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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원목사의 홈페이지</title>
		<link>https://kimdongwon.net</link>
		<description>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목사 가족 이야기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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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진수대학졸업식(6/13)]]></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2]]></link>
			<description><![CDATA[6월 13일 토요일 오전 9시 진수 대학졸업식이 Sacramento Kings Stadium 인 Golden 1 Center에서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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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농구경기장입니다. 금토일 3일간 오전 오후로 나눠서 졸업식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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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진수가 들어옵니다. 손흥민 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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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Davis 총장이신 <strong class="Yjhzub">Gary S. May</strong>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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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라멘토는 역시 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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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교회 친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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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에 UC Davis 소방서 마크가 붙어 있습니다. 진수가 소방서에서 4년간 EMT로 봉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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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가 일했던 소방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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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졸업식을 마치고,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와서 주일 준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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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에는 미션에 있는 Foreign Cinema 라는 식당에서 진성이가 한턱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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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곳이었고, 저녁이 되면 벽에 영화를 상영합니다.
4년 동안 진수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진로도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6 Jun 2026 21:55: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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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진성이와 야구구경을 갔습니다.(6/9)]]></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1]]></link>
			<description><![CDATA[오늘은 SF Giants가 Washington Nationals 와 홈경기를 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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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진성이도 집에 돌아왔습니다. 진성이와 야구 구경을 했습니다. 무료관람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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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부분에서 구경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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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보면 이정후선수가 제일 잘 보입니다. 오늘 이정후선수는 정말 잘했습니다. 팀은 6대3으로 졌습니다.

 

 ]]></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6 Jun 2026 21:39: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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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Embacadero, Union Square(5/31)]]></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90]]></link>
			<description><![CDATA[요즘은 해가 깁니다. 주일 오후에 걸어서 샌프란시스코 산책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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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있는 시계탑이 샌프란시스코 페리터미널 시계탑입니다. 저 곳이 장인환 전명훈의사님이 스티븐슨을 암살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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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유니온스퀘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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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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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유명한 크로니클 신문입니다. 1865년에 창간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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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두퍼에서 저녁 먹고 돌아왔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6 Jun 2026 21:33: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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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용서가 나를 살린다-은혜주일-눅11:4-260614]]></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9]]></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6-14-26061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QNHW768SSiE?si=YSgj6b87gtqke4ur&amp;start=1136"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오늘도 계속되는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시간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더 풍성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잘못된 용서는 나를 망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죄인인 나를 용서해주셨기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용서하면서 뿌듯해 하기도하고, 매번 왜 내가 용서해야 하냐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요?

▶눅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아멘.

*주기도문에 나오는 용서입니다. 아주 부담스러운 기도문입니다.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이렇게 용서하실 수 있나요? 할 수 있다고 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실제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을 정말 용서하고, 형제와 자매로 대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잘못된 용서가 참 많습니다.

▶1) 괜찮다고 하면서 계속 미워하는 겁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을 합니다. 자신의 상처가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습니다. “너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 분명히 복수할거야.” 겉으로는 화해를 연기하는 거지 용서가 아닙니다. 이런 분들은 용서와 분노가 마음속에서 요동을 칩니다. 잠시 참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시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2) 상처를 부정하는 겁니다.
차를 운전하다가 다른 차와 부딛혔습니다. 대충 차를 보니 별로 손상이 없습니다. 상대방 운전자에게 괜찮으니 그냥 가라고 용서해줬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차의 상처가 큰 겁니다. 그때서야 속이 상해서 잠이 오지 않습니다. 후회하게 됩니다.
상처를 부정하면 안 됩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고, 마음이 상했으면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를 할 수있는 겁니다.

*상대방의 말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분 나빠서 얼굴 색이 변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묻습니다. 화났냐고? 그러면 “아까 네가 했던 그 말때문에 속이 상했다.”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착한 척 하느라고 “화 안 났다”라고 화를 냅니다. 그러다가 싸움이 커집니다. 이것도 진짜 용서는 아닙니다.

▶3) 우월감을 느끼는 겁니다.
“착한 내가 참는다.” 이건 용서가 아니라 교만입니다. 이렇게 참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상대방이 더 성공하면, 내가 용서할 수가 없는겁니다. 상대방이 망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저 나쁜 인간은 왜 잘 먹고 잘 사냐?
왜 만난 나는 참고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우리들은 상처를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잘못된 용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용서는 우리의 삶과 가정을 망가뜨립니다. 예수 안에서 바른 용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용서는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정범태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입니다. 1961 서울고등군법재판소에서 있었던 재판의 한 장면입니다. 당시 군사정부가 열었던 군사재판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죄로 잡혀왔는지 모를 여자 죄수가 판사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아기가 엄마를 부르며 엄마에게 와서 안겼습니다. 이 장면을 본 판사의 마음이 움직였고, 판사는 여자 죄수에게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울면서 엄마에게 안긴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판사의 마음도 움직였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죄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잘난 것이 있어서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용서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거짓용서가 무엇인가를 봤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진짜용서인가요? 성경적인 용서는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할 수 있을만한 것일까요?

*구약성경에 나온 요셉은 꿈의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용서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2명의 아내와 2명의 첩이 있었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라헬만 좋아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들과 살게 되었지만, 야곱은 라헬만 사랑했고, 라헬이 낳은 첫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지극히 편애했습니다. 11번째 아들이면 형들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서 입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형들은 오래된 옷을 물려받아 입었지만, 요셉에게는 화려한 새 옷을 입혔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을 감시하는 임무도 맡깁니다. 그로 인해서 형제들간에 사이는 극도로 나빠 집니다.

*자식을 편애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나는 편애를 안 한다고 합니다. 나는 공평하기때문에 자식들이 하는대로 대접한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편애입니다. 잘 하는 애는 칭찬해야하고, 못 하는 애는 혼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사랑이어야 합니다. 미워서 혼내는 것은 차별입니다. 자식 편애 하면 형제간의 사이를 망쳐버리게 됩니다. 야곱이 그런 실수를 했습니다.

▶창37: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아멘.

*요셉이 형들을 감시하러 도단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고, 요셉의 자랑거리인 화려한 옷을 벗기고, 물구덩이에 빠뜨려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물구덩이에 물이 없어서 살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살려달라고 다시는 잘난 척 안 하겠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잔인했습니다. 살려두면 분명히 이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어차피 다시는 집으로 못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꽁꽁 묵인 채로, 노예상인들에게 매를 맞으며 이집트까지 사막을 건너갑니다. 노예시장에 선 요셉은 가장 비싼 값을 부른 이집트인에게 팔려갑니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집 아들이 말도 안 통하는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요셉은 이집트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성실했던 요셉은 주인에게 인정받고,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의 살림을 담당하는 중요한 노예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했고, 요셉은 다시 지하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요셉은 얼마나 형들을 미워했을까요? 형들을 얼마나 원망했을까요? 형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그런데 알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요셉의 이런 마음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도 좌절했고, 그도 미워했고, 그도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나요? 13년 후,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의 해석으로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곡식을 구하러 이집트까지 내려와서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요셉이 했던 말입니다.

▶창45:4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아멘.

*“저 요셉이에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형들은 얼마나 놀랬을까요? 요셉은 13년 전의 일들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겁니다. 이 정도 출세했으면, 그런 일들은 잊을 만도 한데, 요셉은 그 고통을 하나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용서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창45:5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아멘.

*요셉은 자신의 상처를 기억했습니다. 어쩌면 형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남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잊혀집니까? 억지로 잊으려고 하면 잊어집니까? 용서를 착각하지 마세요. 용서했다고 해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상처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그 기억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겁니다.

▶*진짜 용서는 하나님께 복수를 맡기는 겁니다. 내 상처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위로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맘대로 복수하려고 계획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요셉은 자신이 당한 상처가 상처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형들이 나를 이집트노예로 팔지 않았으면, 전세계가 굶어죽었을 것이고, 내 가족들도 굶어죽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니, 상처가 상급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상처때문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복수를 꿈꾸며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랬던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상처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세요. 아프면 상처입니다. 안 아프다고 우기지 마세요. 아프면 주님 앞에서 아프다고 고백하세요.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리고 잊어버리세요. 우리의 귀한 인생을 복수라는 감정으로 낭비하지마세요. 요셉처럼 하나님을 믿고 진짜 용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용서가 나를 살린다.

*어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교를 휴학하고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실수로 주차되어 있던 미니밴을 박았습니다. 미니밴에 적힌 번호로 연락하니, 60대 쯤 되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찌그러진 차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보게 젊은이. 나는 저 교회의 목사인데, 젊은이도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똑같이 용서해준다고 약속하면 나도 자네를 용서하겠네.”
이 젊은이는 “꼭 용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울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비슷한 상황이 그 청년에게도 일어났고, 그는 10년 전 약속이 생각나서, 사고운전자를 용서해줬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놀라고 화납니다. 목사님의 용서덕분에 청년이 용서할 수 있었고, 용서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용서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1) 용서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요셉은 과거에 매여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가 당했던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용서했기때문입니다. 형들이 밉고, 어떻게 그런 일을 동생에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요셉은 최선을 다하고,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는 과거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매일 복수를 꿈꾸시나요? 그러면 그 사람이 망하기 전에, 내가 괴로워서 무너집니다. 요셉처럼 용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용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요셉은 스스로 재판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충분히 형들을 처벌할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복수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용서를 하고 나니,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재판관이 되고 하나님인 척 하면 안 됩니다.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용서는 나를 보호한다.
사람을 미워하면, 제일 괴로운 사람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면, 주야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미워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운 사람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편에 서서 싸워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완전히 내 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끝내 내 이야기가 부담스러워서 들어줄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미움은 스스로 나를 죽이는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나를 보호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용서해야 용서받는다.

