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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목사의 홈페이지</title>
		<link>https://kimdongwon.net</link>
		<description>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목사 가족 이야기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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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는 주인이 아닙니다-은혜주일-눅17:9-26110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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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1-01-26110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n5JCLNTa2QM?si=wj8rWEejlEGmVR3Z&amp;start=1270"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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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의 리치몬드 디스트릭에 있는 한 주택의 모습입니다. 건물이 검은 색이고, Black House 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1966년 안톤 라베이가 여기서 사탄교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철거되었고 일반 콘도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사탄교에서는 어떤 신을 숭배할까요? 사탄교의 신학은 ▶'I-Theism'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사탄교에서는 사탄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나를 숭배하라고 가르칩니다. 사탄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이고,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살면,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믿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종들입니다. 성도님들은 이 사실에 동의하시고, 이렇게 살고 계신가요? 우리는 왜 종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겠습니다.

▶1/2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행복하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말고, 하루에 7번이라도 용서하면 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종의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눅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아멘.

*농사를 지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종종 교회 주차장에 난 잡초를 뽑습니다. 길게 자란 가지를 가위로 자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작업을 하고 나면, 손이 후들후들 떨립니다. 겨우 30분 잡초를 뽑고 나니,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하겠습니다. 농사 짓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요?

*하루 종일 땡볕에서 밭을 갈고, 하루 종일 벌판에서 양을 치고 돌아온 종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수고한 종입니다. 그 종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수고한 종들을 보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자상한 주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칭찬을 합니다. “오늘 수고했다.” 그리고 그 종들은 하루 종일 집에서 아무 일도 안 한 주인의 밥상을 차려야 합니다. 주인과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종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든지, 주인이 먹고 남긴 음식이 있으면 먹는 겁니다. 그러나 종들은 이런 일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종의 자세가 부족했습니다. 제자들은 대접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대접을 즐겼습니다. 마을에 가서 전도를 할 때, 동네 사람들이 제자들을 자신들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으면 화를 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종의 자세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꾼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종은 그냥 종입니다. 높은 종? 귀한 종? 이런 건 없습니다. 종은 그냥 노예입니다. 높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나도 종은 그냥 종입니다. “종놈”이라는 말은 있지만, “종님”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들은 자신이 “종님”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섬김받은 것을 자랑합니다.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좋은 섬김을 받습니다. 돈이 많으면 좋은 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섬김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겼는가? 예수믿는 사람은 섬김받기 보다, 남을 섬기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십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할까요? 종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1) 종은 책임이 없다.

*주인이 종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주인에게 그 명령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래도 종은 주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종은 이해할 수 없지만, 주인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합니다. 이렇게 하면 일을 망칠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종은 그냥 주인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어차피 일을 망쳐도 책임은 주인이 지기 때문입니다.

*종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종은 다만 충성을 다합니다. 우리 인생에 책임져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책임을 어떻게 다 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종이 되십시오. 그러면 삶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복한 종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종으로 살면 행복하다.

*어느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회에 가니 점심 때 스시가 나오더라구요. 고급 부페에 간 느낌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도 했는데, 저녁은 갈비가 나왔습니다. 너무 음식이 대단해서 비결이 뭐나고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한 숨을 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두 그룹이 있는데, 자기들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우기면서 음식으로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 그룹보다 우리 그룹이 더 잘한다고 자랑하는 거랍니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힘있는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면 그 교회는 망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종입니다. 주인이 많은 교회는 불행합니다. 종이 많은 교회는 행복합니다.

*가정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서로 주인노릇하려고 하면 그 집안은 항상 싸우다가 망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잡으려고 하고, 부모는 자녀를 잡으려고 합니다. 서로 주인되려고 하면 망합니다.

*반대로 서로 종이 되려고 하면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가족의 종이 되면 행복합니다. 어머니가 가족의 종이 되면 행복합니다. 그런 부모님을 통해서 자녀들이 종되는 법을 배우면 그 집은 행복해집니다. 남을 종으로 부리면 그곳은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스스로 자신을 낮춰 다른 이의 종이 되면, 그곳은 천국을 바뀝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종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종은 순종합니다. 종이 많은 곳은 행복합니다. 이렇게 행복한 종들을 주님께서는 기쁨의 천국잔치에 부르십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라는 착각하지 마세요.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행복한 주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한다.

*제가 박사논문을 쓸 때 있었던 일입니다. 지도하던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한 가지를 약속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초안을 가져올 때, 절대로 타이핑해서 준비해오지 말고, 연필로 대충 써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초안을 대충준비해오라고 하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계속해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초안은 말그대로 초안입니다. 학생의 생각을 교수가 듣고, 잘못된 것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자기 생각대로 많은 준비를 하고, 타이핑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옵니다. 이런 학생들은 교수가 수정을 하면 좌절하고 화를 냅니다. 이런 학생들이 제일 많이 과정에서 탈락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지도교수님과 많이 다퉜습니다. 그 목사님은 지도교수님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은 인용하는 것마다 모두 각주를 달라고 했는데 목사님은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논문을 썼습니다.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기가 섬기던 교회 교인들이 논문을 읽어보니, 여기 저기 표절한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목사님은 그 논문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나셨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교수님이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었구나!

*학생에게는 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좋은 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종에게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님들의 자세와 종의 자세를 비교해보세요. 그리고 종의 자세로 바꿀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종은 주인의 명령을 듣는다.

*종은 맘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명령을 듣습니다. 듣고 나서 이해할 수 없으면, 주인에게 다시 묻습니다. 일을 하다가 막히면 다시 주인에게 묻고 도움을 청합니다. 자기 생각을 주인에게 말하며 주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끝내 종은 주인의 결정에 따릅니다. 어차피 이 일을 책임질 사람은 종이 아니라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만 맞는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시간입니다.

*매일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며, 저녁 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명령없이 내 맘대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말도 듣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맘대로 일하는 종이 있다면, 그 종이 충실한 종이겠습니까? 매일 매일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충성된 종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명령을 들으세요. 용서하면서 살아라. 사랑하면서 살아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아라.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매일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충성된 종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종은 순종한다.

*저는 2005년에 미국에 박사학위를 공부하러 왔습니다. 제 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박사학위가 있으면 더 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계획했습니다. 이민교회의 목사로 사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가 처음에 부목사로 왔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담임목사님이 떠나시고, 제가 교회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벌써 21년 전 이야기입니다.

*저는 무척 계획형 인간입니다. 계획이 없으면 안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계획을 뒤집어 엎으셨을 때, 저는 좌절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계획은 불완전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더 좋고 완전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습니다. 제가 꼼꼼하게 세운 계획이 무너질 때, 오히려 기대하며 하나님을 봅니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종의 자세임을 믿습니다. 당장은 힘들지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복된 종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종은 충성을 다한다.

▶눅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아멘.

*신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큰 은혜를 받았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지금도 목회를 하면서, 제 마음에 새기고 사는 말씀입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힘겹게 일하고, 하루 종일 들판에서 양을 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종은 당연히 주인이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 자체가 문제였던 겁니다. 종은 충성을 다할 뿐이지, 주인에게 감사를 바라지 않습니다.

*종은 피곤하다고 자신의 책임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시험드는 이유가 뭡니까? 맨날 나만 봉사한다. 사람들이 나를 안 알아준다. 사람들이 내 말을 무시한다.

*종은 다른 사람을 보고 일하면 안 됩니다. ▶종은 주인을 바라보며 일해야 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전에는 그럴 때 나를 위로해줄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종은 주인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항상 변하니까요. 그러나 변함없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종의 마음을 다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종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종은 충성을 다합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즐겨 쓰는 유익한 종이 되십시오. 그러나 스스로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게 종의 자세입니다. 정말 아무 짝에 쓸데없는 무익한 종이 되지는 마세요. 저 사람없으면 우리 교회 어떻게 하냐? 라는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러나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을 종으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세요.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65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공부를 아주 잘했고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 여자 의사가 부족했기에 미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1890년 25살의 나이에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 조선땅으로 들어옵니다. ▶2년 뒤 같은 의료선교사인 윌리엄 제임스 홀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환자를 치료하다가 전염병에 걸려서 2년 뒤에 죽습니다. 로제타는 미국으로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옵니다. 1897년 로제타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사상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아파서 죽어도 남자의사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의사만 여자환자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몰려드는 여자환자들 때문에 혼자 병원을 운영할 수 없었기에 조선의 여자들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 중에 김점동이라는 여자와 같이 일을 합니다. 로제타는 김점동을 미국에 데려와서 의대를 보냅니다. 김점동은 미국 볼티모어의대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의사가 됩니다. 박에스더의 이야기입니다.
로제타는 남편이 죽은 조선 땅에서 44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충성을 다했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세우게 됩니다.
▶로제타는 왜 미국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조선땅에서 그렇게 많은 수고를 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믿었기때문입니다.
1951년 로제타는 마지막을 이런 유언을 합니다. 내 남편과 딸이 묻혀있는 한국에 묻어주세요. ▶그녀는 지금 양화진선교사묘역에 묻혀있습니다.

*종은 좋은 주인을 만나야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참 좋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내 고집과 내 계획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세요. 매일 매일 기도하며 주인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세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을 주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주님의 일꾼 삼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 살기 보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려고 합니다.
내 뜻을 앞세우고, 내 수고를 인정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교만함을 용서해주옵소서.
우리들의 교만함 때문에 가정이 병이 들고, 교회가 병이 듭니다. 나의 교만함을 내려놓고, 종의 자세를 갖게 해주옵소서.
매일 기도함으로 주님의 명령을 듣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해주옵소서. 주신 명령에 충성을 다하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종이 넘치게 해주옵소서.
우리에게 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2 Nov 2026 13:47: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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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명기3]광야에서 주신 은혜-은혜금요-신8:4-2610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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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30-261030.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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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인용하셨던 말씀이고, 오늘 불렀던 찬양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이 말씀을 주셨을까요?

1/3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신명기는 광야세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났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왜 가나안 땅에 가야하는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매일 매일 생활에 지쳐있는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걸어온 40년의 길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걸어온 길은 사막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시나이반도를 방랑하며 살았습니다. 시나이반도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사막입니다. 거기서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떻게 40년이나 먹고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시 우리들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언제 미국 오셨나요? 그때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오셨나요? 혹시 그때 가져온 물건 중에서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 있나요?

*미국에 처음 와서 제가 세탁소에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오래동안 안 찾아가는 옷들 중에서 필요한 곳을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애들 사이즈는 없었고, 집사람과 제 사이즈는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른 옷들은 소매가 맞지 않아서, 접어서 입었습니다. 그렇게 옷을 얻어서 입었지만, 입을 옷이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민자의 삶은 치열합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해야 하고, 늦게까지 알을 해야 합니다. 고단한 삶을 나 혼자 산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시고, 도우셨습니다. 이민 생활 중에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신다.

*우리가 사는 이민생활은 광야와 참 많이 비슷합니다.
1) 이민을 나오면 내가 의지하던 것이 끊어집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 가족과 친척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리소스들도 많았습니다. 어디 가면 뭐가 있는 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민을 나오니,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 나오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 중에 이민 나오지 않았으면, 예수 안 믿었을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낮추셨고, 미국에서 우리들을 낮추셨습니다.

2) 이민을 나오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합니다. 한국에서도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와서 먹고사는 걱정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처자식이 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라서 한국말을 잘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그게 능력이 아니더라구요. 제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인 것을 미국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믿을 수 없고,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8:2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아멘.

*광야에서 우리는 겸손함을 배웁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광야에서는 내 모든 지식이 무너집니다. 공부한 것이 의미가 없어요. 광야생활은 새로 배워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루 하루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서 그들을 광야에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생활을 했기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왜 왕궁을 떠나서 광야생활을 해야 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고 나니, 그때에야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민생활을 통해서,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미국이란 땅을 예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광야같은 미국생활 속에서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은혜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이 땅에서 주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예수님께서도 인용하셨던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고,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대부분의 훈련은 먹고 사는 훈련이었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기도하게 하셨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동물을 훈련시킬 때, 먹을 것으로 훈련시킵니다. 돌고래를 먹을 거로 훈련시켜서, 돌고래 쑈를 하게 만듭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것을 가지고 훈련을 시킵니다.

