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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목사의 홈페이지</title>
		<link>http://kimdongwon.net</link>
		<description>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목사 가족 이야기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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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아는 것에서 사는 것으로-은혜주일-눅10:25-26042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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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26-260426.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10-kotwEsAE?si=fszM__pOpU0E6-yo&amp;start=1430"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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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초등학교 때, 일요일 아침마다 괴로웠습니다. 일요일 오전 8시에 은하철도999라는 만화가 MBC에서 나왔습니다. 한 시간 동안 봐야 하는데, 오전 9시까지 교회 아동부를 가야 합니다. 조금보다가 엄마에게 혼나고 교회를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은하철도999의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 하늘 나라 가지요”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저는 구원열차보다 은하철도가 더 좋았습니다. 둘다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구원열차를 타도 영생을 얻고, 은하철도를 타도 영생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안드로메다에 가서 기계몸을 얻어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영생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과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70인의 전도대를 만드셨고, 그들을 2명씩 짝을 지워서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능력을 행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했습니다.이들이 다녀간 동네에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의심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눅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아멘.

*어느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이 정한대로 착하게 살아가면,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가르침에 반대로 가르치셨습니다. 영생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그들의 믿음을 꼭 확인하셨습니다.

*먼저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영생은 얻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예수를 안 믿으면 죽고 나면 끝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이고,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벌받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죽음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장소만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선택은 믿음입니다. 여기에 있는 성도님들 모두 예수믿고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면 천국가는 줄 알고 삽니다. 천국에는 착한 사람들만 모여서 사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천국에는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요즘 극장입장료가 많이 올라서 20불 정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극장입구에서 표도 사지 않고, 들어가겠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나는 워낙 착하게 살았으니, 극장에 들어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 사람이 착하게 살았으면 극장에 무료로 입장하게 해줘야 하나요?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극장은 표가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법을 누가 정했습니까? 극장 주인이 정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을 누가 만드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가는 사람들의 기준을 정하셨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만 천국가는 거로 정하셨습니다. 그 앞에서 착하게 살았으니, 나도 좀 들어갑시다. 라는 말이 통할까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천국과 지옥의 기준은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율법교사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관계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개별적인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좋으면 안 될 일도 됩니다. 안 열리는 문도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자녀가 되면 안 열리는 문이 없습니다. 못 여는 문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갔을 때, 분명히 기억해야 할 말은 이겁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말만 하시면, 닫혔던 천국문이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잘 기억하셨다가 모두 천국문 안에서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인생은 해석이다.

*어떤 남자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빨대를 꼽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겁니다. 너무 이상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가 입에 술 한 방울이라도 대면 가만 안 두겠다.”라고 해서 빨대를 꼽고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남자는 아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요?

*인생은 해석입니다. 잘못된 해석때문에 오해를 하게 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성경말씀도 해석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보면서도 교회들마다 다른 믿음을 갖고 삽니다. 여자목사안수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여자목사안수 가능하고, 여자장로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최대 교단이라는 남침례교는 여자목사안수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자목사는 성경에 없기때문이랍니다. 똑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교회마다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눅10:2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아멘.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이 질문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다. 율법교사에게 율법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니까요.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은 뭘까요?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이 부분은 율법교사의 해석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교때 배웠던 성경해석방법 중에 아주 특이한 해석방법이 있습니다. ▶“독자반응비평”이라는 해석입니다. 성경을 이해할 때, 지금 이 시간에 이 말씀을 읽는 이의 반응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성경말씀은 특별한 상황 속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겁니다. 그걸 읽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은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와 대화를 하시면서, 이 말씀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이라고 아셨을까요? 모르셨을까요? 분명히 아셨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나의 반응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보내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나만 보라고 적어주신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목사가 대신 읽어주고, 대신 해석해줄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직접보고 직접 해석하고 직접 느껴야 합니다. 성경을 스스로 읽으세요.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해석하고, 그 해석으로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너는 어떻게 읽고 있냐? 너의 해석은 무엇이냐? 를 물으셨습니다. 당시 율법교사들은 여러개의 학파가 있었고, 그 학파에 속하면, 자신의 학파가 주장하는 내용만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건 문제가 있는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스승에게 배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들은 말씀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읽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루에 한 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인생을 살다보면, 다양한 일이 벌어집니다. 좋은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습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기대한 대로 일이 될 때도 있고, 안 되서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일을 해석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셨을까?”
늘 이 고민을 하고, ▶믿음이라는 눈으로 다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잘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손길을 느끼게 되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니까요. 믿음으로 인생을 보면, 길이 보입니다.

*큰 아들이 10학년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 목회도 힘든데, 저에게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너무 억울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다른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뜻대로 살지도 않고, 인생을 낭비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겠습니다.” 이 해석이 큰 아들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셨을까?”
믿음으로 내 삶을 해석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신앙생활에는 두 바퀴가 있습니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이 바퀴는 우리 모두가 같이 굴리면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율법교사는 명확하게 답을 했습니다.

▶눅10: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아멘. ㉣신 6:5 ㉤레 19:18

*각주가 두 개 있습니다. 첫 번째 각주는 ▶신명기 6:5에서 온 말씀입니다. 쉐마 이스라엘이라는 별명이 있는 말씀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의 각주는 ▶레위기 19:18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라. 아멘.”
이 율법교사는 성경전문가입니다. 이 둘을 합쳐서 정확한 구약성경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10: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이 말씀대로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율법교사는 머릿속에 많은 성경말씀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지킬 것만 지키고 지키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율법교사처럼 나름대로 만든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아닌, 내 나름대로 법을 만들어서 그 법을 지키면서 삽니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참 착하게 산다고 착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의 교만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이게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의 문제점입니다. 얼마나 선한 일을 해야 할까요? 죄 하나 지을 때마다 선한행동을 하나씩 해서 까면 되는 건가요? 어느 정도 선한 일을 해야 할까요? 노숙인 하나에게 10불을 주는 것이 더 선할까요? 노숙인 열명에게 1불씩 나눠주는 것이 더 선할까요? 내가 짓는 죄의 속도가 선한 일의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끝내 좌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은 많이 알기는 했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율법교사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이 책망은 우리를 향한 책망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대로 살려고 최소한 노력은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번 주도 지난 주와 똑같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요?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앞에 나오는 4개의 계명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법입니다. 다른 신을 두지 마라, 우상숭배하지 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마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그리고 나머지 6개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들입니다. 십계명의 핵심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주기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기도문에도 7개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중에 먼저 나오는 3개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뒤에 나오는 4개는 나와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의 두 균형을 제대로 잡고 있나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열심히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같이 예배 마치고 같이 식사하고,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성도들 간에 친교합니다. 이 두가지 모두 균형을 잘 잡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우리가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지 알려면, 이웃을 제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사랑은 확실하게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도와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해주셨습니다. 병든 사람은 고쳐서 보내셨고, 벗은 사람은 입히셨고, 배고픈 사람은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두바퀴를 열심히 굴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의 가족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의 친구와 이웃들을 아껴주십시오.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창조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또한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예수님을 온전히 잘 믿게 해주시고, 천국에서 영생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인 성경을 똑바로 읽고, 믿음으로 해석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들에게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들을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가족들이 예수 안에서 화목하게 하시고, 교인들이 서로를 아끼게 해주시옵소서.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7 Apr 2026 21:34: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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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16]예배를 멈추지 말라-은혜금요-민15:13-26042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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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24-26042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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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15:13 누구든지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 법대로 할 것이요. 아멘.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 땅 바로 근처까지 왔고, 정탐꾼을 보내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한 백성들을 벌주셨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해야 하고, 불평한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완전히 자포자기 상태인 백성들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까요?

1/3 어떤 상황에도 예배는 드려야 한다.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교인이 저를 찾아오셔서 화를 내셨습니다. “목사님. 내가 기분 나빠서 성탄절 헌금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내가 헌금을 안 했는데, 왜 목사님이 심방을 안 옵니까? 왜 목사가 교인을 무시합니까?”

*그 교인은 화가 나서 헌금을 안 했고, 목사가 심방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 헌금하는 것 안 봅니다. 많은 교회에서 매주 헌금한 내역을 목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저는 헌금명세서를 볼 자신이 없습니다. 교인이 돈으로 보일까봐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화가 나도 예배는 드려야 하고, 실망해도 하나님께 재물은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권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재물이니 당연히 드리는 게 맞습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 됩니다.

민15:3 그러면 너희는 소 떼나 양 떼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 나 주에게 불살라 바치는 제사, 곧 주를 기쁘게 하는 향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서원한 것을 갚으려고 드리든, 자원해서 바치는 제물을 드리든, 너희가 지키는 여러 절기에 드리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릴 것이다. 아멘.

*14장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15장을 넘어왔는데, 제가 이 말씀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15장에서는 백성들을 위로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말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당연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고, 예배드릴 때는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어떤 상황에서도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했다고 예배 안드리면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속상한다고 헌금 안 드리면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내 인생의 제 자리를 찾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예배를 사모하세요. 하나님께 빈 손으로 오지 마세요. 감사의 제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께 바른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종류가 있습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 곡식 중에서 골라서 드리면 됩니다. 이 중에 아무 거나 싸고 편한 것 고르면 안 됩니다.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서, 부자는 소, 중간이면 양, 염소,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나 곡식을 가져오면 됩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릴 때, 소를 바쳤습니다. 왕은 소를 바쳐야 합니다. 왕이 비둘기를 가져오면 그건 성의가 없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나 곡식으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 가면 비둘기를 키웁니다. 비둘기 타워를 설치하면, 비둘기들이 와서 삽니다. 그러면 거기에 먹이를 줘서 키우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잡아 먹는 거죠. 이집트에서는 비둘기 요리가 아주 고급 요리입니다. 비둘기 속에 쌀을 넣어서 구워먹습니다.

*비둘기는 키울 수도 있고, 산에서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를 잡으려면 고생을 좀 해야 합니다. 비둘기가 쉽게 잡혀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정성이 없는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민15:4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아멘.