▶눅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아멘.

*우리는 더 큰 용서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내 죄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작은 것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합니다. 말씀보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살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세상의 기쁨을 더욱 즐거워 합니다. 용서하기보다는 복수하고,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일 믿어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용서합니다. 우리가 용서함을 통해서, 우리는 더 크신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1994년 르완다는 지옥이었습니다. 100일 동안 같은 민족이 후투와 투치로 나뉘어서 10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학살은 중단되었지만,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이었기에, 언제라도 복수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차차재판을 실시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마을의 광장에 모여 앉습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나와서 피해자의 가족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비는 사람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용서해줬습니다. 어차피 다들 미쳐서 저지른 실수였기때문입니다.
이 용서덕분에 르완다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복수를 선택했다면, 지금 르완다는 지옥과 같이 변했을 지도 모릅니다.

▶*용서를 선택하세요. 요셉과 같이 용서하세요. 하나님께 내 상처를 고백하세요. 그리고 복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내 상처가 나를 괴롭게 하지 마세요. 요셉처럼 용서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감격하게 해주시옵소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용서 못할 죄인들을 용서하게 해주시옵소서.
내 힘으로 용서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용서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요셉의 용서를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나의 분노와 복수가 나를 망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용서받은 죄인은 반드시 용서하며 살아야 함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나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나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6 Jun 2026 17:49: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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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23]길이 막힐 때-은혜금요-민20:14-260612]]></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8]]></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6-12-260612.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div>
▶ 민20:14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아멘.

*출애굽한지 40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 가까이까지 도착한 이스라엘백성들은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습니다. 가나안 땅까지 쉽게 가기 위해서는 에돔 땅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들의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게서는 무슨 계획이 있으셨던 걸까요?

1/2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다.

민20:14 모세는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들을 보냈다. "임금님의 형제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요청하는 바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우리가 겪은 온갖 고난에 대하여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아멘.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에돔땅을 통과하려고 했습니다. 일단 에돔은 남이 아니었습니다. “형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형제일까요?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야곱의 형이 에서였지요. 그러니 형제나라가 맞습니다. 모세는 형제 나라인 에돔이 기꺼이 이스라엘백성들을 통과시켜주고, 반갑게 맞아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민20:17 바라옵기는, 우리가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샘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다만 '왕의 길’만 따라가겠습니다. 임금님의 영토 경계를 다 지나갈 때까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아멘.

*왕의 길.
왕의 대로 king' highway라고 부르는 이 지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길입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시리아의 다마스커스가 나오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카바해가 나옵니다. 많은 상인들이 오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민20:18 그러나 에돔 왕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회답하였다. "당신은 절대로 나의 땅을 지나가지 못할 것이오. 지나가려고 꾀한다면, 우리는 칼을 들고 당신을 맞아 싸우러 나갈 것이오." 아멘.

*그러나 에돔 왕은 모세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거절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200만명이 넘습니다. 이런 난민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에돔 땅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게다가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생활만 40년을 했습니다. 힘없고 병든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최정예 군인들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전쟁하고 싸우면서 여기까지 왔기때문입니다.

*모세가 이 길을 가려고 기도했다는 내용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모세는 사신을 보냈습니다. 에돔을 형제 나라라고 생각하고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의지하며 삽니다. 그러다가 거절당하기도 하고, 배신당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원래 그런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길이 막힐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이스라엘은 어쩔 수 없이 에돔을 우회하는 경로를 택하게 됩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을 준비하고 열어주십니다. 길이 막혔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보여주실 줄을 믿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백성들은 불평을 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이스라엘백성들을 실망시키시는 걸까요? 이렇게 좌절하며 가나안 땅에 가면 제대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1달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이 돌아서 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을 기다린 후에 80살에 지도자로 뽑아주셨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뽑아놓고 15년이나 도망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실까요? 좀 쉽고 빠르게 인도해주시면 안 되는 걸까요?

수4:19 백성이 첫째 달 열흘에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동쪽 변두리 길갈에 진을 쳤다. 아멘.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언제갔을까요? 1월 10일 이었다고 합니다. 출애굽한지 41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성급하게 지름길을 이용하려고 했던 겁니다. 왕의 대로를 이용해서 편하게 가나안땅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40년보다 더 빨리 가게 되는 겁니다. 에돔땅을 통과하는 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목사안수시험은 2년 안에 붙으면 됩니다. 빨리 붙는다고 빨리 안수해주지 않습니다. 최소 2년 동안 전도사로 일을 해야지 안수를 줍니다. 시험에 떨어졌고, 한번 더 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선배목사님께 이런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그때 선배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전도사. 지금 목사안수를 받아도 35년을 목사로 살게 될텐데. 35년 하면 좋은 목사고, 34년 하면 나쁜 목사인가? 어떤 목사가 되는 게 중요하지, 빨리 되는 게 더 중요한가?”
선배목사님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저의 잘남을 자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머리가 좋다. 나는 너 보다 똑똑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는 것이 싫어서 화가 났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바로가면 교만해질까봐 돌아서 가게하셨습니다. 제가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무너뜨리시고,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대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저의 원래 계획은 미국생활 1년이었습니다. 박사과정을 1년만 하고, 다시 한국 가려고 했습니다. 박사학위있으면 더 큰 교회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돌아가는 길로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가 되게 하셨고, 제가 계획했던 계획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제가 계획한 성공의 길이었습니다.

*세탁소에서도 일 해보고, 신학교 셔틀버스기사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만약 제 계획대로 되었다면, 저는 아무 쓸데없는 교만한 인간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가는 길로 저를 훈련시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길이 막힐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길은 막혔지만,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길이 막힐 때, 막힌 길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항상 사람들의 도움을 의지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보다는, 보이는 사람의 확실한 도움을 더욱 의지하며 삽니다. 우리의 믿음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길이 막힐 때, 우리들은 막힌 길 앞에서 좌절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불평합니다. 막힌 길 앞에서 좌절하지 말게 하시고, 막힌 길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열어주심을 믿습니다. 불평과 원망에 빠지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주옵소서.
내 인생에 GPS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16 Jun 2026 17:47: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목사의 정직성]]></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7]]></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신학교에서 만난 동기생의 고백입니다. 그는 장로인 아버지에게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크게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장로로 섬기셨으면서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는 것을 왜 반대하십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너는 너무 착해서 목사를 못 한다. 목사를 하려면 약아야 하고 거짓말도 잘해야 하는데, 너는 그런 걸 못 한다."
참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그 아버지가 만난 목사님들 가운데는 거짓말을 잘하는 분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 역시 그런 목사님들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뼈를 묻겠습니다.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않겠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그렇게 눈물로 고백하던 목사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조건의 교회로 옮겨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사역지를 옮기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약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p>
<p class="isSelectedEnd">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매우 관대하신 분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거짓말에 대한 경계심이 약한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나중에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반대로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두려우신 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더 조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 어떤 부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사무실에 있는데, 갑자기 관리집사님이 신문광고를 보고 놀라서 묻습니다. "목사님 사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사임하세요?" 부목사님은 본인도 모르는 소식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옆에 있는 담임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 말이야. ***목사님. 뭐 섭섭한거 있어요? 왜 그러는거에요?" 부목사님은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자신을 미워했고, 자신을 내보내기로 결정한 후, 자신이 자진해서 나가는 것으로 누명을 씌웠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부목사님은 교회를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p>
<p class="isSelectedEnd">과연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고 배신하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요? 목사는 신실해야 합니다.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11 Jun 2026 13:49: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오늘에 집중하라-은혜주일-눅 Luke11:3-260607]]></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6]]></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6-07-260607.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zxeac1M6oaY?si=tEjAxPT1ygIEgYVJ&amp;start=1361"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내 어깨에 무거운 짐 하나를 더 얹어 주셨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머리를 싸매고 풀어야 할 문제들을 주셨다.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용기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주셨다.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미운 사람들을 잔뜩 보내주셨다.

*어떤 분의 고백인지는 모르지만, 이게 정말 우리가 당하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이 시를 들으시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하신 분들 계신가요?
“기도를 안 하면 시험도 피해갈 수 있을거야.”
맞는 생각일까요?

*전혀 맞는 생각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넘어질 것이고, 지혜가 부족해서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고, 무서워서 도전하지 못할 것이고, 평생 다른 이들을 미워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기도를 제대로 배우고, 그 기도로 응답받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오늘에 집중하라.

*어느 나이든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평생 찬밥을 먹고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따뜻한 밥은 남겨뒀다가 가족을 줘야 하기에, 맨날 찬 밥만 드셨습니다. 이게 버릇이 되다보니, 따뜻한 밥이 있어도 그걸 뒀다가 찬밥을 만들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어느 날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라는 후회가 몰려오셨고, 이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산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권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맨날 내일걱정하면 오늘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내일 걱정 내려놓고 오늘을 행복하게 사세요.”