*좀 치사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도 먹을 것으로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그런데 치사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먹을 것을 훈련시키시는 것인 압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의 기도제목이 대부분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기도입니다. 돈문제로 기도하고, 사업과 직장으로 기도하고, 가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광야가 없고,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찾았을까요? 나 잘난 맛으로 교만하게 살면서 다른 이들만 괴롭게 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낮추셔서 주님의 종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더 귀한 일꾼으로 쓰십니다.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뜻으로 우리들을 미국땅으로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아무 것도 없이 이 땅에 왔던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노력덕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광야에서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하시고, 주님의 쓰임을 받는 종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해주옵소서.
나의 인도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2 Nov 2026 13:45: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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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종교개혁주일] 나부터 바꿉시다(요시야의 종교개혁)-은혜주일-왕하22-26102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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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25-261025.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sk7AZWEnB0k?si=D5K2qAxsDxQVG3r9&amp;start=1649"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우리는 개혁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개혁가였습니다. 당시의 잘못된 종교를 개혁하셨고, 기독교라는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개혁자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곳에서 무엇을 개혁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겠습니다. 

▶1/3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놀랐던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선한 사람들만 모인 곳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만나본 제일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신학교 사람들이었습니다. 신학교에 가면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시골교회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 신학생이 자기 소개를 이렇게 했습니다. 이 분은 제주도 출신입니다. 자기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라고 소개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작은 교회를 지키는 장로님이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목사 못된다. 목사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데, 너는 착해 빠져서 거짓말 한 번 못 하는 녀석이 어떻게 목사가 될래?”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아주 거짓말을 잘 하는 목사님이었답니다. 
그 신학생은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훌륭한 목사가 되었고, 평생 몽골선교사로 살게 됩니다. 참 존경스러운 제 신학교 동기생의 이야기입니다. 

*거짓말쟁이 목사님에게서 이렇게 훌륭한 선교사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이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뼈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목사의 말주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들의 죽어가는 심령과 가정과 교회가 변화될 수 있을 줄을 믿습니다. 

▶왕하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요시야는 8살에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므낫세였습니다. ▶55년 동안 우상숭배를 해서 유다를 영적으로 타락시킨 나쁜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아몬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므낫세를 따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요시야였습니다. 

*요시야가 8살이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아버지인 아몬의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아몬을 죽입니다. 아몬은 겨우 2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 아몬을 죽인 신하들을 잡아서 죽이고, 8살 난 아몬의 아들인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요시야는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모두 우상숭배로 나라를 망친 왕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시야는 어떻게 바른 믿음의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그의 주변에는 믿음의 스승들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여선지자 훌다 같은 사람들이 어린 요시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줬습니다. 성도님들의 주변에는 믿음을 배울 수 있는 스승들이 있나요?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세요. 믿음의 크기가 더 넓어질 줄로 믿습니다. 

*8살은 초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그 나이에 왕으로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왕이 되는 것이 즐겁기만 했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했던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비참하게 죽었던 아버지가 우상숭배자였다는 것도 그에게 큰 교훈을 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이 계시죠? 아이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까? 집안 여기 저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게시되어 있나요? 오늘 집에 가시면서 아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가시나요? 오늘 먹은 점심이야기만 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나누셔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같은 설교를 듣고, 같은 공부를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환경을 믿음의 환경으로 바꾸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자주 노출시키세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서, 요시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주실 줄을 믿습니다. 

▶2/3 세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따르라.

▶*2005년에 제가 처음 교회왔을 때의 모습입니다.  강대상도 바뀌고, 앞에 화면도 멋지게 바뀌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헌금하고, 공사해주셔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고쳐야 할 곳 많습니다. 더 힘을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사는 집보다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더 좋아야 합니다. 성도님들의 집과 교회를 비교해보세요. 하나님의 집이지만, 우리가 예배드리는 집이고, 우리가 생활하는 집 아닙니까? 

*요시야는 항상 성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성전관리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고장나고 부서진 것이 있어도 고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전에 헌금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 헌금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인 므낫세는 55년 동안 통치하며,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세우고, 그 제단을 섬기는 제사장들도 세워놨습니다. 

▶*왜 요시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했을까요? 심지어 성전에 우상을 세워놓고, 제사장들에게 우상숭배를 하라고 했을까요? 성경은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우상숭배를 했던 것일까요?

*당시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는 그냥 문화같은 것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바알신과 아세라신의 잔치에 가야 하는 거였습니다. 

*왕으로서도 우상숭배가 나쁠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잘 되는 해도 있고, 안 되는 해도 있습니다. 이걸 사람이 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농사가 안 되면 왕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흉년이 계속 되면 왕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왕은 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신이 진노해서 흉년이 온 것이지, 왕이 잘못해서 흉년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흉년이 와서 백성들이 왕을 잡아죽이려고 하니, 왕은 할 수 없이 자기 장남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왕에게 우상숭배는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문화로 생각했습니다. 종교행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문화행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요? 일제시대때 조선장로교총회가 했던 말입니다.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고 문화예절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신사참배할 수 있다고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를 했던 겁니다. 

*당시 백성들이 특별히 우상숭배를 하려고 작정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당시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문화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했다니까요. 

▶*요시야는 당시 시대 상식을 무시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고 있나요?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그냥 그대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 하는 거 다 따라다니면, 그건 예수믿는게 아닙니다. 세상의 우상을 따라가는 겁니다. 

*저는 삼성핸드폰을 쓰다가 아이폰으로 바꿨습니다. 안드로이드도 잘 썼으니, 아이폰도 잘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사 놓은 성경앱도 아이폰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제가 샀던 앱은 모두 다시 아이폰용으로 사야했습니다. 오에스가 바뀌니 새로 다 배워야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배우고 나니 편해졌습니다. 

▶*예수믿는 것은 앱 하나를 새로 까는게 아닙니다. 성경앱 하나 깔면 예수믿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오에스가 바뀌는 거에요. 전에 되던 것이 예수믿으면 안 되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고생해서 새로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생을 하고 나면, 아주 아주 편해집니다. 예수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믿음으로 뒤집어 엎었습니다. 성도님들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뒤짚어 엎고, 예수 안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개혁은 내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성전을 공사하던 중에 성경말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책이 율법책 중 하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이 책이 무엇인지? 서기관인 사반에게 건내줍니다. 사반은 그 말씀을 왕에게 가서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왕하22: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아멘. 

*요시야가 26세 청년이었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왕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신하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옷을 찢었습니다. 저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 구석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말씀이 거기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사장도 모르고 서기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게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의 성경책은 어디에 있나요? 일주일에 몇번 그 책을 꺼내서 읽으시나요? 혹시 집안 구석에서 아무도 보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요시야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옷을 찢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보겠다고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것이 아니었기때문입니다. 내 계획이었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던 겁니다. 

*요시야가 발견한 말씀은 신명기였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이 벌을 받았던 이유가, 말씀에 불순종했기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요시야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옷을 찢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요시야는 백성들을 책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대제사장이 성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도 몰랐습니까? 성전의 헌금으로 먹고는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관리하면 되는 겁니까?” 

*충분히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책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욜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아멘. 

*요시야가 찢은 것은 자신의 옷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찢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옷을 찢지 않고, 나의 옷을 찢었습니다. 개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로마를 물리치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그들은 개혁을 주장했지만, 그 개혁은 밖으로 부터 개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주시면 된다. 정치가 문제다 정치가 바뀌면 새로운 세상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나로부터 개혁을 주장하셨습니다.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돌려대고, 두벌 옷이 있으면 하나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그게 진짜 개혁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밖으로부터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치가 바뀌면 우리 가정이 행복해지고, 세상이 변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사탄이 왜 이렇게 좋은 생각을 주는 지 아세요? 내가 변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모든 탓을 외부로 돌리게 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뀌어야 세상아 바뀐다고 가르치셨고,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존 퍼킨스는 1930년 가난한 미시시피주의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였습니다. 존은 어린 시절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친형이 백인 경찰관의 총격으로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존은 충격을 받고, 지긋지긋한 미시시피를 탈출해서 흑인들이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로 도망쳤습니다. 거기서 그는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그는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데, 하나님께서 자꾸 그 지옥같은 미시시피의 자기 고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이건 순종 못 합니다.” 존은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가족이 있는 미시시피로 돌아갑니다. 
미시시피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흑인들은 차별을 당하고 있었고, 백인들을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복음만 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 지역에 병원을 짓고, ▶기독교학교를세웠습니다. 
1970년 그는 백인경찰들에게 끌려가서 죽도록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인경찰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백인을 미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안아주라고 가르칩니다. 
▶2026년 3월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개혁으로 그의 고향마을은 이전보다 훨씬 행복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존은 먼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바꿨고, 세상을 바꿨습니다. 

▶*여러분의 미시시피는 어디인가요? 여러분들이 피하고 싶은 미시시피는 어디인가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먼저 바뀌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미시시피로 가서 그곳을 개혁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요시야처럼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개혁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에게 믿음의 자유를 주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그 자유를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을 요시야처럼 가르치게 해주시옵소서.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게 해주옵소서. 
요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옷을 찢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찢게 해주옵소서.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대로 따라가지 말게 해주시고, 믿음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게 해주옵소서. 
존 퍼킨슨목사님처럼 살기를 소망합니다. 미시시피를 떠나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시옵고, 다시 미시시피로 돌아가서 말씀으로 그곳을 개혁하게 해주시옵소서. 
개혁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29 Oct 2026 20:09: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2]나를 선택하신 이유-은혜금요-신7:6-261023]]></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609]]></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23-261023.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p>
<div>
<p> </p>
</div>▶ 신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아멘.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저는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교회를 다녔습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셨나요? 저는 부목사로 왔습니다. 어느 날 날아온 이메일을 보고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우리 교회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계획도 똑같으셨습니다. 

▶1/3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

*신명기는 광야세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세대를 통해서 이집트노예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험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일제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지만, 그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세대에게 분명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신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아멘.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 되었을까요? 처음 시작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갈대아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에게 명령하셨던 겁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왜 아브라함이었을까요? 왜 이스라엘백성들일까요? 왜 우리를 선택하셨을까요? 내가 잘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믿음의 백성으로 선택해주신 것을 감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더 많은 은혜를 구하세요. 받은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허락해주십니다. 나를 선택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선택하신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을 선민으로 여깁니다. Chosen people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아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약하고 불쌍했기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위치한 지역은 전세계의 화약고라고 합니다. 늘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험한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은 힘도 없습니다. 늘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약하고 불쌍해서 선택해주셨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해질 것을 이미 알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냥 은혜인 겁니다. 내가 잘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세상에 잘나고, 똑똑하고, 부자인 사람들을 선택하셨다면 우리가 선택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아멘. 

*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너무나 잘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왜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주실까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입니다. 남의 자랑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세요? 겉으로는 축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잘났어 정말”을 외치지 않습니까? 남의 자랑 들으면서 기분 좋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교인들의 자랑을 아주 잘 들어줍니다. 기뻐하며 들어줍니다. 맘껏 자랑하셔도 됩니다.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냐면요. 사람은 하나님께도 자랑을 합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뭔가 잘 되는 일이 있으면, 하나님도 부럽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잘난 척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겁니다. 나의 잘남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해주실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주님의 선택을 받는 성도님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의 백성은 계명을 지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나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격만 생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1)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다.

▶신7:8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아멘. 

*출애굽하기 전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종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죽도록 노동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도 쉴 수 없었습니다. 종은 쉬는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목사만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출애굽하세요. 세상의 다른 것의 종이 되어 살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깁니다. 내 삶을 지배하려는 다른 것을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신7:11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세요.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안 보면 명령도 안 받게 됩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의 주제는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그러면 복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세요. 주인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서 부족한 나를 선택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교만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매일 출애굽하는 삶을 살게 해주옵소서. 세상의 쓸모없는 것에 노예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해주옵소서. 
나의 왕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29 Oct 2026 20:07: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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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순종을 미루지 말라-은혜주일-눅17:1-2610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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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18-261018.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QxS8m5pfpBo?si=Gl7HPGKRe4BMDzVm&amp;start=1512"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제가 중학교때 다녔던 교회의 사모님은 별난 분이었습니다. 중등부에 여학생 하나가 새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멋쟁이였습니다. 머리에 예쁜 삔을 꼽고 다녔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 여학생때문에 남학생들이 더 많이 교회를 나왔었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모님께서 그 중학생을 붙잡고 혼을 내셨습니다. “니 머리삔때문에 내가 실족했다.” 실족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그 여학생은 그 주일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모님의 말 한마디 때문에 우리 교회 남학생들이 다함께 실족해버렸습니다. 

