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가느니 자원한다.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5-11-19 20:21
조회
3980
1993년 대학을 4년 동안 쉬지 않고 다니고, 졸업 후 공군장교로 입대했습니다. 누가 공군장교 편하다고 했을까요? 4달 동안의 훈련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신체와 정신의 한계를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그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꽤 잘 달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취미로 샌프란시스코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공군장교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대도시근처 근무입니다. 서울, 대구, 김해, 광주, 청주, 원주. 대도시가 아닌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험성적이 낮아서, 경북예천이라는 공군 최고의 격오지부대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만원 정도의 싼 값에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40분 만에 서울에 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청주비행장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왔고, 교회집사님들은 "너는 군대갔다더니 매주 교회에 나오냐? 군인이 머리는 왜 이렇게 길어?"라고 하시며 반가워해주셨습니다. "역시 공군장교로 군대오길 잘했어.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군본부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전국의 비행장 중에서 예천비행장의 인원이 1명 남음으로 1명을 차출하여 백령도현병대장으로 보낼 것." 당시 같이 자대배치를 받은 소위가 3명이 있었습니다. 3명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지만, 상황은 저에게 불리하게 흘러갔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은 공군 3스타의 총애를 받고 청주비행장으로 가기로 내정이 되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우리 비행단 단장님(공군 1스타)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백령도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차출될 것이 불을 보듯 훤했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느니, 내 발로 걸어가겠다." 저는 대대장님을 찾아가서 백령도를 자원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저는 흙수저였습니다.

주변의 하사관들은 저에게 백령도에 대한 괴담들을 퍼부으며, 제 마음을 흔들어놨습니다.
"소대장님, 백령도에는 헌병대장이 지역유지입니다. 마을 운동회 하면 지역유지로 참여합니다."
"소대장님, 백령도 헌병대장은 전용차가 나옵니다."
"소대장님, 백령도까지 배타고 12시간입니다. 악천후에는 배가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좋은 점도 있습니다. 휴가나왔다가 악천 후가 뜨면 복귀 안 해도 됩니다."
"소대장님, 백령도는 해병대가 많아서 까불면 해병대에게 맞습니다."
온갖 쓸데 없는 말로 제 마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어놨습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자원 안 하면 끌려가니 그꼴은 당하기 싫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불쌍했는지, 대대장님께서는 간부회의 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야! 이제부터 김동원소위 아무도 건드리지마, 쟤 백령도 갈 놈이야!"
그때부터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헌병대 안에서 사형수같은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서울 근처 가려고 공군왔다가 공군 최격오지비행장 예천으로 배치되고, 스케쥴근무도는 헌병대에 차출되고, 끝내 백령도에서 제대하는 운없는 사나이가 바로 접니다.
"젠장, 공군와서 백령도라니! 거기에 공군부대가 있는 줄도 몰랐다."

TV에 나오는 일기예보시간이 되면,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백령도와 서해 5도의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군본부에서 다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백령도는 강릉비행장에서 차출한다. 예천비행장비행장 차출 없음."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이제 백령도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저는 백령도를 자원한 용맹한 공군으로 인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1년이 지나고 중위진급을 했고, 다시 소대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일  고참 중에 단 한 명만 갈 수 있다는 최고의 보직 소대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제가 최고 보직 소대장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백령도를 자원한 군인이었으니까요. 감사하게도 최고 보직 소대장으로 2년을 근무하고 제대할 수 있었습니다. 단연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시편 51:12에 보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백령도가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원하는 마음을 기쁘게 보십니다. 그리고 자원하는 자에게 복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전체 846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846
기복신앙이란 무엇인가?
김동원목사 | 2026.04.18 | 추천 0 | 조회 355
김동원목사 2026.04.18 0 355
845
니키 크루즈의 회심
김동원목사 | 2026.04.13 | 추천 0 | 조회 314
김동원목사 2026.04.13 0 314
844
브라더 로렌스의 영성
김동원목사 | 2026.04.13 | 추천 0 | 조회 328
김동원목사 2026.04.13 0 328
843
정말 별난 담임목사의 갑질
김동원목사 | 2026.03.27 | 추천 0 | 조회 624
김동원목사 2026.03.27 0 624
842
미국은 무단점유자(squatter)를 보호한다?
김동원목사 | 2026.03.17 | 추천 0 | 조회 749
김동원목사 2026.03.17 0 749
841
원로목사제도가 꼭 필요할까?
김동원목사 | 2026.03.13 | 추천 1 | 조회 708
김동원목사 2026.03.13 1 708
840
은혜만 되면 거짓말도 괜찮아?
김동원목사 | 2026.01.30 | 추천 3 | 조회 2365
김동원목사 2026.01.30 3 2365
839
나이 앞에 장사가 없구나
김동원목사 | 2026.01.13 | 추천 0 | 조회 2837
김동원목사 2026.01.13 0 2837
838
끌려가느니 자원한다.
김동원목사 | 2025.11.19 | 추천 0 | 조회 3980
김동원목사 2025.11.19 0 3980
837
스위스는 역시 선진국이네
김동원목사 | 2025.10.13 | 추천 0 | 조회 5206
김동원목사 2025.10.13 0 5206
836
점촌의 은혜
김동원목사 | 2025.08.19 | 추천 0 | 조회 7346
김동원목사 2025.08.19 0 7346
835
한국 의사와 미국 의사의 차이점
김동원목사 | 2025.07.15 | 추천 0 | 조회 8369
김동원목사 2025.07.15 0 8369
834
이제는 낯설은 한국사회
김동원목사 | 2025.07.14 | 추천 1 | 조회 8116
김동원목사 2025.07.14 1 8116
833
부모님 곁에서
김동원목사 | 2025.07.12 | 추천 1 | 조회 7604
김동원목사 2025.07.12 1 7604
832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김동원목사 | 2025.06.14 | 추천 0 | 조회 7825
김동원목사 2025.06.14 0 7825
831
미국과 한국 교회 정치 참여
김동원목사 | 2025.06.09 | 추천 1 | 조회 6365
김동원목사 2025.06.09 1 6365
830
가버나움, 주님의 미션베이스캠프
김동원목사 | 2025.06.07 | 추천 0 | 조회 4866
김동원목사 2025.06.07 0 4866
829
베다니를 사랑하신 예수님
김동원목사 | 2025.05.31 | 추천 0 | 조회 4937
김동원목사 2025.05.31 0 4937
828
신앙의 안전거리
김동원목사 | 2025.05.24 | 추천 0 | 조회 5083
김동원목사 2025.05.24 0 5083
827
감옥에서 온 편지
김동원목사 | 2025.05.24 | 추천 0 | 조회 4610
김동원목사 2025.05.24 0 4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