*가난한 사람은 곡식으로 바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의 밭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추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보장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예배오면서 남의 밭에 가서 곡식을 좀 베어서 오면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곡식은 공짜로 베어올 수 있습니다. 그 곡식을 타작해야 합니다. 그건 노동입니다. 타작만 해서 가져오면 안 됩니다. 곱게 갈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곱게 갈지 않은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성이 없는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할 헌금의 원칙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서 헌금해야 합니다. 너무 적게 하면 안 됩니다. 반대로 빚내서 헌금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받으십니다. 내가 드리는 헌금에 정성이 없으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삶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려도, 예배로 중심잡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항상 바른 헌금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욕심내지 말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안식일은 창세기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하시고, 7일 째는 쉬셨습니다. 그 날을 안식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노예는 쉬는 날이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을 때, 그들은 쉬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은 자유인이 쉴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쉬게 하신 이유는, 그들의 몸에 배어 있는 노예근성을 끊어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민15: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였다. 한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 들켰다. 아멘.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가 걸렸습니다. 이 사람은 왜 안식일에 금지된 일을 했을까요? 그들은 사막을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나무가 보이면 모아놔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 나오면, 불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마침 나무가 있는 곳에 안식일에 쉬고 있었고, 그는 그 나무를 모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당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당장 귀한 나무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음에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기회를 놓쳐도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길을 가다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키느라 장사를 하지 않으면, 손해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일장사를 평일 날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쉴 수 있습니다. 주일에 편히 쉬세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채워주실 줄을 믿습니다.

*기도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의 약한 믿음을 용서해주옵소서. 마음이 상하면 교회가기 싫고, 기분이 나쁘면 예배드리기 싫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게 해주옵소서. 마음 상해서 교회와도 마음 풀려서 집에 가게 해주옵소서.
바른 예물로 하나님께 드리게 해주옵소서. 형편에 맞는 예물을 드리게 해주시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드릴 수 있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7 Apr 2026 21:31: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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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 공짜로 관람하기]]></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6]]></link>
			<description><![CDATA[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트와 LA Dodgers가 야구경기를 하는 날입니다.
야구장의 이름은 Oracle Park입니다. 2019년부터 바뀐 이름이구요. 이전에는 Pacific Bell Park, SBC Park, AT&amp;T Park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통신회사들의 이름입니다.

같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팀이라서 친할 것 같지만, 서로 원수관계입니다. 2011년 Bryan Stow라는 SF Giants 팬이 LA에서 야구관람을 한 후, 주차장에서 LA팬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영구적 뇌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2013년 다저스팬이었던 Jonathan Denver라는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경기를 관람한 후, 시비가 붙어서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LA모자 쓰고 다니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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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야구장 뒷편입니다. 공짜로 야구중계를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04/69eabb8fa8d6b5829220.jpg" alt="" />

바로 그 앞에는 홈런볼을 잡으려는 보트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 라디오로 야구중계를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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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앞에 무료로 야구를 볼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전망도 꽤 좋습니다. 거리는 멀지만 각도는 좋습니다. 망원경을 가지고 가는 게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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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바로 이정후선수 뒷 자리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04/69eabb8fa045a2765617.jpg" alt="" />

LA 다저스의 김혜성선수도 출전했습니다. 오늘 타점 1개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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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입니다. 24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적혀 있고, 입구에서 금속탐지기만 통과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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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는 3:0으로 샌프란시스코의 패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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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 이 곳에서 어린아이가 우회전차량에 치어서 사망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우회전관련 사고가 잦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23 Apr 2026 16:50: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87"><![CDATA[usa]]></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라-은혜주일-눅9:62-260419]]></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5]]></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19-260419.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G0mTpNVpmQc?si=1tNsqnmJlt4DK1kG&amp;start=1385"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2월 달에 노회에 참석했을 때 좀 충격적인 안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우리 교단 교회 하나가 다른 기관에 팔리게 된 뉴스였습니다. 왜 갑자기 그 교회가 교회 문을 닫고 건물을 팔게 된 것일까요?
2020년 코로나때문에 교회들은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 교회 앞에 노숙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답니다. 교회에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기간 동안 교회에서 머물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2020년 10월이 되어 다시 모여서 예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교회는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이상한 편지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핸드폰 요금 청구서였습니다. 주소는 교회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여주며, 나는 이 건물의 세입자이니 나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경찰을 불러도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법에 30일 이상 머문 사람은 세입자로 간주되고, 세입자는 보호됩니다. 그들은 이 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세입자행세를 했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내보내는데 너무 많은 돈과 노력을 소비했고, 끝내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내 마음속에 나쁜 생각과 헛된 생각이 들어올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내 마음속에 30일 이상 머물면, 그건 나쁜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염려와 어떤 생각이 있었나요? 그 생각을 주야로 묵상했다면, 이미 여러분 마음의 주인은 그 생각이 되는 겁니다. 빨리 내보내는게 잘 하는 겁니다. 내 마음에 헛된 생각을 비워버리고, 예수로 채우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이 복된 길이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며 다니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셨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열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세우시기 위해서 보내신 메시야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눅9:57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아멘. 

*여기서 ▶“따른다”라는 말은 단순히 따라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ἀκολουθήσω σοι 아코로우떼소 소이(akolouthēsō soi)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따른다 라는 뜻입니다. 잠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따르는 제자가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얼마나 귀한 다짐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지시도 않았는데, 그는 예수님께 자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원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눅9: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아멘. 

*인자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은 고정적인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여기 저기를 떠돌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정말 피곤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원하는 종에게 왜 이렇게 힘빠지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일까요? 그가 엉뚱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화려한 모습을 봤습니다. 능력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모습과 여기 저기에서 환대받는 모습과 끝내 왕으로 올라설 거라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는 완전히 잘못된 미래를 꿈꿨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면, 능력의 삶을 살고, 권력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러 갔다가, 어느 텐트 안에 있는 노숙인에게 먹을 것을 주는데, 텐트 안에 고양이가 있더라구요. 고양이가 노숙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오랜 노숙에 주인도 피곤하고, 고양이도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제 속으로 드는 생각이, 그냥 나가서 살지, 뭐하러 주인과 노숙을 하나? 이 고양이는 주인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가겠다는 마음인 겁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목사 나랑 같이 노숙할래?” 제가 대답을 못 하겠는거에요.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으신데, 내가 좋은 자리, 성공의 자리만 바라고 예수를 따르고 있었던건 아닌가요? 

*예수를 따르는 삶은 그런 삶이 아닙니다. 기쁘나 슬프나, 배부르나 배고프나, 성공하나 실패하나 주님과 동행하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하라.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께 효도하기는 틀렸구나. 주님의 일에만 힘을 써야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부모님 사시는 옆동네에 부목사로 가게 되었고, 평소보다 더 자주 부모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왜 저는 이런 잘못된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가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일 중요하게 섬기고, 그리고 가족과 다른 이를 그 다음으로 섬기고, 나를 가장 나중에 섬기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이것을 앞글자만 따서 ▶J(Jesus) First, O(Others) Second, Y(Yourself) Last. 라고 합니다. 이 제자도로 사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넘칠 줄을 믿습니다. 

▶눅9:59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셨습니다. 

▶눅9:6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아멘.

*아니 아버지 장례식도 참석하지 말라는 게 말이나 될 일입니까? 분명히 영어로 보면, 이 사람은 남자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그게 말이 될 일입니까?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장례식을 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건 좀 억지가 아닌가요?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 말씀은 제자로 부르신 겁니다. 인류역사상 딱 12명을 부르신 제자로의 부르심입니다. 어떤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이 부르심에는 아멘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에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좀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 남자는 길에서 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는 예수님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그 중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장례식을 해야 하는 사람이 왜 길에서 한가롭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일까요?

*이 사람의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늙으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가기에, 아버지 돌아가시면 예수를 따르겠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사실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버지 돌아가시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핑계쟁이 남자의 속마음을 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우리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예수 앞에 나오세요. 솔직하게 주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제가 중학교때부터 전도하고 싶은 친구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전도하면 항상 핑계가 똑같아요. “어머니가 독실한 불자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교회 나가겠다.” 그 어머니 지금도 살아계세요. 이 친구는 어머니때문에 예수를 안 믿는 걸까요? 어머니를 핑계로 삼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부르심은 지금 입니다. 이걸 미루지 마세요. 지금은 회사다니느라고 바빠서 예수님을 못 따릅니다. 지금은 애들 키우느라고 바빠서 교회 봉사를 못 합니다. 제가 은퇴하고 나면 시간 많이 남으니까, 그때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는 분들을 저는 별로 못 봤습니다. 다 핑계더라구요. 

▶*“다음에”와 “내년에”라는 핑계를 대지 마세요. 올해 성경을 읽겠다고 다짐하고서, 도중에 포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을 먹을까요? “올해는 틀렸어. 내년부터 다시 시작하자.” 신앙생활이 짐멤버쉽입니까? 1월에 마음먹고, 2월에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합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지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오늘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오늘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오늘 말씀보기를 원하십니다. 내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에 우리를 부르시면 어떻게 하실거에요?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세요.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rself Last
이 우선순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의 기쁨을 가득이 부어주실 줄을 믿습니다. 

▶3/3 시선을 바꾸면 결과가 바뀐다. 

*제가 다녔던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학생 두명이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 두 학생은 옛날 군대생각이 났습니다. 둘이서 술을 마셨습니다. 신학교 기숙사에 돌아와야 하는데, 술냄새는 없애야되겠다 생각해서,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한 학생이 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옛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눅9:61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인사는 하고 오겠다는 겁니다. 집에 이야기도 안 하고 갑자기 사라지면 가족들이 걱정할 거 아닙니까? 이건 어쩌면 당연한 요청입니다. 

▶눅9:62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안 된다는 겁니다. 집에 가서 작별인사하는게 뭐가 나쁜가요? 