*교회는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실족하는 공동체가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일까요? 오늘 주님의 말씀을 받겠습니다. 

▶1/3 걸림돌이 되지 말고 디딤돌이 되라.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다른 제자들을 실족하게 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실족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지 마시라고 만류했습니다. 

▶눅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아멘. 

*실족이란 무엇일까요? 원어인 헬라어를 보면, σκάνδαλα 스칸달라 라고 나옵니다. 걸림돌, 장애물, 덫을 작동시키는 장치라고 나옵니다. ▶쥐덫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쥐덫에 스위치가 있습니다. 쥐가 그 스위치를 건드리면 걸려서 꼼짝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족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꼼짝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영어인 스캔들입니다. 그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뜻은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실족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실족하는 일이 생깁니다. 교회나 가정에 있는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때문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내 속에서 “저 사람은 왜 저러지? 그냥 피해야겠다. 교회 다니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납니다. 교회 안에 실족하는 일은 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말라고 주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상처받는 사람은 늘 있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편한 곳입니다. 그래서 말도 편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착해서, 어지간한 것은 그냥 넘어가줍니다. 매주 반복되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가정 안에서 편한 상대인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가? 교회 안에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는 않는가? 누군가를 실족시키는 것은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연자맷돌에 목을 매여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다시 한 번 회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 세미나에서 만난 어떤 여자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죽어도 목사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등학교생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깜짝 놀라며 얘기합니다. “너 왜 입에서 침이 흐르냐?” 그때부터 얼굴의 반이 마비되어서 침을 삼길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신학교보내시려나보다. 서원기도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비참해서 하나님께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흐르던 침이 멈췄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치사하세요. 이렇게 억지로 목사를 시키고 싶으세요?” 고침받은 것은 감사하지만, 이렇게 강제로 목사를 시키시는 하나님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분은 그 일로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종으로 지금도 신실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왜 실족하지 않았을까요? 병주고 약주시는 하나님께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상처받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때문입니다.

*떨어진 화살을 일부러 주워서 내 가슴에 박지는 말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별 생각없이 한 말을 주야로 묵상하고,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고 화내고 상처받고 실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실족으로 발전시키지는 마세요. 길에 돌이 있어서 발에 걸렸습니다. 그냥 빨리 균형잡으면 됩니다. 돌에 걸린 김에 넘어질 필요는 없는겁니다.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섣부르게 반응해서, 실족으로 넘어갈 필요는 없는겁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다시 점검해보세요. 누군가를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상처를 주지 마세요. 서로를 존중해야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작은 상처를 큰 실족으로 키우지 마세요. 남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용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조선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조선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여자의 삶은 두 번 후회할 때가 있다. 한 번은 태어날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시집갈 때이다.” 태어날 때 후회한다는 것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사람들이 구박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여자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에 나온 말입니다. 또 한 번은 시집갈 때라고 합니다. 당시에 조혼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겨우 10살이 넘은 여자아이를 부잣집에 팔아 넘기는 겁니다. 그때부터 무서운 시어머니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집안 살림하고, 애낳고 키우는 도구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바람이 나서 첩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조선시대의 첩은 능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남자가 능력이 있으면 여러 첩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첩이 있는 사람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로서는 좋은 일입니다. 첩이 있는 사람은 부자이고, 그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894년 미국장로교 선교부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했습니다. 첩이 있는 남자에게 세례를 줄 수 있는가? 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미국장로교 선교사님이셨던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님은 첩이 있는 자는 세례불가를 선언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수많은 차별과 욕을 먹었습니다. 마을에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래도 선교사님들은 굴복하지 않고, 말씀대로 가르쳤습니다. 

*이 소문이 조선사회에 퍼져나갔습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잃은 억울한 백성들이 교회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첩을 버리고 교회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만약 교회가 이 죄악을 그냥 용서해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는 힘을 잃었을 것입니다. 

▶눅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아멘. 

*용서가 무엇일까요? ▶용서는 무시가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의 죄를 못 본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네 형제” 즉 나와 친한 교인입니다. 친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그냥 보고 넘어가지 말라는 겁니다. 나와 사이가 가까운 사람이니까, 내가 죄를 지적하면 관계가 나빠질 거니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가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가는 것을 용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참고 넘어가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손해보고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형제가 계속 죄를 지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 죄때문에 주님과 멀어지게 된다면, 그걸 가만 둬야 할까요? 그게 용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이 순서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잘못을 지적당하고 그 잘못을 회개하는 교인들이 적습니다. 예전에는 교회가 잘못된 교인을 치리했습니다. 최근에 교회에서 교인을 치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죄짓는 형제나 자매를 보고도 아무 지적도 하지 않는 것이 용서는 아닙니다. 죄를 짓는 교인에게 교회는 경고를 해야 합니다. 교인은 그 경고를 듣고 회개하면 교회는 그를 용서해줘야 합니다. 

▶눅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극단적인 예를 드셨습니다. 하루에 7번 죄를 짓고, 7번 찾아와서 회개한다고 하는 죄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요? 도대체 이 사람은 정말 회개한 것일까요? 하루에 두번 같은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에 7번 죄짓고, 7번 회개합니까? 이런 사람을 용서해줘야 할까요?

*우리들은 지적을 좋아합니다.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을 합니다. 죄를 지적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지적을 하면, 그 지적은 상대방에게 독이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지적하지 마세요. 사랑이 없는 지적은 칼처럼 상대방의 마음에 박혀버립니다. 관계만 나빠지게 되는 겁니다. 

*어느 감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죄수가 편지 하나를 읽으며 엉엉 울고 있습니다. 이 죄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는 술을 먹고 친구와 싸움을 했고, 상대방을 때려눕혔습니다. 상대방은 땅에 머리를 부딪혔고,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죄수는 자신의 죄악을 후회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해자에게서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용서하고 나니 내가 새로운 삶을 얻은 기분이네요.” 이 용서편지 하나가 죄수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줬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괴롭게 하던 죄책감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용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으로 지적하고, 기도하며 용서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믿음은 순종을 통해 자란다.

*손양원 목사님은 정말 큰 믿음의 사람이셨습니다. 1948년 공산주의 청년들이 손목사님의 두 아들을 공산당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살해했습니다. 이후에 범인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사형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손목사님은 제발 안재선을 죽이지 말라고 용서해달라고 탄원서를 씁니다. 자신의 아들 장례식에서는 미국보다 좋은 천국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9가지 감사제목을 나눴습니다. 대단한 믿음아닙니까? 그런 손목사님을 보고, 목사님의 큰 딸은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기뻐할 수 있을까? 미친 건 아닐까? 그런데 딸이 오해했습니다. 손목사님은 남이 안 볼 때면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우셨습니다. 믿음은 흔들립니다. 아무리 큰 믿음이라고 해도 믿음은 흔들립니다. 

*다른 이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과 하루에 7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기가 죽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아멘.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부족한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큰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의 명령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믿음이 있으면 큰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눅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아멘.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겨자씨 한 알은 정말 작습니다. 작은 믿음으로도 큰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일까요? 맞는 말 같지만, 제자들의 질문과 연결이 안 됩니다. 제자들은 큰 믿음을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작은 믿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을 합니다. 목사님 믿음이 부족해서 순종을 못 하겠어요. 목사님 믿음이 부족해서 봉사를 못 하겠어요. 라고 말합니다. 정말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요?

*제자들은 더 큰 믿음이 있으면 주님께서 주신 명령대로 순종할 수 있을 거라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에게는 큰 믿음이 없어서, 이 정도 명령은 순종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믿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순종의 크기가 더 중요한 것이다. 제자들의 생각을 제대로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된 답을 주신 것입니다. 

▶*순종을 미루지 마세요. 순종을 미루면 우리의 작은 믿음이 죽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속에서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그 말씀 중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명령은 무엇인가요? 바로 바로 순종하세요. 매일 조금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은 그 삶이 반드시 변화됩니다. 

*반대로 순종을 미루는 사람의 삶은 변화될 것이 없습니다. 실패만 쌓이게 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부담만 될 뿐입니다. 어차피 하지도 않을 숙제만 쌓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더 큰 믿음이 있으면 순종하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주님께서는 지금 믿음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나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추상화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믿으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당장 내가 손해보는 것 같지만,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당장 손해보겠지만, 주님께서 분명히 채워주시고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 커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으로 이주를 합니다. 만약 그가 순종하지 않았으면, 그의 믿음은 죽어버렸을 겁니다. 그의 순종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라납니다. 순종을 미루지 마세요. 들은 말씀은 순종하세요. 읽은 말씀도 순종하세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순종하고 사다보면 언젠간 우리의 믿음도 큰 믿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삽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다시 돌아보고, 나를 통해서 상처받는 이들이 없도록, 내 삶을 변화시켜주옵소서. 
다른 이를 넘어 뜨리는 걸림돌이 아니라, 나를 희생해서 다른 이를 돕는 디딤돌이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게 해주옵소서. 용서로 원수를 변화시키게 해주옵소서. 
주님, 우리는 순종을 미루며 삽니다. 믿음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내게 주신 작은 믿음으로 순종해서,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고난 중에서 우리를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29 Oct 2026 20:06: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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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명기1]쉐마 이스라엘-은혜금요-신6:4~6-261016]]></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607]]></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26-261016.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div>
▶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아멘.

*모세가 쓴 5개의 책 중에서 마지막 책인 신명기의 말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는 새로운 광야세대를 교육하기 위한 책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났고, 출애굽의 역사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광야세대에게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다시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새로워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아멘.

*오늘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이 바로 히브리어로 쉐마 이스라엘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말씀을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고르라면, 매일 암송하는 쉐마 이스라엘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들을 지켜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기록된 성경이 없었기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요즘은 교회 안 나와도 설교를 맘껏 들을 수 있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목사님들의 설교가 유튜브에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내 맘대로 골라서 듣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또한 순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말을 듣고 순종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쉐마 이스라엘은 바로 이런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순종함으로 복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아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에서는 세가지로 사랑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1)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라.
마음은 내 속에 있는 겁니다. 억지로 예배에 나오고, 억지로 헌금하고, 억지로 봉사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엉뚱한 생각과 목적이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뜻을 다한다는 것은 내의 의지를 다한다는 겁니다. 뜻은 의지입니다. 내 마음의 결정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한다면, 내 마음으로 뜻을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예배를 빠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바른 헌금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교회에서 봉사하겠습니다.

*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뜻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뜻으로 모아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힘을 다해서 사랑하라.
힘을 다한다는 것은 내 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뜻으로 사랑하지만,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거짓일 수 있습니다. 나도 속는 겁니다. 정말 사랑하면 힘을 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엉뚱한 것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내 인생이 망가지기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옆집 청년이 이사왔는데, 집 안에서 마리화나를 피웁니다. 건물 전체가 금연인데, 이 청년은 마리화나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 청년때문에 이웃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 청년은 끝내 건물에서 쫓겨났습니다. 엉뚱한 걸 사랑하면서 살면, 내가 불행해지고, 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면, 하나님이 무서워서 내가 바르게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가 가장 행복한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우리들은 매달 새로운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꼭 암송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짧은 말씀으로만 준비했습니다. 암송은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신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아멘.

*마음에 새긴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이 하루에 예배를 5번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권사님이 신기했습니다. “권사님. 똑같은 설교를 왜 5번이나 들으세요?” “목사님. 제 머리가 돌머리라서 여러번 드려야 마음에 새겨집니다.” “권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돌머리는 쉽게 새겨지지 않지만, 한번 새기면 안 지워집니다.”

*말씀을 새긴다는 것은 그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고, 암송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달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집 냉장고에 붙여놓습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 말씀을 암송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묶습니다. 얼마나 걸리적거리고 귀찮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묶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그 말씀을 밤낮 묵상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삽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우리들이 듣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의 귀에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바로 내려주옵소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옵소서.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살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은 너무 분주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삽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그 말씀으로 흔들리지 말게 해주옵소서.
내 삶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29 Oct 2026 20:03: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38]슬로브핫의 딸들-은혜금요-민36:10-261009]]></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606]]></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09-261009.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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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36:10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아멘.

*드디어 민수기의 마지막 장인 36장입니다. 그 마지막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요?

