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 만나면 해결된다-은혜주일-요1:46-250622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5-06-23 11:14
조회
4448
▶*계속해서 예수님의 제자시리즈, 오늘은 빌립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도 선입견과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선입견은 어떻게 깨지게 될까요?
▶1/3 염려를 버리고, 믿음을 가지라.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무엇이 변하셨나요? 우리가 예수를 가까이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변합니다. 많이 바뀌는 분들이 있고, 적게 바뀌는 분들이 있지만, 예수를 믿고도 안 바뀌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항상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도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의지한 후에, 저의 삶도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겁이 많고, 항상 염려와 근심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한 후, 훨씬 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보호를 받는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빌립을 좋아합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 항상 염려하고 걱정하는 저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6: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아멘.
*5천명이 넘는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빈들에 모였습니다. 말씀이 갈급했던 무리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고, 백성들은 배고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12제자 중 하나인 빌립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어디에서 빵을 구할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만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빌립의 마음에는 믿음보다는 현실의 문제가 가득했기때문입니다.
▶요6: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계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빌립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어디서”였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근심으로 답을 합니다. 그는 현실적이었습니다.
▶요6:7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아멘.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빌립의 마음속에는 가난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이렇게 고되고 가난한 것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권력을 가질 수 있고, 부자로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기대는 무너졌고, 가득한 불만으로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분명히 “어디서?”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대답은 ▶“어떻게?”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을 빵을 파는 곳도 찾기 어렵지만, 빵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돈이 없으셨습니다. 빌립의 마음에는 돈에 대한 근심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없이 맨날 기적을 바라며 사는 삶은 너무나 불안정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빌립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다가도, “어떻게?”를 의심합니다. 이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어?
How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방식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그걸 믿고 나가야죠. 그 방법을 다 설명해준다고 이해할 수나 있겠습니까? 이해하고 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과 이해는 다른 영역입니다.
▶금문교를 건너 보셨나요? 이 다리는 1937년에 세워진 다리입니다. 2.7km. 현수교로 만들어졌구요. 8.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케이블은 61500톤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거 이해하고 건너셨어요? 그냥 안 무너질 줄로 믿고 건너셨어요? 이거 다 이해하려면 다리 못 건넙니다. 믿으면 건널 수 있고, 건너면 이해할 수 있는거에요. How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빌립은 How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건 주님께서 하실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먼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처럼 늘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가? 의심하는 믿음없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되면서, 돈보다 든든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가까이 하면 변화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염려와 근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지역의 특징이 있습니다. 주택비가 너무 비싸서, 삶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빌립과 같은 우리들을 예수님께서는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기적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는 염려보다 더 큰 믿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을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주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 평생 한 명은 전도하자.
▶*여러분들은 전도해보셨나요?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1) 복음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소개하고 싶은 겁니다.
▶2) 쉬운 말로 잘 설명합니다. 잘 이해.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못 알아들을 어려운 말을 쓰지 않습니다.
▶3) 거절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전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지만, 그 사람이 믿고 안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것이 기쁘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이 좋은 예수님을 나만 알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느 수도원에서 새로 들어온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수도원장님이 새로 온 수도사가 얼마나 설교를 잘 하나? 시험하기 위해서 예배 때 설교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신참 수도사는 선배들 앞에서 설교하는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선배 수도사들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러자 신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선배들은 당황했습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설교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 같네요.” 라고 불평하며 설교를 안 했습니다.
다음 날 또 신참에서 설교를 시켰습니다. 신참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선배들은 서로 자기가 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신참은 “모두 다 안다는데, 할 필요없겠네요.” 이러는 겁니다.
수도원에서는 긴급회의가 있었고, 다음 날에는 수도사들이 반반 나눠서, 반은 모른다고 하고, 반은 안다고 하자고 했습니다.
신참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계획한 대로, 한쪽에서는 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참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러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장님은 이 신참의 설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복음이죠.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믿지도 않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하지도 않으면, 그게 복음입니까?
*빌립은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빌립의 머릿속에 친구 나다나엘이 생각났습니다. 그에게도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바로 나다나엘에게 가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아멘.
