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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목사의 홈페이지</title>
		<link>https://kimdongwon.net</link>
		<description>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목사 가족 이야기입니다</description>
		
				<item>
			<title><![CDATA[시편을 노래하자]]></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31]]></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시편은 성경 속 찬양집입니다. 모두 15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섯 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시편을 노래로 부르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전통적인 시편 선율이 대부분 단조라는 것입니다. 슬픈 시편도 단조로 부르고, 기쁜 시편도 단조로 부릅니다. 우리의 귀에는 애절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시편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시편(찬양시)이 있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시편(탄식시)이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시편(회개시)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감사하는 시편(감사시)도 있습니다.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기다리는 시편(신뢰시)이 있으며, 인생의 길을 가르치는 시편(지혜시),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시편(왕의 시와 메시아 시)도 있습니다. 시편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의 삶을 담은 노래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이스라엘 백성은 함께 모여 이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며 노래했고, 고난을 만났을 때도 함께 불렀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토로했고, 응답이 더딘 시간에도 하나님을 기다리며 노래했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노래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노래는 서로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신앙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시편의 노래는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는 마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지켜 주는 은혜의 통로였습니다.</p>
우리도 삶이 힘들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시편을 펼쳐 보십시오. 시편을 읽고, 시편의 말씀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 시편은 우리의 감정을 숨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가지고 나오라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오늘도 시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at, 01 Aug 2026 15:01: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진성이의 출장(7/20~26)]]></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30]]></link>
			<description><![CDATA[진성이가 한 달만에 출장으로 다시 집에 왔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7/6a6bc8a08deb02546427.jpg" alt="" />

진수는 어제 저녁 학교 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형을 만나려고 내려왔습니다. 진수는 요즘 의대2차원서 내느라고 바쁩니다.
공항에서 진성이를 태워서, 밀브레 살 때 종종 갔던 Crepevine에 왔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7/6a6bc8a096d482592146.jpg" alt="" />

7월 23일에는 진성이가 Meta 본사에 초대를 했습니다. 진수는 처음 가보는 겁니다. 이번 출장은 Burlingame 이지만, 진수를 위해서 시간을 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7/6a6bc8a098b411152596.jpg" alt="" />

Meta 캠퍼스는 놀이공원 분위기가 납니다. 물론 맛난 음식도 무료입니다. 진성이 덕분에 호강했네요.]]></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30 Jul 2026 14:01: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바보 3대]]></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29]]></link>
			<description><![CDATA[아버지는 머리가 참 좋으시다. 하루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오셔서 장부를 정리하신다. 빼곡히 적힌 숫자들을 암산으로 계산하셨다. 아버지는 계산기도 없고, 주판도 안쓰신다. 아버지는 기억력이 참 좋으시다. 14년 전 방문했던 미국 동네의 이름과 길을 기억하시고,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신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공부할 기회가 없으셨다. 국민학교 마치고 학교를 더 이상 다니시지 못하셨다. 공부하셨으면 참 잘하셨을 분이다. 남들은 아버지가 무식한 줄 알지만, 아버지는 똑똑하신 분이시다.

아버지는 내가 성적을 잘 받아오면 좋아하셨다. 본인이 교육을 많이 못 받으셨으니, 아들이 공부 잘 하면 얼마나 기쁘셨을까? 아버지는 내가 서울대에 가기를 바라셨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져버리고 연세대를 지원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내 아들 연세대 다녀요." 공부 머리는 아버지 머리를 닮은 것 같다.

얼마 전에 머리 자르러 미장원에 갔다. 미용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 동네 오빠 얘기를 했다.

"목사님. 우리 동네에서 제일 똑똑한 오빠가 있었는데, 연세대를 다녔어요. 연세대 다니는 사람은 목사님이나 저같은 사람과는 다르잖아요?"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하셨다.

'내가 바보 같아 보였나보다, 어쩌면 저렇게 확신하며 얘기할 수 있을까?'

미용사분이 미안해 할까봐 나도 연세대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목사로서는 이런 이미지가 좋다. 잘난 척 아는 척 하지 않고 산다는 거니까 말이다. 목사에게 가장 나쁜 말이 "저 목사 똑똑해 보인다."라는 말이란다. 선배 목사님이 일러주셨던 말씀이다.

얼마 전 작은 아들이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다가 아이 하나가 크게 다쳐서 머리에 피가 흘렀다. 작은 아들은 대학소방서소속 응급구조사(EMT)로 4년을 근무했다. 당시에도 EMT 킷을 휴대하고 있었고, 바로 다친 어린이의 머리를 치료해주고 병원으로 갈 수 있게 조치했다. 교회 대학부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쟤는 뭐하는 애인데, 능숙하게 환자를 치료하지?"

아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교회친구들이 다 내가 멍청한 줄 알아요. 맨날 웃기는 얘기나 하고 장난치고 다니니 제가 멍청한 줄 알더라구요."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아빠 닮아서 그런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라. 너나 나나 똑같은 대접받고 살고 있구나."

우리 3대가 모두 바보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 집안 전통인가?]]></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9 Jul 2026 16:14: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성경을 바르게 읽는 법-은혜주일-눅11:45 -260726]]></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28]]></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26-260726.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ZWyw5YXYfCQ?si=IjA1Af312U8yVR0G&amp;start=1230"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1633년 6월 22일 로마 종교재판소에는 이 성경말씀이 울려퍼졌습니다. 

▶전1:5 해는 여전히 뜨고, 또 여전히 져서, 제자리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다시 떠오른다. 아멘. 

▶*세기의 재판이라던 갈릴레오의 재판이었습니다. 그는 교황의 명령을 어기고 계속해서 성경과 다른 지동설을 가르치고 있었기때문입니다. 판사는 갈릴레오에게 지동설을 철회하고, 이와 관련된 책을 쓰지 않으며, 종신형에 처합니다. 갈릴레오는 판결을 받고 “나는 지동설을 철회합니다.”라고 반성했습니다. 그런데 법정을 나가면서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1992년 요한 바우로 2세 교황은 갈릴레오 재판이 잘못되었었음을 인정했고, 갈릴레오에게 죄가 없다고 반성했습니다. 그때 교황이 했던 말이 유명합니다. 
▶“성경 자체의 오류가 아니라, 성경을 해석한 사람들의 실수였다.”

*참 어리석은 재판을 했습니다. 그 재판의 근거가 성경말씀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잘못된 성경해석때문에 성경이 무시당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도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해석을 했을까요? 그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1/3 하나님의 말씀중심으로 살자.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는 철저하게 바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정의도 없었기때문입니다. 이상한 법을 만들고 형식만 지키는 그들의 모습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왜 화가 났을까요?

▶눅11:45 율법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 율법교사가 앉아 있었고, 그가 화를 내며 예수님께 항의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시면, 율법교사들도 모욕하는 겁니다.”라고 항의 했습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무슨 관계가 있었기에 바리새인들을 편들어주고 있는 것일까요?

*예전 성경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세트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에 여러 가지 이름과 역할로 나옵니다. 서기관, 율법학자, 율법교사, 랍비 등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들은 당시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판단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신학교 교수, 법률학자, 목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서기관은 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원래 서기관은 문서를 베끼고, 기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왕실의 일을 기록하는 일도 담당했습니다. 

*기원전 586년에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왕이 사라져버렸으니, 그 옆에서 기록할 서기관들도 자기 직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어버렸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성전중심에서 말씀중심으로 이동합니다. 성전은 무너져 버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지지 않기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래야 합니다. 먼저 교회중심의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들은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매주 성전에 나와서 같이 찬양하고, 말씀듣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여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여, 내 삶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 집짓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의 말씀에 구원의 길이 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평신도 운동입니다. 그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는 서기관과 율법학자라는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즉 바리새인은 종파였고, 서기관과 율법학자는 직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둘을 세트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고 묶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공격을 당하고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을 대표해서 반박할 사람은 당연히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큰 해석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경말씀만 가지고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학파에서 내려오는 전통을 추가하고, 그 전통대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전통이 더 중요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안식일에 닭이 달걀을 낳으면 그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니, 그 달걀은 먹으면 안 되지만, 다음 날 먹으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킨 것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해석이 장로들의 전통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해석은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 잘못을 우리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1)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전통은 자신이 속한 학파의 견해를 따라갔습니다. 우리들도 전통이 있습니다. 개신교의 장로교 전통에 있습니다. 아주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장로교인의 입장으로 보지는 마세요.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엉뚱한 해석을 하고, 엉뚱한 적용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본질보다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리새인들은 채소의 잎을 세어가며 정확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고, 우리도 본받아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세리처럼 여겼습니다. 정해진대로 안 바치면,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십일조의 본질이 뭡니가? 나를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본질을 잃어버리고 규칙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규칙을 잘 지키는 자신들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는 교만도 저질렀습니다. 

▶3) 자신들의 규칙을 추가했다. 
그들의 성경은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새로운 규칙들이 있으면, 자신들의 성경을 계속 늘려갔습니다. 자기들이 만들어낸 규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했습니다. 

▶눅11:4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도 화가 있다! 너희는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면서, 너희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아멘. 