1/3 하나님께서는 내 문제를 소중히 여기신다.

*성경에 슬로브핫이라는 이름에 여러번 나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딸만 5명을 낳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많은 부러움을 살 사람이지만, 3천 년 전 사회에서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자만 상속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는 땅을 상속받을 수 없었습니다.

*땅은 지파별로 나눠줬습니다. 므낫세지파의 땅에는 므낫세지파만 주인인 겁니다. 섞일 수가 없었습니다. 딸들에게 상속을 하면 이 원칙이 깨집니다. 딸이 땅을 상속받고, 다른 지파에 시집가면 어떻게 될까요? 지파와 땅이 섞여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걸 막기 위해서 여자는 땅을 상속받을 수 없게 했습니다.

민27: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아멘.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나와서 이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땅에 욕심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삭제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36장에서는 27장의 내용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27장의 내용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게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슬로브핫이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 딸들의 요청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도 그들의 기도제목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도제목들이 많습니다. 세상을 위한 기도보다는, 나 자신의 사소한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소중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찮은 기도제목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을 간절히 주님께 아뢰고,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응답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께서 해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슬르브핫의 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다른 지파에 시집가면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생각했고, 당시 사회적으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민36:6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아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딸들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지파의 땅이 섞이는 것은 좋지 않으니, 결혼할 때 같은 지파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이게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단서가 붙습니다. 그냥 책임없는 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으면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 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세상에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런데 분명한 책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책임이 반드시 뒤따릅니다. 그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칭찬하시고, 더큰 복을 허락하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자기 지파에서 자신의 사촌들과 결혼해서 자신의 가문과 아버지의 이름을 지켰습니다. 그냥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요구였습니다. 당시에 여자들의 인권은 정말 미약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참 잘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일로 세상을 탓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기를 바랬습니다. 성도여러분들의 염려와 걱정이 무엇인가요? 그것들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응답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제목을 기억하신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 명령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지켰습니다. 5명이 모두 이 명령을 지켰습니다. 한명이라도 이 명령을 안 지키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딸 몫의 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모두 이 명령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자기 지파에서 남편감을 찾습니다.

민36:10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아멘.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슬로브핫의 이야기는 여호수아에 이어집니다.

수17:6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받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아멘.

*그들은 므낫세 지파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도 땅이 주어집니다. 그 땅은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과 함께 아버지의 이름은 기록에 남게 되었습니다. 딸들의 희생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되살린 것이었습니다.

민36:11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들의 숙부의 아들들의 아내가 되니라. 아멘.

*슬로브핫의 딸은 5명이었습니다. 말라, 디르사, 호글라, 밀가, 노아. 성경은 정확하게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이름들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귀하게 여겼고,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왔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다른 지파의 멋진 남자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 대단한 여자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 3번 이상 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땅은 정확하게 배분되었습니다.

*우리도 슬로브핫의 딸들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을 하찮게 보시지 않습니다. 모든 기도제목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자신의 평생 동안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셨고,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세요. 주님께서 들으시고, 약속하시고, 응답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기도문
우리의 하찮은 기도를 귀하게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슬로브핫의 딸들과 같은 우리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온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옵니다. 주님께서 들으시고 기억해주시고, 응답해주시옵소서.
슬로브핫의 딸들의 헌신을 본받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 5명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잡고, 그 약속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걸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29 Oct 2026 20:01:3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국장로교 50대 모임(Torrence)]]></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601]]></link>
			<description><![CDATA[10월 12일(월)~15일(목) 토렌스제일장로교회에서 미국장로교 50대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릿시냇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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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회이야기 발표시간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10/6ad3b847252ee6480153.jpg" alt="" />

브로드뮤지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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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10/6ad3b8471515a5884982.jpg" alt="" />

Angels Flight Railway입니다. 아주 짧은 엘리베이터같은 기차입니다. 1901년부터 운행했다고 하네요. 영화 "LALA Land"에도 나왔었죠.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10/6ad3b8472ab841258128.jpg" alt="" />

Redondo Beach에서 일몰을 봤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10/6ad3b84731a1c7122267.jpg" alt="" />

신학교 동기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김종현, 문은배, 손정훈, 심우진목사님. 행복한 모임이었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at, 17 Oct 2026 10:10:1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아버지의 품으로-은혜주일-눅15:20-261011]]></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98]]></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11-26101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EONMix8DHv4?si=zX_n6OPLo8OZi5QY&amp;start=1726"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 *우리들은 계속해서 누가복음 15장에 나와 있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내용인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죄다. 

*나이가 드신 어른들의 고민 중에 하나가 재산상속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식들에 재산을 얼마씩 나눠주야 할까? 언제 나눠줘야 할까? 내가 살았을 때 나눠주는 게 나은가? 내가 죽고 나서 나눠주는 게 나은가?

*어떤 분들은 이런 결론을 내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면 돈 받고 나면 부모에게 인사하러도 안 온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돈을 자식들에게 주면 안 된다. 라고 합니다. 맞는 말일까요?

*유대인의 지혜문헌인 “집회서” 33:19–23을 보면 똑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재산을 미리 상속하지 말고, 죽음에 가까울 때 자식들에게 나누라.” 예나 지금이나 재산상속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눅15: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아멘. 

*어느 집에 아들이 둘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상속해달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법에 의하면 부모가 살아 있을 때도 재산을 상속할 수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의 2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큰 아들에게 많은 지분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들에게 공평하게 땅을 나누면, 그 가문의 지도자인 장남은 땅은 갈 수록 줄어들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상속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문제는 돌아가시지도 않은 멀쩡한 자기 아버지에게 아들이 상속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이건 당시 사회에서는 불효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를 무시하는 행동이고, 동네에서도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문제가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눅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아멘. 

*이 착한 아버지는 못된 아들의 요구를 바로 들어줍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땅도 물려받습니다. 그 땅을 며칠 만에 헐값에 팔아버립니다. 그게 헐값인 줄은 알지만, 그는 서둘러 재산을 정리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아버지와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간섭이 싫고, 자기 맘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의 삶을 보여주는 말이 나옵니다.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하였다.” 탕자는 아버지처럼 평생 일만 하며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그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고, 더 부자로 살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탕자가 지은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아버지를 떠나서 내가 잘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입니다. 그가 아버지를 떠난 것이 가장 큰 죄인 겁니다. 그가 지은 가장 큰 죄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난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탕자와 같습니다. 아버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도 내가 잘 할 수 있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유를 누리려고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면, 해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습니다. 금요일 주일 예배참석해야 하구요. 교회에서 봉사도 해야 하구요. 헌금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이어서 항상 양보하고 용서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냥 이런 억압에서 벗어나서 맘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손해보고 살기도 싫고, 미운 사람 실컷 미워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탕자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자유를 누리지 마세요. 아버지 안에서 자유를 누리세요. 주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들은 나를 망하게 하는 귀찮은 잔소리가 아닙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황금같은 조언들인 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교만해서 마음속을 생각합니다. 내가 하면 하나님보다 잘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 아버지를 떠나서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죄입니다. 탕자와 같은 죄를 짓지 마세요. 주님의 품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자신 만만했던 탕자도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눅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아멘. 

*많은 것 같았던 아버지의 재산은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평생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고,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게 모두 아버지의 은혜였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게다가 흉년이 닥칩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고, 먹을 것의 값이 올라갑니다. 이건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아끼셨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끼고 저축하지 않으면 흉년을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탕자는 어렵게 일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돼지를 치는 일이었습니다. 이건 유대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봅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을 모욕할 때 돼지를 이용했습니다. 그리스사람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며 유대인들을 모욕했습니다. 탕자는 유대인으로서 완전히 삶의 바닥을 친 것입니다. 

▶눅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아멘. 

▶*화면에 나오는 열매가 쥐엄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지금도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돼지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탕자는 돼지사료로 배를 채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이민자의 이야기입니다. 돈없이 이민을 와서 너무 배가 고팠답니다. 마트에 가보니 통조림에 있는 고기를 파는데, 개그림이 그려져 있고, 싸더랍니다. “미국 사람들도 개고기를 먹나보다.” 생각하며 그 통조림을 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상하게 마트의 한쪽 통로에 쌓인 음식들은 값이 싸더랍니다. 아내에게도 꼭 거기서 음식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한참 지난 뒤 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섹션은 애완동물 섹션이었습니다. 개사료를 먹으면서 어려운 시절을 버텼던 겁니다. 그는 개사료도 모르고 먹으면 맛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탕자는 인생의 바닥을 경험합니다. ▶인생의 바닥에서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고, 아버지의 은혜였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혜를 일찍 깨닫는 이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지혜를 일찍 알게 된 사람들이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멘. 

*탕자가 변화되었습니다. 그 잘난 탕자는 어디로 갔습니까? 내가 돈이 있으면 아버지보다는 잘한다. 내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거야. 세상이 변했는데, 아버지는 왜 저렇게 사냐? 내 몫의 재산을 달라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던 탕자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탕자는 스스로 돌이켜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탕자가 제일 잘 한 결정이 이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이게 바로 회개입니다. 가던 길을 계속가며 마음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건 후회라고 하니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된 길을 깨달아 알고, 바로 그 길을 돌려서 바른 길을 향하는 것입니다. 후회가 아닌 회개를 하십시오. 

*탕자는 아버지덕에 먹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재산을 받아서 자기 맘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망하니 다시 아버지께 돌아올 생각을 합니다. 탕자는 왜 이럴까요?

*맨날 아버지은혜로 살면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떠나 맘대로 살려고 하는 바로 내가 탕자인 것입니다. 삶이 힘겨울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아버지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다.

▶*탕자는 마음을 정하고 아버지께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용서해주실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시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재산은 타지에서 다 써버리고 남은 것도 없습니다. 이제 거지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아버지 재산 가지고 타지에 나가서 거지가 되었다고 하지 않을까요? 명에를 중시하던 당시 사회에서 탕자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돌아가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닐까요?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멘. 

*탕자는 아버지를 너무 몰랐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한 번도 닫힌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집나간 아들을 향해서 열려 있었습니다. 

*나이드신 아버지가 먼 거리에서 아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아들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아들을 먼거리에서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집나간 작은 아들을 향해 열려 있었기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우리는 세상 속에서 내 맘대로 살며, 하나님을 실망하게 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너의 위선된 예배를 받고 싶지 않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한번 믿어주시며, 우리들의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단 한 번도 닫혀 본 적이 없습니다. 

*한 주 전에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아버지집에 가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늘 몇 시에 방문하겠다고 알려드렸습니다. 아버지 집 비밀번호를 저는 모릅니다. 게다가 아버지 집 초인종이 고장나 있습니다. 어쩔 때는 한참동안 문을 두드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도착해보니, 문이 살짝 열려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아들 들어오기 편하라고 하루 종일 열어놨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도 이렇게 저를 향해서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싸워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한 뒤로는 아버지와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제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와는 많이 싸웠습니다. 아버지와는 왜 싸우지 않았을까요? 아버지가 예수를 믿으시고, 자신이 탕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회개를 받아주셨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한 우리 아버지도 늘 마음의 문을 다른 탕자들을 향해서 열고 사셨습니다. 아버지는 은혜를 경험한 탕자였기때문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멀리서 아들을 알아보고 머뭇거리는 아들을 향해 달려오고, 목을 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거 봐라 잘난 척하고 나가더니 꼴 좋다.”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간 그 많은 재산은 어떻게 되었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낭 아무 말 없이 아들을 안아 주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탕자는 회개했고,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David Hill은 콜로라도에 있는 공군사관학교 생도였습니다. David의 꿈은 공군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고, 그 꿈을 향해서 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공군사관학교에서 퇴교를 당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고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갈 면목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실패했다는 소문이 고향마을에 퍼지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David은 도망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하며 텍사스의 엘파소까지 내려갔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멕시코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 생각이었습니다. 멕시코로 넘어가기 전 아버지에게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 저 사관학교에서 쫓겨났어요.”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딱 한마디 했습니다. 
▶“언제 집에 올 거니?”
왜 퇴교를 당한거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이런 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저 이제 멕시코로 가려고 해요.”
아버지의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아버지는 딱 한 마디를 했습니다. 
“언제 집에 올 거니?”
아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제 저를 찾지 마세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 집에 올 거니?”
아들은 실패한 자신의 모습만 보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돌아올 아들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David은 아버지의 그 말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지금 집으로 갈게요.”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이 닫혀있을거라고 오해했는데,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아들을 향해서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David은 아버지의 사랑덕분에 집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단 한 번도 닫혀 본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세요. 인생의 바닥에서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한 탕자는 다른 이들을 향해서 마음을 닫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향해 항상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에 나온 잘난 척하는 탕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내 능력을 더 믿고, 내 삶을 내가 계획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해주시옵소서. 잘난 척하며 살지만, 아버지의 은혜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은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는 줄 믿습니다. 지금도 문 열고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안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4 Oct 2026 10:38: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하늘을 나는 거대한 현수막]]></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97]]></link>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7/202610/6ac7e681f06f18525132.jpg" alt="" />