*나다나엘의 반응은 아주 냉소적이었고, 모욕적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유다지파 지역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지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의심은 아주 합리적이었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이런 반응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면전에서 망신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때문에 전도를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괜히 교회다니자고 했다가, 관계가 깨져서 서로 힘들어질까봐 전도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편하자고 남을 지옥으로 보내는 겁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의 말을 듣고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와서 보시오.”
이게 제일 좋은 전도 방법입니다. 그냥 와서 보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다니세요. 참 좋아요.” 무슨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싸움을 해서 이기면 뭐합니까? 그런다고 전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한 번 나와서 직접 한 번 보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전도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한인들이 많이 줄었고, 지금 천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많이 줄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인들 많이 있습니다. 길에서 한국말 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거든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이민 오면, 교회부터 찾아서, 교회의 도움을 받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알아서 교회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빌립처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빌립은 실망하지 않고,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했고, 나다나엘은 주님을 영접합니다. 빌립처럼 좌절하지 않고, 예수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3 만나면 해결된다.
*저는 군대를 공군장교로 근무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부대 밖으로 자유롭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제가 있던 부대는 차가 없으면 인근의 도시로 갈 수 없었습니다. 부대 밖에 있는 교회를 가야 하는데 차가 없었고, 저는 자동차 딜러로 일하는 제 교회 후배와 함께 중고차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버스 정거장 앞에 나와보니, 제 후배의 하얀 아벨라는 저를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사거리로 나가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2분 늦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용감하게 무단횡단을 해서, 제 후배의 하얀 아벨라의 문을 열고 탔습니다. 조수석에 앉아서, 그 친구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 순간 우리 둘은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얀 아벨라는 맞았는데, 모르는 사람의 차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운전자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신호대기하는데 갑자기 차 문이 열리면서 군인이 탔으니 말입니다.
우리 둘은 신호등 아래서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 운전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저는 바로 그 분에게 사과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저는 하얀 아벨라는 제 후배의 차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입견을 갖고 살면 손해보고, 실수합니다. 저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여기에는 한분도 안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후로 저는 차의 문을 꼭 닫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은 왜 생기는 걸까요?
사람들은 살면서 자기가 경험한 일들을 나름대로 해석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택시기사들에게 이런 선입견이 있습니다. “아침에 첫 손님으로 안경쓴 여자를 태우면 그날 장사는 망한다.”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인가요? 전혀 근거없습니다. 그냥 어떤 택시기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선입견과 편견은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만남을 어렵게 합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아멘.
*나사렛은 갈릴리에서도 시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너무 멀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종교적이지도 않았고, 1년에 한 번도 성전에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지역이었고,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혼혈인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4마일 정도 떨어진 바로 옆동네는 지포리였습니다. 로마는 이 지역에 갈릴리지역의 행정수도를 건설했습니다. ▶많은 로마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고, 이방의 우상들이 있었고, 이곳 사람들은 성경이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먹었습니다. 지포리는 타락한 이방의 도시였습니다. 나사렛사람들은 지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로마문화를 따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사렛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메시야가 나왔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의 의심은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야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출신이었고, 나사렛으로 이주한 가정의 자녀였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의 선입견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가릴 뻔 했습니다. 이처럼 선입견과 편견은 나를 제한합니다.(예. 기도. 예배) 나만 손해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 버리세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공평하게 바라보십니다.
*저는 평생 장로교인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장로교가 좋아서 장로교목사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다른 교단목사님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침례교목사님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장로교목사가 침례교목사가 되려면,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한 번 받으면 끝인데, 물의 양이 작다고 다시 받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미국와서 저의 선입견이 깨져버렸습니다. 저와 제일 가까운 목사님이 침례교목사님이에요. 만나보니, 이해하게 되었고, 장로교나 침례교나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나 침례나 영어로는 똑같은 단어더라구요. 만나면 해결됩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에 대해서 심각하게 오해했습니다. 그의 오해는 근거있는 오해였습니다. 빌립은 메시야를 거부하는 나다나엘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이끌고 나왔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만나면 해결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이 자리로 인도해 나오세요.
여러분들이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세요. 오해가 풀립니다. 만나면 해결됩니다.