*이 분의 말씀에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며 삽니다. 내일을 걱정하며 삽니다. 아침 밥을 먹으면서 점심 때는 뭐먹지? 한숨을 쉽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때는 뭐 해먹지? 걱정을 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속에 근심을 달고 삽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 같고, 게으르게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기억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게 과거입니다. 어제 이 시간에 뭐하셨나요? 기억하시는 분은 과거가 있는 분이고, 기억 안 나시는 분은 과거가 없는 겁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것도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내일 이 시간쯤에는 뭐하고 계실건가요? 정말 그 시간에 그 곳에서 그 일을 한다고 확신하시나요?

*우리는 어제 있었던 일을 후회하며 삽니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어제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려서 손해를 봤을까?
우리는 내일 일을 추측하며 염려합니다. 과연 그 일이 일어나기는 할까요?

*신시내티 대학교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Zelinski)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 중에 ▶85%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15%는 일어나는 일이니 염려할 가치가 있을까요? 15% 일어나는 일 중에서 내 능력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79%라고 합니다. 그러면 진짜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3% 정도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걱정하는 것 중에서 97%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오늘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아멘.

*마태복음에서는 “오늘”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에 집중해서 사세요. 왜 쓸데없이 내일 걱정을 오늘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을 망치고 있는 겁니까?
내일은 월요일입니다. 출근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 걱정을 왜 주일날 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오늘을 행복하게 사세요.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의 물가는 너무 비쌉니다. 1베드룸 아파트 렌트가 평균 4천불이 되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모든 게 다 올라가는 현실입니다. 내 월급과 내 자식의 성적빼고는 다 오른다고 합니다.

▶*내일은 준비하는거지 염려할 것은 아닙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가 오늘을 불행하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먹고 사는 이 기도문에 “오늘”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에 집중하세요. 오늘 점심식사는 걱정하지마세요. 교회에서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라.

▶*2014년 Josh Paler Lin이라는 유튜버가 실험을 했습니다. 토마스라는 노숙인에게 100불을 주고, 큰 돈을 받은 노숙인이 뭘할 지 몰래 따라가서 촬영을 했습니다. 토마스는 큰 돈을 받고 놀라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근처 리커스토어를 향했습니다. 유튜버는 “소문대로 술사러 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뒤 토마스는 검은 비닐 봉투에 들고 나왔습니다. 토마스는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갔고 노숙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자신이 산 샌드위치, 과자, 음료수를 노숙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Josh는 토마스에게 왜 혼자 먹지 않고, 다른 노숙인들과 나눴냐고 물었습니다. 토마스는 “나누면 더 행복하니까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노숙인봉사를 하면서 이런 매번 이런 경험을 합니다. 요즘은 음식과 생필품을 투명한 지퍼백에 넣어서 가져갑니다. “몇 개나 필요해?”라고 물으면, 정확히 주변에 있는 노숙인의 숫자만큼만 이야기합니다. 더 달라고 하는 노숙인은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한 봉지 더 받으면 더 배부를 수 있지만, 내가 한 봉지 더 받으면 누군가 굶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더라구요. 노숙인들은 공동체의식이 있습니다. 서로를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눅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아멘.

*왜 “나에게”라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에게”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나만 배고픈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배고프면 다른 사람이 배고픈 것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 점심식사를 같이 합니다. 식사를 같이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그 식사를 통해서 우리는 공동체를 배워야 합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가 아니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올해 미국에서 제일 인기있는 약은 “위고비”라고 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죠? 살 빼는 주사인데, 이거 맞으면 정말 살이 잘 빠진다고 합니다. 이게 미국시장에서 엄청나게 인기라고 합니다.

*종종 뉴스를 통해서 북한의 모습을 보면, 모두 말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위고비” 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나에게만 양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양식이 필요합니다. 주변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과 나누셔야 합니다.

*오늘 집에 가서 냉장고를 한번 열어보세요. 먹지도 않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있나요? 어차피 먹지도 않을건데 좀 나눠먹으면 좋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양식이 필요합니다.

▶신15:7 그 가난한 동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당신들의 손을 움켜 쥐지 마십시오.
15:8 반드시 당신들의 손을 그에게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십시오. 아멘.

*성경은 우리에게 나눔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동네에 굶어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 동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배고픈 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이유로 길에서 구걸을 하는 지는 우리가 알 수 없고, 알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눔입니다. 내가 먹고 남은 것이 있다면, 이웃을 생각하세요. 노숙인들을 생각하세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은 뭘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받아서 잘먹고 잘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일단은 아브라함이 복을 많이 받아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복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누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믿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은 복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복을 나누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복받으려고 예수믿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복받아서 나누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5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맛있는 거 있으면 혼자 먹을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을 먼저 생각하세요. 그 다음에는 교인들을 생각하세요. 그 다음에는 내 주변에 있는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세요. 주님께서 주신 복을 나누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작은 아들이 어렸을 때, 한국에서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제 사례비가 825000원이었는데, 병원비가 210만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병원비를 위해서 교회 기도실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너무 큰 소리로 기도를 했나봅니다. 그 기도소리를 담임목사님께서 들으시고, 병원비를 대신 내주셨습니다. 큰 소리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가끔은 소리를 내어 기도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저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살면서 당하는 당황스러운 일들 속에서 저는 항상 “기도하자.”라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저에게 오셔서 말 못할 괴로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도 똑같이 말합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이 말은 포기와 좌절의 고백이 아닙니다. 제가 겪어온 모든 일에 대한 답은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분명히 들어주심을 믿습니다.

▶눅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아멘.

*저는 햄버거를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햄버거만 먹어도 행복합니다. 제가 왜 햄버거를 좋아하는 줄 아십니까?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양식은 먹을 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말에는 서양음식이라는 뜻도 있다.)

*일용할 양식은 하루치 먹을 것을 말합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필요한 양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앞으로 필요할까봐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른 이들과 나누며 살아야 행복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했을 때, 그들은 먹을 것을 잘 챙겨서 나왔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까지 가려면 한 달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기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정도의 식량을 가지고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시내광야에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진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내려주셨습니다.

*왜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주시지 않고, 매일 매일 먹을 분량만 주셨을까요? 사막에서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일 신선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달해주셨던 것입니다. 요즘 식재료 배달 서비스가 샌프란시스코에 있습니다. 그 사업을 처음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광야를 이동해야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많은 식량은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이스라엘백성들을 배려해서 매일 매일 배달을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마음이 변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끊으실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챙겨놓자.”
이렇게 오해했던 사람들은 하루 이상의 만나를 챙겨놨지만, 그들의 만나는 다음 날이 되면 벌레가 먹고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샌디에고의 시월드에서 돌고래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돌고래들이 물위에서 뛰고, 묘기를 부립니다. 그러고 나면 조련사가 칭찬을 하기는 하는데, 그냥 칭찬이 아니라 먹을 것을 주더라구요. 돌고래들은 칭찬때문에 쑈를 하는 것이 아니었고,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치사하게 먹을 것을 가지고 돌고래를 훈련시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먹고 사는 것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기도는 항상 간절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눅12: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아멘.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자에게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은 양식이 생겼습니다. 곡식은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는 창고가 부족하니, 더 큰 창고를 짓고 더 많은 양식을 저장해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명령합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먹고 살만하고, 자식이 잘 되고, 몸이 건강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가 간절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먹을 것이 떨어지고, 자식이 힘들게 살고, 내 몸이 아프면 그때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본성이 이런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오늘 이 기도는 분명히 응답됩니다. 점심식사 교회에서 꼭 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내일 걱정때문에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마세요. 우리가 사는 시간은 오늘 밖에 없습니다. 내 배만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배고픔도 생각하고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 아버지.
광야같은 인생 속에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어리석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간 과거에 집작하고, 오지 않은 내일을 염려하며 삽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주님, 우리는 이기적이어서, 내 배만 생각하고, 다른 이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있는 것으로 이웃과 나누며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믿음이 없어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주님의 도우심을 잊고 삽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신선한 은혜로 우리들을 채워주옵소서.
우리를 먹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09 Jun 2026 17:32: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22]화풀이-은혜금요-민20:10-260605]]></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5]]></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6-05-260605.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

 

</div>
▶ 민20: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아멘.

*벌써 출애굽한지 40년이 지났고, 이스라엘은 세대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불평하는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고, 불평하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이런 백성들 때문에 모세도 화가 났습니다. 여러분들은 화가 날 때 어떻게 푸시나요?

1/2 화풀이하지 말고 기도하라.

민20:10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바위 앞에 불러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반역자들은 들으시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당신들이 마실 물을 나오게 하리오?" 아멘.

*모세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출애굽은 본인이 계획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입니다. 그런데 욕은 자신이 다 먹고 있는 것도 억울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누나인 미리암도 죽었습니다. 모세도 120살이 되어 힘이 빠집니다. 모세가 화날만도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바위 앞에 모았고, 그들을 “반역자”라고 불렀습니다. 모세는 화가 났고, 그 화풀이로 바위를 내리쳤습니다. 두번이나 내리쳤고, 바위가 깨지고 물이 솟아 올랐습니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한 번의 화 때문에 이런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화나면 어떻게 푸시나요? 무조건 참으면 병이 납니다. 그렇다고 화가 날 때마다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그러면 내 가족이 상처를 입게 되고, 가족들이 화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무작정 참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아멘

*화를 내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길게 끌지 말라는 겁니다. 화를 길게 끌면 상대방을 향한 분노가 되고, 마음이 닫혀 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화를 제대로 풀 수 있을까요?