*“내가복음”을 아시나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뒤에 있는 내가 쓴 내가복음입니다.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믿고 싶은 말씀을 내가 모아서 내 마음속에 갖고 있는 복음서입니다. 내가복음을 쓰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규칙들을 다시 점검해 보세요. 엉뚱한 규칙은 버리고, 말씀의 규칙대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문자에는 충실했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놓쳤다. 
처음에 나온 갈릴레오재판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전도서1:5은 솔로몬이 쓴 것입니다. 그는 해는 제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게 과학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이건 과학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영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닙니다. 제가 어릴 적에 성경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배웠습니다. 성경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완벽한 메뉴얼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성경 외에 다른 책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2006년 전남 순천 사는 김씨가 퇴근한 후 집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떤 엄마가 머리에 피를 흘리는 자기 아들을 업고 도와달라고 소리지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아이를 당장 병원까지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릅니다. 김씨 아저씨는 자신이 술을 마신 사실도 잊어버리고 자기 차에 아이를 태워서 병원으로 가다가 경찰에 붙잡힙니다. 김씨 아저씨는 처벌받아야 할까요?  판사는 이 남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운전했기 때문입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그 법의 정신입니다. 이 남자는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냈지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한 것이기에, 무죄를 받았습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법의 정신을 따지지 않았고, 자신들의 법이 완벽하다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한 구원의 메뉴얼입니다. 성경에 집중하세요. 말씀과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라. 

*어떤 남자 청년이 여자 친구에게 차였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성경을 폈습니다. 아무거나 찾아서 읽었는데. 
▶유다가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라 (마27:5) 
이런 당황스러운 말씀을 보고, 이건 아니다. 다시 뽑아서 읽어보자. 다음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눅10:37)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구약성경을 폈더니,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머뭇하려느냐?(왕상18:21)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청년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해석을 잘못했습니다. 아무거나 뽑아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적용하려고 했던 겁니다. 성경에 얼마나 다양한 말씀들이 있는지 아십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원수의 가축까지 다 죽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언제 어떤 말씀에 순종하시렵니까?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아셔야 합니다. 

▶1) 원래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를 확인하세요. 
청년이 첫번째 안타깝게 죽은 유다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죄를 지어도, 주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는데, 자살로 그 기회를 날려버린 유다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둘째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율법학자에게 주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말씀입니다. 
셋째 말씀은 하나님과 바알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엘리야의 말씀입니다. 

*원래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인지? 그 상황을 알아야,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문자그대로 이해할 말씀들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건 상황을 알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들은 분명한 상황을 알아야, 나에게 주시는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2) 한 절만 떼어 읽지 마세요. 
이 청년이 잘못한 것은 앞 뒤의 이야기는 보지도 않고 한 절만 떼어서 본 것입니다. 앞 뒤의 이야기를 조금만 살펴봐도 분명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이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원래 뜻은 우리가 바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능력은 감옥에서도 만족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가난해도 주님만 바라보고 만족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견딜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한 절만 떼어서 읽으면, 내 맘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성경을 꼭 문맥으로 이해하고 읽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세요.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요즘은 AI에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건 AI의 해석입니다. 어떤 다른 사람이나 신학자들의 해석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맞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일까요? 하나님께서 AI에게 주시는 말씀일까요?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 구절의 앞뒤 몇 절을 읽는 겁니다. 그래도 모르면, 다른 버전의 좀 쉬운 성경을 읽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예배시간에는 한글새번역성경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원래 쉬운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장로들의 유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보다 장로들의 전통이 더 중요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세요. 
어두운 연극무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조명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 어둠 속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조명이 비취는 사람들만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같은 말씀을 매일 읽어도 느끼는 것은 매번 다릅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매번 다른 것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잠시라도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세요. 주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성경을 통해서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성도님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봐야 할 말씀을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삶속에서 해석을 하며 삽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해석합니다.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마세요.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지금도 우리들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속에 책망받는 율법학자들이 나의 모습임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경험과 생각으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주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해주시옵소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을 믿습니다. 매일 성경보게 하시고, 바르게 해석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용기도 허락해주옵소서. 
내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게 해주시옵소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7 Jul 2026 18:32: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29]받은 은혜를 세어 보아라-은혜금요-민26:2-260724]]></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27]]></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24-26072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26: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 아멘. 

*모압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우상숭배하는 곳으로 초대했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을 풀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가 죄지은 남녀를 죽인 후에 전염병이 멈췄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구조사를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3 받은 은혜를 세어 보아라. 

*39년 전, 이스라엘백성이 시내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명령하셨습니다. 당시 출애굽한지 1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민1:3 너는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스무 살이 넘어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남자들을, 모두 각 부대별로 세어라. 아멘. 

*기준은 20세 이상이며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남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가는 길은 싸우면서 가야 하는 길이기에, 병력을 조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합지졸 피난민들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도망치듯이 나온 피난민들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을 비하했습니다. 자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고, 땅도 없는 떠돌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26: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머리 수를 세어라. 스무 살부터 그 위로, 이스라엘에서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조상의 가문별로 세어라." 아멘. 

*이제 광야생활 40년 째입니다. 가나안 땅을 건너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인구조사를 명령하셨습니다. 그 기준은 동일했습니다. 20살 이상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이스라엘백성들의 자존감은 낮아져 있었습니다. 땅도 없이 집도 없이 사막을 떠돌아다닌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인구조사 결과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1차가 603,550명, 2차가 601,730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험한 광야생활 속에서도 이스라엘백성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다 죽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광야세대로 이스라엘을 더 강하게 바꾸고 계셨던 것입니다. 

*은혜는 흐르는 강물에 새기고, 원수는 바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은혜는 잊고 원수는 기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헤아려 봐야 하는 겁니다. 인구조사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받은 은혜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세요. 매일 매일 잠들기 전에, 오늘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라. 

*인구조사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다윗도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을 때, 요압장군은 다윗을 말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분노하셨고, 이스라엘백성 7만명이 전염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커졌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이 정도 군사력이라면, 어떤 나라와 싸울 수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교만함을 벌하셨습니다. 

*1차 인구조사의 목적은 군인의 수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대단한 민족임을 알려주시기 원했던 것입니다. 

*2차 인구조사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땅을 배분하는 것이었습니다. 

민26:53 땅은 사람 수에 따라서, 그들의 유산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아멘. 

*땅을 주신다는 약속은 47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 약속을 붙잡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출애굽세대는 완전히 다 죽었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사람은 딱 두명 뿐입니다. 

민26:65 주님께서, 그들이 광야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그들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아멘. 

*여호수아와 갈렙뿐입니다. 광야에서 불평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그들의 자녀들만 살아남았습니다. 39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땅에 정탐꾼을 보냈을 때, 다른 정탐꾼들은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좋지만, 이미 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본대로 말한 사실이었습니다.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것을 봤고, 이 사실을 그대로 보고했지만, 거기에 중요한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믿음을 추가했습니다. 

*본대로 보고한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거기에 믿음을 더한 사람만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도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일까요? 살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기에 살인은 큰 죄가 아닙니다. 그건 인간들 사이에서 큰 죄일 뿐입니다. 

*믿음이 없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의 죄는 믿음이 없었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게 해주시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들의 자손이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둘만 가나안 땅을 살아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남고, 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남겨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에게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민수기 26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헤어려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광야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변함없는 주님의 약속을 의지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살지 말게 하시고, 믿음의 눈을 들어서 주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나의 환경보다 더 크신 주님을 볼 수 있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7 Jul 2026 18:30: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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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내 마음속의 바리새인-은혜주일-눅11:37 -260719]]></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26]]></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19-260719.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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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제가 청년때 다니던 교회에는 아주 보수적인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여자청년이 교회에 오면서 예쁜 머리삔을 하고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의 머리삔을 보고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면서 저렇게 화려한 머리삔을 하고 오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을 머리삔을 공개적으로 지적하셨고, 그 청년은 목사님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반항을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었던 저는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도대체 성경에 머리삔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냥 그 목사님이 만들어낸 규정아닌가요? 그 청년의 머리삔보다 목사님의 넥타이가 더 화려해보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아주 보수적인 분이었습니다. 성경을 그대로 지키는 분이었습니다. 주일날에는 절대로 돈을 한푼도 쓰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설교 중에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멀리서 오는 교인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교인은 주일날 버스비를 내고 먼 거리를 온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믿음대로라면, 버스타지 않고, 근처 교회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두 사건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어디서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이상한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목사님이 지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들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성경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법을 지켰다.

*사실 교회 안에 바리새인같은 믿음이 많습니다. 특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목사님들 중에 바리새인이 많습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을 책망하셨습니다. 성경에 너무 많이 나와요. 그런데 예수믿는 우리 중에 바리새인같은 믿음이 나온다니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바리새인을 좀 자세히 알아봐야, 우리도 바리새인의 모습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 바리새인들도 와서 같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식사초대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눅11:38 그런데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가 잡수시기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 아멘. 

*밥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합니다. 그건 너무나 상식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때에는 상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위생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은 물이 흔한 지역도 아니었습니다. 손닦지 않고 밥먹는 것도 흔했습니다. 

*원래 구약성경에 보면, 제사장들만 성전에 들어갈 때 손과 발을 씻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해당되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성경말씀 말고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시작했지만,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613개의 법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법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사이에 ▶중간기라고 해서 약 400년의 기간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은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바리새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바벨론포로기같은 시기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구체적으로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 잘 지키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도 잘 지켜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법규 중에는 특이한 법이 많았습니다. 안식일에 거울보면서 흰 머리를 뽑는 것은 안 됩니다. 안식일에 등불을 옮기면 안 됩니다. 안식일에 닭이 낳은 달걀은 먹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달걀은 어떻게 할까요? 다음날 먹는 것은 괜찮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성경에도 안 나오는 법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했던 법들입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게 믿음 좋은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 지킬 수 없는 법도 많습니다. 안식일을 안 지킨 사람은 돌로 쳐죽여야 합니다. 주일 안 지킨 사람을 똑같이 처벌할 수 있나요? 