*우리들의 예배시간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세요. 그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우리를 택하여 구원의 백성 삼아주신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마음속에 근심을 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굳게 믿고, 염려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믿는 에수님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빌립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거절해도 예수를 증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평생 살면서 한 명은 전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에게는 선입견과 편견이 있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주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3 염려를 버리고, 믿음을 가지라.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무엇이 변하셨나요? 우리가 예수를 가까이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변합니다. 많이 바뀌는 분들이 있고, 적게 바뀌는 분들이 있지만, 예수를 믿고도 안 바뀌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항상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도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의지한 후에, 저의 삶도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겁이 많고, 항상 염려와 근심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한 후, 훨씬 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보호를 받는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빌립을 좋아합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 항상 염려하고 걱정하는 저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6: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아멘.
*5천명이 넘는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빈들에 모였습니다. 말씀이 갈급했던 무리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고, 백성들은 배고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12제자 중 하나인 빌립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어디에서 빵을 구할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만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빌립의 마음에는 믿음보다는 현실의 문제가 가득했기때문입니다.
▶요6: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계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빌립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어디서”였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근심으로 답을 합니다. 그는 현실적이었습니다.
▶요6:7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아멘.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빌립의 마음속에는 가난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이렇게 고되고 가난한 것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권력을 가질 수 있고, 부자로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기대는 무너졌고, 가득한 불만으로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분명히 “어디서?”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대답은 ▶“어떻게?”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을 빵을 파는 곳도 찾기 어렵지만, 빵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돈이 없으셨습니다. 빌립의 마음에는 돈에 대한 근심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없이 맨날 기적을 바라며 사는 삶은 너무나 불안정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빌립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다가도, “어떻게?”를 의심합니다. 이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어?
How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방식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그걸 믿고 나가야죠. 그 방법을 다 설명해준다고 이해할 수나 있겠습니까? 이해하고 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과 이해는 다른 영역입니다.
▶금문교를 건너 보셨나요? 이 다리는 1937년에 세워진 다리입니다. 2.7km. 현수교로 만들어졌구요. 8.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케이블은 61500톤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거 이해하고 건너셨어요? 그냥 안 무너질 줄로 믿고 건너셨어요? 이거 다 이해하려면 다리 못 건넙니다. 믿으면 건널 수 있고, 건너면 이해할 수 있는거에요. How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빌립은 How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건 주님께서 하실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먼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처럼 늘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가? 의심하는 믿음없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되면서, 돈보다 든든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가까이 하면 변화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염려와 근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지역의 특징이 있습니다. 주택비가 너무 비싸서, 삶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빌립과 같은 우리들을 예수님께서는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기적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는 염려보다 더 큰 믿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을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주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 평생 한 명은 전도하자.
▶*여러분들은 전도해보셨나요?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1) 복음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소개하고 싶은 겁니다.
▶2) 쉬운 말로 잘 설명합니다. 잘 이해.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못 알아들을 어려운 말을 쓰지 않습니다.
▶3) 거절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전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지만, 그 사람이 믿고 안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것이 기쁘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이 좋은 예수님을 나만 알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느 수도원에서 새로 들어온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수도원장님이 새로 온 수도사가 얼마나 설교를 잘 하나? 시험하기 위해서 예배 때 설교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신참 수도사는 선배들 앞에서 설교하는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선배 수도사들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러자 신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선배들은 당황했습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설교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 같네요.” 라고 불평하며 설교를 안 했습니다.
다음 날 또 신참에서 설교를 시켰습니다. 신참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선배들은 서로 자기가 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신참은 “모두 다 안다는데, 할 필요없겠네요.” 이러는 겁니다.
수도원에서는 긴급회의가 있었고, 다음 날에는 수도사들이 반반 나눠서, 반은 모른다고 하고, 반은 안다고 하자고 했습니다.
신참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계획한 대로, 한쪽에서는 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참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러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장님은 이 신참의 설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복음이죠.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믿지도 않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하지도 않으면, 그게 복음입니까?
*빌립은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빌립의 머릿속에 친구 나다나엘이 생각났습니다. 그에게도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바로 나다나엘에게 가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아멘.
*나다나엘의 반응은 아주 냉소적이었고, 모욕적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유다지파 지역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지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의심은 아주 합리적이었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이런 반응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면전에서 망신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때문에 전도를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괜히 교회다니자고 했다가, 관계가 깨져서 서로 힘들어질까봐 전도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편하자고 남을 지옥으로 보내는 겁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의 말을 듣고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와서 보시오.”
