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7]품위있고 질서있게 하라-은혜금요-고전14:40-250207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5-02-12 14:38
조회
433

servoice.jpg servoice.jpg


 

▶ *고전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아멘.

*고린도교회는 은사중심교회였습니다. 그 중에서 방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영적이고 거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방언 때문에 문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였을까요?

▶1/3 말씀 위에 굳게 서라.

▶고전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아멘.

*13장에서 이미 사랑이 제일 중요한 은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을 열망하라고 합니다.
▶예언이 무엇일까요? 보통 우리는 예언을 생각하면, 앞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건 예언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예언은 “대신 이야기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예언에는 메신저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이야기를 구별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말의 시작을 구별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이 문제가 많습니다. 성경에 예언자에 대한 논란이 아주 많았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도 자신이 거짓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마음속 소리가 구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 모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부흥사가 오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맨 앞에 앉아 있던 여자 청년이 있었는데, 목사님이 설교 중에 갑자기 예언을 하셨습니다. “저 청년은 일본선교사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예언을 들은 그 청년은 아주 많이 당황했습니다. 선교사는 마음에도 없었는데, 갑자기 선교사가 된다는 예언을 들은 것이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 부흥사의 즉흥적인 생각인지? 그 청년은 너무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 청년의 대학전공은 독일어였어요. 독일선교사도 아니고, 일본선교사는 무슨 말인가요?
이 청년은 지금 고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힘겨울 때 마다, 내가 일본선교사로 가지 않아서 이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하며 삽니다.
그 부흥사의 예언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었을까요? 아니면 본인의 즉흥적인 생각이었을까요?

*예언은 이처럼 어렵습니다. 교회에 예언이 많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교회가 아주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서로 예언이라고 말하는데, 안 맞고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고전14:29 예언하는 사람은 둘이나 셋이서 말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분별하십시오. 아멘.

*그래서 바울은 예언은 분명히 검증되고 분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남용되는 방언을 경고하며, 차라리 예언을 더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방언도 아니고, 예언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덕으로 교회를 세우라.

*사도바울의 신학을 이해할 때, 무척 중요한 개념이 나오는데, 바로 “덕”입니다.
바울은 옳고 그른 것보다도 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덕이란 무엇일까요?

*교회에서 덕은 엉뚱한 뜻으로 사용됩니다.
“덕이 안 된다.”라는 말은 자신이 보기 싫고, 기분 나쁠 때 자주 사용합니다. A집사의 옷 차림이 B집사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럴 때, “저 집사 옷 차림은 덕이 안 된다.”라고 말을 합니다. 맞는 표현일까요? 잘못 쓴 표현입니다.

▶고전14:26 그러면 형제자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통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남에게 덕이 되게 하십시오. 아멘.

*모든 일을 남에게 덕이 되게 하라.
여기서 열쇠가 하나 나옵니다. 덕은 내가 기분 나빠서 쓰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용하는 말입니다. “남에게 덕”이 되어야 합니다.

▶*덕이라는 말은 οἰκοδομή라는 헬라어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성장시키며, 믿음으로 굳건하게 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교회를 세운다.” “교회를 유익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덕입니다. 옳고 그른 것보다 덕이 더 중요합니다. 싸우는 교회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꼭 옳고 그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옳고 저 사람은 틀렸다는 것 때문에 싸웁니다. 내가 잘못했지만, 저 사람은 더 많이 잘못했다고 싸웁니다. 한참 지나고 나면, 그때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런데 그 싸움 때문에 교회는 박살나고 무너집니다.

*사탄은 항상 옳고 그른 것으로 우리를 자극합니다.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지 마세요. 끝내 중요한 것은 “덕”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는 것이 덕입니다. 누가 옳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덕을 위해서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당장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덕을 세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기 전, 세상은 공허하고, 혼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혼돈이란 무질서를 말합니다. 세상에 질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질서를 만드셨습니다. 물건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질서는 과학자들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질서입니다.

*교회에도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예배시간에 질서가 없었습니다. 예배 중에 갑자기 한 사람이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바로 옆에서 다른 사람이 경쟁하듯이 또 다른 방언을 시작합니다. 그것을 본 다른 사람이 또 다른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배 중에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예언을 합니다. 그러면 경쟁하듯이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완전히 반대 예언을 합니다. 그 예언을 들은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또 다른 예언을 합니다. 예배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장로교인들은 질서와 절차를 잘 지킵니다. 장로교가 회의를 가장 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장로교는 한국에 회의라는 문화를 전했습니다. 왕은 신하들과 회의하지 않습니다. 그냥 전달하는 겁니다. 높은 사람이 어찌 낮은 사람의 말을 듣겠습니까? 장로교는 한국에 회의를 가르쳤고, 정치를 가르쳤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회의를 가지고, 민주주의가 생겨났습니다.