*우리는 예수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봐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손을 닦는 것과 거룩은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식전에 손을 닦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법들이 나옵니다.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넘어가야 할까요?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이 모범이 되십니다.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답입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바리새인의 헌금에는 감사함이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헌금도 아주 철저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집 근처에 작은 텃밭을 일구고, 집에서 먹을 채소들을 키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채소들에서도 정확한 헌금을 했습니다. 

▶눅11: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아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헌금을 잘 했냐면요. 집에서 키우는 박하, 운향, 채소의 입사귀를 세면서 10개 중에 한개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헌금생활을 비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철저한 헌금생활은 칭찬하셨지만, 헌금을 하는 마음은 똑바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형식에 따라서 드리는 헌금이지만, 그 헌금에는 하나님의 정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실려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저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그 청년이 다니는 회사는 기독교인이 사장님이셨습니다. 사장님은 회사 수입의 10%를 헌금으로 드리는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그 청년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사장님이 벌써 십일조를 바쳤으니, 저는 안 해도 되죠?”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청년은 오해한 것이 있습니다. 

▶1) 헌금은 세금이 아니라 감사다. 
사장님이 먼저 십일조를 드렸으니, 자신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는 십일조가 세금이라는 생각이 있는 겁니다. 세금은 안 내면 어떻게 되나요? 나라에서 벌금물리고 잡아갑니다. 그 흉악한 알카포네를 감옥에 넣은 사람들은 경찰이 아니라 IRS였습니다. 탈세로 감옥에 넣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세금이 아닙니다. 내가 헌금을 안 하면 하나님께서 벌주신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안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헌금을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참 감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 처음 왔을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어떻게 이렇게 목회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헌금합니다. 나에게 헌금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립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헌금하는게 참 좋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헌금 10원 드렸어요. 어머니가 교회갈 때 10원씩 주셨습니다. 처음에 헌금할 때, 너무 적은 돈이라서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마음으로는 이 적은 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좋았습니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 지금도 그 마음과 그 감격으로 헌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헌금에 감사와 감격의 마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헌금은 포기다. 
헌금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그걸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헌금은 내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나 이거 없어도 삽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맨날 돈얘기와 돈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는 겁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과부의 헌금이 그렇습니다. 누가봐도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나오면서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했습니다. 과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헌금을 했을까요? “하나님 나는 돈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스스로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이 헌금입니다. 성도님들의 헌금에 포기의 마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헌금은 관계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를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이것을 보고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누가 더 컸을까요? 베다니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한 감사를 모아서 하나님께 헌금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헌금이 아까워집니다. 오늘 드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다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아까운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 확인하세요. 친한 친구에게는 귀한 선물을 주고도 아깝지 않습니다.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철저한 십일조는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금 걷어가는 세리가 아닙니다. 정확한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의 헌금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점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바리새인은 존경받고 싶어했다. 

*엘리자베스홈스는 2003년 19살의 나이에 스탠포드 대학을 중퇴하고, 혈액검사회사인 테라노스를 설립했습니다. 피 한 방울로 암을 비롯한 수백가지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키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여자 스티브잡스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월그린도 테라노스에 투자했습니다. 2014년 Fortune 표지에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로 실렸습니다. 그녀는 명예를 좇아서 높은 곳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회사는 사기였습니다. 세상에 그런 기술은 있지도 않았고, 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해서 가짜 결과를 발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90억 달러의 회사는 2018년에 해산되었고, 홈스는 지금도 텍사스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더 높은 곳을 향했던 홈스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눅11:43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아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는 책망을 받았지만,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보기에는 정말 믿음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마음속에 “바리새인들 처럼 열심히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을 무시하지 마세요. ▶바리새인들은 정말 철저하게 믿음생활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장사꾼, 농부, 기술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았던 평신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열심히 믿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더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 정도면 경건한거 아닌가?” “사람들도 나를 이렇게 존경하지 않나?” 백성들의 인사와 존경을 받으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존경을 받기 위해서, 시장에 나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골방에서 혼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시지만, 백성들은 존경해주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처음부터 교만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겠다는 신실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에 중독되어간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때 경호실장을 했던 차지철씨가 있습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의 집사님이었습니다. 엄청난 권력자였습니다. 1026사태때 총에 맞아서 돌아가셨죠. 그분의 어머니가 독실한 권사님이었습니다. 아들이 총에 맞아서 죽었으니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 어머니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아들을 죽인 건 목사님들입니다. 내 아들이 경호실장을 할 때, 예배 때마다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복주셨다고 칭찬만 했습니다. 그러니 교만해졌고 그 교만때문에 죽었습니다. 어느 목사님도 제 아들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경고한 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이렇게 죽고 나니, 교만해서 총맞았다고 합니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은 목사님들입니다.”

*무시당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잘 되서 존경받기를 원하고, 내 자식이 잘 되어서 존경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높은 곳을 향해 있습니다. 칭찬받고 존경받을 때 조심하세요. 그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칭찬과 존경에 중독되면, 나도 바리새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당연히 왕궁에 계실 줄 알았지만, 높은 곳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인 말구유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높은 곳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낮춰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낮아진 마음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집사가 되고, 안수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게 계급인 줄 아는 분도 있습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더 큰 사람이 될 수록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내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더 많이 섬기기 위해서 입니다. 

▶눅22:26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아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마음에 바리새인이 하나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합니다.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바리새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잘 점검하세요. 바리새인을 닮지 말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리새인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다짐하지만, 내 마음속에 바리새인이 들어 앉은 것을 회개합니다. 
말씀보다 형식과 전통을 더 앞세우고, 하나님의 눈보다는 사람의 눈을 신경씁니다. 하나님의 칭찬보다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합니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주시옵소서. 바리새인의 열심은 배워야 하지만, 그들의 형식은 따르지 말게 해주시고, 높은 자리를 탐태지 말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해 주시옵소서. 
나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2 Jul 2026 10:44: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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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28]달콤한 죄의 유혹-은혜금요-민25:1-2607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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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17-260717.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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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아멘.

*발락은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백성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셨고, 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건은 이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1/3 죄의 유혹은 달콤하다.

*모압왕은 왜 이스라엘을 파괴하려고 했을까요? 이스라엘이 너무 강했기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최소 60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근의 어떤 나라도 이만한 병력을 동원할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의 나라인 시혼왕과 옥왕을 물리쳤습니다.

*군사력으로 안 되니, 저주를 퍼부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모압왕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죄로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민25:2 모압 사람의 딸들이 자기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에 가서 먹고, 그 신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아멘.

*여기서 우리는 죄의 유혹이 어떤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잔치에 초대를 했습니다. 이 잔치가 어떤 잔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도 못하는 잔치에 참여를 합니다.

*그런데 그 잔치는 바알브올에게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바알 브올은 브올이라는 지방의 바알신이라는 뜻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제사에 이스라엘백성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건 함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죄짓게 하려는 함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으니,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같은 우상을 숭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의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죄의 유혹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죄인 줄도 모릅니다. 죄의 유혹은 달콤합니다. 학교에서 배워서 죄를 지어야 한다면 죄짓는 사람이 줄어들 겁니다. 죄지을 때 괴로우면 사람들이 죄를 피할 겁니다. 죄는 달콤하고, 죄짓는 건 너무 쉽습니다.

*시편1편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아예 같이 앉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죄의 자리를 피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죄를 단호하게 끊으라.

*이 일을 저지른 지파가 시므온지파입니다. 모세는 이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허락도 없이 이런 우상숭배를 저지른 것입니다. 모세는 단호한 명령을 내립니다. 이 일을 저지른 지도자들을 잡아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민25:6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 어귀에서 통곡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한 남자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멘.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죄의 맛을 알고 나니,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세가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영적 눈을 멀게 합니다.

민25:7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이것을 보고 회중 가운데서 나와, 창을 들고, 아멘.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가 이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창을 가져와서 죄짓고 있었던 남자와 여자를 찔러서 죽입니다. 참 잔인합니다. 비느하스가 이런 일을 하고 싶었을까요?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비느하스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에 대해서 분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 중에 퍼지던 전염병을 그 순간 그치셨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비느하스가 잘 했던 것이 무엇인가요? 삶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했다는 겁니다. 모압의 잔치에 가서 분위기 망치지 않으려고 죄를 지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았고, 결단했습니다.

*분위기 따라서 죄짓는 사람되지 마세요. 상황에 끌려가는 사람 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비느하스같은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비느하스에게 죽은 남자와 여자는 누구일까요? 성경은 정확하게 그들의 이름과 아버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25:14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은 그 이스라엘 남자는,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이다.
25:15 그와 함께 죽은 미디안 여자는, 미디안에 있는 한 가문의 종파 우두머리인 수르의 딸 고스비이다. 아멘.

*시므리와 고스비인데, 이 사건이 정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가문의 지도자 아들이었고, 미디안의 우두머리의 딸이었습니다. 모암과 함게 미디안도 이 일을 꾸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의 지도자를 처형하라고 했던 겁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지도자들이 백성을 죄악의 길로 인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잘못하면, 백성이 괴롭기때문입니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가 24,000명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는 바로 다음 장인 26장의 인구조사와 연결됩니다. 민수기 1장의 인구조사와 26장의 인구조사는 약 39년 차이를 두고 실시한 것인데, 놀랍게도 비슷한 인구입니다. 약 60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구조사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 지파가 있습니다.