*작별인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를 따른다고 해서 가족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도 자기 장모가 아플 때, 예수님을 모시고 가서 장모님을 치료했습니다. 작별인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마음보다는, 가족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더 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가족에 대한 걱정과 염려만 가득하다면, 그가 제대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합니다. ▶J(Jesus) First, O(Others) Second, Y(Yourself) Last. 이 남자는 이 순서를 바꿔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순서를 자주 바꿉니다. Me first, Others Second, Jesus Last. 이러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내 맘대로 사는 세상은 내가 만든 지옥입니다. 같이 사는 가족들도 괴롭습니다. 아버지 중심의 가정, 어머니 중심의 가정, 자식 중심의 가정. 모두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아내와 남편에게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자식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어떻게 함부로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예수를 향하게 하면, 다른 것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예수를 마음속에 채우세요. 

▶*쟁기를 손에 들고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될까요? 제대로 밭을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는가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사시나요? 우리가 보는 쪽으로 우리는 가게 되어 있습니다. 

▶*1974년 닉슨대통령이 자신의 정적들을 몰래 도청하다가 걸렸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이죠. 찰스 콜슨은 닉슨대통령의 오른팔이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면 더 큰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시선은 권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더 커졌고, 그는 책임을 지고 ▶7개월간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그에게 누군가 책을 한권 전해줬습니다. Mere Christianity (C. S. Lewis)였습니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시선이 잘못되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봐야 할 눈으로 권력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자신과 같은 죄수들을 위해서 평생 살게 됩니다. Prison Fellowship 설립하고, 평생 죄수들에게 예수를 전하며 살았습니다. 
▶“권력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의 시선이 바뀌니, 그의 인생도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주간 동안 무엇을 바라보며 사셨나요? 돈만 바라보며 사셨습니까? 자식만 바라보며 사셨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바라보고 사셨습니까? 
우리는 예수믿는 사람들입니다. 쟁기를 손에 쥐고, 뒤돌아보며 살았던 겁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는가? 예수님이 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쟁기를 손에 쥐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죄인들을 주님의 제자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주님을 따르게 해주시옵소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주님을 따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합니다. 예수님을 먼저 섬기고, 가족과 이웃을 섬기고, 마지막에 나를 돌보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종종 쟁기를 손에 쥐고 뒤돌아보며 삽니다. 쟁기를 손에 쥐고 주님만 바라보며 따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21 Apr 2026 19:28: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15]엎드려야 산다-은혜금요-민14:5-260417]]></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4]]></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17-260417.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

 

</div>
▶ 민14: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아멘.

*모세는 원래 기도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도보다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처절하게 실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모세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엎드려야 산다.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아으로 보냈고, 10명의 정탐꾼은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통곡을 했고, 사깃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다시 이집트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모세 말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제 맞아죽게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민14:5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아멘.

*모세와 아론은 회중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왜 엎드렸을까요? 백성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위기의 상황에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엎드린 것입니다. 엎드려야 삽니다.

*군대갔더니, 박박 기는 연습을 시킵니다. 맨날 땅바닥에 붙어서 기고, 구릅니다. 땅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엎드려야 살기 때문입니다. 일어서면 총맞아 죽습니다. 엎드리면 살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백성들을 보면 안 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엎드려야 삽니다.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그 상황 속에서 엎드리세요. 엎드리면 삽니다. 사람의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기도해야 받을 수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을 설득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광야생활 2년 째입니다. 이 말을 믿겠습니까?

민14:10 그러나 온 회중은 그들을 돌로 쳐죽이려고 하였다. 그 때에 주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다. 아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기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냥 다 죽이고 새로 시작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게 차리 나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때 모세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작합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내가 있어서,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화가 나셔서 심판하시는 것 같고, 모세는 화가 나신 하나님을 진정시키는 것 같습니다.

민14:16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능력이 없어서, 그들을 광야에서 죽였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아멘.

*오히려 모세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을 다 죽이시면,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도 돌볼 능력이 없어서 다 죽었다. 이런 소문 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옳습니다. 모세를 중심으로 새 백성을 시작하시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홍수를 통해서 이미 실행하신 방법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백성을 살리려고 기도합니다. 그게 더 옳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게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를 안 해도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나를 빼고 돌아갈 겁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 안해도 누군가는 복받고 잘 살겁니다. 기도하면 그 복이 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기도의 능력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매달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라.

*어떤 기도가 능력이 있는 기도일까요?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잘 응답해주십니다. 그들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민14:17 그러니 이제 주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바랍니다. 아멘.

*모세의 이 한 마디에 하나님께서 계획을 바꾸십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 조상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약속을 기억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계획을 바꾸십니다.

민14: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말대로 용서하겠다. 아멘.

*이 능력있는 기도의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은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 둘은 같은거에요. 같이 해야 능력이 갑절로 늘어납니다.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내것으로 적어서 기억해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민14:28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아멘.

*정말 두려운 말씀이지만, 정말 능력의 말씀입니다. 불평한 백성들은 그 불평이 그대로 실현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한 말을 내가 듣고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입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더러운 말, 불평하는 말, 원망하는 말을 버리고,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해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께 엎드리며,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옵소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처럼 중보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불평을 기도로 바꿔서 하나님께 드리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21 Apr 2026 19:21: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기복신앙이란 무엇인가?]]></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3]]></link>
			<description><![CDATA[기복신앙이란 복을 기대하는, 즉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복(福)을 바라고 구하는(祈) 신앙 행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복’이란 재물, 건강, 장수, 자손의 번성, 내세의 보상까지 포함하는 인간적인 바람 전반을 의미합니다. ‘기복’이라는 말이 흔히 오르내림을 뜻하기도 하지만, 신앙의 맥락에서는 ‘복을 비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사실 인간 안에는 복을 바라는 마음이 본능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화나 고통을 선택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조상들 또한 자연과 삶의 여러 영역에 신적 존재가 있다고 믿으며 정성을 다해 복을 구했습니다. 산에는 산신이, 바다에는 용왕이 있다고 여기며, 정성을 다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간절히 복을 원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복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복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먹을 양식이 있는 것, 가족과 함께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분명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는 것은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며, 더 큰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복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기복신앙이 잘못되는 지점은 하나님을 ‘복을 주는 수단’으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번영신학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반드시 물질적, 육체적 성공이 따라온다고 믿고,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이들이 고난과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음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 깊이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적인 부를 누리며 사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금 낼 돈조차 없어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동전으로 세금을 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통과 성공만을 복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복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형편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이 복은 상황에 따라 사라지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원한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구하되, 그 중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물질이 없어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충분하다는 고백, 형편이 어려워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기쁨이라는 믿음—그것이 성경적 신앙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더 깊은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복을 넘어, 보이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복을 붙들게 합니다.

주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 그 길이야말로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복입니다. 이 복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참된 평안과 기쁨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at, 18 Apr 2026 11:40:5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차 빼라구! 어라 사람이 없네.]]></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2]]></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04/69dde1a52495e4096499.jpg" alt="" />

주차장에서 나오는데, 떡하니 주차장 입구를 막고 있는 차가 있다. 차를 빼달라고 얘기해도 소용이 없네.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량임.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04/69dde1a529efa6510433.jpg" alt="" />

새벽에 영업뛰는 택시는 자율주행 택시밖에 없는 것 같다. 주인이 시켰으니 돈 벌러 나가야지.
3차선 도로를 3대가 줄을 맞춰서 달린다. 규정속도 30마일을 맞춰서 3대가 한 줄로 달리면 뒷 차는 어떻게 추월하라고?]]></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22:44: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87"><![CDATA[usa]]></category>
		</item>
				<item>
			<title><![CDATA[Eataly에 다녀왔습니다.(4/7)]]></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1]]></link>
			<description><![CDATA[진짜 이태리는 아니구요. 산호세에 있는 이태리식당에 다녀왔습니다.
언제 이태리를 가보려나?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4/69dde3804138e3309897.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22:40: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예수만 보이더라-은혜주일-눅9:36-260412]]></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40]]></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12-260412.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CsUOGGNvWxY?si=xxYSW85DnzvcCEvM&amp;start=1354"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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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때 산기도를 다녔습니다. 형과 누나들을 따라서 청계산기도원에 금요일 밤에 올라가서, 산에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제일 어렸기때문에 저는 졸기도 많이 했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리고 산에서 내려오면, 정말 피곤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기도만 했을 뿐입니다. 응답이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기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기뻤습니다. 밤새 기도를 하고, 토요일에 학교를 가면 그냥 졸았습니다.

*기도하러가서 제일 행복한 시간은 기도 후에 기쁨으로 내려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기도의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겠습니다.

1. 기도해야 변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장소에 세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이해못할 말씀을 제자들만 모아서 알려주셨고, 제자들이 이해못할 일들을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님의 비밀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눅9: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아멘.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시는데, 얼굴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희고 빛이 났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변화산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왜 갑자기 예수님의 모습이 변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했기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뒷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서 백성들이 모세를 쳐다볼 수도 없었고, 끝내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들은 변화가 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면, 내가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이유도, 하나님을 가까이 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우리는 변화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해야 변합니다. 기도를 규칙적으로 오래 해야 변화됩니다. 심리학에서 노출 효과 (Mere Exposure Effect)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반복해서 가까이 할 수록 닮게 된다는 겁니다.