 
<p>샌프란시스코의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굉음과 함께 꼬리에 거대한 현수막을 달고 유유히 날아가는 경비행기를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프러포즈 문구부터 유명 IT 기업의 구인 광고, 로고가 박힌 대형 플래카드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모든 광고가 집중되는 초디지털 시대에, 미국 상공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이 고전적인 현수막 비행 광고(Banner Towing)는 과연 어떤 원리와 비용으로 운영되는 걸까요?</p>
<p>첫 번째 질문, 과연 광고 효과가 있을까요? 놀랍게도 답은 ‘YES’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비행기 엔진 소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위로 끌어올립니다. 마케팅 업계 조사에 따르면 상공 현수막 광고를 본 사람들의 브랜딩 회상률은 70~80%에 달합니다. 게다가 위트 있는 문구나 기발한 광고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SNS)에 공유하면서 강력한 2차 바이럴 효과까지 거둡니다.</p>
<p>그렇다면 비행기는 이 거대한 현수막을 어떻게 달고 뜨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수막을 땅에 달고 이륙하지 않습니다. 현수막이 지면에 쓸려 찢어지거나 이륙 시 항력 때문에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는 먼저 공중으로 정상 이륙한 뒤, 지상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로프를 걸어놓은 지점으로 낮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기체 후미의 후크로 로프를 걸어 채는 이른바 ‘픽업(Pick-up)’ 기술을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로프가 채여 현수막이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 비행기는 강한 저항을 받기 때문에 조종사의 정교한 베테랑 테크닉이 요구됩니다.</p>
<p>이 이색 광고의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개인적인 프러포즈나 축하 메시지 같은 단발성 텍스트 비행은 1회당 약 $1,200~$1,500(약 160만~200만 원) 수준입니다. 기업의 브랜드 로고나 대형 그래픽이 들어가는 맞춤형 현수막 광고는 제작비를 제외하고도 시간당 $1,200에서 많게는 $3,800 이상까지 올라갑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처럼 해변과 대형 스포츠 경기장이 인접해 있고 비행 제한 구역이 엄격한 지역은 타 도시보다 비용이 다소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p>
<p>디지털 팝업 광고가 넘쳐나는 요즘,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경비행기 현수막은 미국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과 탁월한 바이럴 효과를 동시에 거두는 독특하고도 생생한 광고판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08 Oct 2026 10:55:4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87"><![CDATA[usa]]></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대체불가-은혜주일-눅15:10-261004]]></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76]]></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10-04-26100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ZZok4wZHKHQ?si=F4l__B51PDDZAfQx&amp;start=1630"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지난 주간에 한국방문 잘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가면 제가 꼭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학교때 같이 기독교동아리를 했던 친구들입니다. 지금은 각자 교회를 섬기고 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살고 있지만, 1년에 한 번은 같이 모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업장에 어려움이 있지만, 다시 한 번 예수의 이름으로 힘내며 살기로 다짐합니다. 저는 그 모임이 참 좋습니다. 잃어버렸던 믿음의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잃어버린 동전을 열심히 찾는 여인처럼, 우리들도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 우리는 대체불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3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난 시간에는 잃어버린 양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두번째 이야기인 잃어버린 동전입니다. 

▶눅15: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아멘. 

*어떤 여자가 드라크마 열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어버립니다. 여자는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집에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면서 찾습니다. 이 여자는 왜 이리 간절하게 동전 한 개를 찾고 있을까요?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이었습니다. 여기서 드라크마가 아닌 데나리온이 생각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둘은 똑같은 액수의 돈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드라크마라고 불렀고, 로마에서는 데나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는 얼마 전까지 드라크마를 자국의 통화로 사용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드라크마가 먼저 생긴 돈이었습니다. BC 550년 무렵에 만들어졌던 돈입니다. ▶그리고 약 300년 뒤에 데나리온이라는 돈이 만들어졌습니다. 로마가 전쟁 중에 군인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 만든 돈입니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드라크마는 누구에게는 큰 돈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잃어버릴 수도 있는 정도의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것일까요?

*여기서 열쇠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드라크마 열 개” 이게 열쇠입니다. 이건 그냥 동전이 아닙니다. ▶셰마디라고 하는 결혼예물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예물이 셰마디(Shemadi)였습니다. 

▶*셰마디는 결혼예물이었습니다. 여자가 셰마디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은 신랑에 대한 지조와 정절을 나타내는 겁니다. 만약 셰마디의 동전 하나가 빠진 채 비어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저 여자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게으른 여자” 혹은 “남편과 관계에 문제가 있는 여자”라는 치욕적인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법과 풍습에 따르면 아무리 빚을 많이 졌다고 해도, 채권자는 여자의 셰마디는 절대로 압류하거나 몰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되었다고 해도, 아내는 이 셰마디를 이용해서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결혼할 때, 선배목사님들이 결혼반지는 비싼 것을 하지 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교회건축헌금할 때, 반지를 팔아서 헌금하셨습니다. 비싼 결혼반지를 사면, 결혼반지를 헌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싼 반지를 했습니다. 반지사이즈가 잘 맞지 않아서, 금은방하시는 교회집사님께 조금 늘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이 반지를 잃어버리셨습니다. 제 결혼반지를 잃어버리셨으니, 집사님이 얼마나 열심히 찾아봤겠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신 비슷한 반지를 가져왔는데, 서로 다르게 생긴 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짝짝이 반지를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습니다. 

*셰마디를 잘 보관해야 하고, 손님이 오면 자신의 셰마디를 머리에 두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셰마디의 갯수가 맞지 않으면, 그 셰마디는 여인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눅15: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아멘 

*여인은 열심히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습니다. 유대인의 집은 어둡습니다. 밤에도 어둡지만, 낮에도 어둡습니다. ▶유리창을 만들어 넣을 수 없기때문에 낮에도 방은 어두웠습니다. 일반 집에 창문이 아예없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창문을 만들어봐야, 그 창문으로 찬바람만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창문을 만들더라도 손바닥만한 작은 구멍을 뚫어서 연기와 냄새를 빼내는데 사용했습니다. 집 안의 유일한 빛은 문이었습니다. 어두우면 문을 열놨습니다. 

*그러니 등불을 켜고 드라크마를 찾는 것입니다. 온 집안을 쓸며 찾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집의 바닥은 그냥 흙입니다. 흙바닥에 짚이나 풀을 깔아놨습니다. 흙에 박히거나 풀 사이에 동전이 끼면 찾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방을 싹싹 쓸면서 철저하게 드라크마를 찾았던 것입니다. 

*못 찾으면 그냥 다른 드라크마로 바꿔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드라크마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은동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처럼 동전의 사이즈와 디자인이 똑같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만든 지역에 따라서 동전 사이즈가 달랐고, 거기에 들어가는 황제의 그림이 달랐습니다. 10개가 세트가 되는 것이라서, 다른 돈으로 끼워넣으면 이것은 더 큰 수치거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을 비유합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동전을 밖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동전입니다. 즉, 교회 안에도 잃어버린 영혼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간절히 찾으십니다. 

*그 동전이 땅에 박혀서 더렵혀진 동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동전은 대체불가입니다. 나의 모습이 땅에 박혀서 더렵혀진 동전과 같을 지라도, 나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러운 돈이나 깨끗한 돈이나 돈은 그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동전은 10개 세트입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사실 제 마음은 오신 분들에 대한 감사가 있지만, 못 오신 분을 향한 염려와 걱정이 큽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마음으로 오늘 비유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나의 상태가 부끄럽고,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불을 켜시고, 싹싹 쓸어가며 나를 찾으십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나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들이 잃어버린 동전인 것입니다. 내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의 천국잔치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주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1983년 한국방송국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30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번 방송하고 마치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잃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총 138일 동안 생방송을 했습니다. 10만명이 가족을 찾아달라고 방송에 나왔고, 그 중에서 만명이 가족을 찾았습니다. 

*그 중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쟁때 헤어졌던 형과 동생이 있었습니다. 이 둘은 같은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헤어졌기에 서로를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은 형인 지도 모르고 형집의 이삿짐도 날라줬습니다. 동생은 형이 맘에 들어서 중매까지 서줬습니다. 그들은 이 생방송을 통해서 형제임을 알게 되고, 지나간 세월을 아파했고, 다시 만나게 된 형제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전쟁이 지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이미 자신의 가족들이 생겼습니다. 굳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야 했을까요? 새로운 가족들이 이미 생겼는데 말입니다. 가족은 대체불가입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입니다. 다른 동전으로 바꿔 넣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잃어버린 동전으로 여기십니다. 나를 대신할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구원받기를 바라시고, 내가 구원받기를 위해서 등불을 켜시고, 방바닥을 쓸어가며 나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응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첫번째 자녀들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드시고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에덴동산을 만드셨고, 그들에게 에덴동산을 관리할 임무까지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아담과 하와는 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마음아파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혼날 것이 무서워서 나무 사이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창3:9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멘.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셨지만, 아담을 잡아 내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담의 근처에서 아담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아담을 계속 찾아다니셨습니다.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이 열심히 방을 쓸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스스로 나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죄지은 인간인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존중하셨던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끝까지 자신의 아내와 숨어 있었습니다.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세요. 열심히 잃어버린 동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응답해야 합니다. 만약 아담이 숨어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담과 하와를 용서해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회복하지 못할 관계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앗시리아라는 엄청난 강대국이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고, 이집트를 의지해서 앗시리아를 물리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선지자로 보내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를 보내는 과정이 너무 특이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아멘.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선지자로 보내시기로 결정하시고 1~6장까지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이스라엘의 참담한 상황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6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파송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행동을 보십시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의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그 앞에서 걱정하시듯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보내고, 누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위해서 가겠는가?”
너무 이상합니다. 앞에서 이사야를 보내기로 다 결정하시고, 준비까지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왜 바로 임명을 안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나님의 일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이렇게 공을 들여서 이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키웠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아멘하며 스스로 자원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억지로 무엇을 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 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네가 꼭 목사가 되어야 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꾸준히 한국교회에 대한 어려움과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꾸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자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여인과 같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동전을 잃어버리고, 그 동전이 없으면 안 된다고 외치며 등불을 켜고 방을 쓸고 있는 여인과 같습니다. 땅속에 처박혀 있고, 마음속에는 나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체불가능한 하나님의 자녀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땅속에 숨지 마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마음을 열고 응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눅15: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아멘.

*겨우 드라크마 하나를 찾고, 동네 사람들과 잔치를 합니다. 잔치비용이 더 많이 들었겠습니다. 드라크마 잃어버린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보다,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기쁨이 훨씬 큰 줄로 믿습니다.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아멘.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들은 대체불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세요. 하나님을 피해서 숨지 마세요.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간절히 찾고 계신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시간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집는 이 여인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마음이든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용기 있게 주님 앞에 나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안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치료해주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땅 속에 쳐박혀 있는 동전과 같다 할 지라도,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 줄을 믿습니다. 
내 직장에는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는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음을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켜주시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켜주시고,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5 Oct 2026 13:49: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길을 잃었을 때-은혜주일-눅15:1-260927]]></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75]]></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27-260927.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TtPc-M4p0fI?si=hxX1veNZig8Hj6O4&amp;start=1192"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제가 5살 때 쯤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와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버스에서 잠들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아버지가 안 보이는 겁니다. 아버지는 저를 버스에 놔두고, 혼자 내려버리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버스 종점까지 갔고, 버스기사님은 저를 경찰에 넘기셨습니다. 평생 처음 가본 경찰서에서 저는 정확하게 “봉천동 영화루”라고 말했고, 경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미아가 되었지만, 경찰차를 타니 기분이 너무 좋았고, 기왕이면 싸이렌도 울리고 경광등도 켜달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집은 중국집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어머니께서 아직 술이 덜 깬 아버지를 잡고 계셨습니다. 저의 첫번째 미아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아버지를 믿지 않고, 항상 부모님께 붙어 다녔습니다. 또 미아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미아가 되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자식을 잃어버리고 열심히 찾아 다녀 보신 적이 있나요?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것들 3개를 다시 찾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입니다. 