*시므온 지파만 62%가 줄어듭니다. 37100명이 줄어버렸습니다. 다른 지파에서는 볼 수 없는 감소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시므온지파가 우상숭배사건에 관여했고, 그 벌을 시므온지파사람들이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과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우리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보호하심을 바라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채워주옵소서.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옵소서. 죄의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게 해주옵소서. 죄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정의 리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옵소서. 교회의 리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를 지켜주옵소서.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2 Jul 2026 10:42: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교만하면 망한다.]]></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24]]></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의 이야기입니다. 명장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함께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너무 낮게도, 너무 높게도 날지 말아라." 낮게 날면 바닷물이 날개를 적시고, 높게 날면 태양의 열이 밀랍을 녹이기 때문이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처음에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던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기쁨에 취해 점점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결국 태양의 열에 밀랍이 녹아 날개가 부서졌고, 그는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높은 자리에 세워 주시면, 어느 순간 우리는 "내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 능력으로 이룬 결과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겸손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는 성공보다 교만을 더 조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성경에도 같은 교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헤롯 왕은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주의 사자가 그를 치니, 그는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행 12:21-23). 헤롯을 무너뜨린 것은 권력이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다"(잠언 16: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공을 기뻐하시지만, 그 성공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크게 보게 만드는 것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p>
<p class="isSelectedEnd">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내 능력으로 오른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받은 자리입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도, 건강도, 기회도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p>
높이 올라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잊고 높아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교만함으로 날개떨어진 이카루스가 되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at, 18 Jul 2026 17:29: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누구 편에 설 것인가?-은혜주일-눅11:23 -260712]]></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16]]></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12-260712.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oC6Iy4Dzypk?si=5j1fkoQi7KQwcpk2&amp;start=1092"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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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산호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3살짜리 딸이 잠을 잘 자지 않고, 일어나서 울거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계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데려가겠다.” 엄마의 아버지는 교회 목사님이었는데, 목사님에게 얘기하니, “아이가 귀신에 들린 것이니 기도해서 귀신을 쫓아야 한다.” 12시간 동안 귀신을 쫓겠다고 퇴마의식을 했고, 아이를 짓눌러서 아이는 질식사했습니다. 3살짜리 아이가 잠투정하는 것을 귀신들렸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죽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를 잘못 이해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성경은 귀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1/3 사탄은 우리를 분열시킨다.

*귀신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귀신이 된다. 퇴마의식을 하면 귀신을 쫓을 수 있다. 한국말에는 “귀신같이 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 성경적으로 틀린 생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귀신은 사탄의 부하입니다. 사탄의 지휘를 받고 움직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무서운 영화에 나오는 귀신 모습으로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행동은 잘 안 합니다. 괜히 이런 행동으로 사람을 겁주면, 그 사람이 교회를 나가기 때문이랍니다. 

*대신 요즘 귀신들을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중독입니다. 게임 중독, 핸드폰 중독, 인스타중독, 유튜브중독, 마약중독. 이게 훨씬 효과적이기에 귀신들은 우리를 뭔가에 중독되게 합니다.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그리고 내가 지금 뭐에 중독되어서 나를 힘들게 하고, 가족을 힘들게 하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그걸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치료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침 기도에 대한 설교를 마치시고 나니, 동네 사람들이 귀신들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을 쫓아냈고, 그 사람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놀랐고,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눅11:1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 아멘. 

*바알세불은 파리의 왕이라는 말인데, 귀신의 왕인 사탄의 별명이었습니다. 귀신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순히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 예수님이 사탄의 능력으로 귀신에게 명령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던 것입니다. 

▶눅11: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고, 또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어디든 싸우는 나라와 가정은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도 질서가 있는데,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으면, 귀신끼리 싸우는건데 말이 되냐는 말씀입니다. 

*싸우면 망합니다. 싸우는 교회도 망하고, 싸우는 가정도 망합니다. 망하지 않으면 아주 이상한 교회가 되든지, 불행한 가정이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싸우게 합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원래 미국장로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84년 미국장로교의 언더우드선교사님이 한국선교를 시작하셨고, 하나의 장로교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의 역사는 아주 부끄럽습니다. ▶서로 자신의 신학이 옳다고 주장하며 또 분열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장로교단의 교파는 300개 정도가 됩니다. 

*우리가 속한 ▶미국장로교회도 분열의 역사가 있습니다. 1861년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남부지방과 반대하는 북부지방의 교회들이 분열되어, 북장로교와 남장로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122년이 지난 1983년에 북장로교와 남장로교가 화해했습니다. 서로가 옳다고 싸우고 분열했던 것을 회개하고 지금의 미국장로교로 합쳤습니다. 성령님께서 분열된 교회를 하나되게 해주셨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이간질시킵니다. 사탄의 전략은 항상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에 항상 넘어갑니다. 사탄은 조용하게 나에게 속삭입니다. ▶“네가 옳아. 네가 억울해. 그러니 싸워.”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이 방법으로 아담과 하와를 범죄시켰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하나님와 인간을 분열시켰습니다. 

▶*반대로 성령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성격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고향이 달라도,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하나됨은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분열은 너무 쉽습니다. 하나됨은 노력해야 되는 겁니다. 성령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탄은 분열을 원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됨을 원하십니다. 이 기준을 갖고 내 마음속의 소리를 분별하세요. 사탄의 말에 넘어가지 말고,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라.

*CPA 회계사 청년 기도사건

*하나님의 능력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해서 됐겠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연히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왜 확실한 증거를 주시지 않으실까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건 우연일거야 라고 생각하면 또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거야. 라고 하면 또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만 건강하고, 예수믿는 사람들만 부자로 살고, 예수믿는 사람들만 복을 받으면, 세상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겠습니까? 아무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안 하십니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모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의 인과관계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나? 하나님! 저에게 힘을 주셔서 이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했던 복을 주신 것인가?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힘으로 귀신을 쫓았다고 수군거렸고, 예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를 제시해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증거를 보여 주면 믿나요? 다른 의심을 할 겁니다. 

▶눅11: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온 것이다. 아멘. ㉨그,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은 각주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글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번역을 했고, 영어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8장에 나옵니다. 히브리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려고 할 때, 이집트왕 파라오는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히브리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소중한 저임금노동력이었기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이집트에서 일할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집부리는 바로왕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10가지 재앙을 이집트땅에 내리셨습니다. 재앙이 있을 때마다 바로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구나! 내가 굴복해야겠다.” 그때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비슷하게 흉내를 냈습니다. 그들은 이것은 하나님의 재앙이 아니라, 그냥 자연현상입니다. 즉, 우연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거에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바로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졌습니다. 

*세번째 이 재앙은 마술사들도 따라할 수가 없었는데, 그때 마술사들이 했던 말이 바로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이 재앙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겸손히 머리숙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응답을 주실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더 큰 믿음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이구나! 감사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예수님의 편에 서라.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고,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잡아들여서 강제수용소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 900만명 정도가 있었는데, 600만명이 강제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3명 중에 2명이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거의 다 살아남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덴마크였습니다. 1943년 나치는 7800명의 유대인들을 체포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보는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정부는 이 일을 숨기지만, 교회는 매주 모이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었기때문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 목숨을 살리는데, 중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조건 살려야지요. 
1943년 10월 3일, 덴마크 전역의 교회에서 똑같은 목회서신이 낭독되었습니다. 
“인종이나 종교를 이유로 유대인을 박해하는 곳에서는, 기독교 교회는 반드시 항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국가 권위에 순종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상 정의를 지켜야 하며, 필요하다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이 설교를 들은 교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유대인들을 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집 다락방에 유대인을 숨겨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병원에 가짜 환자로 등록시켜줬습니다. ▶어부들은 밤에 작은 어선을 몰고 스웨덴까지 바다를 건너가서 유대인들을 피신시켜줬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을 정부가 조직한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것입니다. 결국 덴마크 유대인들의 95%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 교인들은 중간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를 배신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눅11:23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의심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반대하는 사람입니까?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지. 예수님께서는 반대하는 사람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할 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사람은 기회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중간지대에 서서 적당히 예수를 따르며 살려고 하는 이들을 경고하십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때, 교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은혜받고 신학교가라.” “은혜받고 아프리카 선교사가라.”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는 진심이 있습니다. ▶“좀 적당히 믿어라.” “그냥 구원받고 천국갈 정도만 믿으면 되는거 아니야?” 너무 가까이 예수님을 따라가면 피곤한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는 겁니다. 내 영혼의 구원이 달려 있는데, 어떻게 중간쯤에서 대충 믿으면서 살 수 있습니까? 천국과 영생을 진짜로 믿는다면, 대충 예수믿고 구원만 받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과 대결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구경을 하러 갈멜산에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그 한심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상18:21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아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사이에서 이긴 신이 내 신! 이라고 생각하며, 중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경고했지만, 백성들은 아무 대답도 안하고, 중간에서 누가 이기나? 이긴 신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은 지금 예수님께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 능력이 어디서 온거야? 저 예수라는 사람이 귀신보다 쎈거야? 아니면 예수도 사탄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은 거야?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구경하려고 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적당한 안전거리를 두고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하세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편이 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편이 되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들에게 천국의 말씀을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두가지 소리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되라하시고, 사탄은 분열을 꾀합니다. 성령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하나되게 해주옵소서. 
우리가 사는 삶이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항상 인정하며 살게 하시고, 내가 사는 공간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는 게을러서, 항상 적당히 예수님을 따르고, 대충 봉사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옵시고. 주님의 편에 설 수 있게 해주옵소서. 
나의 생명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22:26: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27]말하는 나귀, 눈먼 선지자-은혜금요-민22:28-260710]]></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15]]></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10-260710.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 민22: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아멘. 

*성경에 동물이 이야기한 경우가 3번 나옵니다. 오늘 민수기 22장에서 나귀가 말을 하구요. 창세기 3장에서 뱀이 아담에게 말하구요. 요한계시록 8장에서 독수리가 말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제대로 사람과 대화를 한 경우는 나귀와 뱀이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 갑자기 말을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오늘 그 당황스러운 말씀 속으로 들어갑니다. 