*가족끼리는 닮습니다. 부부간에도 닮습니다. 아니라고 부정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가족들은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목소리나 말투도 정말 비슷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출효과때문에 그렇습니다. 몇 십년을 같이 살고, 합숙훈련을 하는데 어떻게 안 닮습니다. 당연히 서로 닮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셨기에. 12제자들과 합숙훈련을 하셨습니다. 3년 동안 같이 자고, 같이 길을 걷고, 같이 먹고 마시면서 훈련하셨습니다. 예수를 가까이 하면 우리는 분명히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그것을 우리는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닮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닮습니다. 내가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지루합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누가 듣는 지도 모르는 말을 하며 앉아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답답합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하나님께서 한 마디 해주시면 좋겠는데, 항상 나만 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기도는 고통스럽습니다. 같은 자세로 계속 버티고 앉아 있는 것도 힘듭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다리에 쥐가 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야 사람이 변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뎌내야 사람이 변합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를 믿어도 왜 사람이 안 바뀔까요? 이 기도의 시간이 없기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니키 크루즈는 1938년 생이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왔습니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고, 브루클린 동네 깡패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깡패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깡패가 되었고, 마우마우스라는 폭력조직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는 잔인했고, 경찰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1958년 그가 20살이었을 때, 데이비드 윌커슨목사님이 브루클린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니키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했지만, 니키는 목사님을 때리고, “한 번만 더 나에게 전도하면 너를 천개의 조각으로 잘라서 죽여버리겠다.”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천개의 조각으로 잘라 죽여도, 그 조각 하나 하나가 여전히 예수의 사랑을 증거할 것이다.”
니키는 이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경찰서를 찾아가서 자신의 무기와 총을 반납했고, 더이상 갱으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니키는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고, 평생동안 갱들을 전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늦지 않았어요.”
깡패를 가까이 했더니, 깡패가 되었고, 예수를 가까이 했더니, 목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신 후 변화되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변합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세요. 금요기도회에 참석하세요. 기도를 통해서 예수를 가까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영광의 자리.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기한 경험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경험을 할 때도 있고, 꿈 속에서 환상을 보는 분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경험으로 자신의 신앙의 방향도 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눅9: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아멘.

*예수님말고 두 사람이 더 나왔는데.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이들이 갑자기 나온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제자들이 어떻게 처음본 모세와 엘리야를 알아봤을까요? 아마도 제자들은 몰랐을 거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소개해주셨을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성경의 대표입니다. 모세는 모세오경을 쓰신 분이시고, 엘리야는 구약 예언자의 대표가 되는 분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두개로 구분해서 봅니다. 율법과 선지자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 전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다는 것은 구약성경 전체를 만났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장면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이 장면은 너무나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눅9:33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아멘.

*이 장면을 보고 감동한 베드로는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이 산에 텐트를 세개 만들어서, 예수님, 모세, 엘리야를 모시고 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보다도, 모세와 엘리야가 더 신기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엄청나게 몰려들 것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의 신기한 경험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는 겁니다. 영광스러운 순간에 영광스러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성경보다도 자신의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경험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은 기도로 귀신을 많이 쫓아내신 능력있는 목사님입니다. 이분은 귀신과 대화를 합니다. 귀신들이 자신이 어떻게 귀신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준답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만난 모든 귀신들이 그렇게 이야기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귀신에게 속은 겁니다. 그래도 그 목사님은 성경이 틀렸고, 자기 경험이 맞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투기조종사들은 극한의 기동을 합니다. 한번은 바다에서 비행하던 전투기 한대가 추락을 했습니다.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조종사가 스스로 조종간을 바다로 향해서 추락했다는 것입니다. 전투기는 배면비행을 하고 있었고, 계기판은 비행기가 거꾸로 되어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조종사는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서, 비행하다가 추락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자리에 머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변화산을 떠나서 세상을 향하셨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머물려고 하지 마세요. 은혜를 받았으면,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섬김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혜받고 가정에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채우세요.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세요.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은혜를 나누세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세요. 은혜의 자리에 머물지 마세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이번 한 주간 누군가와 같이 나누세요. 받은 은혜를 나누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만 보이더라.

*왜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의 기적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을까요? 제자들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바른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된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의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눅9: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아멘.

*놀라운 기적이 끝이 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결론은 바로 이겁니다. 신기한 경험은 금새 지나고 사라집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하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로 목사님이 오셨는데, 젊잖은 분이 오셨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이 뜨겁지 않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뜨겁게 모여서 목사님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끼리 뜨겁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가서 더 뜨거운 교회를 찾아서 헤맸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찾는 뜨거움은 무엇일까요? 신앙은 분명히 뜨거워야 합니다. 제대로 모이고, 재대로 기도하고, 제대로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감정과 경험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만 보는 것입니다.” 내 시선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정하고, 예수님께서 내 삶의 인도자가 되고,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아멘.

*예수님께 집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일주일에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예수를 바라보고, 삶흔들릴 때마다 예수를 바라보며 주님께 돌아오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은 흔들립니다. 일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도 있지만, 마음에 폭풍이 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안 흐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흔들릴 때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께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매일 예수를 바라볼 수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기 전에 1분 정도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하세요. 매일 아침에 첫 번째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겁니다.
밤에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1분 정도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하세요. 오늘 하루도 도와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하세요. 후회하며 잠 들지 마세요.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마지막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매일 하루에 한 구절의 성경은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세요. 사업장에 들어가서 바쁘지만 제일 먼저 성경 한구절을 읽으세요. 출근해서 바쁘지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고 시작하세요. 그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기도를 생활화하세요. 제대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형식을 제대로 갖춰서 기도해야 합니다. 반대로 틈틈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계속 말을 거시고, 예수님께 말을 거셔야 합니다. 정해진 장소가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도 없습니다. 예수님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매일 예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헤르망은 1614년 프랑스의 로렌 지방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서 군대에 들어갔고, 보병으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스웨덴군대와 전투 중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고, 평생 다리를 절며 살게 됩니다.
더 이상 군인으로 살 수 없었던 그는 남의 집에 하인으로 취직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잘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이 50살이 넘었고, 그는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었기에, 가장 천한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했고, 수도원에서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니콜라스는 요리를 너무 싫어했지만,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브라더 로렌스라고 불렀습니다.
니콜라스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혼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니콜라스가 미친 줄 알았습니다. 조용히 들어보니, 니콜라스는 일을 하면서도 주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 노래를 부르며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니콜라스의 얼굴에서 평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예수님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누리는 평화의 비결을 알기 위해서,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대단한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경책 대신에 접시와 프라이팬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삶 속에서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여러분들은 한주간동안 무엇을 바라보며 사셨습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닮게 됩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브라더 로렌스처럼 사세요. 집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면서 예수님을 부르세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의지하세요. 운전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 예수님을 부르세요. 흔들리는 인생의 바다에서,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변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만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믿습니다. 더 많이 기도하게 하시고, 더 많이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믿으며 삽니다. 내 경험보다 크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항상 예수님만 바라보게 해주시옵소서. 브라더 로렌스처럼 내 삶 속에서 항상 주님을 부르고 주님과 동행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21:29: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14]믿음은 세상을 보는 눈-은혜금요-민13:23-260410]]></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39]]></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10-1-260410.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

 

</div>
▶ *민13: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아멘.

*2000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관광버스에 이 그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포도송이를 막대에 끼워서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도 바른 방향을 향해서 나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먼저 순종하면 믿을 수 있다.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을 한 지, 2년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습니다. 이곳에는 오아시스가 있어서 백성들이 머물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민13:2 "너는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여라. 각 조상의 지파 가운데서 지도자를 한 사람씩 보내어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가나안 땅 갈겁니다. 왜 정탐꾼을 보내셨을까요? 정탐꾼들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정탐꾼들이 다녀와서 투표한 결과를 가지고 가나안 정복을 정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정복을 명령하셨습니다.

*정탐꾼들의 구성을 보면, 이 정탐꾼의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날쎈 젊은 군인들을 정탐꾼으로 보냈다면, 가나안의 군사력을 점검하려는 것일 겁니다. 이와 반대로 정탐꾼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들의 역할은 가나안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파악하고, 힘들지만 올라가서 싸우자! 라고 자기 지파를 설득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탐꾼들은 가나안 정복을 반대했고, 이로 인해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며 반대한 사람들은 모두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거 아시면서 왜 정탐꾼을 보내셨을까요? 그냥 정복하라고 시키시면 안 되나요?

*하나님께서는 무작정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무엇을 헌신해야 하는 지 알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우리에게 일시키시지 않습니다. 자원하고,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보다 중요하다.

*12지파에서 12명의 정탐꾼들이 차출되었고, 그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샅샅이 살펴봤습니다. 그들의 눈에 가나안 땅은 너무나 좋은 곳이었습니다. 2년 동안 사막을 돌아다닌 피난민들에게 가나안 땅은 천국같은 곳이었습니다.

민13:27 그들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에게 가라고 하신 그 땅에, 우리가 갔었습니다. 그 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땅에서 난 과일입니다. 아멘.

*가나안땅은 소와 양을 키울 수 있는 곳이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젖은 목축업을 말하고, 꿀은 농업을 말합니다. 이 두가지를 할 수 있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여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미 거인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성은 강력했습니다.
물론 이 지역은 워낙 전쟁이 많은 곳이기때문에 강력한 군대와 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정확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의견을 보고했습니다. 다른 정탐꾼들의 보고가 정확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면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은 10:2입니다. 부정이 긍정을 이겼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이게 공평한 겁니다. 그런데 신앙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10명이 반대했어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겁니다.

*우리는 공평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곤 합니다. 결과는 실패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말만 하지 내 일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소리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소리를 경청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믿음은 해석이다.

*유대인들은 키가 별로 크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서 가나안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블레셋과 골리앗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블레셋은 그리스에서 온 해양 민족입니다. 블레셋은 유럽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키가 큽니다.

민13:33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아멘.

*이런 사람들을 고대인들은 네피림 자손, 혹은 아낙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들과 전쟁을 해서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로 봤습니다. 키로 보면 거인 옆에 선 유대인들은 메뚜기 같았을 겁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민14:9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아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사람들을 자신들의 밥 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이렇게 견해가 다를까요? 신앙은 해석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내가 보는 것들을 해석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넣어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을 빼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을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넣고 해석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해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이리 저리 쓸려가지 마세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을 살지 마세요. 바람에 나는 겨처럼 살면 외롭지는 않습니다. 같이 쓸려 다니는 겨들이 많으니까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십시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그냥 그 자리를 지키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세요.