1) 화를 인정하라. 내가 화난 것을 인정하세요. 상대방이 왜 화났냐? 라고 하면 그건 화가 난겁니다.

2) 하나님께 가져가라.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하세요. 화난 상태로 상대방에게 가서 대화를 시도하면 더 큰 싸움이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 가져가세요. 그리고 내 분노를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특히 불같은 성격을 가진 분들은 더 많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3) 하루가 가기 전에 화해하라. 왜 하루가 가면 안 될까요? 화난 상태로 잠들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고통스럽고, 상대방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빨리 화해하는 게 잘 하는 일인겁니다.

4)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라.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그건 답이 없는 겁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복수하려고 계획을 짜지도 마세요. 내 마음에서 미움의 감정과 생각을 내려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 마음을 사탄에게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걸 잘 못 했던 겁니다. 화가 날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는 했는데,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백성에게 화를 냈던 겁니다.

*세상은 늘 우리를 화나게 합니다. 화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면, 내 삶과 내 가족은 무너질 겁니다. 화가 나도 하루를 넘기지 말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다스려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2 하나님의 계획이 최고다.

민20: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아멘.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요? 이 일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 바로 앞까지가 가기는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40년 동안 충성된 종으로 일했는데, 120살 노인이 한번 화냈다고,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이거 이해할 수 있으세요?

*모세가 한 잘못이 큰 잘못이기는 합니다. 일단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방식은 바위에게 명령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방식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했습니다.

*물을 먹는 백성들의 입장도 생각해보십시오. 먹는 물을 이렇게 분노의 말로 주는 것은 안 됩니다. 이건 “쳐먹어라.”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이렇게 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것 같습니다. 모세가 화날 이유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한 번만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렇게 제외시켜 버리실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모세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모세는 정정했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시력이 흐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나이들면 제일 먼저 눈부터 나빠지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모세가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모세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더 실수하기 전에 하늘나라로 오는 게 낫다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었습니다. 느보산은 제가 가봤는데, 요르단 땅에 있습니다. 여기에 올라가면 가나안 땅이 기막히게 잘 보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가나안 땅을 구경만 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이게 모세에게 복입니다.

*종종 제 지인들이 미국관광을 옵니다. 서부관광을 한다고 하면서 여기 저기 놀러다닙니다. 좋은 호텔에서 묵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다닙니다. “미국 참 좋다.”라고 해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관광하면 어디가 안 좋냐? 일하면서 살아봐라. 다른 세상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 무슨 차이인가요? 관광비자는 안 좋을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정복전쟁을 해야 합니다. 목숨걸고 가나안사람들과 전쟁을 해야 합니다. 120살 먹은 노인이 어떻게 전쟁터에 나가겠습니까? 모세를 위해서도 구경만 하고, 가나안 땅은 안 들어가는게 낫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여호수아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하나님눈치봐야 하고, 모세 눈치도 봐야 하는거에요. 이스라엘을 위해서도 모세가 사라지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천국으로 갑니다. 천국가서 모세가 뭐라고 했을까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서 원통하다!”라고 했을까요? “이 좋은 천국, 조금이라도 빨리 올걸!”할까요? 우리가 천국가면 이런 마음 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계획이 무너져도 염려하지 마세요. 지나고 보면, 하나님은 나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고, 하나님의 계획이 항상 옳습니다. 최고의 계획은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문
인생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광야같은 인생길을 인도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모세가 화낸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화냄을 생각합니다. 세상은 항상 우리들을 화나게 합니다. 주님, 우리들이 지혜롭게 해주셔서, 세상을 따라서 살지 말게 하시고, 화가 날 때 주님께 기도하고, 내 마음을 풀 수 있게 하시고, 사람을 향해서 화풀이하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가나안 땅보다 더 좋은 천국을 준비하신 하나님. 우리의 계획이 무너져도 실망하지 말게 하시고, 나를 향해서 최고의 계획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 삶의 등불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09 Jun 2026 17:30: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그 선생님, 점쟁이인가?]]></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4]]></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였다. 신림동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학교였는데, 내가 13회 졸업생이었으니 비교적 신설 학교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평범하고 착했지만, 공부를 포기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약한 학생들에게 돈을 빼앗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p>
<p class="isSelectedEnd">그 시절 학교에서는 학생들끼리의 힘의 서열이 분명했다. 주먹이 센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약한 학생들은 괜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p>
<p class="isSelectedEnd">다행히 우리 반에는 태권도 유단자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키는 작았지만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착했다. 힘이 있었지만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반을 지켜 주었다. 그 친구가 한 번 큰소리를 내면 복도에서 기세등등하던 학폭자들도 조용해졌다. 덕분에 우리 반은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p>
<p class="isSelectedEnd">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말이지만, 당시에는 선생님들의 폭력이 차라리 낫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선생님들은 귀신같이 문제 학생들을 찾아냈고, 그들을 거칠게 다스렸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학교는 그런 시대였다.</p>
<p class="isSelectedEnd">특히 잔인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학생들은 그분을 '미친개'라고 불렀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계셨는데, 안경 너머로 도대체 어디를 보고 계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p>
<p class="isSelectedEnd">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불량학생 한 명을 교단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무섭게 야단치며 매를 들었다. 그 학생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들에게는 묘한 통쾌함마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p>
<p class="isSelectedEnd">한참을 혼내던 선생님이 갑자기 교실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p>
<p class="isSelectedEnd">"너, 힘 좀 있다고 세상이 다 네 것 같지?"</p>
<p class="isSelectedEnd">교실은 조용해졌다.</p>
<p class="isSelectedEnd">"저기 앉아서 공부하는 저 모범생이 바보처럼 보이지?"</p>
<p class="isSelectedEnd">선생님이 가리킨 학생은 전교 1등을 하던 아이였다.</p>
<p class="isSelectedEnd">그리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p>
<p class="isSelectedEnd">"쟤가 나중에 검사 돼서 너 감옥에 집어넣을 거다. 그때 너는 쟤 앞에서 벌벌 떨게 될 거야."</p>
<p class="isSelectedEnd">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불량학생을 혼내기 위해 하는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했다.</p>
<p class="isSelectedEnd">그런데 세월이 흘렀다.</p>
<p class="isSelectedEnd">10년쯤 뒤에 들은 소식이었다. 그 전교 1등 학생은 정말 검사가 되었다.</p>
그 선생님, 아무래도 점쟁이였던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8 Jun 2026 13:10: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학폭가해자는 지금 뭐하고 살까?]]></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3]]></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나는 서대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봉천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지금의 봉천동은 내가 기억하는 봉천동과 많이 다르다. 지하철이 들어왔고, 산비탈을 가득 채우던 달동네는 재개발되어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예전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p>
<p class="isSelectedEnd">내가 살던 시절의 봉천동은 13동까지 있는 거대한 동네였다. 집집마다 아이가 둘, 셋은 있었으니 학교가 늘 부족했다.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에 초등학교가 새로 생겼고, 동생은 그 학교로 전학을 갔다. 내가 다닌 중학교도 신설 학교였다. 나는 그 학교의 1회 입학생이었다.</p>
<p class="isSelectedEnd">가난한 동네였고, 나 역시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착하고 순박했다. 우리 반에는 학습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지금 같으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리와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친구를 놀리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배려하며 함께 지냈다. 가난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던 것 같다.</p>
<p class="isSelectedEnd">그런데 수많은 친구들 가운데 유독 한 명은 달랐다.</p>
<p class="isSelectedEnd">어느 날부터 그 친구는 다른 학생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돈을 빼앗거나 물건을 갈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을 괴롭혔다. 나도 한 번 맞은 기억이 있다. 참 비겁한 것은 그가 자기보다 힘센 학생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강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약자 앞에서만 큰소리치는 사람이었다.</p>
<p class="isSelectedEnd">세월은 흘렀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들이 네이버 밴드에 모였다. 가끔 모임도 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보면 모두 나이를 먹었지만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p>
<p class="isSelectedEnd">문득 그 친구가 생각났다. 혹시 밴드에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다.</p>
<p class="isSelectedEnd">하지만 당연하게도 보이지 않았다.</p>
<p class="isSelectedEnd">어쩌면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년 동안 같은 반에서 마음대로 학교폭력을 저지르며 살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잊어버린 것 같아도 결코 완전히 잊지 않는다. 나 역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를 기억하고 있다.</p>
<p class="isSelectedEnd">죄를 지을 때는 달콤하다. 힘이 있는 것 같고,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래 남는다. 어떤 상처는 맞은 사람의 기억 속에 평생 남고, 어떤 죄는 지은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평생 따라다닌다.</p>
<p class="isSelectedEnd">사람은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살아야 한다.</p>
죄의 맛은 꿀맛일지 모른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언제나 쓰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Mon, 08 Jun 2026 13:08: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기도를 배우라-은혜주일-눅11:1-260531]]></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2]]></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5-31-260531.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YWWPL8pz3IE?si=azedEQ9iAuYkP1gW&amp;start=1126"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아버지께서는 40살에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모르셨던 아버지께서는 그때부터 다른 분들이 기도하는 것을 들으시며, 좋은 표현들을 적어서 공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아버지께서도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목사님께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셔야 했는데, “성령의 두루마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두루마기는 옷이고, 두루마리는 화장지 아닙니까? 예배당 여기 저기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창피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같이 교회를 다니시고, 아버지가 앞에 나와서 마이크 잡고 기도하시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대표기도 자부심!