1/3 기도하고 순종하라. 

*발람은 발락에게 그냥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락을 따라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나요? 돈으로 일이 안 될 때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돈을 더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발람은 기도해보겠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해본다는 말은 이상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당장 거절하지 못해서 기도해본다고 하고, 다음에 거절하면서, “기도해보니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기도한다고 하면 정말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핑계로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발람은 더 기도해보겠다고 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더 기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바꿔보겠다고 합니다. 기도해보겠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왜 하는 겁니까? 하나님께 내 뜻을 아뢰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셔야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려고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시면 어떻게 할겁니까? 알았으면 내 뜻을 접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순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영의 눈을 열라.

민22:23 나귀는 주님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을 벗어나 밭으로 들어갔다. 발람은 나귀를 때려 다시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아멘. 

*하나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발람을 죽이려고 서있었습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육적인 것들과 만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천사를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귀는 천사를 봤고, 천사가 칼을 들고 있는 것도 봤습니다. 나귀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발람은 그것도 모르고, 말 안 듣는 나귀를 때렸습니다. 나귀는 이제 벽으로 붙어서 발람이 발을 자쳤습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나귀를 지팡이로 더 때렸습니다. 

민22:28 그 때에 주님께서 그 나귀의 입을 여시니, 그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였다. "제가 주인 어른께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리십니까?" 아멘. 

*나귀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하나님께서 나귀의 눈과 입을 열어주셨습니다.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의 눈은 스스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열리는 겁니다. 하나님께 영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세요. 

*모든 것에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들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를 보기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영은 열어주시고, 선지자라는 발람의 영은 열지 않으셨을까요? 발람의 영을 열지 않으신 것이 아니고, 발람이 자신의 영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의 눈이 닫히게 될까요?

1) 욕심이 영을 가린다. 

*발람이 돈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천사도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영 눈이 멀어버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소리를 듣고, 발락을 멀리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멀어버리니, 하나님이 안 보였던 것입니다. 정욕으로 뭔가를 구하면, 영의 눈이 멀어버립니다. 내 욕심으로 뜻을 정하고 나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영의 눈을 뜰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교만이 영을 가린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임지를 옮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다 말렸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옮기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 목사님이 가신다고 한 교회는 목사님과 전혀 맞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분명히 그 교회가면 어려움을 당할텐데. 걱정하며 말렸지만, 고집을 부리며 가셨고, 얼마 후 교회에서 큰 고난을 당하고, 교회에서 쫓겨나셨습니다. 그 목사님 마음에는 아마도 교만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교만함입니다. 

*교만하면 영이 가려집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고, 내 능력만 거대하게 보입니다.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분노가 영을 가린다. 

*발람은 나귀가 이상행동을 할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그런데 그의 눈에는 돈밖에 안 보였습니다. 성공하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만한 큰 돈이었습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나귀를 팹니다. 그가 세번이나 화를 내는 순간, 영의 눈은 가려졌습니다. 

*화가 나고, 분이 나서, 싸우고 나면 기도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냥 내 분에 싸여서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도 않고, 따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화나게 하고 사고치게 합니다. 화나는 상황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나와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의 눈이 열릴까요? 스스로 영의 눈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계룡산에 가서 10년 동안 도를 닦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눈은 원래 육의 세계만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이걸 누가 열어주셔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만이 영의 눈을 열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보여달라고 기도하세요. 시리아의 대군이 엘라사를 잡기 위해서 도단으로 내려옵니다.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벌벌 떱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너무나 마음이 평온합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게하시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게하시는 영의 눈을 뜨고,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천군 천사들을 보게 됩니다.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육의 사람들과 다투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목숨걸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영을 열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영과 육을 창조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들의 영의 눈을 열어주옵소서. 세상 속에서 땅만 바라보며 삽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봐야하지만, 땅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며 삽니다. 용서해주옵소서. 
발람처럼 영의 눈이 닫힌 사람이 되지 말게 해주옵소서. 욕심, 교만, 분노로 가려진 우리의 눈을 열어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으시면 볼 수 없는 줄 믿사오니, 우리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22:24: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왜 기도해야 할까?-은혜주일-눅11:9 -260705]]></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13]]></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05-260705.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RTJ5J_yUVLQ?si=6kwjqe-tSgPu3GmD&amp;start=1191"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제가 신학교 입학할 때는 경쟁률이 대단했습니다. 6대 1정도 되었습니다. 참 특이한 시기였습니다. 1번 시험쳐서 합격하는 학생은 별로 없었고, 제가 아는 분은 10년 동안 불합격해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수험생들이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고, 모두 열심히 기도하고 시험을 치는건데.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신학교합격은 성적순일까요? 기도순일까요? 신학교합격을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해야 할까요? 기도를 더 해야 할까요? 합격을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하는게 낫지만, 바른 목사가 되려면 기도를 더 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고, 기도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기도는 간절해야 한다. 

*주기도문을 알려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왜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사셨던 팔레스타인은 먹고살기 힘든 땅이었습니다.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배불리 잘 수 있는 날은 행복한 날이었고, 저녁을 먹지 못하고 주린 배로 잠에 드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손님이 오면 주인은 당황스럽습니다. 지금처럼 미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그 시대에는 어느 날 갑자기 손님이 오는 것은 당연하고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집안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분주해집니다. 

*당시에는 마을에 식당이 흔한 것도 아니었고, 여관은 정말 귀했습니다. 내가 어딘가로 여행을 가게 되면, 아는 사람의 집에 갑자기 방문해서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돕게 되면, 나도 언젠가 그의 집에 가서 신세를 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손님대접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손님대접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면, 그 손님은 여기 저기 다니면서 나에 대한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겁니다. 그러면 나에 대한 좋은 소문 덕분에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고, 나의 안전이 보장됩니다. 반대로 손님대접을 잘 못했다는 소문이 돌게 되면, 여기 저기 내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를 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더운 어느 날,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손님 3명을 대접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하나님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눅1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아멘. 

*손님을 대접할 빵이 없었던 주인은 어쩔 수 없이 마을에 있는 친구를 밤 늦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빵 세 개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작은 빵 세개는 성인 한 사람의 식사량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기도의 원칙 두가지가 나옵니다. 
▶1) 아무 때나 기도하라. 
기도는 아무 때나 내가 급할 때 하는 겁니다. 이 주인은 빵이 필요할 바로 그때 친구를 찾아갑니다. 밤중이었다고 합니다. 이건 자기 친구에게도 미안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친구 사이에는 연락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필요할 때 바로 그 시간에 하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내가 기도하는 교회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바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한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기도하며 제출해야 합니다. 사고를 당해서 정신이 없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아무 때나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라. 
그 늦은 밤 시간에 남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그런데도 남의 집을 찾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내 친구이기때문입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습니다. 관계가 있으니 문을 열어주고, 빵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답하시기 어려우시죠? 하나님과 정기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 씩 대화하고 계신가요? 관계가 있어야 부탁을 할 것 아닙니까? 평소에 기도하지 않다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하나님께 나갈 때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부끄러움이 있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는 대화이고, 기도는 관계입니다. 내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보다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친구가 더 친한 친구입니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친구보다 매주 만나는 친구가 더 친한 친구입니다. 기도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기도하는 바른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눅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아멘. 

*참 귀한 기도의 말씀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안 주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가 필요한 것을 아시면서도, 주시지 않으시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게 하시는 것일까요?

▶*기도의 시작은 궁핍함입니다. 나에게 뭔가 부족해야, 내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몸이 아프지도 않고, 먹을 것은 넘쳐나고, 자식도 성공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 부족한 것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을 왜 찾을까요?

*아굴에 잠언에 보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이 누구냐? 라고 헛된 소리하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내 삶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갑자기 빵이 필요했던 그 사람처럼, 우리들도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 부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호입니다. 기도하라고 주시는 신호입니다. “나 너랑 할 말이 있다.”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시면, 알아서 스스로 기도하시겠습니까? 

*미국 처음 유학나왔을 때, 저는 참 생각이 없었습니다. 전세값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 정도면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차사고, 필요한 것 구입하고 나니 3달 만에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우리 가족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죠?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가족 먹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고, 우리 교회에서 섬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부족함을 주셨고, 그것때문에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경제적인 부족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뭔가 부족하고, 여러분 마음에 간절함이 생길 때,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눅11:10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아멘. 

▶*기도는 3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구해야 합니다. 구한다는 것은 입으로 나의 부족함과 나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알려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고백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부족함을 기도로 아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찾아야 합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입으로 고백하고 구하고 나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도우실까? 기대하면서 찾아다녀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돌아다녀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만 일하시게 하면 안 됩니다. 

▶*세번째로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밤 늦게 친구의 집을 찾아간 그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사람은 친구에게 거절을 당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 밤에 내 가족들을 다 깨우고, 먹을 것을 찾아서 너에게 줄 수 있겠니? 거절당하는 것이 기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열심히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1단계로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아무 것도 안 해도 응답이 온다고 착각합니다. 기도는 3단계까지 다 해야 합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신다. 

*기도응답을 받고 신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했던 것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응답받게 되면 정말 너무 기쁩니다. 기도하고서 힘 빠질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도 못하고, 한참 기다리만 할 때는 힘이 빠집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하나님께 열심히 저의 필요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막힌 시간에 기막힌 방법으로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실 때도 있지만, 아닐 때 정말 많습니다. 제가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전에는 이런 응답이 오면, 저는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을 통해서, 저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주셨기때문입니다. 지나고 보면, 제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제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었으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지금은 제 기도가 원하는 대로 응답되지 않으면, 저는 실망하지 않고,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또 무슨 계획이 있으실까?” 하나님께서 더 크고 좋은 계획을 세우신 줄 믿고 더 기대하고 감사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입니다. 