*믿음은 해석입니다. 여러분들이 당하는 상황 속에서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에 힘쓰고, 말씀대로 살기에 애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의 믿음없음을 용서해주옵소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휘둘리고, 보이는 것만 찾아서 의지합니다.
10명의 믿음없는 정탐꾼을 따르지 말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게 해 주옵소서.
믿음의 눈을 열어서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21:24: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니키 크루즈의 회심]]></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38]]></link>
			<description><![CDATA[<p>우리가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합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복해서 보고, 듣고,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만들고, 성품을 빚어냅니다.</p>
<p><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니키 크루즈</span></span>는 1938년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푸에르토리코</span></spa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결국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브루클린</span></span> 거리의 깡패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폭력과 분노가 가득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 영향을 받아 폭력 조직 ‘마우마우스’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잔인함과 두려움으로 이름을 떨치던 그에게 사람들은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p>
<p>그러던 1958년, 스무 살이던 그는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데이비드 윌커슨</span></span> 목사를 만나게 됩니다. 목사님은 거리에서 그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니키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폭력으로 응답하며 위협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남긴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습니다.</p>
<p>“네가 나를 천 개의 조각으로 잘라 죽여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여전히 예수의 사랑을 증거할 것이다.”</p>
<p>이 사랑의 선언 앞에서 니키 크루즈는 무너졌습니다. 그는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의 무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신학교에 진학하여 목회자가 되었고, 평생 동안 갱들과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도 늦지 않았습니다.”</p>
<p>이 이야기는 단순한 한 사람의 극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깡패를 가까이 했을 때 그는 깡패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했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p>
<p>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어떤 생각을 반복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방향이 되고, 결국 우리의 모습이 됩니다.</p>
<p>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가까이함은 곧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p>
<p>그러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를 가까이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며, 결국 삶이 변하게 됩니다.</p>
<p>변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를 가까이 하는 선택이, 우리의 내일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입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19:44: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브라더 로렌스의 영성]]></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37]]></link>
			<description><![CDATA[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특별한 시간’에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벽기도, 주일예배, 혹은 조용한 묵상의 시간 속에서만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바쁜 일상과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깊은 도전을 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브라더 로렌스라고 부르는 니콜라스 헤르망입니다.

니콜라스 헤르망은 1614년 프랑스 로렌 지방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군인이 되었고, 보병으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 군대와의 전투 중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고, 그 이후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더 이상 군인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그는 남의 집 하인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고 실패처럼 보이는 삶이 이어졌고, 그의 나이 50이 넘어서야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었기에, 자신에게 가장 낮은 일을 맡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그에게 주방 일을 맡겼습니다. 요리를 몹시 싫어했던 그는 그 일을 기쁨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브라더 로렌스’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삶은 특별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주방에서 일하며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 식사를 준비할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했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혼자 중얼거리듯 하나님께 말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니, 그는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듯 기도했고, 바쁜 주방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변화는 그의 얼굴에서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설명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표정 속에서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은 평화를 경험했습니다.

결국 그의 삶의 비결을 알고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신학자들과 성직자들까지도 그를 만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단한 신학 이론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경책 대신 접시와 프라이팬을 들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비밀은 단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기도하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주방에도 계시고,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도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그는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특별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와 계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루 종일 무릎 꿇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과 동행하라는 초청입니다.

브라더 로렌스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신앙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는 사람이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거창한 신앙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지속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긴 기도보다 자주 드리는 짧은 기도가, 특별한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 속의 하나님 의식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주님, 지금도 저와 함께 계시지요.”

그 한 문장이 우리의 삶을 바꾸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이 아니라,
부엌에서, 직장에서, 길 위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순간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19:36:0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은혜부활주일-갈2:20-260405]]></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31]]></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05-260405.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nDy1w2Qi68g?si=MQ2i5jkmYMpdM89R&amp;start=1379"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It's a Kodak moment"
“영원히 남기고 싶은 소중한 순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찍으려면 필림이 필요했습니다. 그중에 코닥필림이 제일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면 코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엉뚱한 뜻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몰락하는 순간" 이라는 뜻입니다. 이 엉뚱한 뜻은 왜 생긴 것일까요?

▶*세계 최초로 1975년에 디지탈카메라를 만든 회사가 코닥이었습니다. 코닥이 이 제품을 만들어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앞으로 미래는 디지탈카메라시대가 올 것 같은데, 사람들이 디지탈카메라를 쓰면 필림도 필요없고, 인화도 안 하니, 회사 수익이 줄어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엉뚱한 결정을 내립니다. 필림은 살리고, 디지탈카메라는 죽인다. 세상은 디지탈카메라세상으로 바뀌어 버렸고, 세계 최고의 필림회사인 코닥은 잘못된 결정으로 쇠퇴한 회사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우리는 예수때문에 살고, 예수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죽여야 할까요? 죽일 것을 살리면 내가 망합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살려야 할 것과 내가 죽여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 성질, 고집, 옛사람을 죽이라.

*성경에 나오는 인사는 “샬롬”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샬롬으로 인사해주십시오. 위독한 환자 심방을 갔습니다. “샬롬”이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권사님이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살 놈은 살겠지요?” 우리에게는 살려야 할 것과 죽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가 죽여야 할 습관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3가지를 오늘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1)성질을 죽이라.
*성격은 타고 나는 걸까요? 성격에는 타고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질이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있습니다. 이건 가르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겁니다. 제 큰 아들은 성격이 까탈스러웠습니다. 밤에 잘 안 자고, 편식을 했습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었고,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기질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잘 자고, 아무거나 잘 먹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질은 타고 나는 것입니다.

*기질과 다른 성격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격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 기질이라는 바탕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기는 하지만, 성격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 못된 부모 밑에서 착한 자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착한 부모 밑에서 못된 자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질은 타고 나는 거지만, 성격은 내가 기질을 가지고 만드는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학교 생활기록부에 제 성격을 선생님이 기록해놓으셨는데, 항상 똑같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과묵” 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고 살았는데, 지금 이렇게 목사로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기질은 바뀔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18살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기질이 아니라 성격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은 분명히 예수 안에서 변할 수 있습니다. 못된 성질도 예수 안에서 분명히 죽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제일 성격이 못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요한입니다. 어느 날 요한이 동네에 전도를 나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는 겁니다. 화가 난 요한은 예수님께 돌아와서, 예수 안 믿는 저 마을을 하늘의 불로 다 태워 죽이는 것이 어떻겠나고 건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요한은 성질이 못됬다는 말입니다.

*그랬던 요한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자신에게 죽여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성질이었습니다. ▶“성질을 죽여야 예수가 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성질을 죽이면 억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성질을 죽이세요. 그러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시고, 잘했다 칭찬하십니다. 더 큰 상으로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못된 성질을 죽이고, 사랑의 사도가 되어, 평생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못된 성질이 있습니다. 그 성질을 살리면 내가 죽고, 우리 집이 죽습니다. 성질을 죽이고 예수를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고집을 죽이라.
*사람들은 누구나 고집이 있습니다. 고집 속에서 살면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맘이 편합니다. 새로운 것을 도전할 필요도 없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집을 부립니다.

*고집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집 안에 고집쟁이가 한 명 있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집쟁이에게 맞춰주지 않으면 집안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고집이 있으면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걸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내 고집이 있으면,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고집을 죽여야 예수가 삽니다.”

*고집대로 살아서 성공하셨습니까? 내 고집은 가끔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고집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아멘.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내가 미운 사람을 못 박을 십자가가 아닙니다. 내 옛사람과 내 고집과 내 못된 성질을 못박아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할 십자가입니다. 매일 매일 결심하세요.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다.

*내 고집이 살면 예수가 죽습니다. 우리가 고집부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고집스럽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고집스럽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고집스럽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주장에 고집을 부리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고집을 부립니다. 자기 말이 옳다고 하고, 도마처럼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 내가 무너진다는 교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고집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내 고집을 죽이고 예수를 살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옛사람을 죽이라.

*1900년 경, 평양 장사꾼들이 아침에 가게를 열면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오늘은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김익두는 평양에서 제일 못된 깡패였습니다. 공부를 해서 관리가 되려고 했지만, 실패한 후, 그는 못된 깡패가 되어 선량한 백성들을 패고 다녔습니다.
그랬던 그가 윌리엄 스왈른 선교사님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당신이 아는 깡패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부고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김익두가 예수믿고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지금까지 김익두에게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김익두에게 똥물을 부어버렸습니다. 김익두는 이런 시험도 참아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너희들이 받는구나.” 라고 하며 참았다고 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멘.

*사도바울은 내 속에 ▶옛사람과 새사람이 싸우고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옛사람은 내 마음속에 원래부터 있었던 나자신입니다. 내 마음속은 원래 나자신이 지배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새사람이 생깁니다. 내 마음속에 새사람이 들어가서, 옛사람과 싸움을 시작합니다. 옛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차지한 공간을 내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내속에 있는 옛사람이 방해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냐고?

*여러분들도 마음속에 두 존재를 인식하고 계실 겁니다. 오늘 부활절이니까. 교회가야지. 그러면 속에서 다른 생각이 듭니다. 부활절이라고 교회나가면 그거 속보이는 거 아니냐? 여기 오신 분들은 모두 새사람의 소리를 듣고 오신 분들인 줄을 믿습니다.

*옛사람이 강한 사람은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옛사람이 강한 사람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경험이 기준이 되어서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을 죽이세요. 내 마음속에서 내보내세요. 그리고 예수를 따라 사는 새사람을 들여오세요.

*새사람이 되려면,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매일 매일 내가 살아오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는 것을 제일 많이 방해하는 존재가 무엇일까요? ▶“어제의 나”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살려고 하면, 내 속에서 “그건 니가 아니야. 너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의 나와 단절하세요. 미래의 나와 친해지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죽일 것이 3개 있습니다. 내 성질을 죽이고, 내 고집을 죽이고, 옛사람을 죽이고 예수를 따라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예수로 살라.