1/3 죄보다 주님의 은혜가 크다. 

눅15: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아멘. 

*예수님은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미워했습니다. 특히 죄인들 중에서 세리는 특별히 더 미워했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동족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여기서 죄인은 당연히 범죄인들을 포함합니다. 단순히 범죄인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 안식일날 일을 하는 사람, 동네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죄인이었습니다. 

*한 번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회복하기 어려웠습니다. 죄인이라고 동네에서 낙인이 찍히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이런 죄인들은 동네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않았고, 특히 같이 밥을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눅15: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아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인을 가까이 하면 죄인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죄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교도소에 가서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서 오는 사람도 있지만, 교도소에서 죄인들에게 더 큰 죄를 배워서 오는 사람도 있기때문입니다. 

*동네에서 죄인이라는 낙인 찍히게 되면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런 죄인을 길에서 만나면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도 나와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되면,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여자교인의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예배에 나오는 여자교인이 있었습니다. 예배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신실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누구 보다 먼저 예배당을 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분이 어느 술집의 마담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어떻게 났겠습니까? 교인 중에 그 술집을 다니는 손님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이 소문이 교회에 퍼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회가 모였습니다. 당회가 모인 이유는 “이 교인이 했던 헌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였습니다. 술집 마담의 헌금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당회에서는 논쟁이 있었고, 끝내 그 마담이 했던 헌금을 그대로 마담에게 돌려줬고, 그 마담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마담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기 위해, 교회에 나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를 씻는 마음으로 헌금을 했는데, 교회는 그 헌금을 돌려줬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담의 헌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시 세리들과 죄인들은 성전에서 이런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과 가까이 앉는 것 조차도 거부했습니다. 죄인을 가까이 하면, 죄가 전파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죄인을 가까이 하면 예수님도 죄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예수님의 능력은 죄의 능력보다 큽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니, 죄인들이 거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삭개오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큰 죄와 작은 죄가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 앞에는 모든 죄가 다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모든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들은 죄인입니다. 우리 힘으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하루 하루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하나님께 길을 물으라.

눅15: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아멘.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보통 가정집에서 키우는 양은 몇마리 수준입니다. 백 마리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양을 키우는 목자입니다. 당시 양은 한 장소에서 키우지 않았습니다. 목자들은 풀이 있는 곳으로 계속 이동하며 양들을 키웠습니다. 이렇게 이동하다 보면, 길을 잃어버리는 양이 생깁니다. 

*양은 풀을 뜯어 먹기 시작하면, 오직 먹을거에만 집중합니다. 풀을 뜯어 먹으며 조금씩 이동을 합니다. 양들이 많이 있는 곳의 풀은 이미 먹고 없습니다. 그러면 조금씩 무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양은 스스로 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어떤 양들은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양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제 앞가림을 못하는 양의 모 습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정말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이 양과 같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이 먹을 것에 집중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기가 관심있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부모님이 안 보입니다. 그러면 미아가 되는 겁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항상 눈을 아이에게 두고 삽니다. 

*저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단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큰 아들을 잃어버릴 방법이 없습니다. 큰 아들은 겁이 많아서, 어디를 가도 항상 부모님만 바라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주님만 바라보며 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회사도 가야 하고, 집에서 일도 해야 하고, 애도 봐야 합니다. 매일 주님만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지는 못해도, 내가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주님을 바라본다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매일 말씀보고 매일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자주 바라볼 수록, 우리들은 길을 잘못된 길에서 빨리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님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님이 더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더 멀리 달려갑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잃어버린 장소에서 찾으면 아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을 잃어버린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을 일어버리면,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요? 바로 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과 만나는 이 자리가 원래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길을 잃으면, 제자리로 돌아오세요. 지금 앉아 있는 여러분의 자리가 바로 여러분들이 있어야 할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이 자리를 사모하세요. 이 자리를 지키세요.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향을 찾지 못할 때, 이 자리로 돌아오세요. 주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고, 내 인생의 길을 안내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인생에서 방황을 해본 적이 있나요? 인생에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면, 둘 중에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실망했든지, 사람에게 실망했든지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하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내가 예수 열심히 믿어보려고 작정했을 때 이런 시험이 옵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받고 싶었는데, 내가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지 않으실 때,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계신 걸까?”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예수 믿는 거나 안 믿는거나 무슨 차이가 있는거지?”

*사람에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입니다. 너무 다양해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종종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인들이 따뜻하게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운전하고 모르는 동네에 가면 길을 잃습니다. 그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핸드폰만 있으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핸드폰은 어떻게 그렇게 길을 잘 아는 것일까요? 핸드폰이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서 지도와 매칭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하늘 위에서 내려옵니다. 인공위성의 위치정보를 핸드폰이 받아서 내 위치를 알려주는 겁니다. 

*우리는 때로는 길잃은 양과 같습니다. 그럴 때는 하늘 위에 계신 분께 길을 물어야 합니다. 하늘 위에서 나를 보시는 사랑의 하나님께 길을 물으세요. 나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길잃은 우리들에게 인생의 바른 길을 알려주실 줄을 믿습니다. 

3/3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막내 아들이 3살 때, 집을 나갔습니다. 집문이 열려 있고, 아들이 안 보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깜짝 놀랐고, 분명히 형이 다니는 학교로 도망갔다고 확신했습니다. 형하고 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기때문입니다. 아내와 저는 학교방향으로 뛰어가면 열심히 아들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학교를 향해 가고 있었고, 무사히 찾아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얼마나 걱정을 하며 아들을 찾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로도 아들은 몇 번 더 집을 나갔습니다. 

눅15:4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15:5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아멘. 

*오늘 이 말씀에서 목자의 기쁨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자는 애타게 잃어버린 양을 찾아갑니다. 목자에게는 99마리의 양이 있습니다. 양 한 마리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목자에게는 99마리 양도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애타게 양을 찾아다닙니다.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닙니다. 시간과 지역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양을 찾을 때까지 목자는 애타게 양을 찾아다닙니다. 양이 목자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 다닙니다. 

*여기서 길 잃은 양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세상에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많고, 나 하나 구원 못 받는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안 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찾아 오십니다. 

*오늘 내가 예배를 드리러 이 자리에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예배가 예배일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나를 만나러 이 자리에 오십니다. 

*높고 높으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알고 믿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드셨고,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택함받은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양이 목자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잃어버린 양을 찾으십니다. 

눅15:6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아멘. 

*목자는 양을 찾은 후에 무엇을 했을까요? 고집 센 양때문에 이 고생을 했으니, 양을 몇대 때려주고 싶을 겁니다. 다시는 혼자서 엉뚱한 곳에 가지 못하도록 벌을 줘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자는 과도한 잔치를 벌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벗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잔치를 벌입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이 먹은 음식은 얼마나 될까요? 양 한마리보다 더 먹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손해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길 잃고 헤매는 양 한 마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양 한마리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바로 내가 길잃은 양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무시해도 기죽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1989년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집을 나간 16살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29년이 지난 2018년, 서울에 장애인시설에 있는 아들을 경찰이 찾아냈고, 80살이 된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아들을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전까지 죽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인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세요. 길잃어 버리지 않도록 매일 말씀보고 기도하세요. 예배를 통해 높으신 하나님을 만나세요. 지금도 나를 찾아오시는 고마우신 하나님을 만나는 소중한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정죄했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닮지 말게 하시고, 세리와 죄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을 따르며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때때로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입니다. 주님을 항상 바라보며 살게 해주옵소서. 매일 말씀과 기도로 살게 해주시고, 매주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내 인생의 위치를 확인하게 해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주님. 게으른 나의 삶을 회개합니다. 한눈 팔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내 삶의 인도자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5 Oct 2026 13:46:3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한국방문(서울뉴욕편)]]></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74]]></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10/6ac346f4d17918992773.jpg" alt="" />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쟝블랑제리에서 맘모스빵을 사서, 생일케익으로 썼습니다. 10/2 진성이 생일이죠. 오랜만에 진성이 생일을 축하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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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인천공항까지 따라오시기로 했습니다. 고장난 핸드폰도 바꿔야 해서, 얼른 대리점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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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나인 콜밴으로 쉽게 공항에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쉬움에 온 가족 커피를 대접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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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나이티드 33게이트, 진성이는 32게이트 바로 옆입니다. 진성이 좀 슬퍼보이네요. 혼자 뉴욕가기 싫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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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한 줄로 앉았습니다. 뒷 자리에 있던 빌런들 때문에 잠은 거의 못 잤네요. ㅠㅠ
한편 진성이는 가장 긴 생일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날이 10/2 이었는데, 뉴욕에 도착하니 10/2일 입니다.
친구들이 저녁에 생일 파티를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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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3 토요일, 울트라마라톤을 뛰었습니다. 50키로미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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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적응도 안 되었는데, 이게 되나???
행복한 한국여행이었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un, 04 Oct 2026 22:48: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한국방문(일본편)]]></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73]]></link>
			<description><![CDATA[진성이와 진수는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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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비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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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스크램블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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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가 진수에게 크게 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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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한국에서는 엄마아빠가 남대문에 소핑을 나갔습니다. 동대문도 다녀왔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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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로수길의 백산식당이라는 곳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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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사당동에서 대학교친구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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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바로 명동으로 왔습니다. 명동칼국수에서 맛있게 먹고, 진성이는 마커스워쉽 목요찬양예배를 다녀왔습니다.

 ]]></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un, 04 Oct 2026 22:42: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한국방문(서울편)]]></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72]]></link>
			<description><![CDATA[9월 25일 서울에서 추석을 보내러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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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추석을 보내고, 을지로에 있는 Monthliv라는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정말 좋은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바로 옆에 청계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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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외대문 앞입니다. 어제는 비가 왔는데, 맑은 가을날입니다. 이번 여행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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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게 먹었던 광화문 미진입니다. 돈까스와 메밀소바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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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국립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침 국악공연을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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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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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용산가족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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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로 샤로수길에있는 숙소를 잡았습니다. 위치 정말 좋네요. 교통도 너무 좋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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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옆에 있는 야구연습장입니다.  천원에 15개. 정말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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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우르과이축구 친선전을 보러 상암동으로 갔습니다. 새 감독이 너무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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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벤탕커, 누네즈 모두 직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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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4:1 패배. 그래도 응원은 열심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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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와 진수는 축구장에 오기 전에 종로에 있는 서울포레스트에서 클라이밍을 하고 왔습니다. 힘이 남아 도는구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un, 04 Oct 2026 22:27: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한국방문(용인편)]]></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71]]></link>
			<description><![CDATA[추석을 맞아서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같은 시간 진성이는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10/6ac33bf40d85f4690885.jpg" alt="" />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United Club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공항에 비해서는 좀 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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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가운데 자리에 아무도 안 앉았습니다. 진수는 바로 건너편 통로에 앉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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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30분 뒤, 진성이가 에어프리미아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용인까지 이동은 팀나인콜벤을 이용했습니다. 카톡으로 예약잡을 수 있고, 요금도 확정되어 있어 맘 편하게 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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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 마자 진성이는 경안천산책로를 달렸습니다. 다음 주에 뉴욕에서 50키로미터 울트라마라톤을 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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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간을 내서 용인중앙시장 근처에 나왔습니다. 영화시간까지 기다려야 해서, 볼링을 치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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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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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를 한글 자막으로 봤습니다. 완전히 누울 수 있는 편안한 의자였고, 값도 너무 싸네요. 일인당 10불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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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있는 시장에서 맛있는 빵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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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는 오목을 새로 배웠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 그런지 금새 배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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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가족들과 추석을 보냈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Sun, 04 Oct 2026 22:10: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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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당신을 초대합니다-은혜주일-눅14:16-2609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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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20-260920.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ShmBgLgqXmY?si=Y8FS8ZsgDJveXdzF&amp;start=1432"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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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조지아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Chris는 가족들과 교회에 가고 있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어떤 흑인 여자 하나가 가솔린통 하나를 들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크리스의 마음에 저 여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차를 돌려서 그 여자에게 가서 사정을 물어보니, 그 여자의 이름은 TunDe였고, 차에 기름이 떨어졌고, 지갑에는 5불 밖에 없다고 하며 울었습니다. 크리스는 TunDe를 태우고 주유소까지 가서 자기 돈으로 가솔린을 채워줬고, 지갑에 있는 현금도 모두 TunDe에게 줬습니다. 크리스는 늦었지만, 다시 교회에 갔습니다.
▶2017년 크리스의 어머니는 파킨슨병에 걸렸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불편해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간병인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병인은 크리스의 어머니를 정성껏 돌봐드렸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크리스는 고마운 간병인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크리스가 간병인을 만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간병인은 TunDe였습니다. TunDe는 간호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1달 뒤 크리스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크리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들어온 2만 달러의 돈을 TunDe에게 장학금으로 줬습니다. TunDe는 간호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고,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1/3 사람은 어려울 때 도우라.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항상 미국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사셨습니다. 한국전쟁 때, 먹을 것이 떨어져서 배고팠을 때, 미군들을 따라다니면 먹을 게 나왔습니다. 그때 얻어먹었던 초콜렛의 기억때문에 지금도 미국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지금은 초코렛을 사드려도 달다고 안 드십니다. 초코렛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어려울 때 도와야 합니다.