▶눅11: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11: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아멘. 

*뱀이나 전갈을 구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기서 뱀, 전갈은 나를 망하게 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나를 망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뱀과 전갈을 구합니다. 그게 나를 망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필요없는 것들은 과감히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으로 바꿔서 응답해주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욱 필요한 것들로 바꿔서 응답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응답받지 못했을 때, 우리들은 실망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못 받을 때 실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보다도 더 나를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아멘.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그런데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 ▶“성령”이라는 겁니다. 왜 갑자기 결론이 “성령”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어떤 군인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대령인데, 장군진급을 못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진급을 위해서 장군 집에서 식모처럼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가서 새벽기도를 하면 별을 달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교회가서 새벽기도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기도를 해보니,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을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이 새벽기도 중에 자신의 기도를 듣다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남편이 별을 못달아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분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을 바꾸셨던 것입니다. 

*남편 별다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소원때문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다가 너무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최고의 복이었고, 최고의 기도응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부족함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할 말씀이 있으셔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며,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기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부족함과 불편함이 기도의 부르심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의 자리로 나와서 기도하게 하시고, 내가 사는 곳을 기도의 집으로 변화시켜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기대하며,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평소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쌓게 하시고, 매일 매일 기도하는 신실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응답이 내 삶에 최고의 응답인 것을 고백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계획을 바라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6 Jul 2026 20:24: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26]하나님은 후회가 없다-은혜금요-민23:19-260703]]></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12]]></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7-03-260703.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아멘.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백성들을 두려워했고,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락의 음모를 어떻게 막으실까요?

1/3 순종이 제사보다 중요하다.

*발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였을까요? 그렇다면 왜 모압땅에서 혼자 이러고 살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에 반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민23:1 발람이 발락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필요하니, 이 곳에다가 제단 일곱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에게 필요하니, 이 곳에다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발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발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제단 일곱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거기에 수송아지 일곱, 숫양 일곱을 준비하게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한 것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제물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다른 신들은 이러면 뜻을 바꿨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럴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심청이를 인당수에 왜 제물로 던지나요? 왜 처녀만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신에게 좋은 뇌물을 바치면, 신이 마음을 바꾼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그깟 제물에 넘어가는 게 신입니까? 그건 사람만도 못한 것 아닌가요? 우상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욕망으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좋아하실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제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제물보다 더 귀한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기도해야 변한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상담을 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죽으라고 기도해도 되나요? 그래서 제가 그 분에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당신의 기도를 바꿔주실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기도가 뭘까요? 기도 안 하는 겁니다. 뭐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바꾸시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변화될 것도 없습니다. 평생 미워하며 사는 겁니다. 

민23: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저주하며, 주님께서 꾸짖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꾸짖으랴! 아멘. 

*발람은 오직 돈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주가 나오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발람이 욕심때문에 저주하는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축복의 기도로 바꿔주셨습니다. 

*기도해야 변합니다. 지루하더라도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세요. 오늘 이 기도의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시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은 후회가 없다.

*하나님과 사람은 다릅니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사람의 특성을 기대합니다. 그러면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무엇이 다르실까요?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아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저주기도에 실패한 발람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특징으로 하나님을 짐작합니다. 헌금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시겠지. 하나님께 돈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정같은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사람이상의 것을 기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여기 거짓말하는 분 계신가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의아니게 거짓말을 합니다. 내 맘이 바뀌어 버린 겁니다. 그때는 된다고 했다가, 지금은 안 된다고 하는겁니다. 거짓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이 변하지 않으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 다릅니다. 인간의 후회는 몰라서 후회하는 겁니다. 이 사람이 이럴 줄 몰랐다는 겁니다. 이 차가 이럴 줄 몰랐다는 겁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샀을 겁니다. 하나님의 후회는 다 알고 후회하십니다. 사울이 그럴 줄을 알고도 왕으로 세우셔서 기회를 주신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배신에 마음아파하시고, 후회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후회는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후회하게 하지 마세요. 나에게 주신 기회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영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계획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님의 자리에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주님께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심을 믿습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돈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거역했던 발람처럼 살지 말게 하시고, 변함없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진리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6 Jul 2026 20:22: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시간의 매듭을 만드세요]]></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04]]></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요즘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참 좋습니다. 가끔은 "천국도 이런 날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67도 안팎의 온화한 기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부 지역은 폭염과 폭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유럽 역시 기록적인 더위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런 날씨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p>
<p class="isSelectedEnd">우리 교회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물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덥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지만, 더워서 예배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좋은 환경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p>
<p class="isSelectedEnd">하지만 사계절 내내 비슷한 날씨가 계속되는 데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보니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무심히 지나치기 쉽습니다. 날씨가 늘 비슷하니 세월의 흐름에도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오늘은 7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2026년 신년예배를 드리며 새해의 소망을 나누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지나간 반년은 더욱 소중합니다. 우리의 귀한 인생 가운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이 시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난 반년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올해 하나님 앞에서 세웠던 계획은 꾸준히 실천하고 계십니까? 바꾸기로 결심했던 삶의 습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까?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계십니까? 감사는 은혜를 발견하는 눈이며, 감사하는 사람은 더 많은 감사의 제목을 얻게 됩니다.</p>
<p class="isSelectedEnd">시간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쉼 없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7월은 달력이 한 장 넘어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다짐하는 <strong>세월의 매듭</strong>이 되어야 합니다.</p>
<p class="isSelectedEnd">매듭이 있는 밧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매듭이 있는 밧줄은 잡고 올라가기도 훨씬 쉽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영적인 매듭이 필요합니다. 한 해의 중간 지점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부족한 것은 바로잡고, 감사할 것은 더욱 감사하며, 새로운 결심으로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p>
남은 2026년의 반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에서 의미 있고 보람 있게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삶으로 채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at, 04 Jul 2026 12:25:4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주기도문]시험과 악-은혜주일-눅11:4 -260628]]></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02]]></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6-28-260628.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LUCuKhyVmKE?si=zxBorhCd_xtZI3pk&amp;start=1292"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일본의 어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1남 2녀를 둔 부부입니다. 그런데 이 집의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23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이 부부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23년 전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내는 세 아이들을 돌보느라고 너무 바빠졌습니다. 남편은 그게 너무 서운했습니다. 자신이 아내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고, 그날부터 아내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걱정이 된 아들18살이 이 내용을 방송국에 알렸고, 방송국의 개입으로 23년 만에 남편은 아내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말 안 하고 산 23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후회하며 말했습니다. 참 답답하고 한심한 이야기이지만, 이 남편은 마음에 시험이 들어서, 23년 동안 스스로 지옥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시험거리가 많습니다. 하루도 시험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마다 내 마음은 흔들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주기도문을 통해서 그 답을 찾기를 축원합니다.

▶1/2 말씀과 기도로 시험을 이기라.

▶눅11:4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아멘.

▶*시험에 든다. 라는 표현은 시험으로 이끌려 들어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시험이나 유혹에 굴복하여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일본남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소홀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애 3명을 키우는 게 쉬운 일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편은 그 일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23년 동안 아내를 무시하는 죄까지 짓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시험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분나쁘다”라는 말 대신에 “시험에 들었다.”라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하면 내가 속이 좁은 사람 같지만, 시험에 들었다고 하면 상대방이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기때문입니다. 내가 화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기분이 나빠도, 시험에는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작은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고생만 하던 사모님이 큰 병에 걸리셨습니다. 교인들은 사모님을 치료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얼마 뒤 사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사모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니 교인들이 목사님께 이제 그만 돌아가신 사모님은 잊어버리고, 재혼을 하시라고 권합니다. 목사님은 몇 번을 사양하다가, 교회를 위해서도 사모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믿음 좋은 여자분과 재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을 시험에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사모님 돌아간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재혼을 했기때문에 시험에 들었다는 겁니다. 목사님에 대한 별 이상한 소문들이 돌기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목사님이 저럴 수 있냐? 저런 목사에게 설교 못 듣겠다. 목사가 어떻게 저렇게 냉정하냐?

*여기서 시험에 들었다는 말은, 저럴 줄 몰랐다. 기분이 나쁘다. 실망했다. 이런 표현인 것 같습니다. 유독 이런 시험에 잘 드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 안 하면 세상에 별이 별 것이 다 시험거리가 됩니다. 기도하고 마음을 담대히 하면 아무리 큰 일도 시험거리가 아니라, 기도거리로 변하는 줄을 믿습니다. 기도로 마음을 담대하게 하세요. 기도로 영적인 근육을 키우면 시험이 시험거리로 변하지 않고 기도거리가 됩니다.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1) test: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입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믿음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학교다닐 때 시험을 쳐보셨을 겁니다. 학생이 시험을 치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다시 정리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시험칠 때는 아무 것도 못 보게 합니다. 자기 실력으로만 시험을 쳐야 합니다.

*시험은 학생들을 괴롭히려고 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이 공부해서 더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치는 것이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을 칠 때 잘 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의도를 잘 아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왜 이런 문제를 내셨을까? 를 생각하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학교에서 시험치고 나서 이런 말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공부 못 하는 학생들입니다.
“선생님, 이거 안 배운 건데요.”
“이걸 어떻게 풀라고 낸거야?”