*미국장로교에 들어와서 헌법 시간에 제일 먼저 배운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고전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아멘.

*교회에서는 품위가 있고, 질서있게 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공동의회를 하다가 집사님이 목사님을 때렸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화가난 목사님이 장로님을 총으로 쐈따고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에 크리스찬이라는 품위가 있어야 하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서를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품위있고, 질서있는 크리스찬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질서의 하나님 아버지.
무질서한 우리 인생에 질서를 알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 삶에 질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줄을 세울 수 있게 하시고,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질서있게 줄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주시는 예언을 잘 분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거짓예언자들을 따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완벽한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따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덕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 자신을 희생하여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는 덕스러운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일에 품위가 있고, 질서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체 2,703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2703
마른 뼈의 기적-은혜부활주일-겔37:1-250420
김동원목사 | 2025.04.21 | 추천 0 | 조회 63
김동원목사 2025.04.21 0 63
2702
[고난주간4]사탄의 계획, 예수님의 승리-은혜금요-요19:30-250418
김동원목사 | 2025.04.19 | 추천 0 | 조회 116
김동원목사 2025.04.19 0 116
2701
[고난주간3]준비하고 깨어있으라-은혜고난-눅22:31~42-250417
김동원목사 | 2025.04.18 | 추천 0 | 조회 128
김동원목사 2025.04.18 0 128
2700
[고난주간2]받은 은혜를 생각하라-은혜고난-마26:6~16-250416
김동원목사 | 2025.04.16 | 추천 0 | 조회 100
김동원목사 2025.04.16 0 100
2699
[고난주간1]화려함과 열매-은혜주일-막11:12~25-250415
김동원목사 | 2025.04.15 | 추천 0 | 조회 103
김동원목사 2025.04.15 0 103
2698
순종: 믿음의 성장통-김동원목사-눅19:1-250413
김동원목사 | 2025.04.14 | 추천 0 | 조회 107
김동원목사 2025.04.14 0 107
2697
[고린도후서5]하나님 뜻에 맞는 걱정-은혜금요-고후7:10-250411
김동원목사 | 2025.04.11 | 추천 0 | 조회 109
김동원목사 2025.04.11 0 109
2696
열등감에서 부르심으로-은혜주일-눅19:1-250406
김동원목사 | 2025.04.11 | 추천 0 | 조회 102
김동원목사 2025.04.11 0 102
2695
[고린도후서4]거부할 수 없는 은혜-은혜금요-고후6:1-250404
김동원목사 | 2025.04.05 | 추천 0 | 조회 111
김동원목사 2025.04.05 0 111
2694
위선을 벗고, 사랑을 입으라-은혜주일-마22:34-250330
김동원목사 | 2025.04.01 | 추천 0 | 조회 281
김동원목사 2025.04.01 0 281
2693
[고린도후서3]성령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은혜금요-고후3:17-250328
김동원목사 | 2025.03.28 | 추천 0 | 조회 250
김동원목사 2025.03.28 0 250
2692
우리에겐 천국이 있다-은혜주일-마태22:23-250323
김동원목사 | 2025.03.25 | 추천 0 | 조회 292
김동원목사 2025.03.25 0 292
2691
[고린도후서2]그리스도의 향기-은혜금요-고후2:14-250321
김동원목사 | 2025.03.25 | 추천 0 | 조회 227
김동원목사 2025.03.25 0 227
2690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은혜주일-마5:13-250316
김동원목사 | 2025.03.18 | 추천 0 | 조회 200
김동원목사 2025.03.18 0 200
2689
[고린도후서1]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라-은혜금요-고후1:1-250314
김동원목사 | 2025.03.18 | 추천 0 | 조회 199
김동원목사 2025.03.18 0 199
268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은혜주일-마태3:8-250309
김동원목사 | 2025.03.12 | 추천 0 | 조회 305
김동원목사 2025.03.12 0 305
2687
[고린도전서21]교회를 세우는 사람-은혜금요-고전16:19-250307
김동원목사 | 2025.03.07 | 추천 0 | 조회 307
김동원목사 2025.03.07 0 307
2686
믿음은 약속을 통해서 자란다-은혜주일-약5:13-250303
김동원목사 | 2025.03.03 | 추천 0 | 조회 258
김동원목사 2025.03.03 0 258
2685
[고린도전서20]보는 예배, 드리는 예배-은혜금요-고전16:1-250228
김동원목사 | 2025.03.03 | 추천 0 | 조회 261
김동원목사 2025.03.03 0 261
2684
기도의 목적을 정하라-은혜주일-약4:3-250223
김동원목사 | 2025.02.24 | 추천 0 | 조회 361
김동원목사 2025.02.24 0 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