이게 제일 좋은 전도 방법입니다. 그냥 와서 보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다니세요. 참 좋아요.” 무슨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싸움을 해서 이기면 뭐합니까? 그런다고 전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한 번 나와서 직접 한 번 보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전도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한인들이 많이 줄었고, 지금 천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많이 줄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인들 많이 있습니다. 길에서 한국말 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거든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이민 오면, 교회부터 찾아서, 교회의 도움을 받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알아서 교회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빌립처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빌립은 실망하지 않고,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했고, 나다나엘은 주님을 영접합니다. 빌립처럼 좌절하지 않고, 예수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3 만나면 해결된다.
*저는 군대를 공군장교로 근무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부대 밖으로 자유롭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제가 있던 부대는 차가 없으면 인근의 도시로 갈 수 없었습니다. 부대 밖에 있는 교회를 가야 하는데 차가 없었고, 저는 자동차 딜러로 일하는 제 교회 후배와 함께 중고차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버스 정거장 앞에 나와보니, 제 후배의 하얀 아벨라는 저를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사거리로 나가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2분 늦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용감하게 무단횡단을 해서, 제 후배의 하얀 아벨라의 문을 열고 탔습니다. 조수석에 앉아서, 그 친구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 순간 우리 둘은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얀 아벨라는 맞았는데, 모르는 사람의 차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운전자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신호대기하는데 갑자기 차 문이 열리면서 군인이 탔으니 말입니다.
우리 둘은 신호등 아래서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 운전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저는 바로 그 분에게 사과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저는 하얀 아벨라는 제 후배의 차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입견을 갖고 살면 손해보고, 실수합니다. 저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여기에는 한분도 안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후로 저는 차의 문을 꼭 닫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은 왜 생기는 걸까요?
사람들은 살면서 자기가 경험한 일들을 나름대로 해석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택시기사들에게 이런 선입견이 있습니다. “아침에 첫 손님으로 안경쓴 여자를 태우면 그날 장사는 망한다.”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인가요? 전혀 근거없습니다. 그냥 어떤 택시기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선입견과 편견은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만남을 어렵게 합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아멘.
*나사렛은 갈릴리에서도 시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너무 멀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종교적이지도 않았고, 1년에 한 번도 성전에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지역이었고,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혼혈인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4마일 정도 떨어진 바로 옆동네는 지포리였습니다. 로마는 이 지역에 갈릴리지역의 행정수도를 건설했습니다. ▶많은 로마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고, 이방의 우상들이 있었고, 이곳 사람들은 성경이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먹었습니다. 지포리는 타락한 이방의 도시였습니다. 나사렛사람들은 지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로마문화를 따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사렛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메시야가 나왔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의 의심은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야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출신이었고, 나사렛으로 이주한 가정의 자녀였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의 선입견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가릴 뻔 했습니다. 이처럼 선입견과 편견은 나를 제한합니다.(예. 기도. 예배) 나만 손해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 버리세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공평하게 바라보십니다.
*저는 평생 장로교인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장로교가 좋아서 장로교목사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다른 교단목사님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침례교목사님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장로교목사가 침례교목사가 되려면,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한 번 받으면 끝인데, 물의 양이 작다고 다시 받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미국와서 저의 선입견이 깨져버렸습니다. 저와 제일 가까운 목사님이 침례교목사님이에요. 만나보니, 이해하게 되었고, 장로교나 침례교나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나 침례나 영어로는 똑같은 단어더라구요. 만나면 해결됩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에 대해서 심각하게 오해했습니다. 그의 오해는 근거있는 오해였습니다. 빌립은 메시야를 거부하는 나다나엘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이끌고 나왔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만나면 해결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이 자리로 인도해 나오세요.
여러분들이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세요. 오해가 풀립니다. 만나면 해결됩니다.
*우리들의 예배시간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세요. 그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우리를 택하여 구원의 백성 삼아주신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마음속에 근심을 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굳게 믿고, 염려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믿는 에수님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빌립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거절해도 예수를 증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평생 살면서 한 명은 전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에게는 선입견과 편견이 있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주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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