*수학시험 문제입니다. 철수에게 초콜렛이 50개 있다. 그 중에 35개를 먹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학생은 “당뇨”라고 적었습니다. 수학선생님의 의도를 잘 몰랐던 겁니다.
생물시험 문제입니다. 개미의 몸을 세부분으로 나누면 어떻게 되나요? 정답은 머리, 몸통, 꼬리입니다. 학생은 답을 “죽는다.”라고 적었습니다. 생물선생님의 의도를 잘 몰랐던 겁니다.

*시험을 잘 치는 방법은 시험문제를 낸 선생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무슨 의도로 문제를 내셨는지를 생각하면, 시험을 더 잘 치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시험문제는 누가 내실까요? 하나님께서 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시험을 주실까요? 내가 미워서 주실까요? 내가 망하라고 주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시험을 이기고 성장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시험을 풀때는 그 문제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제대로 풀 수 있는 줄 믿습니다.

▶2) temptation: 이 시험은 사탄이 주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넘어지기를 바라며 주는 시험입니다. 때로는 유혹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사탄은 예수님을 3가지로 시험했습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탄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험을 당할 때는 이게 test인지 temptation인 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힘든 일이 나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구별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참 지난 후에, 우리는 그게 test였는지? temptation이었는지? 알 수 있는 날이 오게 됩니다. 일단 시험이든, 유혹이든 우리는 이기고 봐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라.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3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더 멋진 말씀을 하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이기는 본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아멘.

*시험을 당할 때, 성경을 보세요. 그런데 시험을 심하게 당하면, 성경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성경을 암송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매달 나오는 이달의 말씀을 암송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시험에서 구원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2)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아멘.

*시험에 드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은 미리미리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쉽게 마음이 상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쉽게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기도로 시험을 극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이길 수 있을까요?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시험은 내 힘으로도 이길 수 있다!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정말 자기 힘으로 시험을 이깁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마음에 교만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내 힘으로 시험을 이겼다. 저 집사는 어런 시험도 못 이기나? 이런 교만이 쌓이게 되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끝내 이 교만한 사람때문에 온 가족이 다 힘들어집니다. “너는 이것밖에 안 되냐?”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면 큰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시험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세요. 시험을 당할 때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세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시험에 들면 마음이 악해진다.

*어느 가난한 교회에 멋쟁이 사모님이 계셨습니다. 사모님은 예쁜 옷을 사입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돈없으니 옷을 사지 말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사모님이 새옷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목사님은 화가 났습니다.
목사님: “여보, 또 사탄의 시험에 넘어갔군요. 사탄이 유혹을 하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해야지요!”
사모님: “그렇게 했어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랬는데 사탄이 뒤에서 이렇게 속삭이는거에요. ”사모님. 뒷 모습도 참 예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옷을 샀습니다.“

*이 사모님이 뭘 잘못했을까요? 시험은 말씀과 기도로 이겨야 합니다. 계속되는 마지막 주기도문은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는 분명히 나옵니다.

▶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아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기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믿음이 생깁니다. 역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내 힘과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자꾸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내 마음이 단단해지기 시작합니다. 왜 자꾸 이런 시험이 나에게 몰려오나? 염려와 걱정을 하게 되고, 그것이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마음이 부드러운 분도 있지만, 고생을 많이 해서, 마음이 단단해진 분도 있습니다. 더 나가서 마음에 악이 생기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 말로도 “마음에 악이 받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시험을 잘못 이기게 되면, 우리 마음에 악이 생깁니다. 시험을 못 이겨서 악이 생기고, 시험을 이겨도 악이 생깁니다.

*제가 회사를 다닐 때, 넉넉했습니다.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이기도 했고, 저 혼자 그 돈을 썼으니,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회사생활은 힘들었지만, 돈이 넉넉하니 참 좋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서 부목사로 일했을 때, 저는 결혼해서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주시는 월급은 제가 회사다닐 때 받았던 월급의 1/3정도였습니다. 너무 살기 힘들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아멘.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는 넉넉한 집안에서 풍요롭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종이 된 이후에, 그는 가난했습니다. 자신의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것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고 나니 자신의 가난때문에 시험들지 않았고, 악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만족하는 법을 배우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껴서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껴쓰면서도 만족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때문에 행복.

*우리는 밥을 굶기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것을 못 먹어서 불행해 합니다. 주님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악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국에 있는 작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는 아파트상가에 있는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려워서 노회의 보조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월급도 제대로 줄 수 없었지만, 교인들은 목사님께 항상 미안해 하며 김치와 반찬을 해서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는 뉴스가 나왔고, 교회는 수십억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이 변했습니다. 교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고, 교인들은 시험에 들어서 하나 둘 교회를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로님과 목사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을 다 내보내고, 보상금을 혼자 다 차지하려는 악한 계획을 품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계획을 알고, 죽어도 교회 안 나간다. 목사가 나가라. 서로 악에 받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시험에 들어서, 마음까지 악해진 것입니다.

▶*계속되는 시험으로 우리의 마음이 악해집니다. 마음이 악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악에서 구원하소서. 내 마음에 악이 넘칠 때, 나 스스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악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 수록, 내 몸은 그 악한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게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매일 매일 나의 마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시험에 든 것은 없는지? 처음에 나온 일본 남편처럼 마음의 시험을 악으로 이어서 23년 동안 지옥같은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 매일 내 마음을 자기 전에 점검해보세요. 내 마음에 섭섭함이 있는지? 내 마음에 원망이 있는지? 내 마음에 불평이 있는지? 그 마음을 정리하세요.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을 보여드리세요. 그리고 치료함을 구하세요. 그래야 마음에 악이 가득차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오늘은 어떤 시험을 당하셨나요? 시험은 계속되는 작은 영적 전투입니다. 한번 전투에서는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전투를 지게 되면, 영적 전쟁에서 지게 됩니다. 내가 당하는 것이 시험인지? 유혹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이기세요.

▶*시험이 나를 죽이지 못하면, 나의 믿음이 강해집니다. 말씀과 기도로 시험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못 이길 시험은 주님께서 피할 길을 주셔서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예수가 함께 하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이 찬양대로 예수와 함께 시험을 이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 귀한 기도문인 주기도문을 배웠습니다. 이 기도는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넘쳐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늗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춰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들의 삶에는 날마다 크고 작은 시험이 넘쳐납니다. 사람때문에 시험당하고,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시험당하고, 건강문제로 시험당합니다. 어떤 시험이 찾아 오든지, 시험때문에 죄짓고 범죄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나의 힘과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시험을 이기게 해주시옵소서. 시험을 이겼다고 교만하지 말게 하시고, 시험에 넘어졌다고 낙심하지 말게 해주옵소서. 오직 은혜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사도바울처럼 주님 안에서 자족하는 믿음을 허락해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서 건지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9 Jun 2026 22:22:0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25]저주는 효과가 있을까?-은혜금요-민22:1-260626]]></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01]]></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6-26-260626.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민22: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아멘. 

*이스라엘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 이스라엘과 먼 친척인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친척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입니다. 모압왕은 발락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두려워서 그들을 저주하려고 합니다. 이 저주는 성공할까요?

1/2 저주는 효과없다. 

*이번 주에 피파랭킹 4위인 영국과 75위인 가나가 경기를 했는데, 0-0으로 끝났습니다. 영국에는 세계 최고의 골잡이인 헤리캐인이 있었는데, 단 한 골도 못 넣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가나에서 아주 유명한 주술사가 있는데, “수요일의 악마”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주술사가 케인을 저주했고, 그래서 한 골도 못 넣었는겁니다. 이제 케인이 골을 넣도록 풀어줬으니, 앞으로 골을 넣을 것이고. 이번 월드컵은 포르투갈이 우승할거라고 했답니다. 
과연 이 주술사의 저주때문에 케인은 골을 못 넣은 걸까요?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과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고, 발람이라는 제사장을 불러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저주란 무엇일까요?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있을 것을 신에게 빌거나 바라는 일 이라고 합니다. 빌어먹을, 벼락 맞을. 영어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서 쓰는 저주의 말이 있습니다. God damn it. Go to hell. 

*저주는 효과가 있을까요? 발락은 많은 돈을 발람에게 주고, 이스라엘백성을 저주해달라고 합니다. 발락은 분명히 저주는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저주는 여러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땅이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술먹고 자기 아들을 저주했습니다. 배가 고프셨던 예수님께서는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 저주의 말씀은 그대로 무화과나무에게 이뤄졌습니다. 

*이래서 저주가 성경에 있고, 그 저주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가계저주론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알콜중독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맨날 매맞고 자랐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와 똑같이 삽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이 사람들은 집안에 저주가 내려서 그렇다고 설명합니다. 귀신들이 계속해서 집안을 저주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고,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하는데,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동서남북기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귀신들을 향해서 예수님으로 명령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주의 힘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저주의 힘이 있다는 거에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발람과 뭐가 다릅니까? 

*저주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주가 힘이 있으려면, 그 사람의 말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한대로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말은 능력이 없습니다. 가나 주술사는 말의 능력이 없어요. 어쩌다가 그의 말이 맞은 것일 뿐입니다. 다시 헤리캐인은 골을 넣을 겁니다. 그러면 그 주술사가 맞나요? 

*저주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주가 힘이 있으려면, 어떤 신이 저주의 말을 듣고, 그 기도대로 응답을 해야 합니다. 설마 하나님께서 내 저주를 들으시고, 그 저주대로 복수해주실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렇게 안 하십니다. 그러면 다른 신이 대신 복수해줄까요? 다른 신은 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그걸 믿으면 우상숭배입니다. 

*저주는 딱 하나의 능력이 있습니다. 남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부면서, 내 영혼이 더러워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저주의 말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을 더럽게 하고, 내 영혼을 파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저주의 능력을 믿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능력의 말씀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저주의 말을 틀어막으세요. 그 말로 내가 망하게 되기때문입니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 때, 내 입을 조심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축복이 사명이다. 

