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은혜주일-마5:13-250316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5-03-18 19:39
조회
202
▶ *우리는 지금 사순절기간 중에 있습니다. 매일 매일 사순절 묵상을 잘 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기간 동안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은 세례요한의 회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번 주일은 예수님의 가장 유명한 설교집인 산상수훈의 내용으로 같이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산산수훈은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것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소금
*화면에 보시면 염소들이 목숨을 걸고 절벽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염소들도 저런 행동이 위험한 것을 압니다. 저러다가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래도 저 절벽을 올라가는 이유는 절벽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 먹기 위해서입니다. 왜 꼭 절벽에 자라는 풀을 먹을까요? 바짝 마른 저 풀에는 소금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염소가 소금을 유일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먹지 못한 염소는 서서히 미쳐간다고 합니다.
*농촌에서는 산에 소금을 뿌려놓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멧돼지들이 소금냄새를 맡고 민가까지 내려와서 민가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먹지 못한 멧돼지는 서서히 미쳐갑니다.
*로마제국때는 군인들에게 주는 월급을 "Salarium"(살라리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군인들에게 소금을 월급으로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로 월급은 Salary라고 부릅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자주 전하셨습니다. 비유는 쉽습니다. 그런데 그 비유의 온전한 뜻을 알려면, 당시 소금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소금은 귀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소금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지중해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소금을 구하는 기술은 흔하지 않아서, 바닷가의 소금은 무척 비쌌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소금이 흔하게 발에 밟히는 곳이 있습니다. 염해라고 부르는 사해입니다. 지도 보면, 사해라는 바다가 보입니다. 헐몬산에서 시작한 요단강은 먼저 갈릴리호수에 도착하고, 남쯕으로 흘러 내려서 사해에 도착합니다. 총 길이는 156마일 정도가 됩니다.
*사해를 염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이 곳에 소금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사해는 들어오는 강물은 있지만, 나가는 강물은 없습니다. 그냥 사해에서 햇볕을 받고, 모두 증발해 버립니다. 사해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들어가도 몸이 둥둥 뜹니다. 사해 주변에는 소금 덩어리가 넘쳐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해의 소금을 가져다가 썼습니다. 그런데 그 소금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이게 바닷물이 아니기 때문에 불순물이 많습니다. 저도 사해 물 맛을 좀 봤는데요. 짠 맛과 쓴 맛이 섞여 있더라구요. 사해의 소금 속에 불순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사해소금은 바로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해소금은 화장품의 재료로 사용하지,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스라엘사람들은 바다소금을 사먹지 못했고, 싸구려 사해소금을 먹었습니다. 소금의 품질이 아주 좋지 못했습니다. 특히 습기에 약해서, 습기가 많은 곳에 두면 아예 먹을 수 없는 소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무엇에 썼을까요? 길에 버렸습니다. 소금을 땅에 뿌리면 땅이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길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못 먹는 소금이 있으면, 길에 뿌렸습니다. 길에 뿌려진 소금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됩니다. 소금과 흙이 사람의 발에 밟히게 되면, 그 길은 더 단단해져서, 마차가 지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소금을 밭에 뿌리면 큰 일이 납니다.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원수의 밭에 소금을 뿌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소금은 비쌌지만, 소금은 집집마다 꼭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냉장고가 없고, 더웠던 이스라엘에서 야채나 고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금을 뿌려서 보관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금의 짠맛이 사라지게 될까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소금은 짠맛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소금은 순도 99% 정도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소금은 보관하기 어려웠습니다. 소금이 무엇인가와 섞이게 되면, 소금이 맛을 잃었고, 소금으로 가치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습기였습니다. 소금이 습기가 차면 녹아 내렸습니다. 소금에 다른 것이 섞이면, 소금이 짠맛을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순수해야 합니다. 무엇과 섞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믿음은 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순수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봐야 합니다. 오직 천국바라보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섞이면 우리의 믿음의 손상될까요?
1)믿음에 돈이 섞이면 망합니다.
사탄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교회를 망하게 할까?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탄이 교회를 혹독하게 박해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 도망갈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탄이 그 방법은 해봤는데 효과가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박해하면 더 모여서 기도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교회에 돈을 퍼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돈을 퍼주면 교회는 기도하지 않고, 그돈 어디다 쓸거냐고? 싸우게 된다는 겁니다. 교회에 돈이 생기니 교회는 기도하지 않았고, 그 돈을 자기가 원하는데 쓰자고 싸우다 망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교회에 돈이 섞이면 망합니다.
2)믿음에 성공이 섞이면 망합니다.
예전에는 간증집회를 많이 했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교회나와서 성공했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열심히 해서 성공했다는 말들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예수믿으면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믿으면 더 성실하게 일하고, 더 성실하게 가정생활하니, 예수 안 믿을 때보다 복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성공주의가 섞이기 시작하면, 믿음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누가 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아내느냐가 믿음의 척도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말 그대로 믿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의 길을 가는 것이 정말 믿는 것입니다. 믿음에 성공주의가 섞여 버리면 그건 믿음이 아닌거에요. 예수를 이용해서 성공해보자는 겁니다.
진짜 믿음은 우리가 실패하고, 내 몸이 병들고, 우울해서 일어날 힘도 없을 때, 하나님을 믿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성공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패할 때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의 순수함을 유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믿음에 정치가 섞이면 망합니다.