*어떤 장로님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불평을 하셨습니다.
“저는 대표기도하는 사람이 적어서 기도하는 걸 보면 은혜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 대화하는 건데, 어떻게 적어서 대화를 합니까?”
그분은 대표기도를 절대로 적어서 하지 않으셨습니다. 보통 10분 정도 대표기도를 하셨고, 울면서 기도하셨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고백하며 기도하셔서, 교인들은 그 분이 대표기도하는 날은 교회에 안 오셨습니다.
대표기도는 적어서 하는게 맞고, 배워서하는게 맞습니다. 기도는 배워서 하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더 깊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기도를 배우라.

*오늘 말씀은 주기도문입니다. 보통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에 나온 것을 말하지만, 누가복음 11장에도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그런데 내용이 좀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눅11:1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아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하시다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교를 듣는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암송하고 있는 주기도문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정말 중요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에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면, 그 기도를 받아주시겠다는 기도의 가장 모범이 되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Salem witch trials
1692년 메사추세츠 Salem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동네 여자애들이 갑자기 발작을 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Cotton Mather라는 목사님이 이건 마녀의 저주때문이라고 주장했고, 그때부터 그 유명한 Salem witch trials이 시작되었습니다. 동네 여자들 중에서 눈에 띄는 여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Tituba라는 흑인 여자 노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잡혀왔습니다. Sarah Osborne이라는 여자는 교회출석을 안 한다는 이유로 잡혀왔습니다. Bridget Bishop이라는 여자는 화려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잡혀와서 처형되었습니다.
200명의 여자들이 붙잡혀왔고, 그 중에 20명이 처형당했습니다. 마녀로 의심되는 여자들에게 주기도문을 외우게 합니다. 마녀는 주기도문을 제대로 외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떨리는 순간에 주기도문을 제대로 외울 수 있을까요? 한 글자라도 틀리면, 그 여자는 마녀입니다. 19명이 교수형, 1명은 돌을 던져서 처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아름다운 기도문을 악하게 이용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은 대상이 다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해야 하는 주기도문을 따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의 기도문보다 짧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잠을 줄여서 기도하셨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할일이 없어서 잠이 안 와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쁠 수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후회할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짐에 가면, 지루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역기를 들고 계속해서 들어올리고, 덤벨을 들고 고통스럽게 반복운동을 합니다. 뭐하러 돈 주고 이런 일을 할까요? 그래야 근육이 생기고,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기때문입니다. 근육은 돈주고 살 수 없기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영혼에 근육이 사라집니다. 영혼의 근육이 사라지만, 온갖 시험에 다 빠집니다. 쉽게 넘어지고, 쉽게 불평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런 시험들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매일 매일 기도의 시간을 정하세요. 말씀보고 기도함으로 여러분들의 영혼에 근육이 생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얼마 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유명한 부흥사목사님이고 TV에도 많이 출연하셨던 분이십니다. 교회도 아주 큰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욕을 잘 합니다. 설교시간에는 거룩하게 설교하지만, 교회에서 부목사 전도사들에게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했습니다. 너무 심한 욕을 들은 목사님들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목회를 그만두신 분들도 있구요. 방금 전에 설교한 입으로 욕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너무 괴로웠다고 고백합니다. 이 분이 욕하는 걸 누가 녹음해서 방송국에 보냈고, 뉴스에 그 내용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책임을 지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목사가 어떻게 저렇게 욕을 할 수 있나? 라는 반응도 있었고, 목사가 욕 좀 하면 어떤가? 당신은 욕 안 하나? 목사가 설교 잘 해서 교회 부흥시키면 능력있는 목사 아닌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목사님의 입은 거룩하지 않았고, 그 목사님은 불명예 은퇴를 하게 되었지만, 가장 많은 욕을 먹은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눅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아멘.

*제일 첫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기를 원하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제일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기도하려고 합니다. 내 사정을 빨리 하나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미국 말 중에서는 하나님이 들어간 말들이 많습니다.
▶“Oh my God” (OMG)
“Jesus Christ!”
“God damn it”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흔히 사용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하나님과 예수님 이름을 사용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게 불러야 합니다.
▶“Oh my goodness”
“Oh my gosh”
라는 표현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국 분들 중에는 정말 주님을 찾지도 않으면서, “아버지!”, “주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화가 날 때마다 아버지! 주여!를 찾습니다. 엄마가 화날 때 쓰는 말이다. 정말 아버지를 의지하고, 주님을 부르시는 것은 너무 잘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아무 뜻도 없이 이 말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제일 첫번째 방법은 예배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까? 생각하기 전에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이는 것이 예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오늘 어떤 마음과 어떤 목적으로 예배에 오셨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들의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번째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LA에 사는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집공사를 하기 위해서 여러 업자들의 견적을 받았습니다. 어떤 업자는 자신이 장로라고 믿고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자신도 교회를 다는 사람이었기에 믿고 맡겼는데, 제대로 공사도 안 해주고, 공사비만 받고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이 공사업자는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이 업자를 욕해도 들리지도 않을겁니다. 대신 누가 욕을 먹을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는 겁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더 못됐고, 더 사기 많이 친다고 욕을 먹는 겁니다.

*내가 우리 교회의 대표입니다. 다른 분들은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을 만나면 여러분들을 통해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떤지? 은혜장로교회사람들은 어떤지? 알게 될 겁니다. 대표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 의미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세요.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나라가 임하시오며

*일제시대때 나라잃은 기독교인들은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 구절을 외울 때마다, “우리 나라가 독립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우리 나라는 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눅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아멘.

*여기서 정말 중요한 말이 빠졌습니다. 어떤 나라인지? 설명이 없습니다. 여기서 ▶“나라”라고 번역된 원어는 βασιλεία (basileia)입니다. 이 말은 “나라”라기 보다는 통치, 왕권, 주권 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즉, 이 나라는 우리 나라도 아니고, 내 나라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까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자기 왕국을 만들고 삽니다. 내 마음속에서는 내가 왕이 됩니다. 내가 맘대로 정할 수 있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내가 판사가 되어 그 사람을 정죄합니다. 내 마음속에는 내 욕심이 지배합니다. 내 생각과 내 계획이 가득한 곳이 내 마음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천국을 다른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천국을 하늘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어디쯤에 있을까요? 달 뒷 편에 숨어 있을까요? 멀리 안드로메다까지 가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다른 공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7: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아멘.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오늘 부른 찬양의 가사가 그렇습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가요? 어떤 집은 아버지의 결정대로 순종하는 집이 있고, 어떤 집은 어머니의 결정대로 순종하는 집이 있습니다. 애들이 왕인 집도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 설교를 하고 나서 교인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테이블에는 은퇴하신 남자집사님들이 모여 계셨는데, 저를 보자 울분을 토합니다. “목사님. 평생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돈을 못 벌어오니, 아내도 저를 무시하고(삼식이), 애들도 엄마하고만 말을 합니다.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거기 앉으신 분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토론을 하시다가 결론이 나왔습니다. “최대한 은퇴를 늦춘다.” “돈은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지 않고, 하는 것 봐서 조금씩 준다.” 맞는 생각일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자신이 지배하는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기때문입니다. 내 마음속에 내가 지배하는 내 왕국을 만들려고 합니다. 내 가정을 내 왕국으로 만들어서 맘대로 조정하려고 합니다. 내 나라는 분명히 언젠간 망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내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먼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관계가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 중에 어떤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는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런 가정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매일 저녁 9시에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아주 짧습니다. 5분도 안 걸리는 짧은 예배입니다. 가끔 아들들이 오면, 더 기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정리합니다. 이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내 마음에 내가 세운 나라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세요.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호하시고, 복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워서, 나의 기도로 삼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의 육신에 근육이 있게 하시고, 또한 영혼에 근육을 만들게 해주시옵소서. 매일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양함으로 근육을 만들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의 나라가 내 마음속에 먼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흔들리는 내 맘에 주님께서 왕이 되시어 다스려주옵소서. 흔들리는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어 다스려주옵소서. 내 왕국이 서있는 자리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04 Jun 2026 18:24:5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수기21]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신다-은혜금요-민20:1-260522]]></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81]]></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5-29-260529.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div></div>
▶ *20: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아멘.

*민수기는 이스라엘백성들의 광야생존기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시점입니다.

1/3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신다.

*민수기 13장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참꾼을 보냈습니다. 그게 출애굽 2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의 현실에 실망했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1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38년을 광야에서 살게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총 40년의 광야생활입니다.

민20: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 백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그 곳에 묻혔다. 아멘.

*시간이 흘러서 40년 첫째 달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수기 15~19장이 38년의 기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민수기를 한장씩 꼼꼼이 봤습니다. 뭐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설명도 없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을까요?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오해를 합니다. 성경에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다고 오해합니다. 성경에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한 책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기록할 일이 아닌 것은 과감하게 넘어갑니다.

*38년 이라는 시간 동안 특별한 일도 없었고, 특별히 기록할 것도 없었다는 겁니다. 특히 믿음과 구원에 관련된 것은 기록할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믿음의 눈입니다. 우리를 다른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성공했어도 믿음이 없으면, 그 인생은 기록할 것이 없는 인생입니다.

*시간이 38년이나 지나버렸습니다. 세월은 날아갑니다. 그 속에서 믿음이라는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인정받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있을 때는 감사하고, 없을 때는 소망하라.

민20:2 회중에게는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함께 모였다. 아멘.