▶눅14:12 예수께서는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아멘.

*계속해서 앞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받아 가셨고, 그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겸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잔치의 초대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초대한다는 것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초대할 만한 관계가 되는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초대받아서 잔치에 온 사람은 다음 자기 잔치에 반드시 자신을 초대한 사람을 포함해야 합니다. 당시 잔치에 초대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을 초대하라고 합니다. 이건 당시 사회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구제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에게서는 얻어낼 것이 없기때문입니다.

▶눅14:14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아멘.

*만약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베풀고, 그들이 부끄럽지 않게 같이 그들과 식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천국에서 그의 선행을 칭찬하시고 갚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내 삶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주변에 내가 만나는 사람과 관계를 돌아보십시오.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도움이 되기에 일부러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내가 돕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아무 것도 받을 수 없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내가 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면,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만남과 관계가 있나요? 사람은 어려울 때 도와야 합니다. 어려울 때는 돕기도 쉽습니다. 나를 통해서 누군가 위로받고, 예수님을 믿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라.

*미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내용 중에 1위는 무엇일까요? 한국 사람들이 ▶“밥 한번 먹자.”라고 하는 말이랍니다. 미국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언제 먹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 대답을 잘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진짜 식사약속을 잡겠다는게 아닙니다. 대화를 끝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라는 말로 자주 사용합니다. 미국사람들은 식사약속이나 초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의 문화도 초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눅14:1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아멘.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먹을 만한 많은 음식을 준비합니다. 여기서 초대했다는 것은 단순히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잔치를 베풀테니 올거냐를 묻고 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그 대답에 근거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겁니다. 주인은 고생해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음식이 다 준비되었으니, 오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눅14: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은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밭을 샀는데, 가서 보아야 하겠소.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였다. 아멘.

*잔치음식을 다 준비했는데, 갑자기 초대받은 사람들이 ▶핑계를 대며 잔치에 못 오겠다고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새로 산 밭을 확인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소를 샀는데 소를 돌보러 가야 하고, 어떤 사람은 장가를 가서 아내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잔치에 온다고 했던 사람들인데, 왜 핑계를 대고 안 오겠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들의 핑계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급한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즐거운 일입니다. 새로 산 밭, 새로 산 소, 결혼해서 얻은 아내. 모두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급한 일은 아닙니다. 당장 밭과 소를 확인할 필요없습니다. 잔치에 못 가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핑계일 뿐입니다. 모두 자신의 즐거움에 빠져서, 주인과 약속을 못 지키겠다는 겁니다.

*우리들은 나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도 있고, 집에서 넷플릭스보는게 즐거움인 사람도 있고, 운동하는 것이 즐거움인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즐거운 일이고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에 빠져서,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부르신 천국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잠시 즐겁게 살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이 잔치를 초대했는데, 백성들이 바쁘다고 잔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화가 나서 백성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당시 잔치초대의 문화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1) 초대받으면 초대해야 한다. 잔치에 초대받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가서 먹는 것은 좋지만, 나도 잔치를 열 때 그 사람을 초대해야 하는 겁니다.
▶2) 초대받으면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단순히 잔치에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잔치에 가서 주인과 밥을 먹는 것은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3) 초대를 거부하는 것은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주인은 아무나 초대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을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초대를 거부하는 것은 당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습니다. 혹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기 위해서 일부러 거절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왕의 잔치이야기도 이제 이해가 됩니다. 단순히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을 무시하고, 왕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행동입니다. 그러니 왕이 무례한 백성들을 처벌해 버린 것입니다.

*손님들은 모두 자신의 즐거움에 빠져있었고, 자신의 일로 바빴습니다. 바쁜게 죄가 될까요?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바쁘게 사는 것은 죄입니다. 바빠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주일잔치도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요즘 우리들의 영적 위기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믿는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없이도 너무나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바쁘게 합니다. ▶우리들은 바쁘게 살면 제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바쁘게 살면서 우리들은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주님 안에서 쉬는 날입니다. ▶바쁘게 살던 내 삶을 잠시 내려 놓으세요. 오늘 일 안 해도 안 망합니다. 염려 말고 주님 안에서 쉬세요.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하루를 쉬세요. 그리고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주님 안에서 쉬라.

*고등학교때 시험기간이 되면,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방이 정리가 안 돼서 공부를 못 하겠는겁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열심히 방을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가구의 위치를 바꿉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고 몸이 피곤합니다. 그 상태로 잠을 자고 공부하지 않고 학교가서 시험을 칩니다.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저만 이런 거 아니죠?

*이게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 부지런히 살고 있어.”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중요한 일을 미룹니다. 중요한 일을 망친 뒤에도 핑계는 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부지런히 살았어.”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쁨은 영적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다.” 바쁘게 사는 것이 선한 것은 아닙니다. 종종 바쁘게 살면서 악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1973년 미국에서 유명한 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실험입니다.
설교학시험을 치는 날이었는데, 설교제목은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시험장소가 바뀌었다고 빨리 다른 건물로 이동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건물 사이의 길에 거지 한 명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거지는 배우였습니다.
몇 명의 신학생이 이 거지를 도왔을까요? 놀랍게도 10%만 이 거지에게 관심을 가졌고, 나머지 90%의 신학생들은 거지를 무시하고, 시험을 치러 시험장으로 이동을 하더랍니다. 신학생들이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착한 신학생들이었지만, ▶바쁜게 문제였습니다. 10분 안에 빨리 이동을 해야 하니, 불쌍한 거지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일까요?
▶1) 어릴 때부터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면 성공한다고 배웠기때문에 바쁘게 사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갖고 살면, 쉴 수가 없습니다. 쉬면 죄짓는 것 같습니다. 바쁘게 사는게 미덕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쉴 때 제대로 쉬어줘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과 쉬는 주일날입니다. 주님의 쉼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넘치를 축원합니다.

▶2) 욕심 때문에 바쁘게 삽니다. 좀 더 일하면 더 돈을 많이 벌 것 같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더 좋은 집에서 살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쓰지도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은퇴준비를 열심히 하셨어요. 안 쓰고 안 입고 안 먹고 저축해서, 은퇴하고 전세계를 다닐 계획을 짜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69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어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포기하고 산 것입니다.

▶3) 바쁨에 중독되어 바쁘게 지냅니다. 일하지 않고 쉴 때 뭘하시나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은 잘 갑니다. 아침부터 핸드폰 켜놓고 쇼츠만 하루 종일 보고 있습니다. 이불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핸드폰을 보는 건지, 핸드폰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쉴 줄을 모릅니다. 이런 모습이 싫어서, 할 일도 없어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바쁨에 중독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주님 안에서 예배드리고 쉬는 날입니다. 내일 뭘해야 할지? 염려와 걱정은 잠시 내려놓으세요. 바쁨을 내려놓고, 주님과 만나십시오. 주님과 같이 쉬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편, 잔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음식은 많이 준비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마지막에 취소를 해버렸습니다. 이런 무례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인은 잔치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과 같이 나누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종들을 길에 내보내서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을 잔치자리에 불러 모읍니다.

▶눅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아멘.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도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천국 잔치의 모습입니다. 내가 그 잔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바쁜 일이 있으면 예배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만 손해 보는 겁니다. 잔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안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을까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는 옵니다. 그런데 내가 그 나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 손해보는 것입니다. 내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세요. 주님께서 초대하실 때, 핑계를 대지 마세요. 나의 즐거움에 빠져서, 주님의 초대를 거부하지 마세요. 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마세요.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에 아멘하고 답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천국 잔치로 우리들을 부르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이기적이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 만나고,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시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게 하시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해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의 기쁨을 탐하며 삽니다. 오늘은 주의 날이오니, 주님 안에서 예배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해 주옵소서.
바쁨에 중독되지 말게 해주옵소서.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온 이들에게 쉼을 허락해주옵소서. 주님 안에서 주시는 평화가 넘치게 해주옵소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22 Sep 2026 00:22: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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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37]내 마음의 도피성-은혜주일-민35:6-260918]]></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69]]></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18-260918.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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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35:6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아멘.

*35장에서는 특별한 성읍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직 얻지 못한 가나안 땅을 얻은 것처럼 명령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이렇습니다. 아직 받지 못한 것을 받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직 받지 못한 것을 맏은 것처럼 여기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2 도피성을 만들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의 성읍을 정하라 하셨습니다. 12지파에 각 4개의 성읍을 정해서 레위인들이 살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레위인들의 성읍은 다른 지파가 얻어서 나눠줘야 합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백성 중에 섞여 살게 했습니다. 성막근처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근처에서 살면서 백성들의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이었기때문입니다.

*48개 레위인의 성읍 중에서 6개는 도피성으로 정하고, 42개는 일반 레위인의 성으로 정하게 하셨습니다. 도피성은 무엇이었을까요?

민35:11 성읍들 가운데서 얼마를 도피성으로 정하여,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여라. 아멘.

*실수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눈을 다치게 했으면, 똑같이 눈을 다치게 하고, 이가 부러졌으면, 상대방의 이를 부러뜨려야 합니다. 이게 정의였습니다. 왜냐면 힘있는 사람들은 남의 눈을 다치게 하고, 이를 부러뜨리고도 아무 벌을 받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실수라도 살인한 사람은 살인자고, 목숨으로 갚아야 했습니다. 실수로 내 남편을 죽이면 이게 용서가 됩니까? 실수든 아니든 내 남편이 죽은 것 아닙니까? 원수를 갚아야죠.

*성경은 두가지로 살인자를 구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실수로 죽인 것인가? 계획적으로 죽인 것인가?

민35: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들고 있다가, 그것으로 사람을 쳐서 죽게 하였으면, 그는 살인자이다. 그러한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아멘.

*무기를 준비해서 갔다면, 분명히 고의적인 살인이라는 겁니다. 현대 재판에서도 아주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입니다. 결과보다도 의도를 중요하게 보는 겁니다.

*우리도 도피성을 준비해야 합니다. 도피성에서는 용서가 넘칩니다. 내 마음에 도피성을 준비하세요. 살인도 도피성에서는 용서가 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도피성을 준비하세요. 이곳에서는 내 원수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도피성에서는 실수가 용서됩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방법은 그들의 의도를 다시 해석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내 마음에 도피성을 만드세요. 그리고 나의 원수를 용서하세요. 주님의 은혜를 몰라서 저렇게 사는 겁니다. 내 마음속에 용서의 도피성을 만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도피성으로 피하라.

*도피성의 설치는 원칙이 있습니다. 요단강 동쪽에 3개, 서쪽에 3개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하룻길 안에 도착할 범위에 설치해야 합니다. 하룻길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살인자가 사고를 치고 살려고 도망을 칩니다. 도망친 살인자가 하루 안에 도피성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추격대가 쫓아와서 살인자를 잡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너무 쉽게 용서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자기가 사는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안전함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의 안전한 울타리를 떠나서, 위험한 곳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가족과 친척은 중요한 안전망이 됩니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것은, 내 뒤에 든든한 내 친척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나면 먹고 살기 힘들어 집니다. 땅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가축을 기를 수도 없습니다. 자기 고향 땅을 떠나면, 어디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봤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치고 도망친 것일까? 의심합니다.