독일은 대단한 믿음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믿는 개신교도 독일에서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독일인이었습니다. 독일의 국가는 찬송가입니다. Glorious Things of Thee are Spoken가 독일 국가입니다. 이랬던 독일교회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일 교회가 히틀러를 지지했고, 히틀러를 독일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선포했습니다. 독일 목사들은 교회에 있는 거룩한 십자가를 떼고, 독일군의 십자가와 나치 문양을 교회에 걸었습니다. 교회에 붙어 있던 예수님의 그림을 떼고, 그 자리에 히틀러의 사진을 붙여 놓고, 히틀러를 바라보고 예배를 했습니다. 나치가 수많은 유대인들을 체포하고 죽이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독일교회는 히틀러만 축복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히틀러를 반대하던 목사님들은 감옥에 잡혀가고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했던 독일 교회는 정치와 섞여 버리면서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대부분이 교회를 다니던 나라였는데, 많은 독일국민들이 교회를 떠났고, 지금 서유럽에서 교회 출석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독일 교회는 예수를 버리고, 히틀러를 선택했기때문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적으로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교회는 순수함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힘은 기도입니다. 광장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골방에서 기도하는 골방기도의 힘입니다. 나라가 걱정될수록 교회로 모여서 기도해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금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순수해야 함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섞이면 안 됩니다. 교회는 오직 성경, 오직 예수를 바라볼 때, 온전한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은 소금처럼 순수한가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만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빛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만드셨고 첫 번째 날에 빛을 만드셨습니다.
창1: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아멘.
*왜 태양이나, 달이 아니라 빛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비추는 빛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빛이 없으면, 우주가 생겨나는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어느 것보다도, 빛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세상에 빛이 들어왔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05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제 사라져버렸습니다. 힘으로 일본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에 어두움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때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교회는 빛이 되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교회는 빛이 되어서 백성들에게 길을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속한 미국장로교회는 모든 힘을 모아서 조선을 독립시키는데 힘을 썼습니다. 교회를 세워서, 한국말로 예배드릴 수 있게 했습니다. 학교를 세워서, 한국말로 공부하고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했습니다. 병원을 세워서, 아파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렸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세계에서 교회는 빛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살 수 있다. 교회는 빛이 되었습니다.
미국장로교선교사님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셨고, 조선인들을 가르쳤습니다. “독립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부해서 실력을 키워라. 그래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 나라 잃고, 왕을 잃은 힘없는 백성들에게 교회는 영생의 길, 독립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십니다. 예수를 따라가면 삽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예수를 따라가면 살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에게는 크게 두 종류의 루트가 있습니다. 두만강루트와 태국루트입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두만강을 목숨 걸고 넘어와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직접 오는 루트가 첫 번째입니다. 중국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태국루트를 이용합니다. 중국을 가로질러서 남쪽으로 이동해서 태국까지 간 후에 한국으로 넘어오는 루트입니다.
*두 루트가 모두 위험합니다. 중국 공안과 북한보위부가 탈북자들을 잡으러 다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자들이 더 위험합니다. 중국에서는 탈북한 여자들을 잡아서 중국시골에 팔아버립니다. 그나마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중국에 가면 무조건 교회를 찾아가라. 교회 십자가를 보면 들어가서 도움을 청해라. 그러면 살 수 있다.” 교회의 도움으로 수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참 많은 탈북자들을 교회에서 만났었습니다.
*임현수목사님, 김동철목사님은 중국에서 이렇게 탈북자들을 도우시다가 북한으로 끌려가서 감옥에 2년 6개월동안 감옥에 갇혀 계셨습니다. 한세영선교사님은 탈북자를 돕다가 2016년 북한으로 끌려갔고, 지금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목사님들과 탈북자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목사님들은 지금도 목숨을 걸고 탈북자들을 돕고 계십니다.
*이분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고 계실까요? 예수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길을 모르고 헤메는 사람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아멘.
*2천년 전 이스라엘은 산 위에 집을 많이 지었습니다. 마을을 만들어도 골짜기가 아니라 산 위에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산위에 마을을 만들면 아주 불편합니다. 골짜기에서 물을 퍼서 집까지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항상 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힘들고 불편합니다.
*그래도 산 위에 집을 짓는 장점이 있습니다. 산 위에 집을 지으면 멀리 볼 수 있고, 마을을 방어하기에 유리합니다. 적들이 몰래 쳐들어 올 수가 없어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방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생활의 편의성보다도, 그들은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밤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산 위에 있는 마을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길을 찾습니다.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이 마을에서 쉬어갈 것인지? 다음 마을까지 갈 것인지?를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산 위에 있는 집에서 나오는 불빛은 여행자들에게 생명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노숙인 봉사를 나갔다가 왔습니다. 요즘 샌프란시스코에 노숙인들이 참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나가서 노숙인들과 음식을 나눕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손해보고 살아야 하고, 봉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먼저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살게 되면, 주님의 빛을 우리가 받아서 세상을 비출 수 밖에 없습니다.
*보름달은 참 밝습니다. 보름달 밑에서는 책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달은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을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산다면, 우리는 달이 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나면, 우리 안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의 빛이 비취게 되면, 우리의 얼굴이 바뀌어야 합니다. 근심하고 염려하며 예배를 나왔더라도,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빛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그 빛은 세상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예수믿으면 구원받고, 죽음에서 영생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세상에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복음의 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그를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앞에 머리숙인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의 말씀의 은혜가 넘치게 하시고, 그 말씀을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은혜도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으로 세우신 주님,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다시 한번 알게 하여 주옵시고, 순전한 믿음을 품게 하셔서, 우리의 믿음이 변질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세우신 주님,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신 주님을 본받게 하시고, 우리도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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