*어쩌면 이렇게 이스라엘백성들은 한결같을까요? 변함없이 불평하며 살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불평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민20:5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소?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되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 아멘.

*당연히 씨뿌릴 곳이 없죠. 그곳은 광야니까요. 광야는 원래 그런 곳이고 불편한 곳입니다. 백성들은 변함없이 광야에서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평하는 사람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하늘이 지겹게 파래요.”
파란하늘을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비가오면 으슬으슬 춥다고 불평하셨고, 더우면 덥다고 불평하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불평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불평하시던 분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4계절이 분명하고, 겨울이 일년의 반 정도 되는 미국 북부였습니다. 그분은 지금 이 곳의 날씨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며 사십니다.

*있을 때는 불평하고, 없을 때는 후회한다.
이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겁니다. 있을 때는 감사해야 하고, 없을 때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면, 인생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있을 때는 감사하고, 없을 때는 소망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하나님께서는 과정을 보신다.

*모세와 아론은 늘 그랬듯이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바위에 명령을 하면 바로 물이 나올 것이다.

민20:11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아멘.

*그런데 모세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팡이로 바위를 두번 내려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엄청난 벌을 내리셨습니다.

*모세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요? 그의 나이는 120살이었습니다. 그는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변화되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40년을 시달렸으니, 모세가 화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제일 처음에 나온 배경을 보면 모세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의 누나인 미리암이 죽었습니다. 형제의 죽음은 큰 충격을 줍니다. 형제의 죽음은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리암이 죽었으니, 이제 나도 죽을 때가 되었구나!

*모세는 지쳐있었고, 미리암의 죽음으로 큰 상심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백성들이 또 불평을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모세가 화가 나서 바위를 때렸는데, 물이 안 나왔음. 이러면 문제죠. 물이 콸콸 잘 나왔습니다. 모세가 쎄게 때릴 수록 물이 더 잘나온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입니다. 모세의 힘으로 물이 나온건가요? 하나님의 능력인가요?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렸던 겁니다.

*결과만 좋으면 방법은 상관없을까요? 모세는 실수했습니다. 물은 콸콸 잘 나왔지만, 방법은 잘못 되었습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는지?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들을 화나게 합니다. 화날 일이 있다고 성질대로 살다가는 하나님께 벌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품위를 갖추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시간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주신 시간으로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는 줄 압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인정받게 해주시옵소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니, 내 속에 믿음을 키워가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들은 어리석어서, 항상 불평하고 항상 후회합니다. 있을 때는 감사하고, 없을 때는 소망하게 해주시옵소서.
세상은 우리들을 화나게 합니다. 십자가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들도 참고 견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hu, 04 Jun 2026 18:23: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두 장로님 이야기]]></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71]]></link>
			<description><![CDATA[<p class="isSelectedEnd">제가 존경하는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처음 전도사로 교회에서 봉사할 때, 그 장로님은 교회 사무장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전히 봉사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월급도 받지 않으시고 헌신하셨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어느 주일 새벽에 있었던 일입니다. 전날 밤 교회에 눈이 아주 많이 내렸습니다. 언덕이 많은 교회라서, 주일에 교인들이 교회에 오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새벽부터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 나가보았습니다. 그 장로님께서 양복을 입은 채 삽을 들고 눈을 치우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들도 함께 삽을 들고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저는 그 장로님을 통해 교회에서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해서는 안 되며, 필요한 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선수범하는 리더 한 사람 덕분에, 그날 모든 교인들은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반대로 이런 장로님도 계셨습니다. 어느 날 교회 소식지가 담긴 박스들이 1층 사무실 앞에 쌓여 있었습니다. 원래는 교회 일꾼들이 트럭으로 옆 건물로 옮기곤 하던 일이었습니다. 전도사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한 장로님이 갑자기 전도사님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박스들을 모두 옆 건물로 옮기라고 지시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당시 전도사님들은 심방 준비로 매우 바쁜 상황이었고, 그 일은 원래 전도사님들의 역할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 장로님이 먼저 박스를 들고 옮기셨다면, 전도사님들도 기꺼이 함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시만 하는 태도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한 전도사님이 조심스럽게 “그 일은 교회 일꾼들이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장로님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이게 떡이고 고기였으면, 당신들이 가만있었겠어? 서로 먹으려고 달려들었겠지.”</p>
<p class="isSelectedEnd">그 거친 말투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남겼습니다.</p>
<p class="isSelectedEnd">교회에서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리더가 바른 리더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리더이셨습니다. 먼저 본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서로 섬기는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반면 섬기기 싫어하는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불편해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자신들도 섬겨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p>
<p class="isSelectedEnd">앞의 두 장로님 가운데, 누가 예수님을 더 닮았습니까?</p>
교회는 직분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섬김으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낮아지고, 먼저 손에 삽을 들고, 먼저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은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기를 바랍니다.]]></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Fri, 29 May 2026 14:03: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건강이 최고입니다?]]></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9]]></link>
			<description><![CDATA[<p>살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건강이 제일이다.”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일 것입니다. 실제로 건강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해야 가정을 돌볼 수 있고, 교회를 섬길 수 있으며, 맡겨진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여기지 말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p>
<p>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건강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건강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늙고 약해집니다. 의술이 발전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건강이 인생의 최고 가치라면, 마지막 순간에 모든 사람은 실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p>
<p>저는 오래전 한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평생 교회를 위해 충성하며 헌신하셨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리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셨고 치료도 받으셨습니다. 주변 성도들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병은 끝내 낫지 않았습니다. 심방을 갔을 때 그 권사님은 깊은 분노 속에 계셨습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은 없다”고 말씀하시며 원망하셨습니다. 건강을 잃어가면서 믿음까지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p>
<p>그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과 평안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까? 물론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믿음의 중심이 드러납니다.</p>
<p>사도 바울은 육체의 약함이 있었지만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건강할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을 잃어갈 때 진짜 믿음이 드러납니다.</p>
<p>건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고는 아닙니다. 건강은 언젠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영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은 약해져도 믿음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은 건강을 최고의 복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을 가장 귀한 것으로 말합니다.</p>
<p>그래서 성도의 고백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약할 때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최종 소망은 건강한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최고입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7 May 2026 12:00: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왜 사람들은 솔로몬을 부러워할까?]]></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8]]></link>
			<description><![CDATA[<p>많은 사람들은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솔로몬</span></span>을 부러워합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뛰어난 지혜가 있었고, 엄청난 부를 누렸으며, 강력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그의 영광을 인정했고, 수많은 여인들과 화려한 궁궐도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최고의 성공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도 솔로몬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말합니다.</p>
<p>심지어 <span class="hover:entity-accent entity-underline inline cursor-pointer align-baseline"><span class="whitespace-normal">전도서</span></span>를 읽고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솔로몬은 다 누려봤잖아. 나도 실컷 누려본 뒤에 헛되다고 말해보고 싶다.” 사람은 경고보다 환상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p>
<p>그러나 성경은 솔로몬을 단순한 성공 모델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기록합니다.</p>
<p>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혜와 계산을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주변 나라들과 정략결혼을 반복했고, 화려한 건축과 왕국 확장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에게는 무거운 세금과 부역이 쏟아졌습니다. 북쪽 지파들은 점점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그의 아들 시대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비극까지 이어집니다.</p>
<p>겉으로는 황금시대였지만, 안으로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p>
<p>무엇보다 솔로몬의 가장 큰 문제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아내를 두었고, 결국 그들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까지 허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왕의 마음이 세상 쾌락과 타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p>
<p>참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불렸던 사람이 자기 마음은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남들에게는 잠언으로 지혜를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의 욕망 앞에서는 무너졌습니다. 성전을 건축했지만, 자기 영혼의 성전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p>
<p>그래서 전도서의 고백은 더욱 처절하게 들립니다.</p>
<p>“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p>
<p>이 말은 가난한 사람의 푸념이 아닙니다. 세상의 쾌락과 성공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 남긴 결론입니다. 솔로몬은 인생 끝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은 사람의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채워질수록 더 커질 뿐이며, 하나님을 잃어버린 지혜는 결국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p>
<p>오늘날 교회도 솔로몬을 조심해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의 부와 지혜만 강조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잘 믿으면 솔로몬처럼 성공한다”는 메시지만 듣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은 “솔로몬처럼 부자가 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솔로몬도 하나님을 떠나자 무너졌다”는 경고에 가깝습니다.</p>
<p>신앙의 목표는 솔로몬 같은 성공이 아닙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세상은 화려한 왕을 부러워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을 복되다 말합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7 May 2026 11:57:4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하늘이 지겹게 파랗다]]></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7]]></link>
			<description><![CDATA[<p>"목사님. 하늘이 지겹게 파래요."</p>
<p>늘 불평이 습관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날이 추우면 “춥다”고 불평하고, 더우면 “덥다”고 불평했습니다. 이 지역의 날씨에 대해서도 늘 “은근히 춥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계절이나 환경이 바뀌어도, 그분의 말투는 늘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불평이 기본값이 된 삶이었습니다.</p>
<p>요즘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참 좋습니다. 파란 하늘, 따뜻한 햇살, 바람까지 부드럽습니다. 전형적인 샌프란시스코 여름 날씨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날씨인데도, 유난히 감사하게 느껴집니다.</p>
<p>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고,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맑은 하늘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나빠졌다가 좋아졌을 때” 비로소 좋은 것을 알게 됩니다.</p>
<p>왜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갈까요?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허전함을 느끼고, 그제야 감사함을 발견합니다.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다가, 사라진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날씨는 돌고 도는 거지만, 한 번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은 어떨까요? 평생 불평하다가 나머지 인생은 후회하며 살 겁니다.</p>
<p>이 지역에서 목회를 하다가 미국 육군 군목으로 떠난 한 목사님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 최북단, 나이아가라폭포 근처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겨울이 거의 반년이나 되는 곳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온화한 날씨와는 완전히 반대인 지역입니다.</p>
<p>제가 물었습니다.<br />“목사님, 여기 날씨가 그립지 않으세요?”</p>
<p>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br />“그립죠.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그립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금방 익숙해집니다. 오히려 4계절이 뚜렷해서 더 만족스럽기도 합니다.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덥지만, 겨울에는 봄을 기대하고 여름에는 가을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p>
<p>어디에 가서 살아도 완전히 만족스러운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만족은 환경보다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어디서든 좋은 것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태도가 더욱 중요합니다.</p>
<p>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맑은 하늘과 날씨를, 그냥 스쳐 보내지 말고 누려보면 좋겠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말입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7 May 2026 11:50: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션스트릿 Mission St, 발렌시아스트릿 Valencia St 투어(5/25)]]></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6]]></link>
			<description><![CDATA[오늘은 메모리얼데이입니다. 미국 현충일이죠.
미국은 군인들에 대한 존중이 대단합니다. 한국에서는 "군바리"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군인을 무시하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습니다.
얼마 전에 Vallejo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도로에서 차량운전사끼리 다툼이 있었습니다. 앞 운전자가 뒷 운전자에게 다가가서 후추스프레이를 얼굴에 뿌렸습니다. 방송에서는 "군복무를 했던 민간인"에게 후추스프레이를 뿌렸다고 보도를 했고, 가해자는 체포되었습니다. 한참 전에 군복무를 했어도, 미국에서는 군인들은 무조건 존중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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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미션 스트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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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중남미 나라들의 이름표가 보이죠? 여기는 중남미 이민자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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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또와 타코를 먹었습니다. Taqueria El Farolito, 2779 Mission St, San Francisco, CA 94110
현금만 받습니다. 가격은 10불, 타코는 9불. 정말 싸네요. 양도 많구요. 추천합니다.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5/6a172f913c67c6940074.jpg"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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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24가 역에 열린 노점입니다. 별 것을 다 팝니다. 생필품부터 음식까지.