*도피성으로 피한다는 것은, 자신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는 겁니다. 익숙한 일상을 포기하고 살기 위해서 새로운 곳을 향한 다는 겁니다.

*살인자는 이동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만약 도피성에서 나오게 된다면, 이 사람은 복수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집떠나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얻어 먹고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 자체가 큰 형벌입니다. 자신을 보호해줄 가족도 없고, 자신이 일할 땅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은혜를 구걸하며 살아야 합니다.

민35:28 살인자는 반드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대제사장이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소유지가 있는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멘.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마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기만을 기도했을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기때문입니다.

*이 살인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죄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입니다. 그러면 도피성은 무엇일까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 안에 거하면 안전합니다. 예수를 떠나면 안전하지 않습니다. 나의 익숙한 삶과 습관을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마땅한 살인자를 위해서 왜 도피성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 앞에 안 중요한 영혼은 없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살인자라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십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살인자가 우리들입니다. 익숙함을 떠나서, 예수 안에 거하세요. 예수안에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나의 죄를 회개하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피성되신 예수 안에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문
원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만달란트 빚을 용서받고도, 백데나리온을 용서 못하는 종이 바로 우리들임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도피성을 쌓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명령대로 도피성을 만들고, 내가 용서하지 못할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그 용서로 내가 용서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의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오늘 말씀에 나온 살인자가 바로 나임을 고백합니다. 마음속으로 미워한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예수 안으로 피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살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22 Sep 2026 00:20: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Chase Center, Coit Tower, Chinatown]]></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64]]></link>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788292371146.jpg" alt="" />

진수가 SF로 돌아왔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맛있는 샤부샤부로 해먹고, 배불러서 산책하러 체이스센터로 나왔습니다. Golden State Warriers 농구경기장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8ddfb6698173.jpg" alt="" />

"나 때는 말이야.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올랐지!"
진수도 해보겠다고 해서 같이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진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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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스는 남자 농구팀, 발키리스는 여자 농구팀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a67777435499.jpg" alt="" />

9월 7일은 노동절입니다. 엄마도 오늘 쉬는 날이라서 시내관광을 나갑니다.
웨이모 택시를 불러서 Little Italy에 갑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b40634179526.jpg" alt="" />

Washington Square Park 앞에 있는 Saints Peter and Paul Church입니다. 1884년 세워졌지만, 1906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1924년에 재건축되었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b84941127205.jpg" alt="" />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TransAmerica 빌딩입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a10f36e72783894.jpg" alt="" />

12시부터 여는 Tony's Pizza 앞에 30분 전부터 대기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딱 73판만 주문을 받는 마르게리타 나폴레타나(Margherita Napoletana)입니다.
오<span class="citation-102 citation-end-102">너 셰프 토니 제미냐니(Tony Gemignani)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세계 피자 컵(World Pizza Cup)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할 때 선보였던 상징적인 피자입니다.</span>

왜 73판인가 알아보니, 좀 황당한 이유가 있네요. <span class="citation-137">오너 셰프인 토니 제미냐니(Tony Gemignani)가 </span><span class="citation-137">1973년생이라서 73판만 한정 판매한답니다. </span>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be27a8106378.jpg" alt="" />

여기는 Coit Tower입니다. 피자집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진수는 여기 처음 와봤습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ab375dc104c3712280.jpg" alt="" />

여기는 차이나타운입니다. "부국은행"이라고 한자로 간판이 되어 있네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1848년 골드러시와 함께 세워졌습니다. 미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6 Sep 2026 17:01:2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라-은혜주일-눅14:11-260913]]></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563]]></link>
			<description><![CDATA[<div>
<p><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9-13-260913.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p>
<p><span style="font-size:16px;"><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WjKZRTzHVPI?si=C9Bv3Ow-V2BVtgBC&amp;start=1384"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p>
</div>
▶ *1912년 세계 최첨단 초호화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건조되었습니다. 이 배의 별명은 unsinkable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다.”라고 사람들은 말 했습니다.  
배에 작은 격벽들을 만들어서, 어디 한 군데에 구멍이 나도 그 지역만 막으면 침몰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사우스햄턴을 떠나서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배였고, 당시 최고의 부자들이 비싼 돈을 내고 이 배에 탑승했습니다. 
이 배를 건조한 최고 경영자인 브루스 이스메이도 이 배에 탑승했고, 빙산이 많은 대서양 북부 바다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게 했습니다. 어차피 이 배는 빙산에 충돌해도 침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4월 14일 밤 타이타닉은 거대한 비상에 충돌했고, 배의 측면이 찢기면서 배는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메이는 승객의 대피를 돕지 않고, 여자와 아이들이 타는 구명정에 몰래 숨어서 탈출합니다. 
▶1500명 이상 이 사고로 사망을 했고, 뉴욕에 도착한 이스메이는 “겁쟁이” “살인자”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평생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우울증과 죄책감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스메이는 왜 이렇게 교만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교만은 옵션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교만함이 있습니다. 잘 되는 게 없어서 교만할 수 없고, 잘되는 일이 있어도 마음속에 교만을 잘 숨겨두는 거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자신을 낮추라.

*예수님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렸고,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너무나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로마의 강력함에 협력해서 권력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돈과 권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명예와 인정에 민감했습니다. 로마에 협력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려고 했습니다. 사두개인보다는 훨씬 신앙적인 사람들이었기에,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을 존경했습니다. 길에서 바리새인들을 만나면,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서서히 이런 백성들의 인정과 자신의 명예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눅14:7 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아멘. 

*예수님께서 잔치에 가셨습니다. 자리를 앉는데, 바리새인들이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잔치에는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있습니다. 집주인과 가까운 자리가 좋은 자리입니다. 나쁜 자리는 집주인과 멀리 앉은 자리가 나쁜 자리입니다. 집주인과 가까이 앉은 사람은 좀 더 중요한 사람이기때문입니다. 더 좋은 음식을 먼저 받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있습니다. 목사 옆자리는 좋은 자리일까요? 나쁜 자리일까요? 나쁜 자리랍니다. 목사님 근처에 앉으면 부담스럽답니다. 거룩한 얘기만 해야 할 것 같아서 소화가 잘 안 된답니다. 그래서 제 옆자리는 주로 장로님들이 앉으십니다. 교인을 대표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거랍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람들의 인정에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 보기에 자기가 이 정도 순위는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차지했는데, 자기보다 더 순위가 높은 사람이 잔치자리에 참여했습니다. 주인은 당연히 먼저 자리 잡은 바리새인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이 바리새인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제일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가 엉뚱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높은 자리로 올라오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이리 낮은 자리에 않으셨습니까? 라고 물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하다라고 하며 칭찬을 할 것입니다. 

▶눅14: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아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게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겸손의 말씀입니다. 누군가 나를 낮추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걸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남이 나를 낮추기 전에, 스스로 나 자신을 낮추세요. 

▶*예수님은 억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고, 나를 낮춰도 화내지 마세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세요. 이 겸손을 연습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를 허락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2/3 거짓 겸손에 속지 말라.

*한국 사람들은 잘못된 겸손의 태도를 갖고 삽니다. 한국 사람들은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중고등학교때, 기말고사시험을 치고 나와서 친구들이 “시험 잘 쳤니?”라고 묻습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잘 쳤든 못 쳤든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시험 망쳤어.”라고 답을 해야지 친구가 안 떨어집니다. 사실 그대로 “잘 쳤어. 쉽던데.”라고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버립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태도가 더 이상합니다. 일을 잘 해서 “참 잘했다.”라고 칭찬하니 칭찬을 들은 한국직원이 “아니에요. 부족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죠. 한국문화 속에 거짓 겸손이 숨어 있습니다. 

*칭찬을 듣고 난 후, 겉으로는 “아니에요.”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교만이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나니까 이런 칭찬을 받는거지.”라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교만을 거짓 겸손이라는 탈로 가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겸손은 진짜 겸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겸손은 성경이 말하는 겸손도 아닙니다. 

▶1) 위선적 겸손
방금 말씀드린 겸손은 위선적 겸손입니다. 겉으로는 자신을 낮추는 것 처럼 말하지만, 이렇게 해야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고, 잘난 척 한다는 소리도 안 듣고, 저 사람은 능력이 있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네. 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아니에요. 부족합니다.”라고 말한 뒤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아니에요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부족한 부분을 지적을 하면 더 크게 화가 납니다. 교묘하게 더 많은 칭찬과 인정을 요구하는 교만함이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교만에 겸손이라는 옷을 입히지 마세요. 위선적 겸손은 교만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서 이런 교만을 늘어 놓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추는 시늉을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교만을 숨기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위선적 겸손을 다시 확인하세요. 주님 앞에 온전히 겸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자기비하적 겸손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낮춰야 할까요? 악수할 때, 허리를 더 숙이는 사람이 겸손할까요? 한국 문화에는 자신을 더 많이 낮출수록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더 많이 낮춘 사람이 더 겸손한 사람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지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한참동안 하나님의 계획을 모세에게 설명했습니다. 그 설명을 들은 모세는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출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아멘. 

*모세는 자신이 그 일에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이건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나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하나님의 걸작품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옆에 있는 하나님의 작품을 감상해주세요.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라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3) 객관화 되지 않은 겸손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겸손하다고 착각하며 사는 겁니다. 이 정도면 능력있고, 겸손하다. 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내가 겸손한 것을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목사님들 중에서 설교 못하는 목사님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모두 저를 보고 계시죠? 목사님들 중에 설교 못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절대로 설교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광팬이 있기때문입니다. 주로 사모님들이 목사님의 광팬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스스로를 잘 못 봅니다. 

*저는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아내는 저의 광팬이 아니라, 예언자입니다. 아내도 신학대학원을 나왔는데, 설교 끝나면 불려가서 정말 많이 혼났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제가 있습니다. 혹시 마음에 교만함이 올라오시는 분들은 제 아내에게 상담 받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겸손해집니다. 

*지금까지 3가지의 거짓 겸손을 살펴봤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저거 다 내 얘기인데. 라는 생각이 드셨나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겸손은 옵션입니다. 겸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겁니다. 나만 낮춘다고 겸손해지는 게 아닙니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라.

*전에 다니던 교회에 아주 겸손한 여자 연예인이 있었습니다. 이 배우가 SBS에서 주는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는 소감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참 겸손한 배우였고, 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배우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세상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끝내 교회를 떠났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겸손입니다. 제대로 겸손한 것 같은데, 뭘 잘못한 것일까요? 잠시 겸손할 수는 있습니다. 계속 겸손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을까요?

▶1) 자기를 비우라. 
예수님은 겸손해지기 위해서 매일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높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밤늦게 기도하시고, 새벽에 기도하시면서 자신을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렇습니다. 내 속에 가득찬 교만한 나 자신을 비워야, 하나님의 은혜를 채울 수 있습니다. 나의 교만한 모습 때문에 주변에 있는 이들을 힘들게 하고, 가족들을 괴롭게 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받을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나의 교만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하세요. 내 영혼을 비우고, 주님의 은혜를 채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낮은 자를 섬기라.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만 자신을 비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권력자들의 섬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예루살렘성 밖의 마을인 베다니를 사랑하셨습니다. 

*종들 중에서 가장 낮은 종들이 하던 발씻는 일을 직접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을 수가 있겠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낮은 자를 섬기면 겸손해집니다. 몸으로 섬겨야 합니다. 몸으로 섬기면,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신의 몸으로 낮은 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오늘은 노숙인봉사를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들을 섬기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이들을 섬기셔서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철저히 순종하라. 
우리들은 가끔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안 할 텐데. 왜 하나님께서 이러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명령을 거부할 때도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교만이 있기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셨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교만이 몰려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을 통해서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뜻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순종으로 겸손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고 배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겸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을 높이셨습니다. 이게 진짜 겸손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내가 못 할 일이 없다고 믿는 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교만한 우리들을 용서해주옵소서. 
오늘 말씀에 나온 높은 자리를 찾는 바리새인이 바로 우리들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정과 명예를 좇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의 죄악을 용서해주옵소서. 
마음속에는 교만이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 머리를 숙입니다. 우리들의 가식을 용서해주옵소서. 스스로 자신은 겸손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은 자를 섬기고, 철저히 순종함으로 겸손하게 해주옵소서.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16 Sep 2026 11:09: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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