*내 성질을 죽이고, 내 고집을 죽이고, 옛사람을 죽이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 죽이고 뭘 살려야 하나요? 내 안에 예수님을 살려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알콜 중독이 너무 심해져서, 간경화가 왔고, 살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교회를 다니는게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쁜 점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토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저와 같이 교회 화장실청소를 했습니다. 교회화장실은 항상 엉망이었습니다. 동네 술취한 사람들이 들와서 더럽게 사용하기때문에 정말 더러웠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저와 같이 화장실청소를 했습니다. “아버지께 왜 남들은 안 하는 화장실청소를 하시냐고?” 물어보니,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더러운 변기들을 볼 때마다 내 더러운 죄들이 생각이나. 닦고 싶어” 아버지는 자신의 죄를 씻는 마음으로 청소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자신의 성질과 고집과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예수로 살겠다고 다짐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예수로 산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예수로 산다는 말은 예수님을 따라하고, 예수님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그대로 배워서, 내 삶 속에서 흉내내고, 따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계획을 넘어서는 놀라운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후회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합니다. 내가 당한대로 되갚아 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게 맞는 걸까요? 서로 되갚아주기 시작하면, 평화는 올 수가 없습니다. 나도 피해자가 되고, 다른 사람도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5: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너의 오른쪽 뺨을 치거든, 가서 패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왼쪽 뺨도 돌려대라고 하셨습니다. 피해는 나에게서 끝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 억울함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고, 그 억울함 이상의 복으로 채워주실 줄을 믿습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생각이 납니다. 잠잘 때도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정말 미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 사람을 보고 싶지도 않아져서, 그 사람이 있는 곳은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공동체에 그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공동체에 못 갑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마5: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미운 사람이 있으면, 불쌍히 여기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미움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움이라는 감정때문에 스스로 병들고, 다른 이들과 관계가 깨집니다.

*예수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흉내내고, 예수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해서 잘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나 자신을 죽이고, 예수로 사세요. 내 성질, 내 고집, 내 옛사람을 죽이고, 매일 매일 예수를 닮아가세요.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흉내내세요.

*예수를 따라서 살면 우리의 삶이 형통하게 됩니다. 예수를 따라서 살면 당장은 손해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시고, 더 큰 복으로 채워주실 줄을 믿습니다.
*항상 머리속에 이 질문을 품고 사세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를 따르는 것은 보장된 길입니다. 예수를 따라서 살다가 망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나를 죽이고 예수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죽여야 할 것들과 살려야 할 것들을 알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나의 못된 성질을 죽이게 해주옵소서. 욱하는 성격, 다혈질, 비난하고 질투하는 못된 성질을 죽이고 예수로 살게 해 주옵소서.
나의 고집을 죽이게 해주옵소서. 나만 옳다고 착각하고, 다른 이들을 누르며 괴롭히는 못된 고집을 죽이고 예수로 살게 해 주옵소서.
나의 옛사람을 죽이게 해주옵소서. 항상 내 방식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 편한 대로 살려고 하는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예수로 살게 해 주옵소서.
부활하여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6 Apr 2026 20:04:5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난주간4]예수님의 희생-은혜성금요일-마15:39-260403]]></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30]]></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03-260403.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본문 (Scripture): 마가복음 Mark 15:25-39
제목 (Title): 예수님의 희생 / Jesus' Sacrifice

막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아멘. 

*저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 살기는 했지만, 봉천동에 있는 무허가주택에서 고등학교때까지 살았습니다. 집에 전화가 없어서, 비상연락망에 앞집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고, 공부하러 미국까지 온 비결은 부모님의 희생덕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국졸, 어머니는 국민학교 중퇴셨습니다. 본인들이 공부한 것이 한이 되어서 아들은 공부시키려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아침에 일터로 나가서 밤 9시가 되면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그토록 희생하셨던 이유는 자식들 고생 안 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희생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삽니다.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이 희생하게 됩니다. 부모가 희생하지 않으면, 자식이 희생됩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없다면, 우리는 그냥 죄 속에서 살다가 죄 속에서 죽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군대에 감옥이 있습니다. 제가 거기 간수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군대 감옥은 좀 특수합니다. 철창 안에 죄수가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간판이 있습니다. 간판은 천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궁금해서 그 천을 열면, 죄수는 뻘떡 일어나서, 자신의 이름, 군번, 죄명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죄짓고 살면 정말 괴롭습니다. 

막15:26 그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멘. 

*예수님도 죄패가 있었습니다. 죄패는 죄명입니다.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게 되는 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치욕스러운 형벌도구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어디 도망도 못가고 살아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잔인한 광경을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구경거리 없던 고대사회에서 이건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죄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왕좌에 오르신 적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종이 되어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반란을 일으키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 죄명이 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하는 방법을 제사로 정해놓으셨습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때문에 반드시 죽습니다. 내가 죽기 싫으면, 나 대신 다른 제물을 희생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그 제물이 나의 죄를 뒤집어 쓰고 대신 죽는 겁니다. 그러면 내 죄는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죄지은 만큼 제물을 드리려면, 세상에 남아나는 동물이 없을 것입니다. 착한 사람은 죄책감으로 열심히 제물을 드리지만, 오히려 죄인들은 뻔뻔함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들은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2/3 사랑하면 희생한다. 

*사랑하면 희생합니다. 희생하고도 억울하지 않고, 기쁩니다. 내 희생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될 수 있다면, 내 희생이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셨냐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제물로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사랑인가요? 여러분들의 자녀를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시킬 수 있나요? 그게 말이 되나요? 그 말도 안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목숨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내시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고 돌아가면서, 수레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대단한 열심이 있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는데 도무지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행8: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멘. 

*아니 도대체 이 양은 왜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잠잠히 희생제물이 되었을까요? 빌립집사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진리였습니다. 

*세상에는 희생의 원칙이 있습니다. 내가 희생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희생당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으면 가장 힘이 없는 자식이 희생당합니다. 

*가족이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식들과 노숙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주로 어머니가 자식들과 노숙을 합니다. 아버지는 어디 갔을까요? 왜 어머니들만 자식들을 살려보려고 저런 희생을 하는 걸까요? 그들의 희생이 없다면 자식들은 어떻게 될까요? 희생하지 않으면 희생 당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썪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나 밀알이 땅 속에서 썩으면, 그 밀알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가 썩어야 할 자리에서 썩어져서, 더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희생하면 행복하다. 

*진짜 사랑하면 희생합니다. 희생하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희생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그것도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작은 아들이 마지막 학기를 공부하러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오지만, 돌아갈 때는 제가 학교까지 태워줍니다. 왕복 3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요즘은 자주 집에 와서 여간 귀찮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간이 행복합니다. 주일 저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들을 데려다 주지만,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면 희생하고, 희생해도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옆에 있는 강도도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희생하셨고, 희생하시고 행복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 수 있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희생덕분에 우리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죽음에서 영생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에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1938년 크리스마스, 29살의 평범한 주식 중개인이었던 윈턴은 친구와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체코 프라하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빨리 체코에 와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당시 체코는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었고,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에 집어 넣고 있었습니다. 윈턴의 친구는 어떻게든 저 아이들은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윈턴은 유대인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었습니다. 게슈타포에게 뇌물을 줬고, 아이들의 서류에서 국적을 바꿨습니다. 기차를 8대의 기차에 669명의 아이들을 태워서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9번째 기차가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기차는 국경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250명의 아이들이 모두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윈턴은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았습니다. 마지막 9번째 기차를 못 구했다는 죄책감이었습니다. 그는 50년 동안 자신의 일을 비밀로 했습니다. 50년 뒤, 그가 했던 일이 세상에 알려졌고, 살아남은 유대인아이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그는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원수같은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께서 흉악한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를 살리셨으니, 우리들도 예수님과 가족들과 교인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게 해주옵소서. 
사랑하면 희생하는 줄을 믿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하시고, 사랑하며 기쁜 마음으로 희생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6 Apr 2026 20:02: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진수생일파티(3/29)]]></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27]]></link>
			<description><![CDATA[진수가 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1학기만 더 마치면 졸업입니다.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6월 13일에 새크라멘토에서 졸업식이 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4/69d01c6a247f22779169.jpg" alt="" />

지난 번 진성이와 같이 왔던 자갈치마켓 안에 있는 포구라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수는 이제 22살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12:03: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난주간3]예수님의 섬김-은혜고난-요13:1~8-260402]]></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26]]></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02-260402.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div>
▶ *본문 (Scripture): 요한복음 John 13:1-8
주제 (Theme): 예수님의 섬김 / Jesus' Servanthood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몇 년 전에 은퇴하신 목사님 부부가 예배에 참석하시고 나서 같이 친교실에서 식사를 하다가, 사모님이 두 가지 특이한 점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어린이들이 많네.
이 교회는 사모가 주방에 안 들어가네.
사모는 어느 교회에서나 주방 담당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잘 설명해드렸습니다. 아내가 아동부 아이들을 돌보고 있기때문에 주일날은 주방에 못 들어갑니다.

*교회는 섬기는 곳입니다. 우리는 왜 섬겨야 할까요? 섬기면서 지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섬김을 통해서, 섬김의 귀한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섬김은 과정이 아니라 본질이다.

*오늘 말씀은 세족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왜 하셨을까요?

요13: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아멘.

*가룟 유다때문에 하셨습니다.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다 아시고 유다의 마음을 바꾸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족식을 하셨습니다. 섬김을 통해서 유다를 변화시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물론 유다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그의 마음에는 이미 사탄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섬김에 문을 열지 않았고,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진리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가장 낮은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목사들은 교인이 100명이 넘어가면 그때부터 태도가 바뀝니다. 목에 힘이 들어가고 섬기려고 하지를 않아요.”
이 분이 오해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이 분이니 그 목사님이나 뭔가 오해를 하셨습니다.

*섬김은 과정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열심히 교인 잘 섬겨서 100명 넘어가면, 이제 난 안 섬긴다. 이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섬김은 은퇴도 없습니다. 섬김은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제자라면 섬김을 통해서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평생 주님을 섬기고, 가족과 교회를 섬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예수님은 항상 섬기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실 때, 가장 크게 반발했던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요13: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아멘.