<img src="https://kimdongwon.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5/6a172f913e8904728038.jpg" alt="" />

여기는 16가 미션 역입니다. 여기도 대단히 노점이 많았는데, 뉴스에서 보도한 후 많이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길에서 생고기도 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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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로 옆 길인 발렌시아쪽은 깨끗하고 젊은 백인, 아시안들이 가득합니다.
원래는 여기도 모두 중남미거리였는데, 90년대에 테크 붐이 일면서 이 지역은 다른 방향으로 개발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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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Barrel Coffee에서 커피 한 잔 했습니다. 유명한 집입니다.  <span class="LrzXr">375 Valencia St, San Francisco, CA 94103</span>

 ]]></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7 May 2026 10:17: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2"><![CDATA[photo]]></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염려를 내려놓고 예배하라-은혜주일-눅10:41-260525]]></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5]]></link>
			<description><![CDATA[<div>

<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5-24-260524.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voice.jpg" alt="servoice.jpg" /></a>

<span style="font-size:16px;"><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wtn4krenoZ8?si=iio-QTQMOS_Q20ee&amp;start=1105"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span>

</div>
▶ *교회는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해보셨나요? 교회봉사하면서 보람도 느끼지만, 때로는 봉사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교회 떠나는 일도 생깁니다. 우리는 어떻게 봉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1/3 예수님은 낮은 마음을 찾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와 이야기를 마친 후, 베다니라는 마을로 이동하셨습니다. 베다니의 바로 옆 마을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자들과 종교인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베다니를 사랑하셨습니다. 베다니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실 때, 마지막까지 머무셨던 곳도 베다니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낮은 도시는 여리고입니다.(-258미터) 세상에서 제일 낮은 바다는 사해입니다.(-430미터) 제가 이스라엘 땅을 갔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살기 힘든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을까?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곳을 사랑하십니다. 낮은 자를 택하시고, 힘든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이 바로 이겁니다. 겸손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낮추세요. 반대로 잘난 척하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받을 은혜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출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저는 우리 교인들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은 항상 가난했으면 좋겠습니다. 헛된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차면 안 됩니다. 늘 가난하게 비워두셔야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은혜는 항상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은혜는 물과 같이서, 절대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베다니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베다니처럼 낮춰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낮은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눅10: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아멘.

*어떤 마을이 바로 베다니입니다. 이 마을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마르다, 나사로, 마리아 가족이었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였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최소한 13명의 손님을 받았으니, 마르다는 마음이 바빴습니다. 음식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마르다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화나는 일이 생깁니다.

▶눅10: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아멘.

*언니는 바쁘게 음식준비하는데, 여동생이 안 보이는 겁니다. 마리아는 어디에 있을까요? 언니가 찾아보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보통 랍비들은 앉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발 곁에는 누가 앉을까요? 이 말의 뜻은 정말 발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자인 것처럼, 진지하게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을 돕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여자가 무슨 제자인 것처럼 예수님 앞에 앉아 있냐는 겁니다. 당시 여자들의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차별당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들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는 모두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도왔던 수많은 여자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봉사하면서 시험드는 분들이 많습니다. ▶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리아처럼 말씀을 배우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채우지 않으면, 봉사하면서도 시험듭니다. 매 주일 예배를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채우세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채우세요. 예배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은혜받고, 몸으로 봉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라.

*누가복음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이방인, 여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 이야기도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여자들은 무시당했습니다. 배움의 기회도 여자들에게는 주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은 그런 시절에 교회에서 여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이를 만드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차별을 만들었습니다. 남자라고 차별하고, 여자라고 차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인종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차별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남자장로님도 있고, 여자장로님도 있습니다. 모두 주님 안에서 충실한 일꾼들입니다.

▶눅10: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멘.

*이 집에는 부모님이 안 계셨습니다. 첫째인 마르다가 어머니역할을 대신 하는 겁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눈치를 줘봤지만, 마리아가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마리아가 음식은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앞에 제자들과 같이 앉아 있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마르다는 어쩔 수 없이 열심히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께 와서 항의를 합니다. 왜 나만 혼자 일하게 하십니까? 왜 내 동생을 붙들고 가르치고 계십니까? 동생에게 언니를 도우라고 이야기해주십시오.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눈치를 줬지만, 마리아가 못 본 척 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었기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마르다는 뭐가 그렇게 화가 나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마리아는 당장 나가서 언니를 도와야 하는 것일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봉사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교회의 대부분의 일들은 봉사자들덕분에 유지됩니다. 2천년 넘게 교회는 봉사자들을 통해 유지되었습니다. 봉사를 하면 더 열심히 교회생활을 할 수 있고, 봉사를 통해서 시험도 들지만, 믿음이 더 많이 자라게 됩니다.

▶*교회봉사하면서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1) 봉사가 부담이 된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할 수록 일이 많아지고, 매주 빠지지 않고 하려면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2)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매주 봉사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도 매주 열심히 봉사하시는 일꾼들이 있습니다. 더 많이 칭찬해주시고, 혼자 일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3) 영적으로 피로하다.
매주 맡은 책임이 있어서 교회에 나가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는 겁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예배에 집중하는 겁니다. 우리들은 예배의 봉사자이기도 하지만, 예배자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섬기려고 이 자리에 나오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예배자라는 사실입니다. 예배자로 예배에 집중하세요. 안 그러면 봉사하면서 시험에 듭니다.

▶4) 비교하고 불평한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이 문제입니다. 왜 나만 주방에서 힘들게 일해야 하냐? 라는 겁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안 도와주고 가만히 있냐? 항상 나만 일하는 것 같다. 라는 불평입니다. 우리는 봉사자가 아니라, 사명자입니다. 이 일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비교하고 불평할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예배자와 봉사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두가지 사명을 잘 감당하세요. 사람보고 일하지 마세요. 나를 믿어주시고,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명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예배는 염려를 내려놓는 시간이다.

*1885년 첫 개신교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여자분들이 교회에 많이 모였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애가 있는 집이면,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혹은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을 알면, 전주댁, 순천댁 이렇게 불렀습니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나면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달랐습니다. 교회에 가면 여자들에게도 이름을 불러줬습니다. 직분도 줬습니다. 집사, 권사 이런 직분을 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눅10: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아멘.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이름을 두번 부르십니다.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깊은 애정과 깊은 걱정때문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섬기는 일을 하다가 시험에 들었기때문입니다. 마르다가 화가 나서 예수님께 강력하게 항의했기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염려하며” “들떠 있다.”
마르다가 염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갑자기 집에 오셨는데, 이 분들을 잘 섬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들떠 있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마르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잘 섬겨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겁니다. 좀 더 많이,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겁니다. 음식 잘 한다는 칭찬을 받고 싶은 욕심도 이 속에 있는 겁니다.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생각하고, 그 일들을 잘해서 칭찬받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마르다가 염려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손님은 많은데, 밥은 누가 하냐?”는 겁니다. 마르다는 많은 일들에 지쳐있었습니다. 그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일들이 마르다를 지치게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나 아니면 이 일을 할 사람도 없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겁니다.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일을 제대로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바쁠 수록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눅10: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아멘.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정말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말씀 듣게 놔두고, 밥은 네가 혼자 해라. 이런 뜻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마르다는 이 말을 듣고 뭐라고 말했을까요? 이게 끝이어서 마르다의 뒷 이야기는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라는 말씀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적당한 해석이 있습니다. “밥은 많이 차리지 않아도 된다. 간단히 먹어도 된다.”라는 해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이 없으면 굶으셨고,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르다에게 많은 음식을 차리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냥 마르다가 스스로 욕심을 내고, 스스로 시험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밥은 참 중요합니다.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먼 훗날 그날 그 자리에서 먹었던 밥이 기억날까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날 들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밥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마리아는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있었던 겁니다.