민22:6 이제 오셔서, 나를 보아서 이 백성을 저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너무 강해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나는 그들을 쳐부수어서 이 땅에서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이는 복을 받고, 그대가 저주하는 이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멘. 

*발람은 무척 유명했던 제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복을 빌면 복이 내리고, 저주하면 저주가 내렸다고 합니다. 대단한 능력자였을까요? 뒤에 보면, 그는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인게 들통이 납니다. 나귀도 보는 하나님의 천사를, 발람은 못 봤습니다. 

*성경에도 저주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저주는 무엇일까요? 저주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밖에 있는 것도 저주입니다. 

*가장 큰 저주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보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저주입니다. 저주받지 마세요. 반대로 복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보호 안에 거하는 것이 복인 줄로 믿습니다. 

*저주의 말은 하지도 마세요. 어차피 그 저주는 그 사람에게 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저주는 내 입에 머물고, 내 영혼을 더럽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저주하면 내가 그 저주를 받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겁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해도, 그 저주의 말은 그 사람에게 가지도 않고, 내 입에 머물고, 내 생각에 머물면서, 내 영혼만 더럽게 한다는 겁니다. 저주는 나를 파멸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주는 우리의 사명이 아닙니다. 발람은 아무리 저주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축복의 말로 바꿔버리십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어서, 다른 이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줘야 합니다. God bless you. 이 말을 하셔야 하는 겁니다. 

롬12: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미운사람을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면, 내 영혼만 더러워집니다.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나만 손해보는겁니다.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는 마음을 갖고 사세요.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원수를 축복하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쁘게 보시고, 복주실 줄 믿습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만 축복하지 마세요. 내 원수도 축복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 살던 우리들을 주님의 품으로 부르시고, 복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받은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 거하느 ㄴ것인 줄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는 종종 저주의 마음을 품습니다. 저주의 말을 마음에 담고, 입으로 내뱉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축복의 사람을 세워주옵소서.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축복하고, 내 마음을 미움으로 더럽히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9 Jun 2026 22:18: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자랑의 결과는 쓰리다]]></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9]]></link>
			<description><![CDATA[<p class="PDq2pG_selectionAnchorContainer">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은 히스기야 왕은 한때 믿음의 사람으로 칭찬받았습니다. 그러나 회복 이후 그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자신을 문병하러 온 바벨론 사절단에게 왕궁의 보물과 성전의 모든 보물을 보여주었습니다(열왕기하 20장). 작은 나라의 왕으로서 강대국의 사신들에게 "우리도 이 정도는 된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p>
<p>히스기야는 착각했습니다. 바벨론은 멀리 떨어진 나라였고,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훗날 바벨론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 되었고, 바로 그들이 히스기야가 자랑했던 성전의 보물들을 약탈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자랑의 결과는 참으로 쓰렸습니다.</p>
<p>사실 자랑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이들은 "난 이거 있는데, 너는 없지?"라며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상대를 비교합니다. 자랑과 비교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하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마음은 언제든 튀어나와 관계를 망치고, 때로는 인생까지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p>
<p>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강점이나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린도후서 11:30)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라디아서 6:14)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했습니다.</p>
<p>돌이켜 보면, 나 자신의 잘남을 자랑해서 오래 남는 유익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업적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십자가의 은혜는 영원합니다.</p>
<p>오늘도 나를 드러내기보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랑의 결과는 항상 쓰리지만,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와 은혜가 남습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4 Jun 2026 08:42: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경계선에 선 예배자들]]></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8]]></link>
			<description><![CDATA[<p>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크게 흔든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레위인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p>
<p>북이스라엘의 첫 왕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남유다로 돌아설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새로운 예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p>
<p>문제는 레위인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가문이었기에 여로보암의 새로운 종교 정책에 협력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여로보암은 레위인들을 제사장 자리에서 내쫓고, 대신 일반 백성들을 세워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p>
<p>그때 많은 레위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과 땅을 버리고 남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생계와 재산보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영적 이주였습니다.</p>
<p>이런 이야기는 성경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7세기 초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국가가 강요하는 종교 제도 속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p>
<p>1620년, 청교도들은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메이플라워호</span></span>를 타고 위험한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부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혹독한 겨울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끝까지 믿음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운 공동체는 훗날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미국</span></span>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p>
<p>또한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p>
<p>1945년 이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배가 제한되고, 많은 성도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p>
<p>그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고향과 재산을 뒤로한 채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붙잡은 것은 돈도 땅도 아니라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가난해질 수는 있어도 신앙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p>
<p>이북에서 내려온 성도들은 남한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한국교회 부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영락교회</span></span>와 같은 피난민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p>
<p>역사를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레위인들, 메이플라워의 청교도들, 그리고 북한에서 내려온 성도들은 모두 눈앞의 안전과 재산보다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익숙한 삶을 떠나야 했고, 미래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할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p>
<p>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레위인들은 유다의 신앙을 지키는 기둥이 되었고, 청교도들은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놓았으며, 월남 성도들은 한국교회 부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p>
<p>오늘 우리도 선택의 순간을 만납니다. 편안함을 따를 것인가, 믿음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역사는 믿음을 위해 손해를 감수한 사람들을 기억합니다.</p>
<p>하나님을 먼저 선택한 사람들은 길이 보였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걸어간 광야의 길을 새로운 축복의 길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레위인들과 청교도들, 그리고 월남 성도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입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21:44: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차이와 차별]]></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7]]></link>
			<description><![CDATA[한국에는 유독 여자대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조선시대의 교육관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자가 왜 공부를 하느냐”, “글을 배우면 버릇이 없어진다”, “집안일은 어머니에게 배우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딸이 글을 배우면 시집을 못 간다는 말까지 있었고, 이로 인해 여성 교육의 문은 매우 좁게 닫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여자학교를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들과 함께 공부시키는 방식으로는 부모들이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만을 위한 교육기관이 필요했고, 그것이 오늘날 여자대학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886년, 스크랜튼 선교사가 이화학당을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한국 여성 교육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는 “학생은 결혼할 수 없다”는 학칙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여학생들이 중도에 자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자가 공부하면 시집을 못 간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결혼을 시키는 조혼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학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규정을 두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차이를 근거로 차별을 만들어 왔습니다. 동양인과 서양인, 흑인과 백인의 차이가 인종차별로 이어졌던 것처럼, 성별의 차이도 불평등으로 굳어져 왔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여성도 장로가 될 수 있고 목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왔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도 여성 장로님이 계시고, 노회 안에도 여성 목사님들이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가족 간의 편애나 문화적 차별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 속에 습관적인 차별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질서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공평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20:06: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아버지에게 배운 성실함]]></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6]]></link>
			<description><![CDATA[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은 중국음식점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장사를 하시다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할 수 없겠다며 가게를 정리하셨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셨고, 아버지는 고무줄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자동차 타이어 안에 들어가는 튜브를 잘라 만든 고무줄을 들고 이곳저곳 다니며 파셨습니다.

어린 저의 마음에는 두 가지 감정이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아버지의 일을 말하기가 창피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며 땀 흘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는데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을 하며 사셨습니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지 입에서 “힘들다”, “아프다”라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저는 성실함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셨지만 생색내지 않으셨습니다. “내 덕분에 먹고 사는 줄 알아라”거나 “내가 이렇게 고생하니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자녀들은 이미 부모의 수고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공부 문제로 저를 심하게 꾸짖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주로 어머니께 혼이 났지, 아버지께 야단맞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 성적에 관심이 없으셨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고, 성적표를 성경책에 끼워 가지고 다니시며 자주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사랑은 잔소리가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만 89세가 되셨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시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자주 영상통화를 하지만, 멀리 미국에 사는 장남으로서 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깨닫습니다. 좋은 아버지를 만난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서 성실함과 책임감을 배웠고, 말보다 삶으로 보여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며,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기도합니다.

참 좋은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20:06: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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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화를 어떻게 잘 풀 것인가?]]></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5]]></link>
			<description><![CDATA[살다 보면 누구나 화를 참을 수 없는 순간을 겪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거나, 억울한 말을 듣거나, 내 뜻과 전혀 다르게 일이 흘러갈 때 우리는 쉽게 분노합니다. 중요한 것은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 화를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바르게 다스리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화를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속에서는 이미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말투가 날카로워지고, 표정이 굳어지고, 생각이 반복된다면 이미 화가 자리 잡은 것입니다. 화를 부정하면 더 깊어지고 오래 갑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정직입니다.

둘째, 그 화를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분노한 상태로 사람을 찾아가면 말은 쉽게 칼이 되고, 상대방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제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 분노를 다스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성격이 급하고 감정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정리되고 나면 상대방을 향한 말도 부드러워집니다.

셋째, 하루가 가기 전에 화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화난 상태로 밤을 넘기면 마음속에서 감정은 더 굳어지고, 상대에 대한 오해는 더 깊어집니다. 나뿐 아니라 상대도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완벽한 해결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먼저 연락하고, 먼저 한마디를 건네는 용기가 관계를 살립니다. 작은 화해의 시도가 큰 회복의 시작이 됩니다.

넷째, 끝내 풀리지 않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갈등을 내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복수의 생각이나 미움의 시나리오를 마음속에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붙잡고 있으면 결국 내 영혼이 먼저 상처를 입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게 일하실 것을 믿고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분노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것에 지배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정하고, 기도하고, 화해하고, 맡기는 이 길을 걸을 때 우리의 마음은 지켜지고, 관계는 회복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20:05:5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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