*베드로는 왜 가장 크게 세족식을 반대했을까요? 베드로의 지위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3년 동안 노숙하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질서를 깨고 계신 것 아닙니까? 에수님이 발닦고 다니시면, 베드로도 그러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가장 심하게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교회의 섬김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몸으로 많이 섬기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교회에서 청소를 시작했을 때, 교인 중에 몇 분이 저에게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왜 청소를 하세요?”
예수님도 하셨으니까요. 그러니 목사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청소를 하다 보니, 어떤 분은 제가 빗자루를 들고 지나가면 휴지를 바닥에 던지는 분도 있었고, 요즘은 제가 청소당번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화나냐구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면 섬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비싼 레스토랑에 가면 서비스가 다릅니다. 손닦는 수건도 따로 가져오고 고기도 구워줍니다. 음식도 비싸지만, 팁도 많이 주고 나와야 합니다. 이게 세상의 성공입니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해서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고 사는 것이 세상의 성공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성공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목회자 세미나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목이 말라서 정수기를 찾아 나갔는데, 어떤 허름한 잠바입은 분이 정수기를 확인하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관리집사님인 줄 알았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었습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정수기 물은 잘 나오는 지 확인하고 다니셨던 것입니다. 옥목사님은 잘 섬기셨습니다. 부목사가 오기 전, 부목사 사택에 직접 가서 수돗물 잘 나오는지? 따뜻한지? 직접 꼭 확인하셨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그분의 섬김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베드로처럼 섬김을 거부하면 안 됩니다. 항상 섬기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늘의 상을 바라며 섬기라.

*왜 항상 나만 섬겨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안 해보신 분들은 안섬기는 분들이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공평과 억울함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평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섬김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을까요?

요13: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잘 섬기셨습니다. 성만찬때도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자르고, 웨이터처럼 섬겨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신 이유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발닦는 담당자가 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도 발닦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섬김을 다시 한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은퇴한 한인 남자들이 모인 곳을 간 적이 있습니다. 은퇴하고 나면 남자는 집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무시를 당한다고 불평했습니다. 무시를 덜 당하려면 은퇴를 늦게 하고, 돈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인가요?

*틀렸습니다. 죽을 때까지 돈 쥐고 있으면 누가 섬겨 준답니까? 이건 서로 섬기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남자들이 집에서 섬기지는 않고, 늘 섬기만 받다가 은퇴하면 찬밥됩니다. 한쪽만 섬기면 억울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집힐 날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섬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며 섬겨야 합니다. 그 섬김을 통해서 교회, 가정, 사회가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때, 우리는 예수 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섬김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주간 매일 같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도와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섬기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예배로 섬기게 하여 주옵시고, 가족과 교인들을 몸으로 섬길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나의 섬김이 억울함으로 느껴질 때, 예수님을 생각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도 섬기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섬김에는 은퇴가 없으니, 죽는 날까지 섬길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11:03:4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난주간2]예수님의 사랑-은혜고난-요18:1~12-260401]]></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25]]></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4-01-26040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div>
▶ *본문 (Scripture): 요한복음 John 18:1-12
제목 (Title): 예수님의 사랑 / Jesus' Love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18: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18: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18: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아멘.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좀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던 장면을 요한은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나하면, 요한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는 현장에 같이 있었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시기 전 마음이 요동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의 순간에 어떻게 하셨을까요?

1/2 기도를 훈련하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밤늦게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옆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일도 아니고, 정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하는 훈련이 부족했습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너무나 바빴기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산에가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과 몸은 기도훈련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요18:2 예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여러 번 모이셨으므로,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이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 오셨고, 제자들과 모임을 갖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습관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습관은 나쁜 점이 있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습관적으로 합니다. 습관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가지면, 그 습관은 나를 성공의 길로 인도합니다. 습관은 쉽게 만들 수도 없고, 쉽게 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예수님께서 든든하게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기도의 훈련입니다. 군대가서 총쏘는 법을 배웠습니다. 총은 그냥 방아쇠를 당기면 나갑니다. 그런데 그 훈련을 몇달 동안 받았습니다. 그래야 사고 안 내고, 그래야 전쟁터에서 총을 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훈련이 신앙을 만듭니다. 기도훈련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신앙인이 됩니다. 교회에서 기도하시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훈련을 하세요. 훈련이 사람을 바꿉니다. 매일 기도훈련으로 우리의 몸을 훈련시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마치시니, 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요18:3 유다는 로마 군대 병정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로마군인들이 왔고,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보이지 않나요? 대제사장이 사두개인입니다. 여기서 제사장들도 사두개인의 무리인 것입니다. 로마군,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힘을 합쳤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방금전까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체포 모습은 어땠을까요? 당당했던 사람들도 체포될 때 무너지는 것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게 되면 서로 살겠다고 거짓말하고, 내 책임은 아니고 부하들의 책임이라고 돌려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당당하셨습니다. 체포하러 온 사람이 “예수가 누구냐?”라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구를 찾아 왔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요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뒤로 물러나서 땅에 쓰러졌다. 아멘.

*여기서 코메디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나사렛 예수라고 밝히시니, 체포하러 온 군인들이 그 대답을 듣고, 뒤로 나가 자빠졌다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왜 뒤로 자빠졌을까요? 가룟 유다가 이미 예수가 누구인지 알려줬습니다. 군인들은 예수의 권세에 눌려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많이 퍼졌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하고, 물위를 걸어가고, 5천명을 먹여살렸다는 소문들이었습니다. 이 소문들을 알고 있었던 군인들은 예수님을 초능력자로 상상하고 단단히 겁을 먹고 있었기때문에 뒤로 나가 자빠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셨습니다. 체포 현장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체포대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칼을 꺼내서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3명의 제자는 모두 체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살리시고 자신만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만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건 뭘까요? 한 때 친하게 지내다가 사이가 멀어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안 보면 멀어지죠. 자주 봐도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의 처지가 바뀌기도 하고, 마음에 오해가 쌓이면서 멀어지는 경우는 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지르든,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덕분에 3 제자가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희생덕분에 우리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 속에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몸과 마음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게 해주옵소서. 쓸모있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우리의 믿음이 약해도,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해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감격하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살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11:01:5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난주간1]예수님의 순종-은혜고난-마26:36~46-260331]]></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24]]></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3-31-26033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본문 (Scripture): 마태복음 Matthew 26:36-46
제목 (Title): 예수님의 순종 / Jesus' Obedience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26: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아멘. 

*우리는 사람의 말에 많이 휘둘립니다. 빈말이라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빈말이라도 나를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고, 별이별 생각을 다하게 됩니다. 
말은 이처럼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사람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잉 되지는 마세요. 사람의 말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1/3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라.

*오늘 말씀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저녁에 최후의 만찬을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폭탄선언을 하셨습니다. 이 중에 예수를 팔 자가 있고, 베드로는 내일 아침이 되기 전에 3번이나 예수를 부인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도대체 예수를 팔 자가 누구냐? 나는 죽어도 예수와 함께 죽을 것이고,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빈말이라도 기분 좋은 말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마음도 흐뭇하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흐뭇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에 우쭐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때문에 기죽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 지 괴로울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마26:36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기도하셨습니다. 평소에 자주 가셨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고, 제자들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흔들릴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리는 배는 닻을 바닥에 내려서 고정합니다. 닻을 내린 배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닻을 내린 배는 그 자리에서 흔들릴 뿐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고정하는 시간입니다. 나를 위해서 고통당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기대하고 기도하라.

*성경에 나온 제일 아름다운 기도가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26:39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지만, 제자들과 같이 기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자세가, 예수님의 간절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함을 기도로 들으십니다. 간절한 마음과 자세로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26:39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그 다음으로는 기도의 내용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다른 길이 있는 지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에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고, 그 길을 가겠다고 하셨지만, 예수님도 죽음의 공포는 두려우셨던 것입니다. 

*기도는 기대입니다. 기대가 없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없는데, 뭐하러 기도하겠습니까? 기대가 있는 사람은 기도가 간절해집니다. 기도가 길어집니다. 기도가 구체적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를 확인해보세요. 간절함이 없다면, 기도에 기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큰 것을 기대하고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주일 전 화요일 저녁에 갑자기 큰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정리해고 발표가 난답니다. 기도 많이 해주세요.” 가정예배시간에 간절히 큰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해고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기도부탁을 하시나요? 가족끼리 기도하고 계신가요? 교회 안에서 같이 기도제목을 나누고 계신가요? 기도의 동역자를 찾고, 기도를 부탁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라. 

마26:39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아멘. 

*기도할 때 내 속에는 두가지 뜻이 싸움을 합니다. 내 뜻과 아버지의 뜻입니다. 내 뜻은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계획한 것입니다. 내 뜻이 최선인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다른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종종 내 뜻과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답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맞습니다. 나에게 가장 바른 길입니다. 기도는 내 뜻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끝이 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당장은 괴롭고 힘든 길이지만, 하나님의 길이 최고의 길이라는 믿음이 있으셨습니다. 

마26:41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아멘.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던 순간.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일이지, 자신들의 일이 아니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종일 고단했습니다. 그들의 몸은 지쳐있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약합니다. 언제 우리 육신이 약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 육신은 우리의 영혼이 훈련시키고 끌고 가야 하는 겁니다. 영혼이 육신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육신은 훈련한 만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와 말씀으로 육신을 훈련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은 사람의 말을 의지하고, 사람의 말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더욱 민감한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바람을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기도로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받게 해 주옵소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시옵소서. 당장 힘들어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 주옵소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10:59:0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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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예수님의 겸손-은혜종려주일-눅19:38-26032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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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3-29-260329.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7Ag9jJ6Kc5Q?si=WkjC8Xc7FEZ-RJg0&amp;start=1418"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심방을 갔더니 음식을 놓을 자리가 없도록 차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신 집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이건 겸손일까요? 교만과 과시일까요? 정말 헷갈립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시험을 망쳤다고 합니다. 이건 겸손일까요? 엄살일까요?
많이 배운 사람이 겸손할까요? 많이 배운 사람이 겸손한 척을 더 잘 할까요? 많이 배운 사람은 겸손한 척을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가짜 겸손을 배우지 마세요.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겸손을 배우고, 따라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 예수님처럼 겸손하라.