*가끔 교회주방에서 사고가 날 때가 있습니다. 밥통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예배마치고 식당에 내려왔는데, 밥이 되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리는 사고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시간이 좋습니다. 밥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친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느는게 있습니다. 염려입니다. 갈수록 염려와 걱정이 늘어납니다. 쓸데없는 상황까지 생각해가면서 염려를 합니다. 그 염려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인생의 경험이 쌓이면서, 그 경험이 더 많이 염려하게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염려하지 않으려고 하면, 다른 염려까지 더 많이 생각납니다. 염려는 내 마음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자기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배는 염려를 잠시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열심히 찬양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에 집중하면서, 내 염려를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고,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염려는 내 마음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는 염려를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마르다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염려는 무엇인가요? 한 주간 동안 여러분들의 마음을 괴롭힌 그 염려는 무엇인가요? 그 염려를 이 예배시간만은 잠시 잊으세요. 말씀에 집중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 염려를 내려놓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나의 주인이신 주님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까지 나가게 하시고,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은 마르다처럼 늘 분주하고 들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잘하려는 욕심으로,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삶에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26 May 2026 21:28:0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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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민수기20]거룩하게 살면 복받는다-은혜금요-민19:11-260522]]></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4]]></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s://sfgrace.net/podcast/index.php?name=2026-05-22-260522.mp3"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mon_podcast.jpg" alt="servoice.jpg" /> </a><a href="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EC%9D%80%ED%98%9C%EC%9E%A5%EB%A1%9C%EA%B5%90%ED%9A%8C/id645690370" target="_blank" rel="noopener"><img src="http://sfgrace.net/images/serpodcast.jpg" alt="servoice.jp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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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19: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아멘.

*신학교에 들어가니 목사님들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달랐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할렐루야로 인사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거룩한 목소리였습니다. 목사님들의 거룩한 목소리는 정말 거룩한 목소리일까요? 이건 거룩한 목소리가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이기때문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목소리라면, 거룩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목소리입니다.

*교회 다니면 하라는 것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습니다.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룩하지 않다고 합니다.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1/3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는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성품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거룩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목소리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목소리도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룩하다는 목소리입니다. 이건 진짜 거룩은 아닙니다.

레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의 원래 뜻은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은 특별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의 반대는 부정입니다. 죄를 지으면 사람은 부정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부정을 씻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죄를 지으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살이 하고 나온 사람은 거룩한 사람인가요? 그 사람들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냥 죄값을 치르고 나온 사람들일 뿐입니다.

*거룩해지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유일하게 우리의 죄를 씻고, 거룩해지는 방법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하나님을 따라 거룩함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닮는 거룩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거룩하게 살면 복받는다.

*교회다니면 하라는 것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습니다. 술 담배 하지 말라고 하죠. 주일예배 금요예배 드리라고 하죠. 헌금하라고 하죠. 구제하라고합니다. 왜 이런 것들을 해야 할까요?

민19: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아멘.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해집니다. 부정한 사람은 성밖으로 나가서 7일을 격리해야 하고, 마지막 날에 물로 씻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정결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실 여기서 거룩은 위생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7일 동안 자가격리를 하라는 겁니다. 시체를 만진 사람은 성막에도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시체에서 병균이 옮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균, 전염 이런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룩과 부정으로 가르치셨던 겁니다.

*코로나기간 동안 우리들은 이걸 다 배웠습니다. 며칠 동안 격리해야 합니까? 5일 동안격리해야 한다고 분명히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을 통해서, 위생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왜 거룩하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거룩하게 살면 내가 복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격리를 제대로 하면, 내가 회복되고, 가족들에게 전염시키지 않기때문입니다.

1)하나님과 가까워진다.
매일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매일 매일 거룩한 훈련을 스스로 하면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거룩을 연습하게 되면, 죄를 피하게 됩니다. 거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죄지을 자리를 피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온갖 나쁜 마음들을 갖고 있습니다. 중독, 탐욕, 분노, 비교와 시기.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러한 감정들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3)삶이 건강해집니다.
거룩을 연습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거룩을 연습해서 내가 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 열심히 믿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제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간경화로 죽을 뻔하셨는데, 예수믿고 주님 뜻대로 사신 덕분에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사십니다.

4)천국가면 거룩하게 삽니다.
천국가면 맨날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이거 연습 안 하시고 천국가시면 못 견디실 수도 있습니다. 천국가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을 때, 거룩을 연습해서, 천국가서 잘 적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예수님의 거룩을 본받으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식사하셨기때문입니다. 아무리 의인이라도 죄인들과 함께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죄인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죄인들을 친구로 삼으셨을까요?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아멘.

*예수님의 거룩은 차원이 다른 거룩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더러운 것을 피하면 거룩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얀 셔츠를 입고 집에서 나온 뒤, 더러운 것을 하루 종일 피해다니면 셔츠는 어떻게 될까요? 끝내 더러워집니다. 더러운 것을 피해다닌다고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세탁소로 가지고 가야지 깨끗해 집니다.

*교회가 영혼의 세탁소입니다. 상한 마음, 병든 마음, 더러운 마음 모두 예수 앞에 가지고 나오세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해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움을 피하지 말고, 더러운 곳에 가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과 소금은 스스로 의미가 없습니다. 더러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하고, 섞을 것을 막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얻고 나면, 세상 속에서 더러운 것을 피해다니고, 1주일 뒤에 깨끗하게 다시 만나야 할까요? 이게 안 됩니다. 우리의 사명은 옷을 깨끗하게 보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를 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은혜받고,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매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게 해주시옵소서.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양하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하게 살게 해주시옵소서. 내가 중독된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해주시고, 우리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거룩한 말만 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세워주심을 믿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Tue, 26 May 2026 21:25:4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3"><![CDATA[serm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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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숙제 안 해가서 맨날 맞았던 기억]]></title>
			<link><![CDATA[https://kimdongwon.net/?kboard_content_redirect=20461]]></link>
			<description><![CDATA[<p>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숙제를 해 간 적이 없었다. 매일 숙제 검사 시간이 되면 나는 앞으로 나가 대걸레로 맞았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하셨던 것 같은데, 1년 내내 숙제를 안 해 가는 학생이 되자 선생님도 점점 힘이 들어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실상 풀스윙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숙제를 해 가면 맞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항상 숙제를 안 해 가는 학생, 그리고 늘 맞는 학생. 나는 스스로를 그런 존재로 규정하고 있었다.</p>
<p>그렇다고 내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였던 것은 아니다. 나는 숙제를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계산하고 있었다. 숙제를 하는 시간보다, 숙제를 안 하고 놀면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맞는 것은 괴롭고 창피했지만, 그것은 짧은 순간이었다. 반면 숙제를 하는 시간은 길고 번거로웠다. 나름대로는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믿고 있었던 셈이다.</p>
<p>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늘 부드럽게 웃으시던, 마치 천사 같던 분이었다. 조귀령 선생님이었다. 그때도 나에게 숙제를 하지 않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하셨지만 한 번도 나를 때리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더 편하게 숙제를 안 해 갔다. 그 시절 나는 나름대로 학교에서는 ‘공부를 조금 하는 아이’로 인정받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숙제를 더 가볍게 여기게 만든 이유였는지도 모른다.</p>
<p>그러던 어느 날, 학급 운영위원을 뽑는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이 나를 추천했다. 그 순간 선생님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시고 물으셨다.</p>
<p>“동원이는 숙제를 안 해서 안 돼. 동원아, 숙제 해 왔니?”</p>
<p>나는 순간 당황해서 “잊어버리고 안 가져왔어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짧은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 있었다. ‘숙제만 했어도 저 자리는 내 것이었을 텐데. 나를 믿고 있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p>
<p>그날 이후 나는 처음으로 삶을 바꿔 보기로 결심했다. 조금씩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하지 않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게다가 나는 늘 핑계를 만들 수 있었다. 집이 가난해서 참고서를 살 수 없었고, 그래서 정답을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핑계만으로는 계속 버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친구들의 참고서를 빌려가며 숙제를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예습하는 습관도 생겼다.</p>
<p>3년 동안 나는 여전히 혼나기도 하고, 때로는 맞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숙제를 해 가는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조귀령 선생님의 그 한마디와 믿음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사람은 완벽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줄 때 바뀌는 것인지도 모른다. 속더라도 믿어주는 마음이 사람을 움직인다. 결국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었다.</p>]]></description>
			<author><![CDATA[김동원목사]]></author>
			<pubDate>Wed, 20 May 2026 16:56: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kimdongwon.net/?kboard_redirect=4"><![CDATA[colum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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