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의 은혜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25-08-19 10:17
조회
6117

대학을 졸업한 뒤 저는 공군 장교로 군 복무를 했습니다. 특별히 공군 장교를 선택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선배들이 대학을 마치고 공군 장교로 많이 갔던 영향이 컸고, 그들이 “공군 장교가 편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대도시 주변에 공군 부대가 많아 군 생활을 비교적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1993년 3월 2일, 저는 경남 진주시 금산면 속사리에 위치한 공군 교육사령부에 입소했습니다. 군에 있는 동안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숙청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훈련소에 있던 저는 전혀 알 수 없었죠. 그런데 누가 공군 장교가 편하다고 했던가요? 장교 훈련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사병, 하사관, 장교 순으로 훈련 강도와 한계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평생 처음 겪는 강도 높은 육체 훈련이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기생은 약 500명 정도였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각각 백 명씩은 되는 듯했습니다. 유학파도 있었고, 외무고시·행정고시 합격자들도 여럿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의 엘리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매주 시험을 치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부대 배치를 했습니다. 저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시험은 공교롭게도 목요일과 월요일에 치러졌습니다. 저는 서울 근처에 배치되기를 기도했지만, 공부 대신 예배를 택한 자에게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결국 공군 최고의 격오지라 불리던 경북 예천 비행장에 배치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만 자란 토박이였습니다. 예천 비행장의 첫인상은 “공기가 참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슴이 뛰놀고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진 완벽한 시골이었지요. 제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장 가까운 도시가 “점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들어본 적조차 없는 촌스러운 이름에 저는 완전히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제 계획 속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장교였기에 영외 생활이 가능했고, 점촌 시내에 방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점촌시민교회 청년부에 출석하며 다양한 지역 청년들을 만나 교제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앙의 훈련도 받았고, 점촌 영어학원에서 열심히 영어 공부도 했습니다. 점촌은 제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하나님의 계획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지만, 내 계획보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믿음이 결국 저를 미국까지 이끌었습니다. 당장 눈앞은 실망스러워도 저는 지금도 “점촌의 은혜”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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