▶*한국말로 “겸손”은 한자입니다. “겸” 말을 삼가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손” 뒤로 물러나 양보한다. 즉,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겸손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Humility라고 합니다. 이 말은 흙과 땅이라는 뜻을 가진 hum에서 온 말입니다. 땅처럼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땅을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밟혀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겸손에는 낮아진다는 뜻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겸손은 다릅니다.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겸손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눅19:29 예수께서 올리브 산이라 불리는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아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의 일입니다. 여러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셨지만, 이번은 특별한 방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 두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명의 제자를 보내실 때는 뭔가 부담스러운 일을 시키실 때였습니다. 동네에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두명씩 보내셨습니다. 동네에서 전도하다가 매를 맞거나, 쫓겨날 수도 있었기때문입니다.

▶눅19:30 말씀하셨다. "맞은쪽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아멘.

*베다니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약 2마일 정도가 됩니다. 상당히 가파른 길이라서 경사도는 10~15도 정도가 됩니다. 약 150미터 정도 높이를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올라가실 계획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걸어서 가지 않으시고, 새끼 나귀를 타고 이 길을 가시려고 하셨을까요?

▶*로마장군들이 전쟁에서 마치고 성으로 들어올 때, 4두 마차를 탑니다. 4마리의 멋진 말이 끄는 마차입니다. 전쟁에서 잡아온 포로들과 전쟁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앞에 세웁니다. 로마시민들은 길에 나와서 로마장군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며 환호를 합니다. 이게 다시의 개선행진이고, 그 모습은 지금도 로마에 있는 개선문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로마장군들이 하는 개선행진을 패러디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식으로 개선행진을 해석하셨습니다. 멋진 말이 아닌 새끼 나귀 한 마리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호산나라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군림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세팅입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능력의 왕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를 일부러 깨시려고, 새끼 나귀를 탄 겸손의 왕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환호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이 순간 겸손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택하셨습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고, 하나님을 높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인기에 우쭐대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향해서 환호하는 백성들을 보지 않으셨고,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세요.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겸손이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마세요.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되신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입에 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읽으면 안 된다는 생각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읽지 않고, 나의 주님이라는 뜻인 “아도나이”라고 대신 읽었습니다. 그 덕분에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지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퀴리오스”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퀴리오스는 딱 한명이었습니다. 로마황제가 퀴리오스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주인은 황제밖에 없었고, 황제만이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백성들은 이렇게 외치며 황제를 향한 충성을 고백했습니다.
▶“Καῖσαρ Κύριος” 카이사르 퀴리오스!
황제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박해당하고 순교할 수도 있었습니다.
▶“Ἰησοῦς Κύριος” 이에수우스 퀴리오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주인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고, 어떤 결과가 올지를 알고 있습니다. 로마가 교회를 박해할 것이고, 자신들을 잡아서 죽일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로마황제를 지칭하는 퀴리오스를 하나님께 사용합니다. 우리들은 그 전통을 이어서, 우리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인님”의 약자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날이 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내 집이 누구의 것이 될까요? 내 남편과 아내가 내 것이 아니고, 내 자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잠시 사용하고 누리는 것들일 뿐입니다. 진짜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이신 줄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새끼 나귀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9:31 혹시 누가 너희에게 왜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아멘.

*예수님께서 미리 새끼 나귀의 주인과 이야기를 해 놓으신 것이 없습니다. 나귀의 주인이 제자들을 도둑놈취급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럴 때 해야할 말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쓰실 겁니다.”

▶*이 말이 통할까요? 제자들이 이렇게 나귀주인에게 얘기하니 흔쾌히 새끼 나귀를 풀어줬습니다. 나귀주인은 주님께서 쓰신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주인인 예수님께서 쓰신다고 하면 못 내어줄 것이 없었습니다. 주되심을 인정한 것.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분이신가요?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여러분을 환란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신가요?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 아니라, ▶나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게 바로 Lordship 주되심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돕는 분으로 생각하시나요? 나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나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주인의 뜻대로 살 때, 제대로 된 보호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돕는 분으로 생각한다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됩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기도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내 맘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커스에 보면 호랑이가 불붙은 링을 뛰어서 통과하는 쇼가 있습니다. 저는 그걸 볼 때마다 너무 신기하고 궁금합니다. 어떻게 호랑이를 저렇게 훈련시키는 걸까요? 호랑이도 참 먹고 살기 힘들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먹을 것으로 호랑이를 훈련시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킨대로 안 하면 두들겨 맞는 걸까요? 둘 다 아닙니다. 호랑이는 본능적으로 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절대로 불 속으로 뛰어들지 않습니다. 방법은 딱 한가지입니다. 믿음입니다. 자신의 주인이 자신을 절대로 위험한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호랑이만 불 속으로 뛰어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불같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믿음을 갖고 견딜 수 있는 줄을 믿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의지하면, 불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나귀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삼고, 나에게 맡겨주신 가족, 시간,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게 해주옵소서.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만 높이신 예수를 따라서 살게 해 주옵소서.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치하시는 분십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주님의 종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고난주간동안 주님의 고난에 같이 참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10:56: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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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민수기13]모세의 겸손-은혜금요-민12:3-260327]]></title>
			<link><![CDATA[http://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22]]></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3-27-260327.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아멘. 

*창출레민신은 모세오경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모세가 쓴 5개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오경에서 정말 이해하기 힘든 성경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본인이 본인을 세상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썼습니다. 모세는 정말 온유하고 겸손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을 찾겠습니다. 

1/2 하나님의 일꾼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 

*모세가 구스 여자를 데리고 와서 아내로 삼습니다. 이 사건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민12:1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그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모세를 비방하였다. 아멘. 

*모세가 새 아내를 맞았습니다. 모세의 아내는 십보라죠. 그런데 출애굽기 18장에 그 이름이 나오고 그 이후로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보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미리암과 모세가 이 사건을 놓고 모세를 비난합니다. 구스는 지금의 이디오피아입니다. 외국인 여자를 아내로 데려왔다고 비판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모세의 나이는 82세입니다. 물론 이 구스여자는 아내일 수도 있고 첩일 수도 있습니다. 

*이게 죄일까요? 사실 죄는 아닙니다. 모세는 왕은 아니었지만, 거의 왕수준의 지도자입니다. 왕이 아내를 여럿 들이는 것이 죄인가요? 죄가 아닙니다. 

*이방인여자를 데려왔기에 비난한 것일까요?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도 미디안여자였습니다. 십보라도 이방인입니다. 이 구스여자는 어디서 왔을까요? 출애굽할 때, 이집트에서 나온 여자입니다. 구스출신 이스라엘백성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이기에 모세를 비난하는 걸까요?

민12:2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으셨다. 아멘.

*구스여인의 이야기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냥 모세에게 시비를 걸려고 지적한 것입니다. 모세의 리더쉽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되시지만, 사실 모세의 리더쉽은 겸손의 리더쉽이었습니다. 권위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주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수시로 여러가지 불평과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같은 지파인 레위지파에서도 반란이 있었습니다. 고라자손이 모세에게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모세가 어떤 리더쉽을 갖고 있었는지 아시겠죠? 이번에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에게 반발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만 하나님의 사람이냐? 우리도 하나님과 대화한다.” 

*미리암과 모세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서 나일강에 띄웠을 때, 미리암은 모세를 따라가서 바로의 공주에게 자기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했었습니다. 미리암에게 모세는 자기집 막내동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가족들이 무시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예수님도 가족들에게는 무시를 당했습니다. 동네에서도 멸시를 당했습니다. 신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나 나나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이 다른 겁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유일한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일을 저지릅니다. 교회의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사세요. 그리고 이 사람들을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목사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은 겸손한 사람을 생각하면 누가 생각나나요? 여기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나옵니다. 

민12:3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아멘. 

*자기 입으로 자기가 말하고, 그걸 책에 썼습니다. 이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가요? 교만한 사람인가요?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민수기의 내용을 대부분 모세가 썼지만, 그 중에 모세가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이 쓴 부분도 있습니다. 민수기에 모세가 죽은 기록이 있습니다. 설마 모세가 미리 자기 죽는 내용을 써놓고 죽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도 모세가 직접 쓴 내용이 아니고, 민수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적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삽입구절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세에게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모세는 진짜 겸손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오늘 사건 속에서 모세는 무엇을 했나요?

민12:4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당장 부르셨다. "너희 셋은 회막으로 나오너라." 세 사람이 그리로 나갔다. 아멘. 

*모세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자기 변명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욕하는 미리암과 아론의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억울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내 억울함을 알아주시고, 풀어주세요. 라고 기도만했던 겁니다. 

*바로 이게 겸손입니다. 남들이 욕하면 억울해도 그 욕을 그냥 듣고 있는 겁니다.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는 겁니다. 모세의 겸손을 배우세요. 

*아무 변명도 안 하고 욕만 먹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암, 아론, 모세 셋을 모두 성막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권위를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 반란을 주동했던 사람은 미리암인 것으로 보입니다. 장막에서 나갔을 때, 미리암에게 나병이 발병되었고,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에게 고쳐달라고 애원을 했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미리암의 나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겸손한 척을 배웁니다. 거짓 겸손입니다. 속으로는 교만한데, 겉으로는 겸손한 척을 하는 것입니다. 진짜 겸손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억울한 비난을 들으시면서도, 묵묵히 참으셨고,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신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시고, 책임감도 갖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복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겸손한 척을 하지만, 우리 속은 교만으로 가득차있습니다. 항상 내가 옳다고 착각하고, 나는 다른 사람보다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겸손함을 배우게 해주옵소서. 나의 억울함을 내가 풀려고 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나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해결하심을 의지하게 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겸손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10:53: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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