 주식을 팔아버리는 결정이었습니다. 미국장로교의 연금국은 이와 관련된 모든 주식을 팔아버렸습니다. 이 결정은 교회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교인들도 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GM, IBM, 코카콜라, 바클레이스 은행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남아공 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장로교의 결정을 보고,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UC Berkeley가 참여를 했습니다. 당시 레이건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법안에 거부건을 행사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아공의 눈치를 봐야 했기때문입니다. 미국장로교의 계속된 압박으로 1986년 미국 정부는 남아공의 경제 제재를 단행했습니다. 남아공에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쳤습니다. 더 이상 인종차별정책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1990년 27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습니다. 1994년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정책이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미국장로교회의 과감한 결정덕분에 남아공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미국장로교인인 것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미국장로교는 1885년 조선선교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장로교회의 힘을 조선에 집중했고,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게 해줬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손을 잡고 조선을 일본에 넘겨줬지만, 미국장로교는 미국의 정책을 따르지 않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워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눅12: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아멘. 

*이 말씀을 듣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나라가 따로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천국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당하는 고통들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죽어서 하늘 나라에 가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자인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로마를 물리치고 독립국가 이스라엘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 나라를 마음속에 만들고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내 나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통해 얻으려고 합니다. 내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성공하고, 내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삽니다. 이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내가 세운 내 나라인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천국가기 전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해야 합니다. 먼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는 겁니다. 내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되어 살던 인생을 회개하고, 내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이 하던 일을 관두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겁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것들을 저절로 다 채워주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에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 모든 것은 알아서 다 채워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교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후회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서 좀 더 시간을 내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지금은 대화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것은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일만이 하나님나라가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겁니다.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더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세요. 가정예배를 드리세요. 예배드리는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이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참 잘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예배끝나고 염려와 걱정을 집에 가져가지 마세요. 걱정이 몰려올 때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삶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 욕심으로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을 따르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염려와 근심이 넘칩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용서해주옵소서. 까마귀를 먹이시고, 백합화를 입히시는 주님.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만 의지하게 해주옵소서. 
내가 만든 내 나라를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주인삼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해주옵소서. 
우리를 돌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2 Aug 2026 11:52: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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